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남자들의 상상 - 상편 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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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보내는 시간. 아니면 시험에 들고 있는 건가. 영권은 언제부터인가 계속 헷갈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든지 그를 이끄는 건 소돔에서 온 것처럼 화려한 옷을 입은 환락의 여인들이었다.


그날도 늦은 밤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전날과 거의 흡사한 플롯으로 시간이 흘러갔다.

영권은 취한 여자들에 둘러싸여 존재의 무게를 잃어가고 있었고 그를 희롱하는 여인들은 욕정을 품은 가슴으로 희희낙낙했다.

마지막에 남은 세 사람은 같은 차를 타고 아파트로 향했고 집에 도착하자 혜영은 거실에 또 간단한 술상을 차렸다.


혜수는 설거지 거리가 깨끗하게 정리된 것을 보고는 영권을 칭찬했다.

중앙 난방식의 후덥지근한 아파트에서 여자들은 옷을 한꺼풀씩 벗어던졌고 건강하고 풍만한 속살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술을 조금 마신 혜수는 이번에도 먼저 잠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거실의 소파 위에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영권은 혜수가 지난 새벽에 일어났던 일을 눈치채고 저러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으나 그러면 또 어떠하리.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시쳇말로 막 나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혜영과 영권은 어제와 같은 황홀함을 찾아 서로의 체온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곧 열기가 오르자 영권은 방으로 들어갈 것을 제의했지만 혜영은 그대로 거실 바닥에 몸을 누이며 그 자리에서 할 것을 요구했다.

영권은 하는 수 없이 그녀의 뜻에 따라 혜수의 숨소리를 들으며 일을 진행했다.


그런데 혜수가 가까워진 만큼 그들의 쾌감도 더 커진 것 같았고 고요 속의 아우성은 두 사람의 혼을 빼놓을 만큼 아찔했다.

영권은 도취된 나머지 혜영의 몸에 병에 담긴 소주를 부었고 혜영은 새로운 자극에 몸서리쳤다.

그렇게 서로를 탐닉한 후 혜영은 작은 방에서 자겠다며 불이 꺼져 있는 방으로 들어갔고 영권은 혜수를 안고 침실로 들어갔다.

섹스와 잠을 다른 여자와 함께 하는 야릇한 경험을 두 번이나 하다니.

온몸의 에너지를 써버린 영권은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누군가와 심하게 다투는 꿈을 꾸다가 잠이 깬 영권은 목마름과 동시에 심한 요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꿈을 꾸었나.


화장실로 간 영권은 먼저 배설의 본능을 해결하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신 다음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작은 방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것을 느꼈고 침실에는 혜수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갑작스럽게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끼고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영권은 어느새 작은 방 앞에 와있었다.

완전히 닫혀있지 않아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작은 방의 문을 살며시 밀며 한쪽 눈을 사용해서 훔친 방안의 풍경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비디오에서나 보았던 그런 장면이 눈 앞에서 실제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혜수는 다리를 버린 채 바닥에 앉아 있었고 그런 그녀를 자상하게 애무하고 있는 것은 바로 혜영의 뒷모습이 아닌가.

혜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무아지경에 빠져있었다.

아름다운 뒷 모습으로 언니의 가슴을 핥고 있는 혜영.


영권은 본능적으로 피가 중심으로 모이는 것을 느꼈다.

충격적이긴 했지만 내면에 숨어 있는 고도의 심미적 욕구을 만족시켜주는 부분도 있었다.

어쨌든 그 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돌아서야 할 것을 알았지만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아 시간을 끌고 있던 영권은 별안간 고개를 돌리며 웃는 혜영의 옆 모습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영권은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혜영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영권은 뒤로 물러서 잽싸게 방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녀는 영권이 훔쳐보고 있는 것을 알았을까.

이상한 기분이 연기처럼 가슴 저편에서 뭉실뭉실 올라왔다.


"미친년들."


영권은 욕찌거리로 털어버리고자 했지만 역시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영권의 몸은 가운데로 피를 너무 공급한 나머지 머리가 흐리멍텅한 상태였다.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권이 눈을 떴을 때 혜수가 옆으로 돌아와 있었고 역시 속옷 차림이었다.

혹시 꿈을 꾼 건 아니겠지.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영권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혜수의 브레지어를 벗겼고 팬티를 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알몸이 된 후에도 언제나 그랬듯이 여유있는(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이해하는 것 같기도 한) 미소를 지으며 영권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그녀는 전날처럼 영권을 거부하지 않았다.

다리를 오므린다거나 영권의 것을 세게 쥐어서 아프게 하지 않았다.

다만 지난 새벽에 영권이 작은 방에서 보았던 그 자세로 덤덤히 앉아 있었다.

그러나 혜영과 있을 때처럼 좋아 보이지는 않았기에 영권은 실망스러웠고 그런 기분을 이해했는지 혜수는 이따금씩 작은 신음소리를 조작해냈다.

때문에 중심으로의 혈액공급은 원활하지가 못했고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정액이 방출되고 말았다.


"좋았어?"


그렇게 물어보는 혜수가 가증스러웠다 .

그래서 혜수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너."

영권이 입을 열자 옷을 입던 혜수는 고개를 돌렸고 진한 흑장미 빛깔의 유두가 드러났다.


"뭐?"

"너, 레즈비언이니?"


물어보는 영권은 힘이 들었지만 난처해할 것만 같았던 혜수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언제나 당당한 그녀.


"하하, 아니 지금 나랑 해놓고 그런 질문을 하는 거야?"


혜수는 천역덕스럽게 웃었고 영권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잘못 생각한 건지 혼동했다.


"새벽에 너희 둘이 저쪽 방에 있는 거 봤어."

"... 그래. 혜영이가 한 말이 맞았구나. 미안해."

"미안할 것 까지는 없고."


"우리가 꼭 레즈비언은 아니야. 또 아무 여자하고 하는 것도 아니고. 혜영이랑은 마음이 맞아서 그렇게 된 것 뿐이야. 

나도 얼마 안 됐어. 남자보다 여자를 더 좋아하게 된 게."


혜수는 남자들이 지긋지긋해져서 섹스를 전혀 하지 않고 지냈는데 우연히 여자도 좋아하는 혜영이 가게로 오면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럼 혜영이가 양성애자란 말이군."

"말하자면 그렇지. 나도 약간은 그렇게 된 셈이고. 그러니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그리 이상하지는 않아. 다만, 왜 날 끌어들였지?"


영권은 몸을 일으켜 혜수를 마주보며 앉았다.


"끌어들이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그런 방식도 괜찮은 것 같고."

"그런 방식이라니?"

"나와 혜영이 사이에 공유하는 한 남자가 있다는 거."

"그렇군."

"화났어?"


혜수가 영권의 뺨을 만지며 물었다.


"아냐."

"정말? 그럼 우리 언제 같이 할까?"


그 순간 영권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꿈에서나 가능한 두 여자와의 섹스가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농담이야. 하하."


혜수가 침대 밖으로 일어나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한 말은 전혀 농담같이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영권을 뿌리째 흡수해버릴 것 같은 마력으로 유혹해 올지 모른다.

두려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가 마녀로 돌변해 영권에게 마법을 걸고 자신의 노예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아마 영권을 삼각형 안에 가둔 채 언제까지나 풀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닮은 데가 많잖아. 삼각형이라, 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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