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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사이트) 초록마을 - 71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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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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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장대비를 뚫고 마을을 들어서는 현우가 보였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속을 오랜 시간을 걸었는지 현우의 안색이 파리하게 보여졌고 근심거리가 있는지 현우의 표정이 굳어진 채 마을을 들어서기 시작한다.

예사롭지 않은 비에 마을 안은 벌써 많은 빗물이 도랑을 만들며 흐르고 있었고 좀 전에 지나왔던 하천도 금새 물이 넘칠 듯 위험천만하게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어둠의 그림자가 현우의 얼굴로 내려 앉은 채 한동안 현우는 마을을 돌아보고는 자신의 집으로 향해 걸음을 옮겨간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하늘이 달래주는지 대문을 들어서는 현우를 바라보는 혜숙의 눈 속에 안도의 빛이 흐르고 

마루로 다가오는 현우를 바라보던 혜숙이 나무라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어 갔다.


“어쩜 그리 무심하니…?? 이제 조금만 있으면 애비가 될 녀석이 함부로 밤을 새고 돌아 다니기나 하고…….”

“……미안해요…. 숙모…. 오랜만에 술 한잔했더니…. 그만…….”


혜숙의 눈 속엔 현우가 아무일 없이 돌아온 것에 안도감이 어려 있기는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불만의 목소리에 

자신도 놀랐는지 한동안 얼굴을 굳히다 등을 돌린다.


“들어가서 쉬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꾸나…….”

“저……. 숙모…….”


현우의 부름에 안방 문을 열어가던 혜숙이 고개만을 돌린 채 현우를 바라보았고 현우의 얼굴에 씌여진 근심의 그림자를 느끼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변해간다.


“아무래도………..”

“무슨 말이니…??”

“비가 더 내리면 마을이….”


현우의 말끝이 흐려지며 안타까운 듯 한숨이 터져 나오고 혜숙은 점점 커지는 눈 속에 불안한 공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작년에도 물난리를 겪었지만 현우가 내뱉는 말뜻에 그 보다 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며 혜숙은 하얗게 얼굴이 탈색되기 시작했다.

다시금 시작되는 재앙에 혜숙은 무서운 공포감이 전신을 엄습함을 느꼈고 몸서리 쳐지는 과거의 생각에 절로 몸이 떨려옴을 느꼈다.


“혀…현우야…. 그럼…??”

“하천이 이대로 가면 금방 범람을 할 것 같아요……. 마을까지 물이 찰 수도 있구요…….”

“아………. 흐으윽……. 하늘도 무심하시지…….”


나직한 흐느낌이 혜숙의 목을 타고 흘러 나왔고 현우는 먹구름을 안은 채 장대비를 쏟아 내리는 무심한 하늘을 말없이 바라 볼 뿐이었다.


하천가로 나선 현우의 곁으로 언제 왔는지 안동댁과 호성이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흙탕물로 변한 채 하천을 내려가는 물 흐름이 엄청난 소음을 동반한 채 구비치고 있었고 현우는 얼굴이 굳어지고는 마냥 물살의 흐름을 바라볼 뿐이었다.


“저…. 총각……. 아무래도……….”


호성이엄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출렁이는 물살이 뚝을 타고 넘어 오는 게 보이고 안동댁과 호성이엄마의 움츠리는 모습 뒤에 현우가 고개를 돌리고는


“안되겠어요…. 우선은 대피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이러다간…….”


뚝을 넘나드는 하천의 황토물이 벌써 인근의 밭으로 스며 들며 파종한지 얼마 안되는 여린 싹을 덮어가며 밭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이고…. 저걸 어떡해…….”


몇 년을 힘들여 개간한 밭 이였기에 호성이엄마의 안타까움은 더했고 안동댁도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듯 발만 굴리며 안타까움을 표시할 뿐이었다.

자갈이 반쯤이다시피 했던 황무지였지만 호성이엄마는 손에 굳은 살이 박힐 정도로 열심히 땅을 파고 자갈을 걸러내어 

올해부터는 수확이 많을 거라고 내심 자랑을 하던 밭이였기에 그 슬픔은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어요……. 가야 되요…. 얼른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현우와 안동댁에게 의지한 호성이엄마가 뚝을 벗어나고는 마을로 접어 들었고 빗 속을 뚫고 

마을 사람들이 집 밖을 나서는 모습들이 간간히 보여졌다.

너무나도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에 두려움을 느끼던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김진사댁으로 모여 들었고 

한동안을 그치지 않을 듯 하늘은 여전히 많은 비를 쏟아 붓고 있었다.


마을 아낙들과 대문을 들어서는 현우의 주위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혹시나 현우에게 이 상황을 벗어 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믿는 것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현우에게 의지하려는 것인지 

두려움 깃든 마을 사람들이 현우의 주위를 에워 싸고는 현우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가슴위로 두 손을 모은 풍천댁이 보였고 아직 나이어린 성수의 손을 꼭 잡은 성수엄마도 보였다.

벌써 피난 준비를 마쳤는지 보따리를 가슴에 안은 성희와 성희엄마도 간절하고도 두려운 눈빛이 교차되며 현우의 반응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현우는 다시는 이런 불행이 마을에 찾아 들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나마 어렵사리 얻은 행복과 힘들었지만 소망을 키워줄 몇 그루의 사과나무까지 심어 놨는데 

어찌 이런 일이 다시금 반복되는지 현우는 막막한 심정을 느끼며 비통한 얼굴을 펼 수가 없었다.


“어…어찌 해야 하는 거여…?? 응…?? 속 시원히 얘기 좀 해줘…. 현우총각…??”

“예…. 우리는…. 우리는 이제 어떡해야 할건지 말 좀 해주세요…….”


모두의 눈에 간절함과 비통함이 어려지며 현우의 모습을 지켜 보았고 한동안 굳게 입을 다물었던 현우가 천천히 입을 떼고는 말문을 열어갔다.


“지금은……. 지금은 아무 방법이 없어요……. 비가 이렇게 계속된다면….”

“안돼……. 어떻게 일군 내 마을인데………. 안돼…. 이럴 순 없어…….”

“흐흑……. 흑흑흑…….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이고……. 우리는 어찌 살라고……. 아이고……….”


봇물처럼 터지는 아낙들의 절규와 아낙들의 슬픔을 느끼는지 울음에 전염된 아이들이 눈시울을 적시며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새로운 희망에 들뜬 봄날이였지만 그들의 눈에는 오직 슬픔과 비통함만이 보이며 마당은 울음 바다로 변한 채 비에 젖어갈 뿐이었다.


하천을 넘어 든 황토의 물결이 밭과 들을 타고 넘으며 마을의 바깥에까지 밀려들었다.

마을이 생긴 이후에 이렇게 큰 물난리는 없었던 듯 마을 사람들은 허탈한 눈빛을 보이며 줄을 지어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뒷산 중턱 어름에 커다란 동굴이 있어서 우선은 난리를 피해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힘없는 

고개를 끄떡이며 눈물을 머금고 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말없이 다문 입술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억누르며 슬픔을 삼켜가는 모습들이 현우의 눈 속에 비춰지며 아픔을 느끼게 만들었다.

자연의 품에서 이제까지 갖은 혜택을 누렸고 시련의 고통도 맛보았겠지만 그들은 어느 누구 하나 원망의 빛을 보이지는 않았다.

항상 순응하며 살았던 까닭인지 자신들의 운명만을 탓하며 너무도 순수하게 자연의 분노를 받아 들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가뭄이 들어도 자신의 죄를 빌 뿐이었고 흉년이 들어도 자신의 무능함을 한탄 할 뿐이었다.


순박하기만 한 마을 사람들의 고통에 현우는 가슴에 구멍이라도 난 듯 허전하면서도 맥이 풀리는 걸 느꼈다.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고 아무런 도움도 못 되는 것에 커다란 비애를 느끼기 시작했다.

힘없는 발길들이 산 속의 흙 범벅이 된 소로길을 오르고는 마을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동굴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동굴 속을 메워가며 빗줄기가 동굴을 가리고는 뿌옇게 흐려져 갔다.


이틀을 내리 부은 장대비가 이른 아침부터 잦아 들고는 구름사이로 파란 하늘이 점점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지독하다고 생각 될 만큼 하늘은 많은 빗물을 토해내고는 자신의 실수가 부끄러운지 가끔씩 햇살을 비추며 

어두웠던 그늘을 거두어가고 고요하게 잦아든 빗소리가 어색했던지 동굴 밖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언제 비를 내렸느냐는 듯 하늘은 맑게 개이고 있었고 사람들의 눈 속엔 이제는 비가 멈췄다는 생각에 생기들이 차츰 돋아나고 있었다.


“비가…. 비가…. 멈췄어요……. 비가……….”


성희엄마의 떨리는 음성이 동굴 안을 메아리 쳐 가고 웅성거리는 동요 속에 동굴 밖으로 사람들이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어허………밤에도 그렇게 요동을 치더니만…. 이게 무슨 조화야…??”

“그래도…. 비가 그치니 다행이구마…….”


이틀 내내 말문을 닫고는 벙어리처럼 지내던 아낙들은 어제와는 다르게 밝은 음색으로 말문을 열었고 

철이 없는 아이들 몇이 동굴 밖 나무사이를 비집으며 산등성이로 빠져 나가는 모습이 보여졌다.

아마도 산등성이에 올라서면 마을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아직은 젖어 있는 나무 줄기를 잡으며 

미끄러지지 않은 채 꼭대기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현우는 아무런 말이 없이 아이들을 바라보았지만 눈 속엔 희미한 그늘만이 보여질 뿐 조용히 사람들의 모습만을 바라 볼 뿐이었다. 

서넛이 모여 산등성이로 올랐던 아이들이 금새 어깨를 늘어뜨린 채 동굴로 돌아오고 아낙들은 아이들DL 보았던 마을의 전경이 

궁금한지 눈 속에 무엇을 보았냐는 듯 무언의 질문을 던져가고 아이들은 풀 죽은 모습으로 


“마을이 ……. 안 보여요………. 물만 가득……….  찼어요………….”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설마 하는 눈빛들이 보이긴 했지만 어느 누구도 말문을 열지 못했고 생각하기도 싫은지 고개를 저어가며 하얗게 얼굴색이 변하기 시작한다.

삼일 사이의 비로 마을 전체가 잠겨 버렸다면 그들에게 남아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고 현실을 받아 들이기가 싶지 않는 듯 

그들의 표정엔 불신의 느낌만이 눈 속을 맴돌며 보여질 뿐이었다. 


멍하니 서 있던 성수엄마가 바닥으로 주저 앉으며 나직한 울음을 터트리고는 구슬픈 통곡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설마 했던 기우가 현실로 다가오며 그들의 마음은 재가 되 듯 까맣게 타들어 갔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아낙들의 눈에는 방울지는 눈물만이 흘러내렸다.


매년 이어지는 마을의 우환에 이제는 그나마 근근이 견뎌가던 뿌리마저 빗물에 씻겨 가 버리며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것이었다.

남편을 잃은 뒤 돌림병으로 가족을 잃어야 했는데 이제는 힘겨운 육체를 누일 터전마저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에 

아낙들은 넋을 잃은 통곡을 내뱉으며 자신의 처지만을 한탄할 뿐이었다.

맑아지는 깨끗한 봄날이었지만 산을 울리는 구슬픈 여인들의 울음이 음울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며 마을을 가득 채운 수면의 반짝임만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삼일의 시간이 흐르면서 동굴은 초상집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며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힘을 잃은 아낙들은 하루종일 멍하니 하늘만을 쳐다볼 뿐이었고 아이들은 배고픔에 한시도 조용한 시간이 없을 정도로 울어대며 투정을 부렸다.

간혹 현우가 동굴 밖으로 사라지고 몇 시간이 흐른 후에 나타나서는 밥을 지어 배고픔을 달래보기는 했지만 

아낙들은 곡기마저 사양한 채 마냥 멍한 시선만을 유지 할 뿐이었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허탈감에서인지 아낙들의 모습은 마치 생을 포기한 하류인생처럼 자포자기의 모습만이 보여졌고 

여전히 입을 다문 현우는 막막한 시선으로 지켜보기 만을 했다.

뭐라고 달랠 수도 없을 것 같았고 뻥하니 뚫려버린 그녀들의 마음을 무엇으로도 채워 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한동안 현우 역시 그녀들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픈 허탈감에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 결과의 끝을 알고 있었기에 

현우는 다시금 일어설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더 이상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수는 없다는 마지막 욕망에 

마을을 포기한 채 아낙들처럼 허송세월을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하고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마을로 내려가서는 

아직 채 물이 빠지지 않은 마을을 조금씩 복구하기 시작했다. 


물이 조금씩 빠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마을 안은 채 빠지지 못한 물로 채워진 상태였고 

현우는 삽과 곡괭이로 물이 빠질 수 있도록 도랑을 만들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혼자만의 사투를 벌이며 현우는 한가닥 한가닥의 희망을 채워가고 다시금 마을을 일으켜 세우려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불행은 없을 거란 생각에 현우는 홀로 시간의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기기 시작했다.


맑은 날이 계속되면서 마을을 채웠던 사나운 물살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빠져 나갔고 

비록 뼈대만 앙상한 집터만 남은 상태였지만 마을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쟁을 치룬 듯 처참한 광경만이 남은 채 마을이 보여지며 마을 아낙들이 하나 둘 모습을 나타내었고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는 집을 둘러보며 휩쓸려 가지않은 가재 도구들을 건져내기 시작한다.


독기처럼 번져가는 삶에 대한 애착과 어린 고사리 손의 자식들의 울부짖음을 더 이상을 관망만 할 수 없었던지 

아낙들은 혼의 없는 시체처럼 기계적인 몸놀림으로 하나하나 쓸만한 도구들을 건져내고는 집터를 정리했다.

어떻게 든 마을을 다시 세워야 하는 현우로서는 막막할 따름이었지만 우선은 마을 사람들의 의욕을 살리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아무런 일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마을을 떠나는 이들도 막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순박하기만 한 사람들이 타지를 떠돌며 살아가는 모습은 현우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었기에 

현우로서는 피폐해진 마을을 일으켜 세울 희망을 만들어 내야만 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현실에서 무엇으로 험난한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는 했지만 현우로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도래했음을 예견하고는 차분히 마을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열흘이 넘는 시간동안 물에 잠긴 마을이다 보니 군데군데 고여진 물에서 악취가 흘러 나왔고 

먹을 식량과 의복이 부족해지며 마을은 난처한 지경에 빠져 버렸다.

다행히 우물물에는 영향이 없었던지 깨끗한 식수와 씻을 물은 충분했지만 당장 부족한 식량을 메꾸기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다른 마을의 도움이라도 받았으면 좋을 것 같았지만 초록동이 이정도의 피해를 보았다면 다른 마을 역시 곤란하리라는 생각에 

현우는 힘없는 발길을 산등성이로 돌리기 시작했다.

모든 희망이 거품처럼 스러지고 있다는 절망감이 현우의 마음 속을 채워갈 즈음 산등성이를 오르던 현우는 눈을 반짝이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심어놓은 사과나무들이 그 많은 빗물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킨 채 새순을 틔워내려는 듯 봉우리를 맺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듯 현우는 여린 가지 사이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나무 하나하나를 관찰하기 시작하고 햇볕이 잘 드는 등성이에는 

파란 싹을 틔워내는 가지들도 점점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희열이 무척이나 자신을 떨리게 만드는 지 현우는 주체 할 수 없는 상태가 되 듯 

몸을 떨며 입가로 커다란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다행이도 하늘은 황폐함만을 남겨주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이 나무 몇 그루에 마을 사람들은 

다시금 희망을 가져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현우는 숲을 헤치는 노루처럼 산등성이를 뛰어가기 시작했다. 


마을을 들어 선 대장간의 장년사내는 폐허처럼 변해버린 마을을 바라보며 입만을 주억거리고 뒤를 따르던 장년아낙 역시 

너무나도 달라져버린 마을의 풍경에 넋을 잃은 듯 안타까운 푸념만 늘어 놓는다.


“아이고…. 이게…. 도대체…. 뭔 일이래요……. 어쩌면…. 이렇게까지……….”

“휴…우……. 무슨 복이 이렇게도 없는가………. 불쌍해서 보지를 못 하겠구만…….”


마른 한숨을 토해내며 장년사내는 뒤를 돌아보았고 무명옷을 걸쳐 입은 채 장년사내의 뒤를 따라 마을을 들어서던 연화는 

마을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커다랗게 눈을 치켜뜨며 놀라움을 표시한다.


“이……. 이게…. 여기가……초록동이……맞나…요……??”

“예전의 모습은 하나도 찾아 볼 수 없지만……. 초록동은 맞수…….”


연화는 어릴 적 부친을 따라 초록동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림 같은 전경과 인심 좋은 마을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좋은 인상을 가졌던 기억이 있었지만 자신의 앞에 펼쳐진 현재의 모습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드는 안타까움과 스산함이 몸을 떨리게 하며 한동안 말을 잊은 채 마을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멀리 몇몇 사람들이 집터를 배회하며 힘없는 모습이 보여지자 장년사내는 걸음을 옮기며 일행들을 재촉하기 시작한다. 


“어여….갑시다…. 그렇잖아도…. 손길이 필요할 텐데……. 어여…….”


장년사내가 앞장을 서면서 몇몇 사람들이 수레를 끌며 마을을 들어서고 김진사댁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무너져 내린 대문을 치우던 혜숙은 수레를 끌며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장년사내의 일행을 보고는 몸을 가늘게 떨기 시작했다.

마음 속에서 밀려드는 슬픔과 어려운 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잊지않고 찾아주는 고마움에 눈시울을 적시며 그들의 앞으로 다가 섰고 

아무런 말을 못하면서도 손을 내미는 장년아낙의 손을 마주 잡고는 방울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에고…. 고생 많았지……. 진우엄마…….”

“흐흑……. 살아 있는 것만해도 …. 그나마 다행이에요…….” 

“그려…그려……. 다 알아…. 그 마음……. 이젠 아무 걱정 마…. 나라도 두 손 걷어 붙이고 도울테니 아무 걱정 마……….”

“흑흑…. 흐흑……. 고마워요…. 정말…고마워요……….”



어둠이 내려 앉으며 김진사댁 마당에 모닥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온전한 곳은 없었지만 그래도 무너져 내리지 않은 곳 중 한곳이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김진사댁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는 

힘없는 눈 빛으로 모닥불들을 응시한 채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읍내에서 장년사내와 연화가 가지고 온 식량과 갖가지 물건들 때문에 그나마 다소 부드러워진 밤을 보낼 수 있었고 

현우와 장년사내가 나누는 대화에 신경을 모으고는 마을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려……. 그러믄 자네 말대로 나무는 그렇다 치더라도……. 저 많은 밭은 어찌 할 텐가…??”

“다시 시작해야겠지요……. 이대로 다른 곳으로….갈 수는 없어요……. 시작 할거면…..초록동에서…다시 시작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너무 벅차서 힘이 들텐데…….”

“그 정도는 각오 해야죠……. 다른 곳으로 간다고 그래도 …. 힘든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장년사내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눈에는 마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희망이 없어 보였고 읍내에 들어와 자신과 같이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을 건내 보기는 했지만

현우의 마음은 바위처럼 굳어진 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당장 읍내에서라면 밥먹고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터였지만 마을 사람들의 장래를 생각했음인지 현우는 마을만을 고집하며 

고생을 자처하는 게 장년사내로서는 답답할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눈 속에 호기심인지 아니면 뜻 모를 기대감인지 알 수 없는 눈빛을 보이며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았고 

현우의 단호한 대답에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움과 한편으로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어리며 갈등의 빛도 보여지기 시작한다.

현우가 읍내에서 자리만 잡는다면 아마 마을 사람들을 모른 채 하지는 않을거란 생각과 그런 호의를 무시하고는 마을에 남겠다는 현우의 모습에서 

힘이 빠지는 절망을 느꼈고 한편으로는 현우가 있다면 고생은 되겠지만 다시 일어설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교차하며 

마을 사람들의 눈 속은 갈등이 보여져 갔다.


황폐화 된 마을을 다시 새롭게 재건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은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힘든 고역에 온 몸이 멍 투성이로 변할 수도 있을 테고 다시 이번 비처럼 예고 없는 재앙에 생사를 가름하지도 못할 수도 있었다.

살기에는 초록마을만큼 좋은 데는 없을거란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매해 이어지는 우환에 마을 사람들은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에서 현우는 안쓰러움과 더욱 단단해지는 책임감이 느껴졌고 

그들에게 조그만 희망이라도 생겨서 빨리 예전처럼 밝아진 모습을 보고싶다는 욕망도 생겼다.


아무도 말이 없는 가운데 읍내로 돌아가지 않은 채 마당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연화가 현우에게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많은 시선이 있어서인지 다소 주눅 든 모습이기는 했지만 연화는 현우의 앞에 다가선 채로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가고 

주위는 더욱 잦아들며 연화의 목소리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저어……. 아버님이 남기신 말씀이 있어서………….”

“말씀 이라뇨…??”

“이말 만큼은 꼭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마을에 죄를 지은 게 많아서……. 마을에 피해가 있다면 적극 돕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리고 현우씨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을을 떠날 분이 아니라며……. 인연에 연연하지 말고 이번 도움은 그냥 받아줬으면 하고 말씀을 하셨어요…….”


현우는 연화의 말을 들으며 눈을 크게 뜰 뿐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읍내 장가영감의 재력이라면 마을이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되는 건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지만 

현우는 왠지 부담스러움과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밀려듬을 느껴야 했다.

비록 호의적인 도움이라지만 과거의 씻지 못할 응어리가 남아 있는 상태였고 자신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의중도 알아봐야 하기에 

현우는 난처한 표정이 되고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연화의 의외의 말은 마을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고 다시 마을을 일으켜 세울만큼 지원만 해준다면 

힘들더라도 굳이 마을을 떠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가운데 이외의 호의에 마을 사람들은 현우를 바라보며 현우의 대답을 기다렸고 

답답함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풍천댁의 커다란 목소리가 마당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아유…. 그러믄야……. 우리로서야 고마운 일이지……. 어차피 예전부터 서로 도우며 살았던 게 우리들 아니였남…….

도와주면 고맙다고 받고……. 나중에 마을이 여유 있으면 우리도 고마움을 보답하면 되는 거지……. 다들…안그래…??”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다소의 기대감이 엿보이며 아낙들의 주위로 소란스러움이 번져갔다.

어쩌면 생사기로의 환경에 처한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나중에 있을지도 모르는 부담을 어떻게 무마하려는지 

현우는 답답하면서도 그들을 이해 할 수밖에 없음을 느껴야 했다.

자신도 머지않아 부모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거운 듯 고개를 끄떡이고는 


“예……. 염치없지만……. 어려울 때라 …도움을 받겠습니다…. 그리고 그 호의는 마을이 정상화되면 몇 배로 갚겠습니다….

다만 너무 많은 지원은 필요하지는 않고 다시 재기 할 때까지의 식량만 받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란 속에서도 현우는 굳은 듯 입을 다물어 갔고 연화는 현우의 의도를 알겠다는 듯 가는 한숨을 토해내고는 고개를 끄떡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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