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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사이트) 초록마을 - 44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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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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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면서도 그칠줄을 모른 채 많은 양의 빗물을 쏟아내고는 도시를 적셔대고 있었다.

현우는 내일이면 서울을 떠난다는 생각에 몇 가지의 물건을 구입할 요량으로 집을 벗어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점점 굵어지는 비에 선뜻 나서지는 못했다. 


“비가 개이면 가는게 낫지 않겠니…??”


비가 온 탓도 있지만 떠날 것을 준비 하느라 집에 남아있던 혜숙이 걱정스러운 듯 얘기를 한다.


“글쎄요…. 돌아 볼 곳이 많아서 시간이 될는지 모르겠네요…??”


방문 앞에 선채로 현우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걱정스러운 듯 얘기를 해보지만 금새 비가 그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먼저 인화에게 필요한 의복과 필수품을 준비해야 되었고 마을에서 필요한 몇 가지의 물건도 구입해야 했기 때문에 현우의 마음은 조급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점심즈음

굵었던 빗줄기가 잦아들었고 현우는 바쁜 걸음으로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아침에 집을 나서던 상주댁에게도 몇 가지의 물건을 부탁하기는 했지만 현우가 직접 골라야 할 물건들도 꽤 되었기에 

현우는 빠른 걸음으로 행인들 속으로 묻혀가기 시작했다..


현우는 초록동으로 돌아가면 아마 오랜 시간 동안 도시로 나오기는 힘이 들것으로 생각했다.

현우에게 주어진 일들이 많은 탓도 있었지만 현우가 도시로 나가는 것을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이 반대 할 것이라는 생각에 

현우는 가장 먼저 자신이 좋아하던 서적들을 생각하고는 예전에 자신들이 많이 드나들던 책방이 그대로 있어 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보았다.


꽤 긴 시간을 걸어 현우가 도착한 곳은 학교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제법 커다란 건물들이 줄지어 벽을 맞대어 있는 고풍스런 거리였다.

다행히도 전쟁통에 별다른 피해는 없었는 듯 외관이 깨끗하게 보여졌고

사람들이 번잡하게 오가는 곳에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들을 보며 현우는 밝은 듯 미소를 지어 올리고는 대로변을 달리기 시작한다.


열려진 문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밀어 넣으며 현우는 퀴퀴하게 풍겨오는 정겨운 냄새에 반가운 마음이 몰려들고 

가지런한 책장과 손때 묻은 진열장의 모습에 밝은 미소가 입가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그리운 고향이라도 온 듯 편안하고 푸근해지는 마음이 생기며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는 한 동안을 책방 안의 정겨움에 몸을 맡겨 보았다.

당장에라도 친구들이 몰려들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벗겨진 머리에 돋보기 안경을 쓴 주인아저씨의 농담어린 장난말이 들려 올 것만 같은 느낌이 전해진다.


“뭘 찾소…. 젊은이…??….”


어느새 다가왔는지 돋보기 안경의 초로의 노인이 현우의 뒤에 선 채 말을 건네왔다.

즐거운 상상을 단숨에 허물어 버리며 현우가 천천히 등을 돌리고는 말을 건네 온 노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현우의 입가엔 아직도 밝은 미소가 어린 채 


“아저씨…. 살아 계셨군요….?”



현우의 반문에 무슨 일이냐는 듯 돋보기를 눈 위로 다져 잡고는 찬찬히 현우를 바라보던 노인이 점점 눈이 커지면서


“아니…. 자네…. 자네…. 살아 있었나…??”

“하하하…. 그럼요….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는데요…. 하하하….”

“원…. 이거야…. 꿈인지, 내가 귀신을 본 건지 분간을 못 하겠네…. 이거…허허…”


납작한 모자를 쓴 것 이외에는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에 현우의 눈 속으로 반가움과 기쁨이 교차했다.

그래도 기억속에 자리했던 한 부분이었지만 예전 그대로 남아 있는 게 반가웠고 자신에게 즐거움과 자상함으로 

좋은 인상을 남겼던 책방 주인의 모습도 그대로인 게 현우에게 커다란 기쁨이었다.


“그래…그래……. 자네와 같이 자원하여 전쟁터로 갔던 많은 학생들이 혼백으로 돌아왔는데 자네라도 무사히 돌아와서 반가우이….”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지요….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측은한 듯 쳐다보는 노인의 눈 속에 아픔이 묻어 나온다.

매일같이 드나들던 자식 같은 학생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몇 번의 전세가 바뀌면서 책이라도 온건히 보관 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진작 책을 봐야 할 젊은 학생들은 전쟁터의 고혼으로 돌아오지를 못했다는 게 뼈져린 아픔으로 몰려 들었다. 


어느 때 보다도 반가움과 기쁨이 교차했다.

노인이 현우의 팔을 잡고는 책방의 한 켠으로 다가가더니 자리를 권하고는 오랜만의 회포를 풀 듯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댄다.

책방 구석구석 학구열에 불타던 많은 학생들에 의해 수많은 추억을 간직하게 만들었던 만큼 학교를 찾는 학생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소였고 

현우도 같이 교정을 거닐던 학우들의 소식에 의자를 당겨 앉고는 하소연 하 듯 얘기를 풀어가는 노인에게 귀를 기울여 갔다.

다정스런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부산하게 길가를 오가는 행인들의 모습이 유리창너머로 보여지며 메마른 나뭇잎이 바람을 따라 떨어져 내렸다.


노란색 보퉁이를 가슴에 안은 현우가 즐거운 마음으로 책방을 나서고 문 밖에서 손을 흔드는 책방주인의 배웅을 받으며 대로를 벗어나고는 

바쁜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손때 묻은 헌책 몇 권과 자신이 구하고자 했던 별도의 책을 보퉁이 가득 꾸려 담은 현우는 마음 한쪽이 푸근해지며 

오랜 친구라도 만난 듯 흥겨운 마음이 들었다.

얼마 만에 책을 잡아 보는지 새삼 설레이는 감정 속에 어렴풋이 학교를 입학하여 신기한 세상을 둘러 보 듯 교정을 쏘 다니던 기억에 

옅은 미소마저 어려지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며 행복한 생각에 잠겼다.

꽤 걸었는지 모퉁이를 돌아선 현우의 시선으로 사람의 물결이 보여졌고 자리에 선 채 한동안을 생각에 잠기던 현우가 

사람의 물결을 헤치고는 걸음을 옮겨갔다.


없는 게 있을까 할 정도로 시장안은 갖가지의 물건으로 넘쳐 났다.

전쟁통에 물자부족에 허덕인다는 말이 무색 할 정도로 시장 안은 풍부한 물건으로 넘쳐나고 있었고 

도시에서 제일 커다란 시장이란 게 실감이 나며 현우는 조금씩 주위를 둘러보며 시장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시끌벅적한 소음과 사람들의 장벽에 조금은 불편한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호기심어린 마음에 현우는 동그란 눈으로 갖가지의 신기한 물건들과 풍성한 먹거리, 예쁜 의복등을 둘러보며 정신없이 시장 안을 헤메고 있었고 천정에서부터 색색의 천을 걸어놓은 포목상의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문득 할머니인 영주댁의 얼굴이 그려진다.

항상 누런색 치마 저고리만을 입은 채 쌀알 하나도 아까워 하시던 모습과 저고리가 헤어져도 바느질로 기워 입으시던 모습에 

현우는 형형색색의 예쁜 옷감에 눈길을 뗄 수 가 없었다. 


마을에 사는 모든 아낙들은 검소하게 생활한다.

누구 하나 멋들어진 옷을 걸쳐입고 마을을 활보하는 사람은 없었고 헤어진 옷을 기워입고 다니는 게 평소의 생활 모습 이었다.

이곳 도시에서처럼 그때 그때에 따라 옷을 바꿔 입는 호사는 좀처럼 누릴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현우는 가게 앞으로 다가서고는 

옷감들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풍채 있게 생긴 아낙이 현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어떤 것을 찾으시는지…??”

“아…. 예……. 저… 옷감 좀 둘러보고 고를께요….”

“예…그렇게 하세요…. 여기는 여러 종류가 있으니까 마음껏 구경하시고 말씀만 해 주세요….”


고개를 끄떡인 현우는 아낙의 말처럼 상점 안에 차곡 차곡 쌓여진 옷감들을 바라보며 한 동안을 바라보다 몇 가지를 손으로 가리키고는 

가격과 재질을 물어 보았고 인상 좋아보이는 아낙은 시종 미소를 잃지 않은 채 하나하나를 가리키고는 세세하게 설명하여 주었다.

얼마의 시간동안 현우는 몇 필의 옷감을 흥정 끝에 가격을 치루고서 안아 들 수 있었고 흡족한지 미소를 띄어 올리며 가게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막 포목점을 나서던 현우의 귓가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에이…. 재수 없어…. 너…뭐야…. 빨리 안 비켜…??”


소란스러운 가운데서도 유독히 감정이 깃든 음성에 현우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시선을 모아가고

열 걸음 정도의 거리에 산발한 머리의 여자가 쓰러져 있는 게 보여지며 그 옆을 지키는 나이 어린 소녀의 모습이 눈에 띄였다.

그들의 앞에선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고리눈을 뜬 채로 정육점으로 보이는 가게의 앞을 막아선 채 쓰러진 여인을 내려다 보며 연신 고함을 질러대고

지나가는 행인들은 무심한 눈으로 흘겨 보고는 아무일도 아닌 것 처럼 자리를 비켜 지나간다.


“이….거지 새끼들…. 왜 하필 여기 와서 지랄이야….앙……”


사내의 목소리 끝에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내리칠 기세가 느껴지며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아마도 배고픈 모녀의 구걸에 화가 난 듯 사내는 한 동안을 고함을 질러대다 손을 들어 자리를 떠나라고 고함을 지르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쓰러진 여인이 힘겨운 듯 바닥을 짚으며 일어서려는 동작을 해보지만 떨리는 팔목만이 보여지며 소녀의 구슬픈 울음소리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엄마……엉…엉…..엄..마아….”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는 이가 없었고 도와 줄려고 다가서는 사람도 없어 보인다.

물기 젖은 바닥에 금새 흙범벅이 된 여인의 옷이 지저분해지고 산발된 머리 사이엔 붉은색의 핏방울이 점점이 흘러내리는 게 현우의 눈으로 보여지며

자신도 모르게 두 모녀에게 다가서는 발길이 느껴졌다.


다가선 현우의 발 밑에서 아직도 힘겨운 몸짓으로 겨우 상체만을 일으켜 세운 여인이 멍한 듯 풀린 시선으로 정육점을 바라보며 

굳어진 자세로 가쁜 숨만을 몰아 쉬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보여진 그녀의 얼굴은 초췌하다 못해 앙상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피골이 상접해 있었고 

감정 없는 눈과 말라 터진 입술사이로 붉은 피만이 보여졌다.


꽤 오랫동안을 씻지 않은 듯 시커멓게 보여지는 피부와 옷 사이의 땟국물이 그들의 상태를 말해주는 듯 하고 

옆에서 힘없는 울음을 터트리는 소녀 역시 그녀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현우는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이 솟구쳤다.

힘 없는 사람들의 생활도 그렇거니와 아무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행인들의 모습에도 냉정하리만큼 서늘한 분노가 느껴졌다.

무릎을 구부리고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아마도 둥그렇게 생겼을 얼굴 같은데 앙상한 나뭇가지 처럼 뼈만이 보여지는 생각이 들며


“괜찮으세요…??”


멍한 듯 풀려있는 여인의 눈이 현우에게 돌려지고 감정 없는 눈길로 현우만을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꺼내지는 않는다.

터진 입술사이로 흐르는 피가 턱을 타고 목으로 흘러 내리면서도 아무런 아픔을 못 느끼는지 여인은 굳어진 자세 그대로 현우만을 응시할 뿐이었다.


“저……이것으로라도…….”


현우의 뒤에서 어느새 다가왔는지 포목점의 아낙이 하얀 천을 내밀었다.

아낙을 바라본 현우가 고개를 숙이고는 아낙의 내민 천을 받아 들고는 우두커니 앉아있는 여인의 입으로 가만히 천을 대고는 

피가 흐르지 않도록 상처를 감싼다.


“휴..우……안타까운 일이예요…. 저런 사람이 한 둘도 아니고…. 굶어죽는 사람도 많은데….”


탄식처럼 한마디만을 남긴 포목점 아낙이 자신의 가게로 발길을 돌려 돌아가고 현우는 아무것도 못들은 것처럼 

여인의 입술에 천을 대고 굳어진 듯 멈추어 있었다.


자신의 입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주는 낮선 사내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던 여인의 눈에 반짝이는 빛이 느껴지고는 

초점이 모아지며 현우의 얼굴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아마 여인도 현우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을 것 같았다.


도시에서는 자신들이 다가가면 혐오스런 눈빛과 욕설만을 들을 수 있었는데 자신을 치료하는 사내의 행동이 이상하게도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졌고 

오랜만에 사람다운 대접을 받는다는 것에 눈 속으로 습기가 어리기 시작한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이상한 눈초리로 현우와 지저분한 여인을 바라보며 자리를 피해가고 현우의 부축을 받으며 여인이 일어서는 게 보여지고

시장 안의 소란스러움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여전히 붐벼 댈 뿐이었다.


담벼락에 기대앉은 태호네는 자꾸 눈물만 났다.

이제 하나 남은 여식마저 피골이 상접한 채 점점 몸이 말라가고 자신도 더 이상의 구걸을 할 수 없음에 마음속이 시커멓게 타는 것처럼 고통스럽기만 했다.

아들 둘을 잃고 남편마저 소식이 없는 상태에서 더 이상의 살고 픈 의욕도 없었다.

애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별별 짓을 다해봤지만 이제는 죽고싶은 마음밖에는 남은 게 없었다. 


전쟁 전에 장사를 떠난 남편이 소식이 없자 태호네는 남아있는 식구들을 위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지만 그것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고 

작년에 작은 아들이 병에 걸려 죽으면서 구걸을 시작했지만 결국 큰아이 마저 배고픔에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살아가기 위해 수많은 남자들의 노리개까지 되면서도 발버둥 쳐보았지만 생각나는 건 의욕없는 삶 뿐이었다.

지친 듯 자신의 딸이 담벼락에 기댄 채 잠들어 있는게 보이며 여인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 내렸다.

메말라서 더 이상의 눈물은 없을 것 같았지만 맑은 눈물이 망막을 가리며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현우는 시장 안에서 몇 가지의 먹거리를 사고는 두 모녀가 있는 구석진 곳으로 다가갔다.

힘없이 보이는 두 사람에게서 측은함과 애틋한 동정심이 생겼지만 현우도 더 이상의 대접은 할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잠든 소녀와 여인에게 다가선 현우가 누런 종이에 담겨진 떡과 대나무통에 담긴 물을 건네고는


“…이것 좀 드세요….”


힘없이 들려지는 여인의 얼굴엔 타버린 재처럼 허망한 기운이 느껴지고 현우의 얼굴로 시선을 모은 채 한동안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흐윽……”


약자의 서러움이 현우의 가슴속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며 또 한번의 분노가 열기처럼 온 몸으로 번져가고 

현우는 답답한 마음만을 간직한 채 그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손이 현우가 내민 떡봉지를 소중한 보물처럼 가슴으로 안아간다.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몇 개의 떡쪼가리가 두 모녀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고 누구에게도 빼앗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에 

여인은 힘없는 고개를 조아리며 연신 고마움을 표시했다.

잠들어 있던 소녀가 잠을 깨며 여인의 가슴에 보듬고 있는 종이뭉치를 보고는 밝은 듯 눈이 커지고 두 모녀는 현우가 있음에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떡을 먹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는 현우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며 아픈 마음을 삭이려는 듯 붉어지는 기운이 감돌아간다.


현우는 집에 돌아와서도 낮에 보았던 두 모녀의 영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신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도시로 내 팽개쳐진 뒤 수많은 역경을 헤쳐나가려 했지만 

너무도 냉담한 현실과 의지할 데 없는 그들에게 느껴지는 연민어린 아픔이 현우를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잘 견뎌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닥쳐올 겨울과 연약한 몸으로 도시에서 얼마나 더 살아 갈 수 있을지 못내 걱정이 되기도 하였고 

더 도와주지 못한 게 후회스런 감정을 남기며 한숨을 토해내게 만들고 있었다.

긴 시간을 뒤척이며 잠을 청하는 현우의 귀로 스산한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며 힘겨운 듯 눈꺼플이 조금씩 덮여지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현우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잠을 깨고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멀리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햇살아래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인들이 보여지며


“현우야…. 어서 준비하렴…. 길이 머니까 일찍 출발 해야 할 것 같구나…….”


어느새 짐을 꾸렸는지 보퉁이를 가슴에 안은 혜숙이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며 출발을 재촉했다.


“아…. 예…. 준비를 벌써 하신거예요…??”

“그래…. 아무래도 일찍 출발을 해야 될 것 같아서…. 어서 준비하렴….”


방으로 들어선 현우가 짐을 정리하다 동작을 멈추고는 문뜩 어제의 일을 생각했다.

두 모녀의 일이 걱정스럽게 현우의 뇌리를 스치며 지나가고 몸을 일으킨 현우가 방을 나서고는 마당으로 내려섰다.

의아한 듯 쳐다보는 혜숙에게 


“저…. 어디 다녀 올 때가 있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올 꺼예요….”

“무슨……?? 뭐 잊어 버린 거라도…. 얘…. 현우야…. 현우야….”


혜숙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현우는 대문을 빠져나가고는 뛰는 걸음으로 내리막 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뿌옇게 밝아지는 시장 안에 벌써부터 부지런한 상인들이 자리를 메우고는 손님을 맞이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어제만큼 붐비는 상황은 아니 였기에 현우는 빠른 걸음으로 시장안을 돌아보며 누군가를 찾듯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 시작하고 

한 동안을 헤메고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는지 가쁜 듯 숨을 내쉬며 우두커니 자리에 서 있었다. 

허탈해지는 마음과 걱정스런 마음이 교차하며 막 걸음을 옮기려고 발을 떼는 순간


“어머…. 어제 그 총각 이시네…??”

“아…….”


어제 자신이 들렀던 포목점의 아낙이었다.

왠일 이냐는 듯 의아한 표정속에 현우를 응시하던 아낙이


“참……그 사람들…. 어제 도와주었던…. 그 사람들요…??”

“예에……??.

“글쎄…. 밤에 그 아이 애미가……그만……”

“……무슨……??”


현우의 눈이 커지며 아낙의 입을 응시하고는 다음 말을 기다리고

일상을 준비하는 시장 안의 소란스러움이 그들의 대화를 삼켜가며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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