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러브 트위스트 1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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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시련 


전화기 너머 여자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주련의 귓가에 맴돌았다.  

주련은 어떡하든지 교수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계속해서 세현을 볼 수 있고, 세현의 곁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박사 학위를 받게 되니 교수 자리확보를 위해 주련은 다시 학장을 만나야 했다. 

바쁜 학장과 일대일 만남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박사 학위 수여 일정 등을 고려하면 다음 학기 교수 채용 및 강의 개설 일정이 빡빡한 주련으로서는 하루도 낭비할 수 없었다.  


학장의 저녁 스케줄을 알아낸 주련이 모든 걸 걸고라도 확답을 받아 내겠다는 의지로 그를 만나러 갔다. 

지난 일도 그렇고, 이미 학장이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아는 주련은 어쩌면 오늘 밤 그와 잠자리를 가질 수도 있다는 각오마저 했다. 

남편에게 교수님들과 회식으로 늦는다고 해놓았기 때문에 아이와 집 문제는 해결되어 있었다.  

세현과 다시 예전같은 사이로 돌아가기 위해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시간 강사에서 강의가 안정되는 교수 자리가 필수였다.    


주련은 남편이 쓰는 콘돔까지 하나를 챙겨와 핸드백에 넣어왔다. 그만큼 절실했다. 

강남의 술집에 들어선 주련을 보는 종원원들과 아가씨들의 시선이 좋지 않았다. 

마치 남편을 찾으러 온 아내로 생각한 건장한 남자들이 주련을 내보내려고 승강이를 벌였다. 

하지만 주련은 상사를 보러 왔다고 했고, 그들은 믿지 못하겠다며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학장의 개인 전화번호를 알지 못하는 주련이 전화를 걸지 못하자, 그들은 강제로 주련을 끌어냈다. 

학장을 만날 수 없는 그녀는 무작정 밖에서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몇몇 사람들이 나왔다. 

주련은 학장을 알아보고 바로 그에게 다가갔다. 


주련이 나타나자 거나하게 취해 아가씨 한 명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학장이 여자의 어깨에 두른 팔을 걷으며 취한 목소리로 주련에게, 


“어? 김 교수… 여긴 웬일이야?” 


주련은 학장을 뵙고 교수 채용 관련해서 자신의 비전에 대해 설명해 드리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했다. 

비틀거리며 주련에게 어깨동무를 한 그가 주련을 저지하려는 다른 사람들을 물리며 몇 걸음 떨어져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주련은 어깨동무를 하며 기대오는 그의 무게를 견디며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진한 술 냄새를 참아가며 들었다.       

그리고 학장은 같이 있던 말끔한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를 불렀다.


“이 회장, 이 친구 면접 좀 봐줘” 


학장이 다가온 남자에게 주련을 소개하며 말했다. 


“네? 학장님. 무슨…?” 


남자가 갑자기 나타난 단정한 차림의 여자를 보며 나이로 보나 차림으로 보나 이런 곳의 아가씨는 아닐 것으로 짐작했다. 


“이 친구 말이야. 우리 학교 강산데 오늘 나한테 교수 자리 달라고 면접 온 거야. 하하” 


학장이 비틀거리자 남자가 그를 부축했다.  


“근데 말이야… 알다시피 난 세희가 있잖아” 


학장을 기다리는 차에 미리 올라탄 아가씨를 가리키며 학장이 말했다. 그리고, “


자네가 매번 이렇게 날 위해 신경 써주는 데 난 뭐하나 해준 것도 없고 말이야.” 


그러자, 남자가, 


“아이고 형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어쩔줄 몰랐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이 친구 어차피 오늘 왔으니까 면접 좀 봐줘. 자네가 괜찮다면 말이야. 허허” 


그리고 남자를 데리고 자신을 기다리는 차로 걸어갔다. 


주련은 학장의 말에 어쩔 줄 몰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학장이 낮은 목소리로,


“저년… 와꾸 괜찮지? 몸매도 나이에 비해 좋아. 난 아직 인 데… 이 회장이 먼저 해봐. 아마추어 좋아하잖아. 크크… 탈이 날 일없으니까 걱정 말고”


그리고 남자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 주련을 불렀다. 


“이 회장이 자네 면접 볼 거야. 이 회장이 좋다면 자네 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네” 


그리고 학장은 차에 올라탔다.  주련은 학장의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앞에 선 50대의 세련되고 중후한 남자를 봤다. 그는 주련에게,


“학장님, 말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가셔도 됩니다” 라고 주련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주련은 학장의 말이 신경 쓰이는 데다 그의 신사적인 태도에 그냥 갈 수 없었다. 


“아니요. 면접 볼게요.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면접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아시나요?” 


중년의 신사가 부드럽게 물었다.  


“대충 짐작하고 있어요. 그리고 오늘 각오하고 왔어요” 


주련이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주련은 그의 부드러운 눈매가 낯익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주련은 오늘 처음 본 남자의 차에 올랐다. 


두사람이 호텔로 이동하는 동안 주련은 찬찬히 그를 살펴봤다. 

그의 몸에 밴 매너는 가식적이지 않았고, 룸에서도 주련을 배려하여 그녀가 준비될 동안 기다려 주는 등 매사에 서두르지 않았다.  

두사람의 관계가 끝나고 남자는 주련이 호텔에 머무를지 물었고, 주련이 집에 가야 한다고 하자 먼저 나갈 테니 편안하게 준비하고 나오라며 먼저 일어섰다.


그가 와이셔츠를 입으며 주련에게 물었다. 


“아이가 있으세요?” 

“네… 딸 하나 있습니다” 


주련이 침대 헤드 보드에 기대앉아 시트를 목까지 올려 몸을 가린체 대답했다. 


“저도 아들놈 하나 있는데… 후후… 자식은 마음 같지 않더라고요. 

아내하고 헤어지고 잘 키워보려고 나름 노력했는데 이제 머리가 커서 그런지 가족이라기보단 거의 룸메이트 수준으로 살고 있습니다. 

학장을 알게 된 것도 아들놈 때문에...” 


남자가 한탄하듯 말했다. 


“아… 그러세요? 아드님이 우리 학교 다니나 봐요?” 

“네. 그랬는데 음악 한다고 그만뒀습니다.” 


남자가 실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시군요. 아드님 목소리도 들어봐 주세요. 중요한 건 아드님이 행복해야 하는 거겠죠. 그것이 모든 부모가 바라는 바 아니겠어요?”  


남자는 주련의 사려 깊은 조언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는 룸을 나가기 전에 주련에게 봉투와 명함을 건넸고, 

교수 채용 시 첫 출근에 꼭 입고 갈 옷을 선물하고 싶다며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 명함은 제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명함입니다. 혹시 술친구 필요하시면 연락하세요.” 


중년의 신사는 주련에게 목례하고 룸을 떠났다. 


기사가 기다린 차에 탄 그는 만난 지 한 시간도 안된 그것도 유부녀인 여자와 관계를 맺고 

그런 이야기를 나눈 것이 마치 오래 알던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련은 그와의 대화에서 혼자 자식을 키우는 남자의 고충을 듣고 잠시나마 그에 대해 연민을 느꼈다. 

그녀는 받은 봉투를 열어 보니 백만 원 수표 3장이 들어 있어 놀랐다.


주련은 빨리 일어나 대충 샤워를 하고 속옷을 찾아 입었다. 

들어 올 땐 긴장되어 제대로 보지 못한 호텔 스위트 룸의 고급스러움에 매료되었다. 

이런 멋진 곳에서 정상적으로 묵지 못하고 바로 떠나야 하는 아쉬움과 

가족과 함께 이런 곳에 오지 못하고 이런 일로 처음 본 남자와 이런 행위를 하기 위해 온 것에 대한 참담함이 그녀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제 그의 말처럼 교수 채용이 되는 길이 열린 것이나 다름없으니 다 잊고 앞만 보기로 생각했다. 


서둘로 옷매무새와 화장을 고친 주련이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훌쩍 넘었다. 

주련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호텔 룸을 나섰다.


모든 건 순조로웠다. 주련이 교수 채용이 될 거라는 김 교수를 통한 학장의 언질은 주련에게 무엇보다 기쁜 소식이었다. 

그 중년의 신사가 학장에게 뭐라고 전하였는지 모르지만, 그 남자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했다. 하지만 그 남자와 다시 연락할 일은 없었다. 

비록 우연하게 관계를 하게 됐지만, 다시 그와 그런 불편한 인연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주련은 세현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고, 세현은 그녀의 기쁜 소식을 축하하면서도 그녀의 몸을 탐닉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듯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안좋은 일도 있듯이 마침내 세현에게 영장이 나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주련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정작 세현 본인은 담담하게 받아드렸지만, 그의 가슴에 안겨 엎드려 주련은 눈물을 흘렸다. 


두번의 사정으로 늘어진 그의 페니스를 살며시 움켜 쥔 주련이, 


“면회가면 외박 가능하지?” 


하지만 세현이 그녀의 손을 치우며 일어나 씻으러 목욕탕으로 들어가며,


“몰라. 가봐야 알지. 나 약속 있어. 가야돼”  


그리고 약 40일 후 세현은 훈련소로 떠났다. 

세현이 떠나는 날 주련은 세현이 떠나는 모습을 멀리서라도 보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서다 김 교수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학장이 이전 채용 비리에 연루되어 내사를 받고 있다는 걱정스러운 소식을 전하며 

그는 주련 자신을 위해서라도 채용 관련하여 학장과 연락하지 말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주련은 그 사건으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충격에 다리에 힘이 풀려 난간을 붙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아파트 1층 현관 앞에 선 주련의 다리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소식을 듣고 황급히 병원을 찾은 지훈은 의사로부터 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주련이 임신 5주였으며 하혈과 함께 유산되었다는 의사의 소견은 지훈에게 충격이었다. 


지훈은 그동안 한 번도 질내 사정을 한 적이 없었고, 

최근에 주련이 주로 피곤하다며 관계를 갖지 않았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녀의 임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지훈이 주련을 봤을 때,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주련은 눈물을 많이 흘린 듯 눈이 부어있었다. 

지훈은 주련에게 안정을 취하라는 말과 함께 설명이 필요하다고 했고, 주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가 끝이 났다. 

깔끔한 성격의 지훈은 도저히 그의 상식으로 주련의 외도를 그냥 넘길 수 없는데다 임신까지 한 그녀를 다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졸지에 교수 채용도 물 건너 가고, 이혼까지 하게 된 주련은 살길이 막막했다.  

주련은 시댁으로부터 서방질한 화냥년이라며 아이까지 빼앗겼다. 

화목한 가정을 깬 책임은 모두 자신에게 있으므로 주련은 반박하지 않았다. 

적은 돈으로 방을 마련한 주련은 거의 며칠 동안 문밖출입을 하지 않으며 시체처럼 지냈다. 


모든 것이 의욕이 없었다. 세현에게 위로받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아이를 가져 자신의 인생이 뒤바뀌어버렸지만 아이를 지키지 못한 것이 원망스러웠다. 


세현이 훈련이 끝나고 자대 배치 전 휴가를 받아 나온 것을 알았지만 주련은 그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그녀는 은근히 그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끝내 세현은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고 자대 복귀를 하여 주련은 다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렇게 몇 주가 흐르고 어느 정도 현실에 냉정해진 주련은 무언가 다시 하지 않으면 삶의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몸을 추스렸다.  

그리고 전화기에 모르는 번호로부터 몇 번의 연락이 온 것을 알았다. 

이 후 주련은 그 부재중 통화로 남은 번호가 지난날 자신에게 명함을 준 남자의 번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마당에 다시 그의 연락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주련은 당장 월세부터 걱정하는 신세가 되었다. 

통장의 잔액으로 그나마 몇 달은 버틸 수 있겠지만 앞을 생각하면 취직부터 해야 했다. 


친정에서는 친정집으로 들어오라고 했지만 벌써 이혼으로 노부모께 걱정을 끼친 자신이 수입도 없는 노부모에 얹혀 살 순 없었다. 

전화가 올 때마다 벌써 직장을 구했으니 걱정하시지 말라며 주련은 부모님을 안심시켰다.  


매일 주련은 신문의 구인란을 체크하고, PC방에서 구인 사이트를 뒤지며 학원 강의뿐만 아니라 일반 회사에도 이력서를 제출했다. 

몇 건의 연락은 받았지만, 나이에 비해 일반 사무 경력이 없는 주련이 일반 회사 취직은 쉽지 않았다. 


주련은 학원 강사를 희망했지만, 그녀의 박사 학위 경력이 오히려 학원의 임금 부담 때문에 그녀를 채용하기를 꺼렸다. 

주련은 임금을 낮게 받을 수 있었지만, 학원 입장에서는 얼마 있지 않고 떠날 것으로 생각해서 채용을 꺼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주련은 시내의 한 학원에서 3개월 단위로 계약하며, 스크린 영어 강의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텀을 거치며 학원에서 정식 강사 제안을 받아 동료 강사들과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식당에서 1차로 동료들과 식사를 마친 주련과 동료들이 자리를 옮기기 위해 거리를 걷는 데 지나가던 검은색 차량 한대가 멈춰섰다.             

검은 차에서 내린 중년의 남자가 주련에게 다가왔다. 주련은 한번에 그가 지난 날 그녀와 관계를 가진 그 남자라는 것을 알아봤다. 

너무 놀란 주련이 수근거리는 동료들에게 먼저 가서 자리 잡고 있으면 곧 따라 가겠다고 했다.  

남자는 사람들이 떠나자 주련에게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며 우연히 주련을 보게 되어 멈췄다고 했다. 

또 그 동안 몇번 연락을 했는 데 연락이 닿지 않았고, 왜 전화하지 않았냐며 물었다.


“글쎄요. 제가 다시 연락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았어요.” 

“교수 채용 건은 정말 유감입니다.” 

“어쩔 수 없죠. 이제 다 잊었어요. 그 이야기는 다시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럼...” 


주련이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동료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려는 데 남자가 주련의 팔을 붙들며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도와드릴 수 있게 해주시죠” 

“괜찮아요. 이거 놓아주세요. 저 이제 괜찮아요” 


남자는 주련을 잡은 팔을 놓고, 


“제가 학교 쪽에 사람들 많이 압니다. 그쪽… 아직 이름도 모르는군요. 

어쨌든 제가 도와드릴 수 있게 해주세요. 어쩌다 지난번 그 일이 있었던 후 그 쪽께서 잘 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이 저한테도 있습니다.” 


“선생님, 책임 없으세요. 제가 바보 같았죠. 너무 세상을 몰랐나 봐요.” 


주련이 웃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도와드릴 기회를 주시죠.” 


남자는 간곡히 부탁했다. 잠시 생각한 주련이, 


“... 좋아요. 그럼 밥 한번 사세요.” 


그러자, 남자는 흔쾌히, 


“좋습니다.”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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