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청춘예찬 35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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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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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가 아버지를 닮지는 않았나 보네.'

 


성격은 어느정도 아버지를 닮았지만, 술을 못먹는 것은 어머니쪽인 모양이었다. 양주를 묵묵히 연거푸 마셨던 한사장의 얼굴은 태연작약했기 때문이었다.

앞에 과일이 놓여 있지만,안주를 쩝쩝거릴 분위기가 절대 아니었다. 

승민은 눈을 질끈 감고 양주를 넘겼다.목이 타는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잔 따라줘."



승민이 잔을 비우기가 무섭게 그녀의 아버지가 그 잔을 받아들고는 손을 내밀었다.

꽤나 큰 양주병은 이제 바닥을 보여가고 있었다.

아까부터 묵묵히 술을 마셔대었으니, 제 아무리 어느정도 먹는 승민이어도 핑핑 돌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공대 특유의 소주정신으로 길들여진 그는 양주는 전혀 생소한 세계나 다름없었다.



"자 받아."



잠시 쉴틈도 없이 잔이 돌아왔다.이 한잔을 마시면 왠지 확 가버릴것만 같은 묘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얼굴색 변화 하나 없었다.몽롱한 기분에 술을 넘기는 승민의 귀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이제부터는 두고보겠어.자네가 맘에 안든다는 그 생각은 거두고..객관적으로 말이야."


 


쿵!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식탁위를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마치 전신마취를 한것처럼 체내 양주 허용치를 넘어버린, 정확히 말하면 양주가 체질이 아닌 승민이 그대로 고꾸라진 것이다.



"어머!"



무언가의 둔탁한 음색을 들어버린 채윤의 어머니가 후다닥 주방으로 달려들어왔다.

한사장은 전혀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베틀 10분만에 넉다운 해버린 자신의 딸의 남자친구를 그저 묵묵히 바라보았다.



"여보...어떡해요? 이렇게 술을 많이 먹이면...."


"집에서 재워. 아침에 밥 두둑하게 먹여서 보내고."


"어디서요? 남는 방도 없고..서재에 재울수도.."


"채윤이 방에서."


"뭐라구요?"



그녀는 눈이 크게 떠지며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았다. 평소 그의 모습을 비춰보면 이것은 절대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딸의 방에서 남자아이를 재운다니! 그녀는 그저 입을 쩍 벌리고 자신의 남편을 바라볼 뿐이었다.



"별일 없을거야. 별일 있을놈 같으면 부르지도 않았어...게다가."


 

아직도 혼란스러워 하는 자신의 아내와 뻗어버린 승민을 번갈아가며 보던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채윤이를 구한 아이니까."



잠자코 자신의 방으로 사라진 그를 보며 채윤의 어머니는 푹 하고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무슨일이...'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채윤은 방문앞을 계속해서 서성거렸다. 왠지 승민이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평소에 입던 잠옷이 아닌, 나름 이쁜 원피스를 입기 까지 했다.




"채윤아!문좀 열어봐."



그녀는 방문밖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음성에 깜짝 놀라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이 열리자마자 채윤은 뒤로 넘어갈 뻔한 것을 겨우 참아야 했다.




"어..엄마!"


"좀 비켜봐...어휴.."


 

그녀의 어머니는 낑낑 대며 축 늘어진 승민을 겨우 채윤의 침대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어찌된거에요?"


"남자들은 왜 저렇게 무모하다니..."


 


대답대신 푸념을 늘어놓는 어머니 였지만, 채윤은 대충 무슨상황이 벌어진지 짐작할거 같았다.



"근데...왜 여기?"


"아빠가 여기서 재우란다."


"네?"



채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행여나...잘못들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엄마...걱정안해도 되는거지?"


"네?"


"여기서..재워도 말이야."


"아.."



채윤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져 버려서는 반사적으로 뒤에서 벌건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잠들어 버린 승민을 바라보았다.

고급스런 침대에 그가 누워있자, 마치 도둑이 집털러 왔다가 냉장고에 있는 소주먹고 잠든 포스를 뿜어대고 있었다.



"너...근데 정말 저 아이랑 사귀는거 맞니?"



뭔가 의심스럽다는 듯한 어머니의 질문에 채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해 보이는 자신의 딸에 비해 뭔가 좀 모자라 보이긴 하지만, 여자인 그녀는 알수 있었다. 자신의 딸의 눈에 저 남학생을 향한 애정이 듬뿍 들어 있다는 것을.



"그래. 얼른자렴."


"안녕히 주무세요."


 


문을 닫고 온 채윤은 자신의 침대위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헤롱거리는 승민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의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잠든것이 아니라, 승민은 양주는 완전 잼병인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하얗고 이쁜 손으로 승민의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술기운에 뜨듯해진 볼에 채윤의 차가운 손이 닿자 승민은 움찔하더니 이내 몸을 돌려버렸다. 한없이 바보같은 모습이었지만, 채윤은 너무나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잘자요...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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