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야설사이트) 악마도 눈물을 흘린다 - 7부

작성자 정보

  • 밍키넷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큰 형님은 강남의 J 오피스텔 302호에 계신다. 물론, 그 옆에는 젊은 여자가 하나 있을 거야. 

그 여자에게는 미안하지만 큰 형님과 함께 가야겠지. 

내가 미리 손을 써놨으니 그 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야. 

호태 너는 그 둘을 내가 준 물건으로 잘 보내기만 하면 된다. 아주 조용히 보내기만 하면... 뒤처리 역시 걱정할 필요 없다. 

그대로 오피스텔을 빠져나오면 되지. 처음이라 두려울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잠시뿐이다. 고작 몇 분 정도겠지. 

일을 마치면 조용히 오피스텔에 나와서 이 연락처로 나에게 연락하면 될 거야. 아주 간단하지. 

이번 일만 마치면 호태 너는 호랑이가 될 수 있다. 우리 대명파의 핵심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 지금처럼 침착하되 과감하면 될 문제야. 알겠지? 

아참, 이건 그 오피스텔 302호 열쇠다. 잃어버리지 않도록....”


준의 명령에 따라 강남의 J 오피스텔에 도착한 호태는 크게 한 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준의 마지막 당부를 다시 한 번 머릿속에서 되짚었다. 

일을 마치면 시체를 두고 그대로 나와도 된다는 준의 명령, 분명히 그가 뒤처리를 한다고 말했다.


“후우.”


잔인하고 지독한 성격의 호태였지만, 이번 건은 그로서도 긴장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사람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단 한 번도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없는 19살의 호태, 하지만, 반드시 깔끔하게 성공을 해야 했다. 

이번 건이 성공을 해야 자신이 대명파의 한 자리를 확실히 가질 수 있었다.


“음.”


J 오피스텔에 들어가기에 앞서 호태는 품속에 있는 준이 준 물건을 확인해 보았다. 

신문지에 싸여 있는 날이 번뜻 선 사시미가 느껴졌고, 주머니에는 J 오피스텔 302호의 열쇠가 있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J 오피스텔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주위를 살핀 후 호태는 시간을 확인했다. 정확히 오전 1시였다.


“시작해 볼까.”


심장이 두근두근 그렸지만, 호태는 자신 있는 걸음으로 J 오피스텔에 들어갔다. 그리고 계단을 통해서 3층까지 올라갔다. 

302호의 현관문에 도착한 호태는 잠시 숨을 골랐다. 

주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가슴을 진정시킨 호태는 302호의 현관문에 귀를 대며 내부의 사정을 알아보려고 했다.


“............”


호태는 자신의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음을 확인한 후, 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를 통해서 302호 현관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열기 시작했다. 

호태는 아주 조그마한 소리도 내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는데, 혹여나 자고 있을 표적 중 누구 하나라도 깬다면 일의 성사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끼이익.


현관문을 열면서 미세한 소리가 흘러나왔고, 호태는 잠시 하는 행동을 멈추었다. 

몇 초간 상황 파악을 다시 한 호태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302호 내부로 잠입하는 데 성공을 했다. 

재빠르지만 또 발걸음 소리에 신경 쓰면서 302호 내부를 둘러본 호태는 침대에서 세상 모르게 자는 표적들을 발견했다.


천둥과 같은 소리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남자는 전국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대명파의 우두머리였고, 옆에는 그의 정부가 새근거리며 자고 있었다. 

호태는 약 1분간 그대로 둘을 지켜보며 어둠에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길 기다렸다. 한 치의 실수도 없어야 했기에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호태였다.


‘천하의 대명파 보스가 이렇게 허망하게 가는구나... 그게 인생이란 것일까’


대명파 조직에 들어온 후, 호태는 일인자라 할 수 있는 보스를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준과 달리 호태는 대명파의 가장 막내였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최근에 준의 옆에서 강북파를 와해시키는데 활약하면서 보스를 몇 차례 볼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기회가 적다 보니 보스의 얼굴이 낯설기 그지없었다. 어찌 보면 호태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었다. 

얼굴에 익숙하다는 건 그만큼 사람에게 감정이 있을 수도 있고, 이번 살인에 크나큰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호태를 시험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준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유도 그러했다. 

대명파의 보스지만, 그 사람에게 감정이 없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호태의 행동이 과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스르륵.


어둠에 익숙해진 호태가 품속에서 신문지로 쌓인 사시미를 꺼냈다. 

그리고 신문지를 벗겨 내자 어둠 속에서 날이 번뜩 선 사시미의 찬 기운이 호태에게 느껴졌다. 

사람의 몸에 갖다 댄 후, 아주 조금만 힘을 가하면 아주 깊숙하게 들어갈 것처럼 사시미는 날카로웠다.


뚜벅 뚜벅.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호태는 표적들이 자고 있는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 대명파 보스의 옆에 도착한 호태는 크게 숨을 내쉬며 표적들을 내려다보았다. 

대명파 보스 것으로 보이는 베개가 침대 밑에 떨어져 있었고, 자세를 낮춘 호태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 그의 행동은 더 이상 주저할 것도 없었다.


“윽.”


호태는 왼손에 든 베개를 대명파 보스의 얼굴에 갖다 대었고, 지체할 것도 없이 오른손으로 든 사시미로 그의 목이라 판단되는 부분에 강하게 찔러 넣었다. 

마치 두부에 젓가락을 꼽는 것처럼 쉽게 대명파 보스의 목은 사시미에 관통이 되었고, 

그는 순간적으로 아주 작은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그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명파 보스는 더 이상 코를 골지 않으며 아주 긴 잠에 빠져버렸다. 세상을 호령했던 조직의 보스치고는 꽤나 처량한 죽음이었다.


“휴...”


어둠 때문에 호태의 눈에는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명파 보스의 목에 관통된 사시미를 뽑아내자, 

그의 목에서 뜨거우면서도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호태가 왼손으로 잡고 있는 베개에서 점점 물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호태는 이제 침대의 반대편으로 다시 걸어갔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대명파 보스의 정부는 새근거리며 잠을 자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네 잘못이라면, 이 시간, 이 장소에 있었다는 것이니...”


여자를 내려다보며 짧게 중얼거린 호태는 역시 거리낌 없이 그대로 사시미를 들어 여자의 왼쪽 가슴에 꽂아 넣었다. 

역시 대명파 보스처럼 몸의 떨림이 있었지만, 호태가 손목을 이용해서 여자의 가슴에 꽂힌 사시미를 비틀어버리자, 이내 잠잠해지며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끝났나.”


첫 살인이었지만 호태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었다. 오히려 생각보다 쉽다는 생각을 가지는 그였다. 

잠시 생각을 뒤로 미루고 호태는 여자의 가슴에 꽂힌 사시미를 뽑아냈고, 역시 영원한 잠에 빠져든 그녀의 가슴에서는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호태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사시미를 가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시미에 묻은 피를 물로 지워버렸고,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을 했다.


“풋.”


거울을 통해 본 자신의 얼굴에 이 유모를 웃음을 남긴 호태는 욕실을 나섰고, 사시미를 쌓았던 신문지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302호에 들어왔을 때처럼 신문지로 정성을 다해 사시미를 둘러쌓고 이내 곧 자신의 품속에 숨겼다.


“가볼까.”


모든 일을 마친 호태는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당당하게 302호를 나섰다. 더 이상 자신이 신경 쓸 일도 없었고,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시체 등의 뒤처리는 준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피스텔 건물을 나서면서 호태는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시 8분이었다. 고작 8분 사이에 호태는 자신이 대명파에서의 입지가 그 누구보다 단단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보고를 해볼까?”


오피스텔 건물 주위를 벗어난 호태는 인근에 있는 공중전화를 이용해서 준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호태의 연락을 받은 준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곧바로 하나의 지시를 내렸다.


- 숨 좀 고르고 새벽 3시까지 이번에 개장하는 나이트클럽으로 와.


***


새벽 3시가 조금 못 된 시간에 호태는 준이 있는 나이트클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개장을 하지 않아서 한산한 그곳 한 자리에 준이 앉아 있었고, 그의 옆에는 서열이 높은 몇몇 조직원이 서 있었다. 

호태는 준에게 당당히 걸어가 품속에 있던 사시미를 꺼내어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건네었다.


“여기 있습니다. 형님.”


“크크. 역시 호태야. 아주 깔끔하더군.”


“과찬이십니다.”


“그건 그렇고... 그 물건은 호태 네가 써야지. 어차피 곧 전쟁이 시작될 테니까.”


준의 말을 들은 호태는 신문지에 쌓인 사시미를 다시 자신의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준을 바라보았다. 

호태는 준이 자신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단 앉아 봐.”


“네. 형님.”


“처음일 텐데... 어렵지 않았나?”


“솔직히 하기 전에는... 조금 긴장이 되긴 했지만... 막상 일을 마치고 오피스텔을 나올 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크크. 19살에... 그런 대범함이라... 목과 심장 정확하게 한 번씩만 찔렀더군. 

긴장하고 서툴렀다면 시체에 칼 빵이 많았을 텐데 말이야. 넌 역시 천부적으로 타고난 놈이야.”


사실 준의 말은 입바른 소리가 아니었다. 막상 호태에게 명령을 내렸지만 이렇게 깔끔하게 일 처리를 할 것이라고는 준도 상상하지 못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여러 가지 변수로 실수를 하게 되면 사람은 당황하게 되고, 

설마 프로일지라도 시체의 곳곳에 칼의 흔적을 남기게 되는 법이었다. 

그런데 호태는 단 한칼에 모든 것을 끝내었다.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았지만, 그것을 직접 해낸 것이 호태였다.


“그건 그렇고 형님.”


“문제가 있나?”


“그게 아니라... 시체는...”


“워워. 그건 호태 네가 걱정할 이유가 없다. 내가 다 알아서 할 터이니... 아마 지금쯤이면 인천의 어느 바다에서 고이 잠들었겠지. 크크.”


“네.”


자신을 안심시키는 준을 보며 호태는 생각 이상으로 치밀하고 무서운 그를 느낄 수가 있었다. 

아직 채 20살이 되지 않은 호태였지만, 살면서 준만큼 자신에게 압박감을 주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였지만 언젠가는 준이라는 거대한 산을 자신이 넘어야 하는 시기가 필연적으로 올 것임을 느꼈다. 

지금 준을 감당하기에는 호태는 자신이 매우 약함을 알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 거지?”


“아..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1시간 뒤에... 활약할 준비는 되어 있는가? 호태군? 크크.”


“무슨 활약이라... 아....”


“지금 3시가 조금 넘었군. 4시 정도면 아마 여기로 우리 대명파 전 조직원들이 집합할 거야. 아니, 집합해야지. 흐흐.”


호태는 준과의 이전의 대화를 생각했다. 대명파에서 강한 입지를 가지면서도 조직원들에게 신뢰를 받는 준이라는 남자, 

그런 남자도 우두머리 없이는 전 조직원을 집합시킬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대명파의 우두머리는 없었다. 방금 2시간 전, 자신이 직접 처리를 했으니... 

비록 서열 3위인 준이지만 지금은 전 조직원을 집합시킬 힘이 있었다. 아니, 명분이 있었다. 대명파는 지금 비상사태였으니.


“우리 서열 2위였던 형님은... 내가 직접 보내드렸지. 사실 말이야. 내 옆에서 힘 좀 보태라고 부탁을 했는데 말이야. 거절하더군. 

큰 형님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시길래, 조용히 보내드렸지. 

참 그 형님은 아깝단 말이야. 대명파의 미래를 위해서도 내 옆에서 있었다면 좀 더 큰 일도 하실 분인데... 

정몽주를 보내야 했던 이방원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크크.”


“...........”


대명파의 큰 형님이 없고, 서열 2위마저 없었다. 그리고 준은 남았다. 아직 모든 조직원들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대명파의 보스는 준이었다.


“호태야.”


“네. 형님.”


“너는 아직 어리지만, 그 누구보다 강한 남자로 성장하리라 생각을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자리를 위협하겠지. 크크.”


“아.. 아닙니다.”


“개뿔이... 네 마음속에는 나를 향한 도전이 있을 것이야.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나를 넘어설 수가 없지. 

설령 네 품속에 있는 사시미로 내 가슴팍을 쑤셔대도 말이야.”


준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가슴을 팍팍 쳤고, 호태는 그 모습을 아무 표정 없이 바라만 보았다. 

이번 사건에서도 경험했듯이 준에게 언젠가는 자신이 칼을 들이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준의 말대로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형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시간이 남아 너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무료하기도 하고 말이야. 크크. 

호태 네가 생각하는 절대 강자, 뭐 우두머리라고 해두지. 그건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반드시 조력자가 필요하다. 

비공식이지만 지금 당장 내가 대명파의 보스가 되는 과정에서 호태 너의 도움이 필요했듯이... 

후에 호태 네가 나를 이기려면 그만한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한 법이지. 

하지만, 아직 너는 그럴 힘이 없다. 경험도... 능력도... 대신 잠재력은 아주 풍부하지만... 크크.”


“.............”


“호태야.”


“네. 형님.”


“대명파의 보스로서 너에게 부탁하마.”


“부탁이라뇨. 형님? 무슨 말씀을....”


시종일관 웃으며 말을 하던 준은 갑작스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호태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했고, 그 말을 듣자마자 호태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준이 말하는 부탁이라는 건 무엇일까?


“큰일을 했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해야 하는 놈이 놀라기는... 일단 앉아라. 호태야. 네가 호랑이가 되어서 나를 물어 죽여도 좋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 대명파 앞에 쌓여 있는 큰 과업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니....”


“당연하죠. 범서창파를 깨부숴야...”


“물론, 이번 전쟁 우리 대명파도 엄청난 피를 흘릴 것이야. 범서창파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저력이 있지. 호남을 괜히 제패한 게 아니야. 

더구나 범서창파 보스 양창식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지. 쉽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나 준이 있는 한 우리 대명파는 반드시 범서창파를 와해시킨다.”


“네. 형님.”


“범서창파를 깨는 순간 우리는 전국구 조직 중 하나가 아닌, 사실상 전국의 탑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그 거대한 지역을 우리 대명파가 먹게 되는 것이니 말이야. 크크.”


“당연합니다.”


“그런데... 호태야.”


“네.”


“그다음에 우리 대명파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갑작스런 준의 질문에 호태는 당황을 했다. 

범서창파를 와해시키는 순간 대명파는 그 누구라도 인정하는 전국에서 가장 강하고 유명한 조직이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을 떠나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권이 강한 노른자를 통째로 삼켜버리기 때문이었다. 

즉, 호태가 생각하는 절대 강자가 되는 것이 대명파였는데, 도대체 그다음이라니?


“잘...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해라. 지금까지 호태 너와 내가 했던 대화들 중에 정답이 있을 터이니... 흐흐. 

호태 너라도 생각이 있어야 내가 큰일을 하는 데 있어 편하겠지. 애들이 주먹만 쓸 줄 알지... 머리를 쓰는 놈이 없으니... 크크. 이제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준의 질문 의도를 알 수 없었던 호태였지만, 일단은 잠시 생각을 접어두기로 했다.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태가 시간을 확인하자, 새벽 4시가 되기 3분 전이었고, 벌써 밖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우르르르.


“형님. 뭐, 큰형님이 납치를 당했다고요?”


“준 형님. 이런 씨바 후레자식 범서창파놈을 다 죽여 버립시다.”


채 10분이 되지도 않아서 나이트클럽 안은 100여 명이 넘는 대명파 조직원들로 넘쳐났다. 

그들 손에서는 사시미, 야구방망이, 각목, 쇠파이프 등 다양한 무기들이 쥐어져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큰형님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에 격앙되어 있었다.


“조용히 해라.”


대명파 조직원들을 잠재운 건 준이었다. 테이블 위로 올라간 준은 그들에게 큰 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큰형님과 둘째 형님이 범서창파놈들에게 당한 것 같다.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일단 임시로 내가 너희들을 이끌 것이다. 

암튼, 지금 우리 대명파는 주인이 없는 비상사태이다. 그리고 그 원인 제공은 범서창파놈들이 했고... 

설령 우리 큰형님이 당하셨어도... 우리 동생들은 복수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준의 목소리는 매우 컸지만, 그만큼 격앙되었고, 또 한 편으로는 울분을 쏟아내었다. 

오로지 대명파에서 호태와 몇몇만이 준의 현재 모습이 연기임을 알고 있었고, 

대부분의 조직원들은 준의 말에 동조를 하며 범서창파에 대한 분노를 자아내고 있었다.


‘대단한 사람이다.’


준이 조직원들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며 호태는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어차피 언젠가 해야 할 전쟁이기도 했다. 복수를 하면서 이참에 범서창파를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말에 동의하는가?”


울분에 찬 준의 물음에 전 조직원이 동조의 소리를 내질렀다.


“지금 시간 4시 15분... 범서창파를 지워버린다. 형제들이여. 일어나라!!”


준의 마지막 말에 전 조직원이 자신이 들고 있는 연장을 위로 들면서 다시 한 번 소리를 내질렀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범서창파에 대한 복수심만이 있었고, 그들의 가슴에는 분노가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준이라는 저 사람....’


과거 9성 연합 수십 명을 이끌었던 호태였지만, 지금의 모습은 9성 연합과 비교조차 할 수도 없었다. 

준이야 말로 타고난 리더였다. 비겁한 행동마저 당당하게 하는 자신감, 그러므로 모든 대명파 조직원이 준에게 열광을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호태는 열광하는 대명파 조직원들에게 말을 마친 준이 곧바로 조직원들을 그룹을 나눈 후 임무를 하달하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군대조직처럼 일사불란하게 조직원들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다시 한 번 준의 능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일러준 대로 너희는 각 조 단위로 움직이며, 범서창파를 각개 격파한다. 피를 많이 흘릴 것이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반드시 양창식을 잡아 올 것이니... 가라. 형제들이여.”


정확히 4시 30분, 대명파가 움직였고, 대한민국 수도를 놓고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호태는 준을 따라서 범서창파의 양창식을 잡기 위해서 싸워야 했다.


전쟁은 거의 일방적이었다. 준비가 되었고, 철저히 계획하에 움직인 대명파가 갑자기 기습을 당한 범서창파를 압도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서창파의 저력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호남을 제패하면서 서울까지 진출시킨 양창식의 경험이 큰 힘을 발휘했다.


대명파에게 기습을 당해 범서창파의 전력이 큰 손해를 봤지만, 범서창파의 보스 양창식은 그냥 쓰러지지 않았다. 

범서창파의 주축들과 연계하며 게릴라식으로 대명파에 대항했다. 결국에 장기에서도 왕을 잡지 못하면 이기지 못한다. 

당장 전쟁의 판도와 전력이 대명파가 유리하긴 했지만, 준이 양창식에게 잡혀버리면 전세가 단숨에 역전된다는 사실을 범서창파의 양창식은 알고 있었다.


대명파의 기습으로 시작된 전쟁, 하루 만에 대다수의 범서창파의 지역이 대명파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양창식을 주축으로 한 10여 명의 범서창파의 핵심인물들은 대명파에게 잡히지 않았다. 

준은 반드시 그들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잡지 못하면 그들은 또다시 어딘가에서 힘을 기를 것이다. 

완전히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 준은 쉬지도 않고 양창식 일당을 잡으려고 애를 썼다.


서로의 왕을 잡으려고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었던 이 전쟁은, 시작 후 10일 만에 종료가 되었다. 

게릴라식으로 움직이면서 준을 잡으려고 한 양창식이 도리어 한 주점에서 함정을 파고 기다리던 준에게 잡혀버린 것이었다. 

한 때, 서울 정복까지 꿈꿨던 호남의 황제 양창식, 하지만 그는 31살의 젊은 준에게 결국 무릎을 꿇어야 했다. 이때 양창식의 나이 40세였다.


“동상. 그만 끝내 부소.”


“선배님. 미안합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고향에서 요양하세요. 적당히 여비 좀 챙겨 드릴 테니... 크크.”


말을 마친 준은 옆에서 지켜보던 호태에게 손을 내밀었다. 호태는 자신의 품속에서 사시미를 꺼내었고, 곧바로 준에게 건네줬다. 

호태에게 받은 사시미를 든 준은 양창식의 두 다리의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렸다.


이로써 범서창파 역시 대한민국 조직의 역사에서 지워졌다.


범서창파가 와해가 된 후, 대명파는 서울의 전 지역의 이권을 가져갈 수 있었고 사실상 대한민국 최고의 조직이 되었다. 

그리고 20여 년 만에 서울을 완전 정복한 대명파의 준은 공식적으로 보스의 자리에 앉았고, 

그의 오른팔로 활약한 호태는 약관이 되지도 않은 19세의 나이에 대명파 공식 서열 10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그리고 전쟁의 피로가 풀리고 조직의 개편이 완벽히 이뤄진 3개월 후, 호태는 준의 부름을 받았다.



“부르셨습니까? 형님.”


“요새 어때?”


“뭐... 그럭저럭 보내고 있습니다.”


“무료하지?”


“조금 그렇긴 합니다.”


전쟁을 준비하고 치를 때는 몰랐지만, 막상 전쟁을 통해서 절대 강자가 된 대명파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너무나 평화로웠다. 

호태 역시 무료함을 느끼던 차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대명파에서 서열이 높았기 때문에 그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거의 운동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던 호태였다.


“전에 내가 질문을 했던 것 기억하나?”


“네. 형님.”


“대답은?”


“죄송한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아직 나이가 어리니... 크크.”


준은 호태를 보며 비릿한 웃음 날렸다. 호태가 지난 3개월 동안 준의 질문을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준이 원하는 대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준이 원하는 건 무엇일까?


“답을 말해주지. 전쟁을 해야겠다.”


“네?”


“이해를 못 하겠나?”


“이해가 안 됩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입니다. 이곳을 먹는 자가 대한민국 최고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누구와 전쟁을 한다는 것인지...”


“호태야 역사는 반복된다. 과거 20여 년 전에 대명파는 서울을 통째로 가지고 있었지. 결국에는 어떻게 됐나? 

배신자들이 뛰쳐나가서 강북파를 만들었고... 그 틈을 타서 지방의 조직들이 도전했지. 

그게 범서창파였고... 한 편으로는 그 당시 대명파도 전국 조직의 탑이긴 했지만... 그렇게 빈틈을 줬던 건 절대 강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네.”


“절대 강자가 되려면 아예 상대가 기어오를 수도 없을 만큼 힘이 강하면 되는 것이지. 

서울을 먹었다고 안주하는 동안에 지방에서 힘을 기른 다른 조직이 서울에 진출하면? 하물며 바로 옆에 있는 경기나 인천의 조직들이 진출하면?”


“이해했습니다. 형님.”


“힘들겠지만... 난 범서창파를 치기 전에 이미 결심을 했다. 우리 대명파는 경기와 인천까지 접수한다. 

경기와 인천까지 접수하면서 기타 지방 조직이 아예 수도권으로 올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야.”


호태는 준의 계획을 듣고 입이 떡 벌어졌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준의 계획에는 분명 타당성이 있었다. 

서울을 넘어서 수도권 전체를 대명파가 손에 쥔다면 그 어떤 조직들도 서울 진출을 생각하지도 못할 것이고, 

그만큼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킬 생각도 못 할 것이었다.


“호태야.”


“네. 형님.”


“준비됐느냐?”


“네. 형님.”


“시작해 볼까?”


이 둘의 대화가 끝나고 한 달 뒤, 대명파는 본격적으로 경기와 인천의 조직들을 흡수해 나갔다. 

일부 조직들이 반발하기는 했지만, 서울의 황제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조직인 대명파에 끝까지 대항할 조직은 없었다. 

대명파가 경기 및 인천을 접수하는 데에는 고작 한 달이라는 시간 걸렸을 뿐이었다.


호태는 대명파라는 조직에 들어와서 준의 계획대로 모든 것이 현실이 되자, 그가 두렵기 시작했다. 

그의 밑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마치 뛰어난 점쟁이처럼 미래를 보고 있는 준이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호태는 그런 준의 안목을 갖고 싶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 

그 눈만 가질 수 있다면 자신도 이 조직 세계에서 준과 같은, 그 이상으로 절대 강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명파가 경기 및 인천까지 접수했고, 6개월이 더 지났다. 

준은 32살, 호태는 20살이 되었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호태는 준이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경기 및 인천까지 접수한 사람이... 지방이라고 그냥 놔둘까? 이 사람에게 있어 수도권마저도 좁을 뿐이야. 

장차 전국을 노리겠지. 양지에서 살 수 없지만... 음지에서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는 게 준이라는 남자다.’


확실히 호태의 생각이 맞았다. 준은 차분히 조직의 힘을 기르면서 지방까지 접수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가만히 수도권에 있기에는 너무나 무료한 일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준의 계획은 결코 이뤄질 수가 없었다.


호태가 생각하기에 미래를 보고 계획하는 준, 그런 준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바로 자신들의 세계와는 달리 양지에서 사는 절대 강자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 우리 정부는 지금 이 시각부터 폭력 및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전체 1,808/ 1 페이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