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남자들의 상상 - 상편 2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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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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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누나. 잘 지냈어요?"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입장의 자신을 이해하는 듯한 얼굴의 동수를 보자 선화는 마음이 놓였고 오히려 반가운 마음까지 생겨버렸다.


"그래. 잘 지냈어? 들어와. 군생활은 힘들지 않아? 얼굴이 많이 탔다."


선화는 말그대로 친한 동생을 대하듯이 동수를 맞았고 동수도 그런 것 외에는 전혀 없다는 평범한 모습으로 거실 소파에 앉았다. 

동수가 그곳에 앉자 몇 달전의 장면이 떠올라 민망해진 선화는 음료를 가지러 부엌으로 갔다.


"누난 그대로네요."


동수가 말했다.

선화는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동수의 눈을 알아채지 못하고 음료를 준비하느라 왔다갔다 했다.

그러는 동안 숨겨온 남성의 본능으로 채워진 동수는 선화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기회를 엿보았다.

그런 정황을 알리 없는 선화는 쟁반에 차받침까지 꺼내 차를 내왔다.


"마셔. 대추차야 피를 맑게 해준데."

"그래요. 냄새가 좋은데."


조용히 차를 홀짝거리는 동안 밖에서는 공사용 차량 정도의 큰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동수는 결정을 내린 듯 선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누나를 잊지 못했어. 부대에서도 항상 누나를 생각했어."


동수가 선화의 손을 낚아채자 선화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당황했다.

마주친 동수의 눈과 표정은 방금 전의 평온한 호수가 아니라 물결이 일기 시작하고 금방 거친 바람이 밀려들어 모든 것을 흔들어놓을 것만 같은 것이었다.


"왜 이래? 이러면 안되는 거야."


선화는 손을 뿌리치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동수는 이미 이성을 반쯤 잊어버린 상태인 것 같았고 반쯤 일어서서 선화를 향해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급격한 사태 변화에 위기 의식을 느낀 선화는 발을 빼고 달아나고 싶었지만 빠르고 억세게 밀어닥치는 동수에게 역부족이었다.

그대로 소파와 동수 사이에 몸이 끼어버린 선화는 팔과 다리를 오그리고 온몸을 경직시키는 방어태세를 펼쳤지만 

인내심 부족한 동수가 뻗은 주먹이 명치 부위에 내려앉자 더 이상 힘을 주고 말고 할 수가 없이 축 늘어졌고 숨을 쉬는 것이 급선무가 되었다.

그 사이 옷들은 늘어나고 찢겨져 알몸이 조금씩 들어나고 있었다.


"잠깐, 알았어.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


무슨 생각에서인지 선화는 그렇게 말하며 힘쓰는 것을 중단했다.

그러자 동수도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선화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한때 널 그리워했던 적이 있었던 건 사실이야.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야겠니. 

정 그렇다면 억지로 당하는 것보단 마지막으로 너의 욕구를 풀어줄겠어. 단,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야만 해."


그렇게 말하며 선화는 헝클어진 옷을 벗어버렸다.

그리고 팔을 뒤로 집은 채 바닥에 앉아서 동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 때문에 잠시 망설이던 동수는 개처럼 네발로 선화에게 다가왔다.

개처럼 긴 혀로 그녀의 가슴과 유두를 핥았고 제 풀을 이기지 못하고 팽창해버린 성기를 가랑이 사이로 꺼내들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지속적인 자극을 받고 생리학적 반응을 일으켜버린 선화는 그것을 꽉 쥐어 동수로 하여금 의존적 본능의 해소를 맛볼 수 있게 했고 

이어 후배위로 결합한 두 사람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때, 누구도 예상치 못했지만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선화는 깜짝 놀라 떨어지려 했지만 동수는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병희였다.

선화의 놀란 비명 소리가 거실을 흔들고 있는 가운데.


"마치 개 두 마리가 교접한 것 같군."


병희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장면을 평가했다.


"선생님!"


그때 놀랍게도 선화 뒤에 무릎을 꿇고 있던 동수가 병희를 보며 아는 체를 했기 때문에 선화는 더욱 산산히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 자식!"


걸어오던 탄력으로 병희가 동수의 얼굴을 걷어차자 동수는 뒤로 쓰러졌고 세 사람의 위치는 작은 삼각형 모양으로 변했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래서 붉게 물든 공기가 베란다 창을 통해 거실로 들어오고 있었고 그 빛을 맨살에 받은 선화는 붉은 피부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선화는 최고로 창피한 순간을 감추기 위해서 흩어져 있는 옷들을 수거하고 있었고 동수는 벗어두었던 자켓에서 훔쳐두었던 권총을 꺼내들어 병희를 겨냥했다.


"움직이지 마! 이 나쁜 새끼. 여길 어떻게 알고 왔어.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선화라는 걸 어떻게 알았냐고?"


동수가 예상 밖의 무기를 꺼내자 병희는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두 손을 들고 소파에 앉아 반항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렸다.

그러자 동수는 현관 문쪽에 움추리고 있던 선화 옆으로 다가가 목덜미를 끌어 안았다.


"그 선화라는 여자가 내가 아는 선화가 아니길 바랬는데, 이젠 어쩔 수 없군. 난 신경쓰지 말고 계속 해. 하던 걸 마저 끝내라고."


병희는 시니컬하게 빈정거리며 말했다.


"네가 그러고도 의사야? 환자의 비밀을 이용하다니."


동수가 여전히 총부리를 겨누며 말했다.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는 할 필요가 없어. 어차피 넌 정신 나간 녀석에 불과해."

"나쁜 자식! 여기로 오게 만든 것도 너였잖아."

"여자에게 가보라고 했지, 그게 여기라는 말은 안 했다. 됐으니까 그만 하자. 나도 기분이 몹시 나쁘니까."

"개새끼. 죽여버리겠어."


동수가 흥분한 나머지 방아쇠를 당기려 했고 모두 잠시 후에 일어날 일을 예상할 수 없는 긴장상태에 빠졌다.

그때 선화가 무의식적으로 권총을 들고 있는 동수의 손을 후려쳤고 손에서 놓아진 권총은 빙글 돌아 무사히 병희의 발 앞에 떨어지고 말았다.

일촉즉발의 상황을 염려하고 대비해야만 했던 병희는 갑작스럽게 역전된 전세를 전혀 낯설다거나 우물쭈물함이 없이 

그냥, 말 그대로 가만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계속해."


권총을 오른 손에 든 병희가 말했다.


"어서 하던 짓거리를 계속 해보란 말야!"


병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공사용 트럭이 지축을 흔들며 지나가는 소리도 들렸다.

선화는 지진이라도 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하는 거야? 왜 그래?"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선화는 병희의 엇나가는 행동에 울부짖었다.

하지만 병희는 동수의 얼굴을 겨냥하고 당길 준비를 했다.

겁을 집어먹은 동수는 하는 수 없이 선화를 향한 일방적인 섹스를 해야 했다.


"좋아. 더 열심히 해봐."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나한테."


선화는 최상의 배신감과 모욕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이 자식을 선택한 건 너야. 네 입으로 날 사랑한다고 해놓고도 말이지."


병희가 광기 어린 눈으로 말했다.


"이번에는 날 갖고 실험한 거야?"


선화의 얼굴에서는 쉴새 없이 눈물이 쏟아져 거실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그 사이에도 성욕을 발견한 동수는 현재 상황을 잊은 듯 열중하고 있었다.


"괜찮아. 그렇다고 널 미워하거나 미워하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니니까. 그냥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고싶었을 뿐이야.

 난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잖아. 저 불쌍한 녀석과 뒹군 기분이 어때, 좋았어?"

"다, 모두 다 네가 이렇게 만든 거야......"


선화는 흐느끼며 병희를 향해 조금씩, 하지만 너무 조금씩 다가갔다.

잡을 수도 없으면서 다가오는 선화와 그 뒤에 매달려있는 동수를 병희는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동수는 이제 말려도 어쩔 수 없는 내리막길에 다다른 것처럼, 

심지에 불이 붙은 폭탄처럼 그리고 실험용 기계와 짐승처럼 발광했고 선화는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죽은 듯이 늘어져 있었다.


"그만 해."


병희가 말했지만 동수는 고개를 저으며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만 하라고 했어. 빼."


조용히 위압감을 실어 말했지만 동수는 오히려 더 빠르게 꼭지점을 향해 달려갔고 결국에는 사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그때 종말, 섹스의 끝이 아니라 모든 것의 끝을 알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눈으로 본 것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병희는 방아쇠를 당겼고 이마에 정통으로 총알을 맞은 동수는 그대로 고꾸라졌으며 처음 들은 굉음에 놀란 선화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모든 게 멈추지 못해서 끝나는 거야."


병희는 다소 놀라워하며 낮게 읊조렸다. 굉음 후의 일시적인 고요가 화약 냄새와 함께 흘러다녔다.


"이봐, 괜찮은 거야?"


병희가 바닥에 늘어져 있는 선화를 향해 물어보자 선화는 조금씩 꿈틀 거리며 고개를 들었고 어깨를 들었고 상체를 일으켰다.

그때까지 그녀의 한 손에 들려있는 고기칼을 병희는 보지 못했고 그녀가 칼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무거운 그것이 자신의 배를 향해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이런 결과도 예상했어?"


선화는 핏발이 가득 선 눈으로 병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병희는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끝까지 놓지 않고 선화의 머리를 겨누었다.

선화는 눈을 감고 최후의 순간을 기다렸지만 병희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이건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결말이군. 왜, 죽으려고 하지. 그러고도 살 수 있는 거야. 앞으로 잘 살면 되지......"


병희는 마지막 남은 호흡으로 그렇게 말하고 쓰러졌다.

선혈이 소파와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지만 이미 어둠이 깔리고 있어서 모든 것이 흑백으로 느껴졌다.

잠시 이성을 잃었던 선화는 뒤늦게 모든 상황을 깨닫고 고개를 휘저으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다.


"거실이 온통 피범벅이야......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선화는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고 그대로 현관문을 열고 달려 나갔다.

위로, 위로 아파트 옥상을 향해 선화는 숨이 차오르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쉼 없이 달렸다.


"무서워...... 무서워......"


옥상의 문은 화재를 대비해 열려있었고 선화는 밖을 갖기 위해 문을 열고 나아갔다.

갑자기 어두워졌던 것은 봄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모든 것을 가릴 수는 없지만 많은 것을 가려줄 수 있는 어둠이 준비되어 있었고 봄비믐 샤워기를 통해서 나오는 물처럼 상쾌했다.

잠시 쭈그리고 앉아 있던 선화는 몸에서 씻겨 나가는 핏물을 보다가 콘크리트 바닥 위에 똑바로 누웠다.

낮동안 덥혀진 바닥을 식히며 미지근하게 덥혀진 봄비가 고운 핏빛으로 물들어 선화의 몸을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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