장편야설

(환타지야설) 선택 - 5. 넘어온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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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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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께서 나에게 지워 주신 일들을 나는 여지없이 예전처럼 망쳐 버렸다. 절대로 나서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음에도, 성질을 어쩌지 못해 다시금 뽑아 든 피부를…..사람이 한적한 고층 건물의 꼭대기 모서리에 주저앉아, 나는 깊은 시름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저 멀리에서 일들을 마친 나 같은 판정관들이 환호를 올리며,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한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등에 달린 날개도 내 기분을 아는지, 꿈틀거리기만 할 뿐 좀처럼 움직일 기미가 없다. 불안해져 오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즈음이면 전달 되어야 할 복귀명령이 아직 들리질 않고 있는 것이 그러했다. 항상 보기 좋은 일들만 도맡아 하는 부류들과 달리, 우리 같은 치들은 심부름 중에서도 아주 애매한, 예를 들자면, 우리 쪽에서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저쪽으로 떠넘기기도 까탈스러운 일들이었기에, 절대적인 복종과 임무 수행의 과감성이 항상 요구되었지만, 언제나 그렇게 뜻대로 되진 않았다는 걸 난 안다.

그 분께서는 그러셨다. 인간이 하늘을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늘을 위해서 인간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러나, 우리 같은 부류들은 그걸 곧잘 까먹곤 했다. 머리를 하늘에 두고 있으면서도, 몸은 지극히 인간에 가까운 엉뚱한 동병상련의 덩어리….


‘다 했느냐?’


그 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어떻게 다 했느냐?’


‘그게……. 주제넘은 짓을 했습니다.’


‘너희에게 용서는 없다는 걸 알고는 있느냐? 그건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예외 조항 인 것을 너희들도 잘 알고 있지?’


‘………’


‘너의 임무는 판단일 뿐이었지, 그들을 너의 임의대로 처리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 처리가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불러오는지도 알고 있고?’


‘네.’


‘그럼 되었다. 네 대답대로 될지어다.’


그리고, 그분으로의 음성이 뚝 끊기고 말았다. 그건 내 대답이 불러오는 처벌의 연쇄작용이 곧 닥칠 거라는 암시와도 같았다.

내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것 같더니, 바로 불어대는 바람과 함께 보푸라기처럼 등에 달려있던 날개의 갈기 털들이 공중으로 말려 올라가는 것이 아스라이 보이고 있었다. 등의 뼈다귀가 꺾어지는 것 같은 통증과 함께 갈비뼈 속으로 자취를 감추는, 나와 고락을 같이했던 날개의 실종……

이름하여 나는 추락하는 천사인 셈이었다.


옥상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나는 점차 하늘의 능력으로 부여받았던 영혼을 다루던 능력이 사라져 감을 느껴갔다. 온몸은 벌거벗은 채였고, 난 세상으로 내동댕이쳐지고 있었다. 저 멀리서 가물가물 하늘이 열리면서, 집정관들이 지상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것이 보이고 있었지만, 곧 그 영상은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하늘은 그냥 그대로 변함없이 하늘이었다.


어차피 내 눈은 이제 인간이 바라다보는 시야밖에는 보이지 않게 될 것은 뻔한 이치였기에……나 같은 판정관의 할 일들이 이제야 끝난 모양이었다.

이미 선택이나 일침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은 모르고 있을 테지만, 얼마 있질 않아서 그분의 절차대로 세상의 일들은 거침없이 진행될 것이다.


그 정확한 때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곧이어 시작될 수도 있는 휴거 앞에, 나는 그 분이 내려 주신 마지막 선물을 그제야 느꼈다.

인간의 몸으로 내쳐졌지만, 아직 나는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내가 스스로 죄를 지으려고 발버둥 치지 않는 한, 나는 순결함으로 인해, 자동으로 휴거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질 않은가 말이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앞에 남겨진 선택의 기로…. 난 옥상의 난간 모서리에 천사일 때처럼 웅크리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나로서는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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