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유학생 엄마 - 마지막 인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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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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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결혼하여 정해진 한 사람과만 평생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행복함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어요.

물론 일평생 나 자신보다는 가정이 잘되기를 바라며 사는 사람도 있겠죠.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말 한 남자만 보며

그 남자에게만 몸을 허락하며 살 수 있는 사회 환경일까요.


돌이켜보면 가정이라는 것은

결혼 후 부부는 보여지는 약속들을 최소한 지키면서 만들어가는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의무적으로라도 함께 만들어가는 거겠죠.


그리고 제 생각에 여자는

어쩌다가 남편 외에 한 남자를 알게 되고 그 남자에게 몸을 열어준 뒤에는

다른 남자와의 관계도 그리 어렵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그로 인해 때로 허무하고 때로 상심할 때도 있지만

남편과의 관계만으로 평생을 지내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어떤 것이 좋은지 지금으로서는 확신이 서질 않아요.


그분은 제게 새로운 감정과 새로운 욕망으로 제 모든 것을 뒤흔들었어요.

때로는 이런 감정과 이런 욕망을 일깨워 지게 된 점에서는 그분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거라고도 생각이 들어요.



효은이.


안타깝고. 때로는 아이를 생각하면 죽을 것 같은 자괴감에 빠져 들 때도 있지만

어쩌면 효은이도 그분도 다 원하는 자신들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하며 위로를 받아요.


이젠 더 이상 나는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될 것 같고

더 이상의 큰 경험을 해볼 수도 없을 것 같은 후련함 같은 것도 있어요.


효은이는 내게 연락 없이 그분과 두세 번 한국을 왔다 간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가끔 가족 톡방에 올라오는 효은이의 사진들에는 익숙한 그분의 알바니 집들의 가구들이 보이고.

누가 찍어주었는지 짐작하게 되는 사진들이 올라오기도 하고.


이제 효은이가 상처받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보지만

효은이 입장에서 내가 생각해보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처지가 너무 부럽기만 할 때도 있어요.


충분히 자기가 원하는 만큼 욕심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다 풀 수도 있는 상태.

그런 상태를 갖지 못했던 나에게 비하면 처지가 하늘과 땅만큼 다른 것 같아요.

 

효은이에게 연락하고 싶어도 그분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 되살아날까 싶고.

다시 그 길로 돌아가서 효은이와 마주치게 될까 두렵고.


슬프지만 비교해보자면.

굳이 나보다는 효은이를 그분이 얼마나 더 예뻐하실지를 생각하기도 해요.

연락 안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자제력으로 한동안의 시간을 버텼어요.


이곳에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그분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이 다시 떠오르고.

나도 모르게 그때의 그 시간들이 내 감정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게도 했지만.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라도 내 속의 무엇인가를 토해내고 싶은 욕심들이 점차 이 글을 쓰게 만든 것 같아요.


처음 힘들 때 여기저기 글도 써보았고 이렇게 내 비밀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내 안의 응어리진 뭔가를 해소할 수 있는 작은 돌파구가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끔 지혜 씨가 한국에 오면 커피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뉴질랜드의 이야기들을 듣게 되지만.

그분을 모르는 지혜 씨에게서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어요.

 

다만 조심스럽게 알바니몰에서 효은이를 한 두 번 보았다는 말을 지나가는 척 전하기는 했지요.


나와 몸을 섞었던 남자들이 많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분의 영향이 큰 거 같아요.

물론 남편만 알고 지냈을 수도 있지만…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은 없을 것 같고요.


첫 남자였던 남편….

그리고 두 번째 나를 가진 사람이 그분이에요.

그 후….흰색이라고 불리는 그 젊은 남자…가 세 번째.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작년 말 즈음 술을 많이 마시고 대리운전시키고는

누군지 이름도 얼굴도 연락처도 모르는 아주 거칠었던 대리운전기사가 네 번째.


아마 다섯 번째는 더 이상 없을 것 같네요.

더는 쓸 글이 이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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