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남자들의 상상 - 상편 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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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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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올까."


영권은 내기를 했다.

그녀가 오지 않는다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만약 그녀가 나타난다면, 나타난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기로 하자.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예 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추운 날씨 때문에 차는 꽁꽁 얼어있었고 차에 오르자마자 시동을 켜고 스팀을 틀어 놓았다.

온기가 흐르자 서서히 밖이 보이기 시작했다. 초조한 마음에 라디오를 켰고 검을 씹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몸을 웅크린 채 밖을 주시하고 있던 영권은 마침내 환호했다.


유진이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통통한 편이었는데 키가 꽤 커보였다.

세련된 블랙 치마 정장에 코트를 걸친 모습이 그녀의 직업적인 요소를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권은 재빨리 가볍게 경적을 두 번 울리고 하이빔을 발사했다.

두리번거리던 유진은 영권의 차를 향해 방향을 바꾸어 걸어왔고 차에서 내린 영권이 반갑게 그녀를 맞이해 문을 열어 주었다.


"오래 기다렸어요?"


영권이 운전석에 타자 유진이 물었다.


"아뇨, 어떻게 할까요. 우선 술을 한잔 더 할까요, 아니면."

"아니면?"


유진이 묻자 영권은 싱겁게 웃었다.


"짖꿎은 년 같으니라고."


영권은 창문을 열고 밖으로 검을 뱉었다.

그리고 반대 편으로 몸을 돌려 유진의 왼쪽 팔을 잡아 끌었다.

유진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운전석을 향해 다가왔고 둘의 저돌적인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너무 빠르고 격하게 움직여서 숨쉴 틈도 없었지만 두 사람의 입술은 통로처럼 늘 붙어 있었다.


영권은 유진의 가슴을 만지면서 그녀의 옷을 벗겨나갔다.

겨울에도 옷을 많이 입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추위를 대비해 너무 많은 종류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이렇게 걸림돌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올리다 말고, 반쯤 내리다 만 상태에서 카섹스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좁은 차가 만들어주는 이상야릇한 몇 가지 체위를 즐기면서 서로에게 열중했고 차는 영권의 몸짓을 따라 움찔거렸다.


"안에다 하면 안 되요. 나 배란기야."


절정에 가까워지자 유진이 말했고 하는 수 없이 영권은 그녀의 배꼽을 타켓으로 총을 발사했다.


"아, 너무 좋았어."


그녀의 칭찬은 영권을 고무시켰고 흥분한 영권은 그대로 차를 출발시켰다.


"어머, 뭐 하는 거야? 미쳤어."


영권의 돌발 행동에 놀란듯 했지만 그녀는 이내 깔깔거리며 웃었고 티슈를 꺼내 배를 닦고 좌석을 일으켜 세우고 돌아간 브래지어와 내려간 팬티, 

다리에 감겨 있는 갈색 팬티 스타킹을 추스르느라고 분주했다.

주차장을 빠져나가 도로에 접어들었을 때 그녀는 치마를 올릴 수 있었다.


"이건 좀 집어 넣고 운전하지."


유진은 아직도 고개를 내밀고 있는 영권을 향해 입을 가져갔다.


"음. 이러면 교통 사고 발생률이 70퍼센트쯤 증가하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영권은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유진은 키득거리면서 애무를 계속했다.

영권은 보이는 가장 가까운 모텔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안달하면서 모텔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영권이 방값을 치르고 열쇠를 받아 든 다음 방에 도착하기까지 일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대강 걸치기만 했던 옷을 이번에는 완전히 벗어버린 두 사람은 밀가루 반죽처럼 달라붙어 침대 위를 뒹굴었다.


"안에다 하고 싶으면 항문에다 해줘."


다시 절정이 다가오는 영권에게 유진은 특별한 피임을 요구했고 그것은 남자에게 작은 모험을 제안하는 것과도 같아서 

영권은 흔쾌히 승락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두 가지 괄약근을 모두 만족시킨 유진은 넋이 나간 것처럼 흐느러졌고 영권도 그 옆에 대자로 누웠다.


같은 시각 남편이 온 줄 알고 문을 열었던 선화는 그 언젠가처럼 나타난 병희의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병희에게 남편이 오면 어쩌려고 이러냐 물었지만 병희는 언제나 자기만 믿으라고 한다.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을 거야."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안심이 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했다.

남편도 다른 여자를 만나다니.

하지만 그걸 탓할 입장이 못되기에 오랜만에 찾아온 병희를 반갑게 맞기로 했다.

시간이 촉박하니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병희는 어디서 그런 여유가 나오는지 모르게 거드름을 피우고 있다.


"그이가 누굴 만난다는 거야?"


선화는 궁금증이 생겨서 물어보았다.


"내 학교 후밴데 오늘 모임에서 만났어. 같이 가는 것 같더라고. 영권이에게도 자유를 줘야지. 이리와."


선화는 병희에게 안겼지만 심경이 복잡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모든 것을 망각하게 만드는 병희가 또 다시 힘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나가요. 난 씻고 천천히 나갈게."


영권이 샤워를 하고 나오자 유진은 그렇게 말했다.

일찍부터 매달리는 타입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역시 그녀는 쿨한 여자였다.

그 표현이 적절하다면 말이다.

주섬주섬 옷을 입은 영권은 아직 업드려 있는 유진의 엉덩이를 만지며 즐거웠다고 말했다.


"연락같은 건 하지 말아요.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


영권이 전화번호를 묻자 유진은 그렇게 말했고 조금은 입맛이 씁쓸해진 영권은 예의 바르게 잘 돌아가라고 말하고 방에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날씨가 이렇게 추웠나 싶었다.

홀쭉해진 배가 식욕을 일으키고 있는 밤에 차를 몰고 집까지 가기가 귀찮게 느껴졌다.


"그래도 가야겠지."


영권은 차를 출발시켰다.


돌아보니 특별한 경험이었다.

처음 만난 여자와 숨가쁘게 빠져들어 몇 시간만에 끝내버리다니.

그런데 스스로 그런 새로움에 익숙해져가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걱정스러웠고 풀기 힘든 매듭으로 변하지 않기를 원했다. 

어느 순간 영권은 요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조금씩 속도를 높여 갔다.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웬일인지 일을 보고 들어가고 싶어서 후미진 구석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 

영역 표시를 하는 동물보다는 교양있게 바지 지퍼를 내리고 소변을 뿌려댔다.

일을 마치고 터벅터벅 걸으며 한번쯤 숙였던 고개를 들고 입구를 향해 가는데 그만 병희와 마주치고 말았다.

놀람과 의심, 충격과 의심, 슬픔과 의심이 교차되는 찰라가 지나고 영권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왜, 거기서 나오는 거냐?"


영권은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며 물어보았다.


"응? 술 한잔 더 할래?"


병희는 그렇게 묻고 벌써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영권은 불길한 그림자 뒤에 달고 친구를 따라 걸었다.

근처의 포장마차까지 가는 동안 영권은 수많은 생각을 했고 당장 병희 목을 조르며 다그치고 싶기도 했지만 가능한한 흥분하지 않기로 했다.


"자, 이제 얘기해봐."


자리에 앉아서 술 한잔씩을 따른 후 마침내 영권이 듣기를 청했다.

병희는 뜸을 들이며 우선 술 한잔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사실은..."

"사실은?"

"선화씨를 사랑하게 됐다."

"뭐라고?"


영권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충격을 느끼며 앉은 자리에서 비틀거렸다.

몇 분동안 내내 상상하고 의심했는데도 심한 타격을 입은 듯 했다.


"언제부터냐?"


영권은 병희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릴 기세로 이를 망 다물고 있었다.


"네가 실종되고 좀 지나서. 미안하다."

"개자식."


영권은 일어나서 포장마차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 옆에 있는 것이 창피했기 때문이다. 병희가 따라나오며 말했다.


"선화씨는 잘못 없어. 내가 다 그렇게 만든 거야."

"한 대만 맞아라."


영권이 말하자 한숨을 쉰 병희가 얼굴을 내밀었고 젖먹던 힘까지 팔에 모은 영권이 크게 주먹을 휘둘렀다.

순간 병희는 뒤로 한발짝 밀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부탁이다. 선화씨한테는 책임을 묻지 말아다오."


병희의 간곡한 부탁에 영권은 쓴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고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병희는 얼굴을 매만지며 일어나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집으로 들어가기가 망설여지는 것은 영권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아예 집에 들어가지 않을 생각도 있었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았다.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열쇠로 열고 들어가자 그 소리를 듣고 선화가 방에서 나와서 영권을 맞았다.

하지만 영권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선화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방문까지 냉큼 닫아버린 남편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 모두 머리가 복잡해서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영권은 자꾸만 요의가 느껴져서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려야만 했다.

자리에 누우면 과연 내일이 올지 의문이었다.

내일이 온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옳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영권은 아내와 몇 번 마주치기는 했지만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지나쳐갔다.

그리고 식탁에 차려진 아침도 먹지 않고 집을 나가는 영권을 선화도 붙잡지 않았다.


부부는 그렇게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만 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선화는 병희에게 전화를 걸었고 병희는 어제 일어난 일을 그녀에게 설명했다.

선화는 잠깐 놀라긴 했지만 이내 올 것이 왔다는 마음을 가졌다.

언젠가는 빛이 들어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법이니 자신의 비밀도 때가 이르면 밝혀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게 오늘이 된 것 뿐이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남편인 영권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고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화는 커피 한잔을 타서 식탁에 앉았다.

전같으면 맛있게 싹싹 비워졌을 음식들이 식어버린 채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어떤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

선화는 두근거리는 가슴이 멈추지 않는 것을 느끼고 눈을 감았다.

병희와의 첫 만남, 남편의 실종, 병희에게 사로잡히던 날들.

선화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영권은 하루 종일 상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운전을 하면서도 가게에서 돈 계산을 하면서도 선화와 병희가 만나는 장면이 떠올라 마음을 진정시키기 힘들었다.

그렇게 믿었던 선화가 자신의 친구와 그런 짓을 벌일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잘못한 일이 있었지만 아내의 그런 행동은 더욱 놀랍게 느껴졌다.

화려할 것 없었지만 평탄하고 안정적이었던 결혼 생활이 여기서 끝난다고 생각하니 답답한 게 무언가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돌이킬 생각도 해봤지만 이미 마음이 떠난 상태에서 억지로 결혼을 유지한다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아침에도 선화에게 할 말이 없었듯이 영권은 앞으로도 그의 부정한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자 영권은 답답하다 못해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것 같았다.


첫 휴가를 갔다가 부대로 복귀할 때의 기분이 그랬던가.

한숨이 자꾸만 나오고 머리는 답답하고 등에는 식은 땀이 맺혀서 아픈 사람처럼, 

걷고 있는지, 흘러가는지, 알지 못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아파트 앞에 도착한 영권.

다리가 물에 불은 것처럼 무겁게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고 증력은 영권의 등 뒤에서 작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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