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남자들의 상상 - 상편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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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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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나갔다.

영권은 그 집에서 더 이상 섹스를 하지 않고 지냈다.

물론 그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젊고 아름다운 두 명의 여자가 맨살로 집안을 활보하고 다닌다.

영권은 어느 쪽이든지 다가가기만 하면 매우 그럴듯한 섹스를 할 수 있었고 욕심을 부린다면 두 여자와 동시에 할 수도 있었다.

그것 뿐인가, 혜수와 혜영은 끊임 없이 강하게 유혹하고 장난치고 요구한다.

그런데 왜 매일 솟아오르는 욕망을 참아내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더 이상 그녀들에게 끌려가다가는 어딘지 모를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언젠가 원했던 것 아닌가.


시간이 갈수록 참는 것은 힘들어져만 갔다.

한 방울씩 떨어져서 쌓이는 정액들, 그 무게가 영권을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면 진짜로 마법의 약효가 작용해 그녀들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영권의 인내력은 점점 소진되었고 끝내는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

영권은 가게로 전화를 걸었고 혜수에게 손님 없으면 일찍 들어오라고 말했다.

그 동안 영권의 마음을 알고 있었는지 조용히 지내던 그녀는 영권이 마음을 돌렸다는 것을 알아채고 반갑게 대답했다.


기다리기 시작하자 시간은 너무도 잔인하게 천천히 흘러갔다.

하마트면 그녀들이 돌아오기 전에 자위행위로 내공을 낭비할 뻔 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며칠 동안 마시지 않던 술도 한잔 하며 때를 기다렸다.

자정이 막 지나고 마침내 두 여자의 구두 소리가 문앞에서 들려왔다.

문이 열리고 자매가 나란히 백치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오래 기다렸지, 오빠?"


혜영은 정말로 영권을 사랑하는 듯이 다정하게 물었다.


"그래. 어서들 와라."

"혼자 술마시고 있었네. 좀 기다리지 않고서."


혜수가 핸드백을 방안으로 집어던지고 테이블 앞에 앉았다.

치마를 입은 채로 양반다리를 하고 앉느라 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그나마 술이 한 두잔 들어가자 옷을 하나 둘씩 벗어버렸다.


"참, 내가 오늘 좋은 거 가지고 왔는데."


술을 마시던 혜수가 방으로 들어가더니 핸드백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안에서 그녀가 꺼내든 것은 앰플이었다.

병원이나 약국에 가면 볼 수 있는 주사용 앰플.

영권은 불길한 예감으로 그것이 무어냐고 물었다.


"의료용 마약이야. 가게에 자주 오는 마취과 의사가 있는데 그 사람이 갖다 준 거지. 짜잔."


이어서 그녀는 주사기마저 꺼내 보였다.

그녀는 마치 처음으로 술을 마시게 된 학생처럼 설레는 모습이었고 혜영도 경험이 있는듯 벌써부터 황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안 내켜"


자신들과는 달리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영권을 보자 혜수가 물었다.

그리고 혜영은 애교를 부리며 영권에게 달라붙었다.


"아이, 괜찮아. 오빠. 의료용으로 쓰는 거야. 중독성도 거의 없대."


중독성이 없다고. 하지만 영권이 보기에 여자들은 벌써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 같았다.

불안함에 망설이고 있는데 혜영은 이미 영권의 바지 지퍼를 내리고 그의 중심부를 장악해 가고 있었다.

고로 영권은 순순히 팔을 내밀었고 앰플을 따고 주사기에 약을 채운 혜수는 그의 팔에 묘약을 밀어 넣었다.


"나락까지 떨어진 후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영권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양쪽에서 두 명의 여자가 맹렬하게 영권을 끌어당겼고 온전한 정신을 놓고 마법을 채운 영권은 나른해진 몸 전체에서 올라오는 쾌락을 거부하지 않았다.


영권이 몸을 눕히자 혜수가 그의 상체와 머리를 장악했으며 혜영은 그의 하체를 차지했다.

혼미한 정신은 방안을 꽃이 가득한 정원으로 보이게 했고 머리맡에선 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게 했다.

구름이 가까웠다. 하늘을 날고 있는 모양이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여행은, 하지만 누군가 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때문에 도중에 끝나고 말았다.

그 소리는 분명히 마녀를 잡으러 온 왕국의 기사들이 내는 거침 없는 말발굽 소리였다.


아, 황홀했던 시간도 이렇게 끝나는구나.

영권은 황급히 몸을 일으켰고 그의 몸에 매달려 있던 두 여자도 떨어져 나왔다.

옷을 대강 걸치고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영권은 베란다로 달려갔다.

돌아보지 마라. 돌아보는자 소금 기둥이 되리라.

4층이면 상당한 높이인데, 그렇다고 여기서 경찰에 잡히면 무슨 꼴이 되겠어.

흙밭으로 떨어지면 다치지 않을 거야.


영권은 잠시 머뭇거리지도 않고 하늘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아, 난다. 날아.

다행이 영권은 의도했던 대로 정원 흙밭에 떨어졌고 떨어지자 마자 잽싸게 일어나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번째 발짝을 내딛었을 때 왼쪽 다리가 따라오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묘약때문에 고통은 없었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다리가 부러진 모양이다. 게다가 피가 어디서 저렇게 많이 흐르는 거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바닥을 구르고 있는데 아파트 입구에서 혜수와 혜영이 달려나왔다.

그 뒤로 경찰로 보이는 남자가 따라 나왔다.


"젠장. 이제 끝장이군."



영권이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아침이었고 장소는 병실이었다.

한쪽에서 혜영이 엎드린 채 자고 있었다.

영권이 기척을 내자 그녀는 눈이 부은 얼굴을 들고 반가워했다.


"일어났네."

"어떻게 된 거야?"


정신이 멀쩡해진 영권이 물었다.


"어떻게 되긴. 오빠가 또라이 짓 해서 그런 거지. 왜 갑자기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그래. 

4층이었기에 망정이지 15층이었으면 어떻게 할뻔 했어. 참나."


혜영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는 듯 혀를 찼다.


"경찰이 오지 않았었나."


그 말에 혜영은 웃다가 죽겠다는 각오라도 한 것처럼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

그녀가 웃음을 멈출 때까지 지루하게 기다린 영권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거의 웃으며 눈물을 흘리는 얼굴이 되고 말았다.


"그럼 그게 혜수의 옛날 남자친구였어?"


영권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천장만 바라보고 있자 혜영은 그만 돌아가겠다며 몸조리 잘 하라고 말했다.

왼쪽 다리 전체에 깁스를 한 영권은 누운 채로 혜영에게 인사를 했다.


"잘가. 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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