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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사이트) 초록마을 - 53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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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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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에 들어 섰을 때는 늦은 오후가 돼 있었다.

조금씩 내리던 빗줄기에 일행은 흠뻑 젖은 모습으로 추위를 느껴야 했고 다행히 비어있는 대장간에 짐을 내려놓고는 불을 피우며 추위를 달래기 시작했다.

마을을 들어선 현우는 어디론가 다녀온다며 바쁜 걸음으로 사라지더니 소식이 없었고 혜숙은 먼저 가겠다며 성화를 부리고 있었다.

마을까지는 멀지 않은 길이라 어떻게 든 갈 수 있겠지만 마을의 사정을 먼저 알아보려고 길을 나선 현우가 돌아와야만 가야 된다며 

장년사내와 아낙은 혜숙을 말리기 시작한다.


안타까움은 알겠지만 아무래도 혼자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은 생각에 장년아낙이 혜숙의 옆에 붙어 앉은 채 그녀를 달래는 모습이 보였다.

빗줄기가 다시 굵어지면서 일행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 올릴 때 성큼거리는 걸음으로 대장간으로 다가서는 현우의 모습이 보이고

옷 사이로 흐르는 빗물을 털어내지도 않은 채 혜숙의 앞에 선다.

굳어진 표정과 화라도 난 듯 상기된 모습이 좋지 않은 예감을 느끼게 했고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손으로 쓸어 낸 현우가 

혜숙을 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가셔야 겠어요…. 자세한 것은 가면서 말씀 드릴께요…….”


눈이 커지는 장년사내가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벌려가자 현우가 사내를 보며


“대장간은 얘기를 해 두었어요…. 여기서 짐을 푸시고…. 우리 영순이와 여기 인화씨를 당분간 부탁 드리겠습니다….

나중 마을사정이 나아지면 금방 와서 데려 갈 겁니다….”


고개를 끄떡이는 것으로 사내는 대답을 대신하고 혜숙이 자리를 일어나자 현우는 혜숙의 팔을 잡고는 빗속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현우는 터질듯한 분노에 파란 눈빛만을 보이며 말없이 걸음만 옮기기 시작한다.

장노인을 만나러 다녀왔지만 문전박대만을 당한 채 마을에 돌림병이 돌아서 마을을 들어가는 사람도 없거니와 도와 줄 여력도 없다며 

차가운 냉대만을 받아야 했다.


오랜 시간을 쌓아왔던 연분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그라져 버렸고 마을에 갇힌 듯 남아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안쓰럽고 측은하게 생각되었다.

그래도 이제까지는 초록마을에서 혜택을 보며 살아오던 사람들이 병으로 고통 받는 것을 알면서도 나몰라라 하는 행동에 현우는 더 화가 났고 

조급해지는 마음도 더 깊어지기 시작한다.


현우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없는 사이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아무런 도움도 없이 몇 명의 목숨이 사라졌다는 게 너무도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돌아 가셨다는 말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자신이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때 몸져 누운 상태로 후회의 눈물을 보였던 

할아버지의 죽음에 현우는 자신이 서울을 향한 부질없는 선택이 못내 후회스러웠다.


마을에 남아 있었으면 그렇게 허망한 죽음을 맞지는 않았으리라 생각을 했지만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되어 버렸고 

빨리 마을로 돌아가서 수습을 해야만 했다.

혼자서 힘든 일을 감내하고 있을 할머니도 걱정이 되었다.

빨라진 현우의 걸음을 쫒으며 혜숙은 숨이 목끝에 걸렸지만 아무런 내색을 않고 뒤만을 따르며 읍내를 벗어나고는 

초록동으로 향하는 질퍽거리는 황토길을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을을 들어서는 고개에 오른 현우가 뒤쳐지는 혜숙을 바라보았다. 힘든 모습이 역력했지만 지금으로선 아무런 배려를 할 수가 없었다.

바까지 내려서인지 혜숙은 점점 무거워지는 발길을 느껴야 했고 고개를 오르고는 숨이 막힌 듯 가슴에 손을 얹고는 가쁜 숨을 몰아 쉬기 시작했다. 


“다 왔어요…. 조그만 힘 내세요….”


고개를 끄떡이는 혜숙의 그늘진 눈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쩌면 자신의 무리한 선택에 평생의 한을 남기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현우는 자꾸 미안스러움에 혜숙을 오랫동안 바라 볼 수가 없었다.

비가 내려서인지 인적이 끊어진 마을이 황량하게 보였다.

습막으로 조금씩 흐려진 초가 지붕들이 보였지만 폐가인 양 인기적이 없는 게 예전의 모습이 아닌 것처럼 어색해 보이기도 했다.


바쁘게 걸어 내린 걸음이 마을을 들어섰다.

여전히 조용한 모습이었고 할머니가 있는 집을 향하며 누구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졌지만 누구 하나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성수엄마네 집이 보였고 칠석이 할아버지의 집도 스쳐 지났다.

멀리 언덕의 안성댁의 집도 보였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볼 수가 없었다.

윤초시의 집 앞을 지나며 굳게 닫힌 대문이 보였지만 다가설 엄두는 나지 않았고 주위를 둘러보며 걸어간 익숙한 대문과 

잎이 떨어진 감나무를 보고는 대문 앞에 걸음을 멈췄다.


오랜 방황 끝에 돌아온 집이 빗물에 젖은 채 자신을 반긴다.

일찍 돌아 왔거나 아니면 가지 말았으면 좋았을 그리운 집이 였지만 못내 뜨거워지는 감정에 현우의 얼굴로 습기가 어리기 시작한다.

제발 그 모습 그대로 였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지만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떻게 변해 있을지 불안한 마음이 자꾸 주저하는 마음을 만들었고 

옆에 다가 선 혜숙이 기다림 없이 대문을 밀고는 안으로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삐걱거리며 문이 열렸다.

할머니인 영주댁이 항상 앉아 있어야 자리엔 텅 빈 마루만이 보였고 떨리는 걸음으로 마루까지 다가서자 혜숙의 울음 섞인 말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진……진우야………. 진우야…….”


마루에 올라서는 혜숙이 보였고 현우는 마당에 우두커니 선 채 안방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진우야…. 진우야…….”


드르륵…. 안 방문이 열린다.

하얀 버선 발이 보이고 하얀 치맛단이 보이며 한 여인이 안방 문을 열고는 나서는 게 보였다.

마당에 선 현우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안방에서 마루로 나서는 여인.

윤지였다.

현우는 왜 윤지가 여기 있는지 의문이 생겼지만 당황스러운 마음도 생겼다.


“오셨어요……??”

“자네는……??”

“예…. 할머님이 아프셔서 제가….”

“우리…. 우리 진우는…??”

“예…. 작은방에서 좀 전에 잠이 들었어요…….”


윤지의 말끝에 혜숙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린다.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선 혜숙이 작은방으로 향하고 현우는 여전히 굳어 있는 모습으로 마당에 선 채 윤지를 바라 볼 뿐이었다.

여전히 하얀 얼굴과 빛나는 눈동자가 아름답게 보였고 전에 비해 수척해진 모습이 그 동안 고생이 많았음을 보여 주는 듯 했다.

윤지가 눈 끝에 방울거리는 눈물을 담아 내고는 아련한 눈 빛으로 현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돌아 온다는 약속에 긴 시간을 현우 생각에 울고 웃기를 얼마나 했는지 잠을 들기 전까지 항상 생각하고 잠이 깨면 먼저 생각 나는 게 현우의 얼굴이었다.


상사병처럼 항상 현우만을 생각하며 기다려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자신의 앞에 선 현우를 일별하고는 오랜 기다림을 한줄기 눈물로 풀어내고 있었다.

약속을 지킨 현우가 너무도 고마웠다.

결국은 자신이 있는 마을로 돌아와 주었고 이제는 받침목처럼 자신을 지탱해 줄 거라는 생각에 윤지는 기쁜 얼굴로 천천히 미소를 지어 낸다.


현우는 윤지를 보며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말로도 보상을 다 못할 듯 고개만을 끄떡이며 윤지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시 할 뿐이었고 혜숙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천천히 마루로 올라서고는 안방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얗게 센 머리가 보여지고 등을 돌린 채 잠에 빠진 건지 할머니인 영주댁의 모습이 보였다.


천천히 다가 앉은 현우가 조심스럽게 영주댁의 어깨를 어루만지고는 따뜻하게 느껴지는 온기를 느껴본다.

가늘게 숨을 쉬는 게 보였고 입을 조금 벌린 채 잠들은 모습도 보였다.


“조금 전에 잠드셨어요…. 아까까지 계속 손자분을 찾으셨는데….”


영주댁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현우의 눈가로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긴 시간을 자신을 기다리며 애를 태웠을 할머니를 생각하자 가슴 깊은 곳에서 뭉클한 감정이 몰려 들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해준 게 없었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자신을 걱정하고 기다리며 그리워 했다고 생각을 하자 

끊어 오르는 복받침에 굵은 눈물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영주댁의 손을 잡는다. 

지금이라도 얼굴에 미소를 지으고 이눔하고 웃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현우가 없는 시간동안 꽤 수척한 모습으로 변해 있는 것도 마음을 아프게 했다.


시간이 흐르며 노쇠하는 것은 막을 수 없겠지만 현재의 모습은 너무나도 자신을 염려했던 걱정 때문에 

생겼으리란 생각을 하자 마음이 미어 터지는 것처럼 쓰려왔다.

방울 방울 떨어져 내리는 눈물에 현우의 손에 잡혀진 영주댁의 손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든 현우가 영주댁의 모습을 보았고 천천히 눈을 뜨던 영주댁도 현우의 얼굴에 시선을 모으며 몸을 돌려 눕는다.


“이제…야…. 왔구나…. 내..새끼…….”


훵하니 들어간 눈 주위에 물기가 스며 들었다.

나무껍질 같은 얼굴위로 눈물이 번져 오르며 영주댁은 표정이 펴지지 않는지 어색한 웃음을 지어내기 시작했다.

현우를 잡는 손길이 미약했지만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 단단한 고리처럼 느껴졌고 현우에게 모아진 시선은 

손을 놓으면 사라져버리지나 않을지 걱정스러운 표정마저 담겨져 있는 듯 보였다.


“예…. 할머니…. 현우가 왔어요….”

“그래…. 어디 상한 데는 없고…??”

“예…….”

“그려…. 그려…. 이제는 죽어도 원이 없겄다…….”


힘없는 목소리에 현우에 대한 걱정만이 담긴 듯 애뜻한 할머니의 사랑을 느끼며 현우는 눈물만을 토해 낼 뿐이었다.

힘겨운 듯 몇 번의 입술만을 주억거리며 영주댁과 현우의 상봉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그치며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푸르렀던 초록동의 어둠은 쓸쓸한 기운마저 느끼게 하며 점점 깊어지기 시작했다.


현우의 귀향에 언제 소식을 들었는지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김진사댁으로 모여 들었다.

여전히 풍체 좋은 풍천댁을 선두로 성수엄마가 보였고 안동댁도 보인다.

몇 사람 모이지는 않았지만 그늘진 그들에게서 현우는 아픈 기억과 슬픔을 읽을 수 있었고 순박하게 살아왔던 사람들의 한을 읽을 수 있었다.


“아…효……. 일찍 오지 그랬수…. 마을이 예전 같지 않고 점점 어려워 진다오….”


한숨 섞인 푸념이 흘러 나오고 현우가 없었을 때의 아픈 기억들을 하나씩 떠 올리며 그간의 사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가을걷이를 하고 풍년의 기쁨에 겨워 흥겨움에 절로 즐거웠지만 외지 상인들이 다녀가고 나서부터 한 두명씩 시름시름 앓고는 

마을에 줄 초상이 이어졌다고 했다.

읍내에서는 마을에 돌림병이 돌았다며 읍내 출입을 금지 시켰고 약 한 첩 제대로 못써 보고는 십 수명이 세상을 달리 해야만 했다.

매일 같이 초상을 치르는 집들이 속출하면서 마을 분위기는 험해 질 때로 험해지고 참다 못한 몇 집은 짐을 꾸리고는 

살아온 터전을 등지고 외지로 나가 버린 상태였다.


한 마디 한마디가 뼈에 사무친 듯 한이 서려 있었고 몇 사람은 얘기 내내 눈물로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정정했던 칠석네 할아버지가 손주가 부른다며 생을 달리했고 남편 때문에 온갖 수모를 다 겪으면서도 그 순박함을 잃지 않았던 팽돌네도 

어린자식을 두고는 세상을 떠나버렸다고 했다.

김노인도 며칠 전에 매장을 한 터였고 몇 몇 어린자식을 잃은 부모들 중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현우는 한 서린 마을 사람들의 넋두리에 깊은 탄식만을 흘려 댈 뿐이었다.

자신에게 수줍움을 보여주던 팽돌네가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가끔씩 자신에게 마을의 일을 의논하던 칠석노인도 생각이 났다.

이제 무엇부터 시작을 해야 할 지 평지풍파를 겪은 마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다.

앉은 내내 눈물만 보이던 안동댁이 통곡이 이어졌다.

어린 아들을 잃은 충격에 꽤 오랜 시간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시간을 보내야 했고 마을을 떠나려고 짐을 꾸리다 현우의 귀향을 듣고는 찾아 온 것이었다.


“이제…. 이제 우리는 어찌 살아야 되나요…. 소중한 사람을 다 떠나보내고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합니까…?? 하늘이 원망스러워요…. 흑…. 흐으윽….”


눈물이 전염 되 듯 이어졌다.

가장을 잃은 슬픔이 마르기도 전에 마을에 큰 재앙이 닥치고는 치유 할 수 없는 상처를 다시 안겨 주었다.

예전의 그 모습으로 돌아 갈 수는 없는 듯 보였고 어떻게 든 폐가로 남는 집들이 없어지도록 마을 사람들을 달래야 필요도 느꼈다.

아직 마을 안에 남아 있을 병마도 치료해야 했기에 현우는 막막해지는 감정에 허탈스러운 마음만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 마디 말도 없는 현우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서 위안이라도 달라는 듯 시선이 모아진다.

더 이상 할 말도 없다는 듯 마을 사람들은 현우의 얼굴에 시선을 모으고는 현명한 대답이 나오기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현우는 마을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람이었기에 마을 사람들의 기대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후…우…. 떠나지 들 마세요…. 지금은 비록 안 좋은 일에 힘들겠지만 마을 밖의 세상은 여기보다 더 비참해요…….”

“방법이라도 있나요…??”

“아직 뚜렷한 대책은 없어요…. 우선 의사를 모셔다가 검진을 받아야 겠지요…. 그런 다음 하나씩 풀어갈 수 밖에 뚜렷한 방법은 없어요…….”


말없이 현우의 얘기를 들어가며 침묵을 이어갔다.


“더 이상 여러분들에게 한이 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죽더라도 마을에서 죽어야지 타지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저도 마을로 돌아 왔구요....”


현우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지고는 조금씩 얼굴을 풀어내며 고개를 끄떡인다.

현우는 죽더라도 마을에서 죽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현우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은 하나 둘 고개를 끄떡이며 나직한 한숨을 흘려내기 시작한다.


순박해 보이기만 한 사람들이 전쟁이 끝난 혼란기의 도시에서 어떻게 들 살아갈 지는 눈에 보이는 듯 느껴졌고 

진정어린 현우의 얘기에 수긍이 가는지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에 잠기면서 현우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흐려졌던 눈빛들이 다소 밝아져 보이며 생기들이 묻어 나는 듯 보여지고 차가운 바람소리가 창문을 두드리며 밤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일어난 현우는 영주댁의 방에서 웃음을 띄워올린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다 방을 나선다.

할머니인 영주댁은 이젠 거동이 불편하여 밖을 나서기는 무리였고 윤지의 도움으로 그나마 이제까지는 견디어 왔지만 

현우가 돌아옴으로서 조금씩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윤지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아들인 영호를 서울에 있는 고모에게로 보내야 했고 큰 동서는 시름시름 앓다 얼마 전에 생을 달리하고 말았다.


서울 산다는 고모는 핒줄이 끊겨서는 안된다며 아들인 영호를 데려가고 냉정하기는 했지만 

젊은 때 재가를 하라는 얘기를 듣고는 이곳에서 한 동안을 지내고 있었다. 

갈 데가 없어서 안 간게 아니였다.

윤지의 마음은 누구보다 현우가 이해할 수 있었고 한 집에 머무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방을 나서서 마루를 내려가는 현우를 부엌을 나서던 윤지가 바라본다.

밝아진 얼굴에 생기가 넘쳐 나는 듯했다.


“어디 가세요…??”


조심스러운 말투로 이른 아침 밖으로 나서려는 현우를 붙잡는다.


“예…. 좀 멀리 다녀 와야 겠습니다….”


의아한 눈으로 현우를 바라보며 시선을 모아온다.

멀리 간다는 얘기가 윤지의 귀 끝에 스며들며 불안함이 생겼다.


“아…. 다른 게 아니구요…. 의사를 모셔 와야 겠어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빨리 다녀 오리다….”


미소를 지은 현우를 보며 안심이 되었지만 윤지는 아직 현우의 생각을 모르는 듯 보였다.

마당을 가로 질러 대문을 나설 때까지 윤지의 눈길은 계속 되었고 마른 감나무가지를 어우르는 바람이 옷깃을 스치자 

윤지는 손에 쥔 그릇에서 물을 버리고는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 버린다.

어제처럼 비가 내리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어두워진 하늘이 비라도 내릴 듯 보여지며 점점 밝아오는 여명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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