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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사이트) 초록마을 - 64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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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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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현우를 발견한 혜숙이 현우를 부른다.

아마 인화의 일을 혜숙도 알고 있는 듯 했고 대장간의 장년아낙이 어떤 언질을 했으리라 짐작을 하기는 했지만 

어느 부분까지 알고 있는지를 모르는 현우는 괜히 죄인이 된 듯한 기분으로 혜숙에게 다가서기 시작했다.


“그래….인화씨에게 다녀 오는 거니..??”

“예……. 숙모…”

“이제는 니가 이 집안에서 어른 노릇을 해야 하는데 앞으로의 처신에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만……. 도대체 어쩔 생각인지 모르겠구나….”

“…………”


고개를 숙이는 현우의 귓가로 나직한 혜숙의 한숨이 들려왔다.

불현듯 현우의 뇌리로 혜숙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스쳐갔고 난감한 표정의 현우가 혜숙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화가 난 듯 하면서도 체념의 빛이 흐르며 혜숙은 현우를 마주보았고 나직한 물음을 던져왔다.


“니 얘가 맞는 거니…??”

“………………”

“…….무슨 생각으로……. 윤지는 어떡 할려고…….”

“우연한 상황이었어요…….그냥….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그만……”

“현우야……. 인화나 윤지의 앞날은 생각 안해봤니…?? 평생을 너의 그림자만을 보면서 한을 삭이며 살아 갈 거라고는 생각을 안해 봤냐구…….”


현우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생겨나고는 허리로 흘러 내렸다.

혜숙의 말대로 인화나 윤지가 힘든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뜩 불안한 마음을 만들기 시작했고 

자신의 속 좁은 생각과 행동이 후회스럽게 느껴졌다.

되돌릴 수는 없는 상황이었고 어떻게든 책임이 따르는 결과가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지금 윤지에게 이런 상황을 알릴 수도 없다고 생각을 하는 현우는 굳어진 얼굴을 들고는 혜숙을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제가 책임을 질 겁니다……. 윤지도…. 그리고……. 숙모님도요……”

“하지만…. 이번 일이…. 윤지에게라도…….”

“얘기 하지 말아 주세요……. 나중에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얘기 할테니까요….”


굳어진 혜숙의 얼굴엔 근심과 안타까움이 보여졌고 현우는 단호한 결심이라도 하는 듯 입술을 무는 모습으로 혜숙을 바라본다.

“욕심처럼 생각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 모두를 불행하지 않게 만들 자신이 있어요…. 

다시 이 마을을 모두가 부러워 할 만큼 잘 사는 마을로 만들어서 행복하게 만들 거예요……. 믿어 주세요……. 숙모….” 


단호한 현우의 모습이 강하게 느껴졌다.

혜숙은 고집과도 같은 현우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

몇 번 보았던 현우의 모습엔 집념과도 같은 고집과 끈기가 있었고 왠지 무조건 믿고 싶다는 생각에 

혜숙은 마른침을 삼키고는 빨려 들 것 같은 현우의 눈을 마냥 쳐다 볼 뿐이었다.

마당으로 어슴프레한 어둠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겨우내 고생한 보람이 있었는지 산비탈을 어우르는 커다란 과수원이 생겨났다.

봄이 멀지 않았는지 근래 들어 눈 내리는 날이 뜸해졌고 맑아진 날씨때문인지 마을 아낙들이 너른 산비탈을 둘러보고는 함박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이야……. 이게 전부 우리 마을 과수원이 되는 건가……??”

“그려…. 이 사람아……. 겨우내 우리가 만든 복덩이 밭일세…. 복덩이 밭…. ”

“어유…. 성님. 도대체가 믿기지가 않아요…. 어떻게 이렇게 큰 과수원을 만들었는지…. 설마…꿈은 아니겠지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성희 엄마의 눈속엔 눈물마저 글썽이고 있었고 너털 웃음을 터트리는 풍천댁의 눈 속에도 습기가 보여진다.

치마 단으로 눈물을 찍어내는 호성이엄마의 눈물을 시작으로 한바탕 울음바다가 되어지고는 환한 웃음으로 기쁨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맨 끝에 선채 현우는 조용한 웃음으로 아낙들을 바라 볼 뿐이었고 아낙들이 하나 둘 고개를 돌리며 현우를 바라보자 

어색한 듯한 미소로 변하고는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으로 바뀐다.


“총각…. 너무 고생했어…. 우린 그냥 시키는 일만했고 자주 나오지도 못했지만  혼자서 너무 고생이 많았어…….”


아낙들의 기쁨 속에는 알 수 없는 애환이 서려 있는 듯 했다.

배고픔과 가난 속에 찌든 오랜 세월이 한 순간에 한처럼 가슴속에 스며 들었고 이제야 가난의 굴레를 벗는 듯 그녀들의 눈 속엔 희망도 보여졌다.

웃는 얼굴들엔 그렁그렁한 눈물자욱이 보여 졌지만 누구 하나 지난날의 슬픔을 간직한 이는 없는 듯 화사한 얼굴이 되어갔다.

현우 역시 마음 속에서부터 번져가는 뿌듯한 기쁨이 못내 부담스러운지 멋적은 미소를 얼굴에 지어 올리고는 


“아직은 다 된게 아니에요…. 이제 봄부터는 더 바빠질 거예요…. 밭농사도 지어야 하고 과수원도 만들어야 하니깐요……. 

힘들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처럼 봄이면 먹을 거리가 없어서 배 곪는 일은 없어야 겠지요…….”


“그려…그려……. 이제는 애덜 배 곪음에 눈물 흘리며 신세타령은 하지 말아야지….”

“고마워요…. 현우총각 때문에 그나마 이렇게라도 웃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데요…….”

“아암…. 이젠 봄이 와도 아무런 걱정이 없어……. 힘들어도 아무 고통도 없을 거여….”


눈 앞에 보이는 휑한 산비탈의 모습에 감동을 하고 있지만 그녀들도 봄이면 삭신을 억누르는 고통스런 여정이 남아 있다는 걸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뼈가 저리는 힘듬도 이제는 이골이 났는지 눈동자 하나하나엔 알 수 없는 열정과 희망이 보여지는 듯 열기가 묻어져 나왔다.

희망을 보는 듯 그녀들의 눈 속으로 푸르른 물결이 일렁이며 초록의 물결이 보여지는 듯 했다.


늦은 밤

현우의 팔을 베고 누운 윤지는 알 수 없는 현기증을 느꼈다.

며칠 전부터 어지럼증에 몸이 무거워지고는 금새 피로감을 느꼈고 부엌일을 하면서도 쉬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이상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듯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도 어지러운 증상이 심한 듯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었다.

윤지와 정사를 치룬 현우는 피곤했던지 금새 잠에 골아 떨어졌고 윤지는 몸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으로 점점 정신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이 닫히고는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


잔잔한 들판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옷깃을 휘날리게 만들었다.

작은 동산 같은 곳에 홀로 선 윤지는 어딘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주위를 둘러 보았고 

주위로 보여지는 건 끝이 없이 펼쳐진 초원 같은 풀밭만이 보일 뿐이었다.

두려움도 생겼지만 낮설은 경치에 발을 구르며 안타까움만을 표시 했지만 주위에 인적은 없는 듯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누구 없어요…?? 도대체…. 여기가………”


하얗게 변한 윤지의 얼굴로 두려움이 떠 올랐지만 여전히 주위는 평온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파아란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아득한 평원이 아름다웠지만 홀로 너른 평원에 남아 있다는 게 윤지로서는 못내 불안했고 

전혀 와 본적이 없는 낮설음에 난처한 기색이 떠나질 않는다.


“엄마……. 여기서 뭐해…??”


갑자기 들려오는 사람의 소리에 윤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뒤를 돌아 보았고 

윤지의 뒤쪽에는 언제 다가왔는지 대여섯 살 정도의 어린 소년이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는 윤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눈망울과 발그레한 볼이 무척이나 귀엽다는 느낌을 주었고 왠지 낮설지 않은 인상에 윤지는 불현듯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 듯한 소년의 모습과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 호칭에 윤지는 의아한 모습이 되고는 소년을 바라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누구니……?? 날 아니…?? 난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에이…. 엄마도…. 씨이….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

“엄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구…??”

“할머니가 얘기를 안했구나……. 난 또 할머니가 미리 얘기를 한 줄 알았는데…. 가만 있어봐…. 이 근처에 할머니가 계실텐데…??”

“할머니라구…?? 여기엔 너하고 나 밖에 없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주위엔 인적이 없었고 사람이 살만한 마을도 보이지가 않는다.

윤지는 의아한 생각에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 소년을 바라보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의혹에 궁금증은 더해가기 시작했다.

소년의 입가로 미소가 떠오르며 윤지의 곁을 스치고는 한쪽을 가리켰다.


“거 봐요…. 할머니가 있다고 했잖아요……. 할머니……. 할머니…여기예요…….”


소년의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던 윤지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꿈을 꾼다는 생각이 들었고 설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듯 몸이 굳어져 간다.


“껄껄껄…. 놀랬느냐…?? 아가…….이리 온…….”


얼굴 가득 인자한 미소를 지어 올린 영주댁이 어느새 다가왔는지 윤지의 몇 발자국 앞에서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굳어져 버린 몸이 움직일 수가 없었고 가벼운 떨림을 일으키며 영주댁을 마주본 윤지는 떨리는 음성으로 영주댁을 맞이했다.


“영주댁 아주머니………. 어…. 어떻게….”

“허허…. 내 외손주의 안사람이 할미를 보고 아주머니라니……. 떽끼…. 껄껄껄…. 이제는 할미라고 부르려므나…….”


살아있을 때에도 늘 눈치를 보며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영주댁의 얼굴에 인자한 미소가 어려 있었고 

자신을 받아 들이고 손주며느리로 인정하고 있다는 생각에 윤지는 금새 얼굴을 붉히고는 고개를 숙이며 환희에 젖어가기 시작했다.


“영혼이 자유로우면 세상의 모든 이치를 볼 수가 있단다…. 

내세에서 이 할미는 우리 손주와 며느리가 항상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항상 니들 곁에 머무르고 있단다………. 아가….”


“예……. 하….할머니…….”

“이 눔이 누군지 알겠느냐……??”


윤주는 자신을 엄마라고 불렀었고 지금은 영주댁의 곁에서 손을 마주 잡은 채 자신에게 맑은 미소를 보여주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껄껄껄…… 내가 삼신할미께 간절히 부탁을 하여 ……. 우리 현우에게 이쁜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하여 이 눔을 세상에 태어나게 만들었단다…….

너의 품속에서 지금은 조용히 잠을 자고 있지만 멀지 않은 시간에 너희 곁으로 이 녀석이 다가 갈 게다…….”


“하….할머니……. 그…그럼……. 저..애가……??”

“껄껄껄……. 그래…. 우리 현우의 장자가 이 눔이다……. 튼실하고 영리한 게 지 애비를 닮아서 큰놈이 될 터이니 잘 기르려므나…….”


윤지는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몸 속에 태기가 있다는 사실도 금시초문이었고 자신도 못 느끼고 있는데 어떻게 영주댁이 알 수가 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만 껌벅이며 의아한 표정만을 떠 올릴 뿐이었다.


“껄껄껄….다 때가 되면 이 할미의 말을 알 수가 있을 게다……. 아무쪼록 이 눔을 훌륭하게 키워다오….

그리고 현우 녀석이 기가 세고 힘차서 혹 한눈을 팔 수도 있겠지만…. 니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넘어가 주길 바래야 겠구나…….”


이해 할 수 없는 말들이 너무 많았다.

윤지는 영주댁이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를 훤히 바라다 보는 듯한 얘기에 입이 얼어 붙었는지 한 마디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고 

여전히 인자한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는 영주댁의 모습에 시선을 모을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표정과 따뜻함이 배어 있는 웃음이 너무나 평화로워 보일 뿐이었다.


“한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너의 마음 속의 품은 지난날의 한을 벗어버렸으면 좋으련만….

그 한이 너의 생명을 갉아 먹지나 않을지 그게 걱정이구나…. 되도록 빨리 과거의 인연을 묻어 버리고 새로운 생을 살으려므나…….”


윤지는 자신의 마음 속까지 파고 들어왔었는지 항상 마음 속에 앙금처럼 남아있던 아들 영호와 

윤초시댁의 인연에 죄스러움과 슬픔을 영주댁에게 들켜버린 것처럼 섬뜩함을 느껴야 했다.

지금 현우와의 행복도 좋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처도 벗어버리지 못하는 게 과거의 윤초시댁 둘째 며느리라는 신분이었고 

남몰래 많은 한숨을 토해내며 몸부림 처 보았지만 떨어지지 않는 게 과거의 굴레였다.


“할머니……. 흐흑……..”

“울지 마라…. 아가…. 이 할미가 항상 지켜보고 있으마………. 

이제 가야 할 시간이구나……. 곧 봄이 오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게다….

아무쪼록 이 할미 말 명심하고 좋은 생각만 하거라………. 

이 눔…. 애미에게 인사 하거라…. 

또 장난만 치면 이 할미가 …애미에게 일러 치도곤을 치도록 할 테다…….”


“치이…. 할머니도……. 심심해서 그런건데……. 엄마…. 나중에 봐……. 하하아…….”


영주댁의 손을 떼어 놓으면 소년이 너른 평원을 달려 나가고 영주댁의 모습이 소년을 따라 멀어져 가기 시작한다.

윤지는 아쉬운 듯한 마음에 영주댁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보지만 여전히 굳어버린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할머니……. 할머니…. 안돼요…. 지금 가시면…. 할머니……흑… 흐흑…..”


가물거리며 자그맣게 보여지는 영주댁과 소년의 모습이 평원 저 편으로 사라질 즈음

윤지는 자신을 흔드는 느낌에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희미한 불빛이 망막을 파고 들며 흐릿한 영상으로 보여졌다.

점점이 짙어지는 윤곽에 현우의 모습이 잡혔고 자신을 애처롭게 바라보던 현우의 입이 열리며


“윤지씨……. 정신 차려요……. 윤지씨………”

“아……. 하….할…머니….”

“윤지씨 정신이 들어요……?? 날 알아 보겠어요…??”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대야를 든 혜숙의 모습이 보였고 윤지의 곁으로 다가앉은 혜숙이 

대야에 손을 담그고는 수건을 꺼내어 윤지의 이마로 얹어 놓는다.


“이 모양이 될 때까지 도대체 뭘 한 거니…?? “

“난…. 난…… 이런 줄 모르고….”


머슥한 표정의 현우가 혜숙으로 부터 한마디의 쓴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숙여가고 윤지의 곁으로 다가 앉는 혜숙이 나직히 윤지를 불렀다.


“괜찮니…?? 이젠…. 좀 나아 질거다…. 몸이 불덩이 같았는데 좀 가라 앉아서 다행이구나……. “ 

“으음……. 여긴……??”

“정신을 잃어서 한동안 걱정을 했단다…. 홀몸도 아니면서 너무 무리한 게 탈이 난 것 같구나…. 

좀 쉬면 괜찮아 질 게다….마음 편안히 가지고 푹 쉬려므나…….”


윤지는 단번에 자신의 상태를 파악한 듯한 혜숙을 보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고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혜숙은 

윤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윤지를 바라 보았다.

윤지의 눈가로 맑은 눈물이 맺히고는 귓가로 흘러 내렸고 혜숙에게 질타를 당하던 현우는 윤지를 바라보며 

기쁜듯한 미소를 지어내고는 금새 실실거리며 웃는다.

창문 틈으로 파아란 여명이 스며들고는 싱그러움을 느끼게 만들어 갔다.


마당으로 나서던 혜숙은 감나무로 두어 마리의 철새가 내려 앉는 걸 바라다 보았다.

제법 싱그러워진 아침바람이 이제는 추위를 떨궈 버린 듯 생각이 들었고 아지랑이 피어나는 봄이 다가왔다는 느낌이 드는지 마음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음습하고 그늘졌던 겨울의 장막을 걷어내는 듯 혜숙의 입가로 밝은 미소가 어려지고 파아란 하늘의 햇살이 눈부신지 

자그맣게 뜨여진 눈이 아련함을 느끼게 만든다.


“뭐 하세요……? 숙모…??” 

“으응……?? 윤지는 좀 어떠니…??”

“금방 잠 들었어요…….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엄마니까 알지……. 여자들은 알 수가 있단다…. 그나저나  이젠 너도 아빠가 되는구나…. 언제나 어린 조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하하하…. 숙모도 참…. 난 아직도 우리 숙모가 애쁘기만 한데요 뭘…….”

“예쁘긴……. 이제는 할머니가 되는데……. ”

“하하하……. 그래서 숙모가 삐지셨구나……. 그래도 저에겐 항상 이쁜 색시 같은데요. 뭘….”


혜숙에게 다가간 현우가 혜숙의 허리를 감아 안는다.


“어머…. 너…또…….”


빨개진 안색이 새색시처럼 싱그러움을 전해 주었다.

부끄러운 듯 혜숙은 현우의 손을 털어내며 부엌으로 들어가 버리고 얼굴 가득 짓굳은 미소를 지어 올린 현우는 마당 끝에 서고 깊은 숨을 들이 마신다.

이제는 무언가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타레처럼 엉켜 가던 복잡한 관계가 하나씩 풀리는지 현우의 마음은 점점 밝아지고 상쾌해지고 있었다.

아직은 할 일도 많았고 풀어야 할 일도 많았지만 봄이 다가 오면서 그 시작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울 정도로 풀리는 듯 싶었다.

담장위로 고개를 내민 햇살이 무척이나 따뜻하게 느껴지며 현우는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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