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남자들의 상상 - 상편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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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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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권은 설거지를 끝내고 베란다 밖을 내다보다가 거실로 들어와 텔레비전을 보다가 졸음이 쏟아져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침대에는 혜수의 향수가 깊게 베어있어서 누을 때마다 그녀의 냄새가 났다.

진하고 유혹적인 느낌의 향기, 아내가 쓰던 순하고 깨끗한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향기를 느끼던 영권은 곧 잠이 들었고 시간은 흘러갔다.

네시쯤 되어 눈을 뜬 영권은 갑자기 견디기가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지막 남은 죄책감때문이었는데 그것을 잘라내는 데는 칼보다 예리한 그 무언가가 필요할 것 같았다.


가볍게 문을 열고 나서면, 드넓은 해변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찾아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하면 그만일 것을 무엇때문에 주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만족하지 못했던 모든 아쉬웠던 점들을 보상받기 위해서 일탈을 하고 있는 건가.

그런 일탈이 계속된다면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

살면서 그래본 적은 없었지만 항상 어렴풋한 상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결국 나에게 남은 것은 뭐지.

결론도 나지 않을 상념에 잠겨 있던 영권은 전화벨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혜수였다. 같이 저녁을 먹게 가게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영권은 전화를 끊고 이내 나갈 채비를 했다.

자기장 같은 것이 등을 잡아 끄는 것 같았지만 어떠한 의지로 인해 발걸음은 이어지고 있었다.

어스름한 저녁 거리는 바내 냄새와 섞여 습한 기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난 밤의 기억을 일부 압류당한 영권은 각인되어 남은 이미지만을 따라 혜수의 가게를 찾아갔다.



"어서 와."


혜수는 미인대회에 출전한 여자들이나 지을법한 환한 미소로 영권을 맞이했다.

그리고 룸과 주방 등 여기 저기에서 흘러나온 혜수의 동생들이 영권에게 인사를 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어제의 룸으로 다시 모였다.


밥을 기다리는 동안 여자들은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떨었다.

화려하게 차려입고 화장을 한 여자들에 둘러쌓인 영권은 조금의 이질감을 느끼며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여자들이 그런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오빠, 어제 들어가서 뭐 했어요?"


누군가 물었고.


"뭐 하긴 뭐해. 방아라도 찧었겠지."


누군가 대답하자 모두들 까르르 웃었다. 영권은 억지로 웃느라 찌그러진 얼굴이 되고 말았다.


"조용히 좀 해. 이것들아 서방님 난처하게 왜 그러니."


이어진 혜수의 농담은 영권을 더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만들 좀 해."


오기가 발동한 영권은 옆에 앉아있던 아가씨의 발가젓은 대퇴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머, 언니. 형부가 나한테 관심있나봐. 어떡해. 형부 나한테 좀 빌려줘도 돼?"


계속 하다간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장난이었다.

여자들에게 희롱당하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유쾌한 일도 아니었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배달원이 밥을 가져오고 나서야 영권은 도마위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모자를 뒤집어 쓰고 있는 배달원은 음식이 담긴 그릇들을 꺼내 놓으면서 재빠르게 여자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영권을 부럽기라도 한듯 몇 번이나 쳐다봐서 영권은 고개를 돌린 채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배달원은 소주를 세 병이나 꺼내놓고 혜수에게 돈을 받아 나갔다.


"그래. 어디까지 가는지 마음대로 흘러가 보자."


혜수가 권하는 반주를 받으며 영권이 했던 생각이다.


식사를 끝내고 영권은 룸안에서 잡지를 뒤적이거나 노래를 부르며 빈둥거리고 있었다.

몇 팀의 손님들이 왔는지 노랫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흘러 들어왔다.

지루함을 달래고 있는데 혜수가 맥주에 마른 안주를 가지고 들어왔다.


"심심하지? 맥주나 마시고 있어."


둘은 가볍게 맥주를 들이키며 서로의 눈빛에 빠져들었다.

둘은 언제부터 연인 사이가 되었는지 서로를 아주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섹스를 한적도 없지만 서로의 몸에 대해 자유로운 허용을 인정한 후였기 때문일 것이다.

한동안 바라보고 있던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고 혜수는 체중을 기대기 위해 영권의 다리에 손을 올려놓았고 

영권은 손을 실크 계열의 블라우스가 감싸고 있는 그녀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영권은 점점 허리에 힘을 주었고 두 사람은 혜수쪽으로 서서히 넘어갔다.

그녀는 이해하기 힘든 웃음을 지었는데 그건 마치 영권을 이해한다는 것 같기도 하고 비웃는 것 같기도 한 

이상한 웃음이었으며 또한 영권의 성취욕을 자극하는 면도 있었다.

영권이 한참 혜수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덜컥 열고 들어왔다.


"아주 난리가 났어요."


혜영이었다. 그녀는 두 사람이 벌이고 있는 광경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가와 의자에 앉았다.

영권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역시 혜수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일어났다.


"뭐야, 너. 기지배가 교양없이."


혜수는 빈병을 챙겨서 밖으로 나가버렸고 그녀가 나가자 혜영이 영권을 보며 물었다.


"오빠, 웃겨. 새벽에 나랑 해놓고 언니하고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아니, 그게."


영권은 변명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진실인지 농담인지 구분하기조차 힘이 들었는데 새벽에 일을 끝내고 언니 옆에 가서 누으라고 한 말 때문이었다. 

질투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떠보는 말일까.


"이따가 집에 가서 각오해."


혜영은 앙증맞은 얼굴로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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