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NTR야설) 심장이 멎을 것 같은... - 1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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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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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은 일이 없는 날의 나에겐 가장 중요한 친구다. 화면을 통해 세상을 배울 수 있고 혼자 피식피식 웃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일이 없는 날의 하루는 정해와의 달콤한 사랑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정해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신경 써야 했고 나에게 배신하는 정해를 보며 그저 흥분에 젖어 갈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아 참, 전화해 봐야겠네.”


정해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건다. 통화를 시도하는 사람이 수남이는 아니겠지... 설마... 내가 이렇게 옆에 있는데 나를 우롱하듯 전화를 걸지는 않을 것인데...


“어머, 은정이니? 그래, 그래. 언니야.”


상대가 여자인 모양이다. 왜 이런 일 가지고 안심을 해야 하는 것인지.


“잘 지냈고? 그럼~ 언니도 잘 지냈지. 지금 어디야? 좋은 일이 있어서...”


아마 정해는 아까 대화에도 언급된 수남이의 이성 친구를 소개해줄 심산으로 고향 후배라는 여자에게 전화를 건 것 같았다.


“계집애, 나야 오빠랑 알콩달콩 잘 살지. 우리 오빠가 얼마나 착한데.”


그런 나에게 비수를 꽂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건 그렇고 너 아직 애인 없지? 남자 사람 친구 말고 애인.”


고향 후배라는 여자에게 정해가 전하고 싶은 본론이 시작된 듯하다.


“오빠 주변에 괜찮은 남자가 있어서. 너랑 잘 맞을 것 같기도 하고... 그분도 오빠처럼 자상하고 좋은 분이야.”


그랬니? 그래서... 나를 속이며 만나고 있는 상대가 수남이었던 거니? 지금 말하고 있는 정해의 말... 하나하나 모두 진심으로 들리는 나는 어쩌니...


“오늘 시간 가능해?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오늘 시간 괜찮으면 한 번 얼굴도 볼 겸 만나면 어떨까? 응?”


만남을 주선하는 정해의 얼굴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마치 자기 남자를 다른 친구에게 소개해줄 때의 비참함과 우울함이 묻어 있는 듯한 표정이다. 그건 나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이었고 정해는 자기 얼굴을 숨기기 위해 애써 참는 것 같았다.


“아... 그래? 정말? 좋아. 그러면 우리 거기서 만나.”


성사된 것이구나. 수남이에게 다른 이성 친구를 소개해줄 기회를 만들었구나. 이제 전화를 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였다. 수남이에게 전화해서 오늘 시간이 가능한지 물어봐야 할 타이밍이다. 그런데...


“걱정하지 마. 오늘 그분 일이 없어서 집에서 쉰다고 그랬어.”

“......”


마치... 마치 수남이의 비서인 거 마냥 수남이의 하루 스케줄을 꿰뚫고 있는 정해의 말이 내 귀를 거슬리게 한다. 정해는 오늘 수남이가 오늘 쉰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아... 그... 그게 아니라 아마 오늘 쉬실 거야.”


내가 이상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본다는 것을 인지한 정해가 말을 바꾸기 시작한다. 수남의 스케줄을 자신은 모르지만, 지레짐작하고 있다는 듯한 말투로 대답을 바꾸며 나에게서 떨어져 통화를 하려 한다.


“으응... 그... 그래. 내가 그분과 다시 통화를 해보고 너에게 연락을 줄게. 잠시만 기다려.”


정해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를 살짝 돌아보며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오빠, 고향 후배가 오늘 시간이 가능하다는데. 수남 오빠에게 전화를 해보세요.”

“그래? 다행이네. 그런데 오늘 수남이가 일을 나갔는지 모르겠네.”

“......”

“전화해 보고 수남이 오늘 어떤지 말해 줄게. 어제 보니 감기가 심하게 걸린 것 같던데...”

“네...”


수남이와 전화 통화를 하기 위해 나는 집에서 발걸음을 옮겨 집 밖으로 나섰다. 정해에게 뭔가를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해와 함께 있는 장소에서 이 비열하고 재수 없는 자식과 통화를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수남이에게 전화를 건다.


“띠리링~ 띠리링~”


수남이의 전화벨 소리가 바로 내 옆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나도 정말 예민하긴 예민한 모양이다. 이런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은 환청을 듣다니...


“띠리링~ 띠리링~”


하지만 그 벨 소리는 절대 환청이 아닌 것 같았다. 정말 내 주변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렸고 이상한 내가 주변을 기웃기웃 둘러보자 들리던 전화벨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수화기로 들리는 수남이의 목소리.


“여... 여보세요?”

“어, 난데... 너 지금 어디냐?”

“집...”

“집? 이상하다... 내가 분명 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데 주변 어디선가 벨 소리가...”

“뭔 소리야? 그럴리가.”

“그렇지? 이상하네.”

“왜?”


수상한 기분을 느끼는 가운데 수남은 나에게 자신에게 전화한 이유를 묻는 것 같은 말을 했고 나는 다시 전화 통화에 집중한다.


“아, 외롭지 않냐?”

“뭐?”

“너도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장가가야지.”

“지랄.”

“훗... 웃기는 소리지만 너에게 여자 한 명 소개해 주려고.”

“누구?”

“정해 고향 후배.”

“......”

“어때?”

“......”

“여보세요? 수남아~”

“응.”

“뭐야? 얘기를 들었으면 대꾸가 있어야지.”

“싫어.”

“왜? 정말 좋은 기회인데.”

“싫어.”

“싫다고만 하지 말고 너 오늘 일 안 나갔으면 같이 만나보자.”

“싫어.”

“자식이... 너 인마, 언제까지 혼자 살 거야? 집이지? 빨리 준비하고 우리 집으로 와.”

“......”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흠...”


억지로 수남을 설득하고 전화를 끊었다. 수남의 선택이 남았기는 하지만 반드시 우리 집으로 올 것이라 확신했다. 소개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정해의 얼굴을 보기 위해... 씁쓸했지만 그 자식이 우리 집으로 와서 정해의 고향 후배를 만나 정해를 잊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도 빌어본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응? 수남이 같은데...”


반대편 골목에 누군가 투덜거리며 돌아서는 눈에 익은 모습이 내 눈에 보였고 그를 자세히 쳐다봤다. 그 모습은 말하지 않아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이다.


“수... 수남이... 아까부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우리 집 주변을 배회한 것인가?”


저 자식... 집착이 상당히 강한 녀석 같다. 나와 정해가 집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을까 걱정되고 궁금해서 지금까지 서성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우리 집에서 나와 정해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저 녀석에게 감시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고 큰 소리로 수남을 불러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묻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참았다. 소개팅을 통해 다른 이성을 만나면 악몽 같은 이 상황이 모두 정리될 거라 희망했기 때문이다.


“......”


나도 팔짱을 낀 채 집으로 들어갔고 정해는 꽃단장을 하고 있었다. 애인을 만나기 위한 하나의 의식처럼 말이다.


“어디 좋은 데 가?”

“오빠도 참, 후배도 만나고 수남 오빠도 만나야 하는데 그냥 있을 수는 없잖아요.”

“평소에도 그렇게 하고 있지.”

“오빠는 제가 화장하면 싫어요?”

“싫긴...”

“흥, 괜히 심술이야!”

“......”


심술이 날만 한 일이었다. 고향 후배에게 잘 보이고 싶어 화장을 하는 것은 아닐 테고... 그렇다고 나에게 뭘 더 잘 보이고 싶어서 화장을 한단 말인가. 잘 보이고 싶은 남자는 따로 있었겠지.


“적당히 해.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오빠지! 누구긴 누구겠어요?!”

“고맙네.”

“삐딱하시긴...”

“......”


삐딱하게 만든 건 바로... 바로 너라고! 너 때문에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 알고 말을 하는 건가? 도통 이해가 되질 않네. 험난한 하루 일정이 될 거란 느낌이 드는 이유는 왜 일까... 정해의 폭풍 화장과 나의 근심이 쌓여가는 동안 시간이 참 많이도 흐른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집 문을 누군가 두드린다.


“쿵쿵쿵...”

“응? 수남이가 온 모양이네.”


나는 현관문을 열어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내 앞을 휘리릭 하고 지나치며 자신이 먼저 현관문 앞에 서 있는 정해의 모습이 보인다.


“제... 제가 열어드릴게요.”

“...그... 그래.”

“음...”


잘 정리된 머리를 다시 한번 정리하고 옷맵시를 단정히 하는 정해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마치 멀리서 살던 자신의 첫사랑을 인접하는 듯한 저 모습에 가증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덜컹.”

“오... 오셨어요?”

“아, 정... 아니... 제수씨...”

“어머, 수남 오빠... 양복 입으시니까. 정말 멋지시네요!”

“그... 그래요? 그냥... 안 입고 있던 건데...”

“멋져요!”


웬일로 수남이가 양복을 다 입고 우리 집으로 왔다. 소개팅의 힘은 낡고 헌 바지에 찢어진 상의 옷, 투박하고 두툼한 외투만을 고집하던 수남이에게 또 다른 모습을 보이게 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았고...


“사실... 제수씨에게 잘 보이려고 오늘 옷을 이렇게 입고 왔어요.”

“정말요?! 어머... 감사해라.”

“제수씨도 화장을 정말 예쁘게 하셨네요!”

“어머, 어머... 너무 감사한 칭찬을...”

“헤헤헤...”


이 새끼야... 턱 좀 다물어라. 그러다 턱 빠지겠다.


“왔냐?”

“그래.”

“신경 좀 썼네? 꼴에 여자 만나게 해준다니까. 훗...”

“병신.”

“또 지랄하고 있네. 저 새끼.”

“꺼져.”

“하...”


대꾸하기도 귀찮아질 정도로 수남이는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런 관계가 나에게 영향을 주어 더욱 수남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둘이 아주 쇼를 하고 있네. 나만 준비하면 이제 되는 건가?”

“오빠도 어서 준비하세요.”

“세수만 하고 나올게.”

“알겠어요.”


아직 준비를 하지 않고 있는 나에게 수남은 혼잣말로 투덜거린다.


“저 새끼... 오라고 했으면 준비라도 해 놓던가.”


내 귀에 수남의 혼잣말이 들렸지만, 그냥 지나치려 하는 순간... 내가 욕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면 그사이 저들이 또 요상한 짓을 할 거란 불안감에 불만을 토해내야 했다. 하지만 그 불만은 그리 길지 않고 단출하며 핵심적인 말이어야 했다.


“아, 나 세수하고 있는 동안 둘이 뽀뽀 같은 거 하는 건 아니지?”

“네?!”

“뭐...?!”


나의 말에 그 둘은 깜짝 놀라며 당황해하는 표정이다. 아마... 내가 저들의 속내를 맞춘 모양이다.


“훗... 놀라긴... 장난이야. 금방 씻고 나올게.”

“......”


욕실 문이 닫히고 씁쓸한 표정의 내 모습을 벽 거울에 비추어 본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내게 저 둘이 붙어 있는 자체가 너무 짜증이 났으며 화가 치밀고... 불행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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