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청춘예찬 35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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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민은 앉으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말을 많이 들었다고?


 

'채윤이가 그런말을 할 애가 아닌데..도대체 어디서..'


 

문득 학교에서 채윤의 아버지를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그는 본이 아니게 조금 승민에 대해 알아봤었다고 했었다.

채윤의 집에서 공공연히 자신에 대한 것들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오그라드는 승민이었다.



"채윤이 넌 들어가."


"아빠..저는."


"들어가있어."



채윤은 승민과 아버지를 번갈아 바라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승민을 한번 바라본 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레 불러서 미안하네."


"아..아닙니다."


"한잔 받아."


"네? 아..예."



이미 식탁위에는 양주를 비롯한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더욱 놀라운것은 원래 술자리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 막 시작한 것처럼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미 승민이 올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승민은 채윤의 아버지에게 술잔을 받고 고개를 돌려 입안에 털어넣었다. 

주로 소주를 마신 그인지라 양주는 잘 몰랐지만 향부터 고급양주라는 것을 충분히 유추할수 있었다.

 


'크헉!'



숨이 턱 막힐정도의 독한 술이었다. 채윤의 아버지는 묵묵히 술잔을 넘기더니, 자신의 아내에게 눈짓을 보냈고, 채윤의 어머니가 나가버리는 바람에 주방에는 승민과 그의 아버지 둘만 남게 되었다.



한동안 묵묵한 적막이 흘렀다. 승민은 계속해서 두근거리는 마음뿐이었다. 아까 채윤의 입술에 입을 맞추는 장면을 들켰다는 생각때문이었다.

그것을 보지 않았고서야, 자신이 있는 걸 어찌 알고 사람을 보냈겠는가. 하지만 이상스럽게 적막만 흘렀다.



'으으..죽겠다'


승민은 어색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술을 따라주고, 자신의 잔에 채우기를 반복했다.

숨막힐 듯한 카리스마 때문에, 그는 제대로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숨막히는 적막속에서 술잔이 오갈때, 그 적막은 채윤의 아버지에 의해 깨어졌다.



"고맙네."


"네?"



술기운이 올라와서 얼굴이 벌게져 버린 승민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채윤이를 구한거 말이야."


"아.."



승민은 그제서야 자신과 채윤이 왜 경찰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았는지 깨달을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미리 모든 손을 다 써둔 것이었다.



"이번에...취업을 했다지?"


"아...네."


"들어가기 힘든 회사인데....내가 자네를 과소평가 해온거 같군."


"아...가..감사합니다."



사실 별거 아닌거 같았지만, 완벽주의자인 한사장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최고의 극찬이나 다름없었다.

실예로 채윤은 학창시절 내내 백점짜리 시험지, 그리고 항상 탑에 랭크되어 있는 성적표를 내밀었어도 칭찬을 받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내가 전에 했던말...기억하나?"


"아...네.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찌 잊을수 있겠는가. '난 자네가 맘에 들지 않아'라고 했던 그 말. 아마 평생잊지 못할 것이다.

원래 기가 센 승민도 아니지만 그때는 정말 바짝 쫄아버렸던 것이다.



"그 생각은 지금도 그닥 크게 바뀌진 않았지만...."



그의 말에 승민은 마음속으로 살짝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채윤의 아버지라고 해도, 왠만한 남자를 데리고 와서는 성에 차지 않을것만 같았다.

한마디로 채윤을 사귀기 위한, 그리고 그녀의 남자친구라는 이유로 치러야 할 시련중의 정점이 바로 그녀의 아버지였다.

한마디로 끝판왕이었다.



쨍!



승민이 실수로 술잔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진 술잔은 깨지지는 않았지만,반쯤 남아있던 술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아!죄..죄송합니다."



승민은 오늘만 해도 절정찐따의 모습을 충실히 구현했다. 그가 황급히 엎지른 술을 닦으려 일어서자, 그녀의 아버지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아니.신경쓸거 없어. 일단 앉게."


"하...하지만."


"술잔은 하나로도 충분하니까."


 


승민은 그 말뜻을 알지 못하고 엉거주춤 앉아버렸고, 한사장은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는 그것을 승민에게 내밀었다.



'아...이..이건.'



말그대로 '양주베틀'로 변해가고 있는 예감에 승민은 긴장하지 않을수 없었다.

승민이 신입생때 자신에게 술을 꾸역꾸역 먹이던 당시 97학번 대선배가 했던 방식과 비슷했다. 술잔이 하나인 이상은 주면 마셔야 했고, 그것을 다시상대에게 건내야 한다.



'채윤이가 아버지를 닮지는 않았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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