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남자들의 상상 - 상편 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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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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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선화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멍하니 기대고 있었다.

동수를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당혹스럽지만 풋풋한 감정을 가진 연하의 남자에게 끌리지 않는 여자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난 이미 결혼을 한 몸인데.

요즘 세상에 지나친 정조관념은 바보같은 게 아닐까.

누군가 날 보게 되면 어쩌지.

복잡한 심정,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이 콩닥거렸다.

한동안 앉아있던 선화는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킬 생각에 와인을 가져왔다.

그리고 잠시 후 문득 오토바이 엔진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설마, 그가 쫓아왔을까. 확인해볼 필요도 없어.

하지만 선화는 베란다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 밑에서 올려다 보고 있는 동수를 발견하고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그도 날 보았을까. 다시 소파에 주저앉은 선화는 잔에 남은 와인을 쭉 들이켰다.

가슴이 더 뛰기 시작했고 아랫배가 훈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돌아가야 할텐데..."

"돌아가지 않으면 어쩌지..."

"지금쯤이면 돌아갔겠지..."


한 시간을 보내는게 그토록 힘든 일인줄 선화는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는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을 동수, 그래서 밖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처음에는 먼 곳만 보이던 시선은 조금씩 밑으로 향하고 결국 땅에까지 닿았다.

그 땅위에는 여전히 오토바이에 기대 서서 기다리는 동수가 있었다.

그는 뭘 기다리는 거지.

선화는 이제 더 이상 그를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사랑이든 아니든 그 정도 열정이면 충분했다.


동수는 한 시간이 넘게 추위를 참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집에 불이 꺼져있다는 것이 염려스럽기는 했지만 결과야 어떻든 계속해서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옷을 너무 얇게 입고 나와서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래도 마음은 몸에게 쓰러질때까지 그렇게 하라고 했다.

몸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오토바이에서 떨어져 몸을 흔들어보았지만 쉽게 덥혀지지 않는다.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어 보다가 별로 내키지 않아서 다시 그냥 서있었다.


"사랑에도 고통이 따르는거야. 난 누나를 정말 사랑해."

몸을 움추린 채 땅바닥을 보면서 중얼거리고 있을 때 아파트 입구쪽에서 빛이 느껴졌고 동수는 고개를 들어 그곳을 응시했다. 

놀랍게도 거기에 션화가 서있었다.

두 사람은 눈빛만을 교환한 채 가만히 서있었다. 부르거나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다 이해되었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리기 시작한 두 사람은 몇 년만에 만난 사람처럼 부둥켜 안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했다.


"몸이 너무 차가워."


선화가 말하자 동수는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격한 키스 후에 선화는 멈췄던 숨을 토해냈다.


"이제 몸이 더워졌어."


동수가 웃으며 말했다.


"빨리 들어가자. 와인 마실래?"

"좋지."


와인을 마시던 동수는 더는 시간을 늦출 수가 없음을 느끼고 선화에게 달려들었다.

입을 맞추며 그녀의 옷을 하나씩 벗겨가는 동수.

마음을 허락하자 몸은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화는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동수의 몸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단단한 가슴과 홀쭉한 배, 군살 없는 옆구리가 만지면 만질수록 손을 달라붙게 하는 것 같았다.

동수가 선화의 원숙한 가슴에 빠져있는 동안 그녀는 동수의 남성을 드러나게 했다.

따뜻하고 촉촉한 손으로 쓰다듬자 그것은 수줍은 소년처럼 들썩거렸다.


동수는 열심이었지만 아직은 서툴렀다.

곧 선화는 소파 밑으로 내려앉아 무릎을 꿇고 동수의 왜곡된 성적 자아(그도 그럴 것이 동수의 성기는 왼쪽으로 많이 굽어 있었다.)를 입안에 품었다.

동수는 거기에 털나고 처음 느껴보는 감각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초심자에게 너무 무리한 자극이었나 보다.


"아, 아, 안 돼."


동수는 참아보려 했지만 방아쇠는 이미 당겨지고 말았다.

움찔거리는 것을 느끼고 선화는 능숙하게 입으로 흘리지 않고 동수의 것들을 받아냈고 말 없이 크리넥스를 뽑아 살며시 뱉어냈다.


"미안해. 누나."


아직은 모든 것이 서툰 동수에게 선화는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처음엔 다 그런거래."


선화는 동수의 다리를 배고 누웠다.


"저, 누나."

"뭔데."

"나 내일부터 가게에 못 나갈거야. 군대 가."

"... 그래? 그래."


선화는 동수가 조금 원망스러워졌다. 가늘고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 꼭 누나한테 돌아올거야."


동수는 선화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음. 그래. 잘 갔다 와. 몸 조심하고."

"알았어. 나 누나 생각하면서 잘 참아낼 거야. 기다려줄 수 있지?"


무슨 뜻인지 동수의 의도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선화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선화는 먼저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했다.

군대 가는 동생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는 기분이었다.

그냥 동생이라고 하기엔 좀 어색하지만 말이다.

동수는 고맙다며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작별 인사를 하고 동수는 손을 흔들며 오토바이를 몰고 떠나갔다.


"그래도 마음대로 달릴 수 있으니 좋겠다."


선화는 멀어지는 동수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가늘고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경찰서에 다녀온 후로 선화는 온 몸에 기운이 빠져나가 흐물흐물해진 느낌이었다.

모임에 간다고 나간 사람이 어째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의문에 그칠 뿐이었다.

동수가 군에 입대한 후로 가게를 운영하는 것도 힘이 들었고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선화는 제정신으로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가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선화는 술에 기대어 잠이 들기 일쑤였다.


그 날은 한번쯤 마시지 않고 잠을 잘 생각에 침대에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고 쏟아지는 선명한 생각들은 오히려 수면을 방해하고 있었다.

한 시간이 넘게 뒤척이던 선화는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래, 여기 있었구나."


선화가 찾아낸 것은 명함이었다. 보름 전쯤 병희가 주고 갔던 명함이었다.


"정신과 전문의. 상담 및 예약 ###-####."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선화는 전화를 걸어야만 했다. 그리고 내일 당장 잠 오는 약이라도 처방을 받아야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신호가 길게 이어졌다.

당연히 진료가 끝났겠지 라고 생각하며 끊으려는데 누군가 전화를 받고 말았다.

담담한 목소리. 지난 번에 들은 기억으로 그것이 병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김선화에요."


선화는 자신이 누군지 기억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병희는 단번에 선화를 알아보았고 안부를 물었다.

선화는 자신의 기분을 말하고 상담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권의 행방불명은 말하지 않았는데 직접 만나서 말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내일 병원으로 나오시죠. 두 시 괜찮으세요?"

"네. 그러죠."


선화는 진료 예약을 하고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문득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였다.


"어떻게 전화를 받았을까? 지금까지 병원에 있는 건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열 시쯤 되서야 눈을 뜬 선화는 곧장 샤워룸으로 들어갔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잠시 감상하다가 샤워기를 틀고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이 온몸을 감싸자 불면의 후유증이 가시는 것 같았다.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한다.

결혼한 이후로는 화장을 하지 않고 다니는 적이 더 많았다.

오랜만에 하는 터여서 손이 서툴러진 듯 했다.

눈썹을 그리고 립스틱을 바르는 동안 거울을 보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병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게에 들린 후에 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갈 작정이었다.


그의 얼굴은 약간 고지식해 보였었다.

콧날은 뾰족하고 눈은 흐릿한 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

그의 첫인상은 그랬다.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는 얼굴이랄까.

화장을 마친 선화는 옷장을 열고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무의식중에 그녀가 고른 속옷은 사 놓고 몇 번 입지 않는 화려하고 야한 것이었다.

입고 보니 스스로도 민망할 지경이었지만 그런 속옷을 입을 때 생기는 야릇한 기분을 즐기고 싶은 날이었다.

팬티스타킹을 신고 거울을 보며 겉옷을 몸 앞에 대보았다.

검은 색과 보라색이 엉켜있는 정장.

언제 산 거였더라. 약간 쌀쌀한데 치마가 너무 짧은가.

하지만 다른 건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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