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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사이트) 초록마을 - 48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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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이 되면서도 현우와 일행은 마을을 벗어날 수 없었다.

영순의 병세가 더 깊어 지는 듯 의식을 차리지 못한 채 계속 고열에 신음마저 내뱉으며 걱정을 안겨다 주었다.

현우는 아침부터 걱정스런 마음으로 마당을 서성이며 고심을 해보았지만 뚜렷한 방법이 없는지 근심만 깊어져 감을 느꼈다.

혜숙과 인화가 번갈아가며 영순을 간호하고 장년사내의 가족은 어쩔 줄을 모른 채 집안을 배회 할 뿐이었다.

혜숙의 애기로는 홍역을 치루는 것 같이 얘기를 했지만 왠지 현우는 불안스런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린 영순을 데리고 도시를 빠져 나왔지만 며칠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외의 병환으로 영순이 의식을 찾지 못함에 

현우는 심신이 무거워 지는 절망에 휩싸였고 한낮동안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그렇게 시간만을 보내고 있었다.


“에헴…. 저…. 총각…. 어쩌실 생각이신가…??”


장년사내의 물음으로 현우가 어두웠던 얼굴을 펴면서 사내를 마주보고 선다.

현우는 자신들 때문에 길을 나서지 못하는 사내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고 장년의 사내도 매정스럽게 자신들만은 떠날 수 없다며 

호의적인 마음으로 걱정을 해주고 있었다.


“글쎄요…. 답답하네요…아직 어린 것 한테 너무나 모진 일만 번갈아 일어나는 게 …. 휴우..”

“아까…마을 사람을 만났네만…. 여기서 한 삽십리만 가면 용한 의원이 있다고 하던데…혹..”

“삼십리요…??”

“그래…. 마을에도 환자가 있는 모양이야…. 근데…갈만한 사람이 아직…….”


현우는 사내의 대답에 머리 속으로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영순이 나을 수만 있다면 백리라도 움직일 수 있었고 다행히 삼십리면 먼 거리가 아닌 것 처럼 생각되며 장년의 사내에게 시선을 모으고는


“자세한 일을 누구에게 물어보면 될까요…??”


현우가 장년사내의 얘기를 듣고는 마을의 중심쯤 되는 제법 커보이는 집으로 들어섰다.

삐그덕 거리며 대문이 열렸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마당으로 들어서고는


“저… 실례하겠습니다……”


마당의 우물을 중심으로 안채와 바깥채, 행랑으로 보이는 건물이 보였고  안방으로 보이는 문이 열리며 하얀 백발의 노인이 한 동안을 현우를 쳐다보다


“무슨일이요…??”

“예…. 어제부터 마을에 머물고 있는 길손들입니다…. 일행중에 환자가 있어서…여기가면 한의원을 찾아갈 수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만…….”


조심스런 눈으로 현우를 쳐다보던 노인이 마루 끝으로 걸어 오고는


“얘기는 들었소만…. 거리가 멀고 길도 험한데…. 젋은 양반이 가실 생각이시오…??”

“예…. 경중이 무거운지라…. 지금이라도 떠날 생각입니다만….”


나이는 꽤 들어 보였으나 현우를 바라보는 노인의 눈빛이 맑으면서도 무거워 보였다.


“우리도 나이 어린 손자녀석이 앓고 있어서 큰 걱정인데…. 혹…. 혼자서라도 다녀 올 수 있겠소…?? 답례는 후희 하리다….”

“보답이라니요…. 저희도 낮선 곳이다 보니 걱정이 많은데  어딘지만 가리켜 주신다면 제가 다녀 오지요….”


고개를 끄떡이며 노인이 한 동안을 현우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가만히 바라다 보았다.

현우는 낮선 길손들이니 만큼 다소의 의심은 있으리라 생각을 하였고 노인이 손으로 턱을 어름 쓸며 고개를 끄떡이고는


“내가 얼마의 돈을 줄 테니 한번 부탁을 해 봅시다……”

“돈이라니요…?? 모셔오는데 돈이 필요합니까….?”

“아직 모르셨소…?? 그 양반을 모셔 올려면 얼마의 돈을 쥐어줘야만 하오. 그나마 그것도 마음에 안들면 안 올지도 몰라서 걱정이긴 하지만….”


침울스런 노인의 얘기에 현우는 답답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산너머 산처럼 삼십리만 가면 의원을 모셔 올 수 있을거라 생각을 했는데 노인의 말처럼 돈의 많고 적음에 안 올수도 있다는 말에 걱정도 되었다.

인근의 큰 도시에도 여기까지 와줄 의사는 없었고 그나마 의원이라도 모셔 올 수 있다는 희망에 한가닥 기대를 하고 왔는데 

노인의 말처럼 의원을 못 데리고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걱정에 마음이 무거워 지기 시작했다.


“가 보지요…. 일단 가서 어떻게든지 모셔 오지요…. 데리고 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겠지만 저렇게 열이 팔팔 끓고있는데 

찬바람이라도 맞으면 오히려 더 해가 될 것 같은데 가서 어떻게라도 모셔 오지요……”


노인의 얼굴에 뜻 모를 의미의 무거움이 느껴진다.

날카로운 듯 하면서도 맑은 모습이 현우의 눈 속으로 들어왔다.


“좋소…. 부디 의원만 모시고 오시오…. 내가 기둥뿌리라도 뽑아서 어린것들을 치료하게 하겠소….”


언제부터 있었는지 노인의 뒤로 하얀 무명옷을 걸친 아낙이 보였다.

둥그스런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고 오랜 시간을 힘들게 보냈는지 수척한 모습이 눈에 띄였다.

현우를 바라보며 노인의 말뜻을 알았는지 호기심과 기대어린 표정이 읽혀지며

 

“아버님…….”

“………..애미구나…… 걱정마라…. 저 젊은이가 다녀 온다고 하는구나……”

“예….”


현우는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자신이 직접 가서 의원을 데리고 와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지며 노인과 아낙을 바라보고는


“돈은 필요 없습니다…. 저에게도 돈은 있습니다…. 갔다 와서 얘기를 하고 어디로 가야 할 지만 가리켜 주십시오….”

“에헴…. 그리 합시다…. 그리고 젊은이가 데리고 있는 애도 여기로 옮기시도록 합시다. 아무래도 그 빈집보다는 여기가 조금은 나을 거외다….”


해가 벌써 중천에 떠 있어서 현우의 마음은 점점 조바심에 타는 듯했고 노인은 조심스러운 말과 방안에서 쓴 듯 한 장의 종이를 내밀며 

현우에게 다정스럽게 말을 하고 현우는 고개를 끄떡이며 노인의 말을 경청하고는 대문을 나서기 시작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대잎의 흐느낌이 맑게 느껴지며 빠른 걸음의 현우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늦은 밤.

대문 앞을 서성이는 노인이 모습이 보이고 가끔씩 집안을 드나드는 마을 사람들이 모습도 보였다.

생면부지의 젊은이에게 어려운 부탁을 한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오금이 저리는 듯 방안에 있을 수가 없었는지 

차갑게 느껴지는 바람에도 아랑곳 없이 노인의 모습이 꽤 오랜 시간 보여졌다.


조금 전에 다녀간 마을 친지의 얘기가 자꾸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옆 마을에서도 얼마 전 똑 같은 병으로 어린 소년이 상을 치뤘다며 왠만 해서는 의원을 모실 수 없었다는 얘기에 노인은 자꾸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청년이 데리고 온 어린소녀도 뼈만 앙상한 게 마음이 아플 정도로 안되 보이긴 했지만 자신의 하나뿐인 손자 생각에  초조해지는 마음이 점점 불안하게 

바뀌어 가고  싸늘한 바람이 뼛속으로 스미는 느낌에 등을 돌리고는 대문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달빛아래 마을을 들어서는 희미한 인영의 모습이 보여졌다.


일렁이는 모습으로 보아 한명은 아닌 듯 점점 다가오는 모습에 노인의 눈동자가 커지기 시작했다.

호흡이 빨라지고 두근거리는 마음도 자신의 귓가로 북의 울림처럼 느껴졌다.

가느다랗게 눈을 모으고 다가서는 젊은 총각과 옆에선 채 어슬렁 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의 사내도 보였다.

보퉁이를 가슴에 꼭 껴안은 현우가 대문 앞의 노인에게 다가가고는 


“어르신…. 모셔 왔습니다…. 의원님을 모셔 왔습니다….”

“허…. 이…이게 원…. 험……고생 많았소…. 자..자…. 얼른 들어 갑시다….”


더듬 거리 듯 말을 뱉어낸 노인이 현우의 뒤를 따르는 장년의 사내에게 반가운 표정을 짓고는 손으로 대문을 가르키며 서두르 듯 독려를 하고


“하이고…. 좀…쉽시다…. 후아…후아…… 무신 걸음이 이리 빠르오…. 숨이 차서 …원…”

“의원님…. 워낙…급해서… 나중에 질책은 따로 받겠습니다…….”


현우를 바라보는 의원의 눈 속에는 질책의 표정 따위는 없었다.

거칠어진 호흡을 진정시킨 의원이 노인의 뒤를 따라 대문으로 들어서고 현우도 의원의 뒤를 따르고는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깊어진 밤이었지만 의원은 한 마디 말도 않은 채 진맥을 하고 손수 약을 다리고는 두 그릇의 약재만을 남겨주고는 마루로 나가 버린다.

노인이 의원을 따라 마루로 나서자 집주인 아낙과 혜숙은 약을 들고는 소년과 영순에게 다가가고는 조심스럽게 약을 먹이기 시작하고 

한 동안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현우는 다소 안심이 되는 듯 한 숨을 뱉어 낸다.

마루에서 두런두런 얘기가 들려오며 현우는 마루로 나서고는 그들의 대화를 들어가고 깊어지는 밤만큼이나 달빛 아래의 풍경도 고요하게 잦아들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졌다.

멀리서 울어대는 소쩍새의 울음소리와 대잎의 흐느낌만이 정적을 깨우고 있었고 

희미하게 밝혀진 호롱불의 모습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창문으로 비춰지기 시작했다.

현우와 노인이 모습이 보여진다.


“뭐라고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 지 모르겠소이다…. 덕분에 4대 독자인 손주녀석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소이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너무 개념치 마십시오….”

“계실 동안 불편한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말씀을 해주시구료…. 내 집처럼 편안하게 생각해 주시오…. 허허허….”

“고맙습니다…. 신세 좀 지겠습니다….” 

“허허허…. 그건 그렇고 …. 뭐라고 했길래 저 의원이 이곳까지 왕림을 했는지…. 아직도 꿈만 갔소이다..그려….”

“별 일 없었습니다….그냥 졸졸 따라 다니며 좀 귀찮게 했지요…. 뭐….”

“허허허…. 하여튼 자세한 얘기는 내일 하기로 하고 어서 가서 좀 쉬십시오…. 누추하지만 작은방에 자리를 마련해 뒀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어르신도 편히 쉬십시오….”


주름으로 덮여있는 노안에 흡족한 듯한 표정을 떠 올리며 맑은 미소로 노인이 현우를 배웅하고는 방으로 들어가고

현우는 마루를 지나 작은방으로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의원의 말처럼 당분간은 영순에게 조용한 휴식이 필요했고 오랜 동안의 허기와 해로운 환경으로 인해 영순의 몸이 많이 허약한 상태였고 

때 맞춰 찾아 든 병마는 영순에게 큰 시련을 안겨다 주고 있었다.


너무 성급한 판단때문이라고 생각을 하며 현우가 희미하게 불이 켜진 안방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리 쉬었고 때마침 문을 열고 나서는 주인댁 아낙이 현우를 발견하고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인다.

몇 일 동안의 고생스러움이 힘들지도 않은 지 오늘도 자식의 곁을 지키다 자리를 뜨고는 마루에서 현우를 본 것이었다. 


“좀 어떻습니까…??”

“예…. 덕분에…. 조금은 진정 된 듯 합니다….”

“몇 일만 치료하면 나아진다고 했으니 별 탈은 없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뭐라고 말을 드려야 할지…….”

“아닙니다…. 저희도 도움을 받는 입장인데요…뭐…….”


수줍은 듯 숙여지는 아낙의 모습이 깨끗하게 느껴졌다.

달빛을 받는 턱과 목 언저리의 곡선이 부드럽게 투영되며 고고한 모습으로 현우의 시선 속에 비춰졌다.

현우를 시선을 잠시 바라보던 아낙이 마루를 내려서고는 우물가로 다가가고 현우는 아낙의 뒤를 쫒으며 시선을 옮겨갔다.


차분한 듯 대야에 물을 깃고 나뭇가지에 얹어 둔 수선을 챙기고는 아낙이 마루를 올라 안방으로 들어가고 

현우는 아낙의 일련의 행동들을 바라보며 감탄스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 현우가 아홉살 쯤인가 지독한 열병으로 사경을 헤매던 때가 있었다.

한 겨울 눈이 무던히도 많이 왔던 걸로 기억이 나고 자신의 곁을 지키며 눈물을 보이던 모습의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자신의 앞을 지나던 아낙처럼 현우의 어머니도 몇 날 몇 일을 저렇게 보냈으리라고 생각이 들자 마음 속으로 따뜻한 정감이 흐름을 느낀다. 

조용한 마을만큼이나 사방을 둘러싼 마을의 전경도 아늑하게 느껴졌다.


사흘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열병에 시달리던 영순과 주인댁 손자도 의식을 회복하고는 많이 나아진 듯 보여지고  활기를 되 찾은 집안엔 웃음꽃이 핀 듯 밝아진 얼굴들이 보여진다.

마당의 구석에서 짚단을 깔고 앉은 현우가 새끼줄을 꼬면서 소일을 하고 있었고 안방을 드나들던 노인은 귀에 입을 건 채로 마을로 나들이를 나갔다.

인화와 혜숙은 부엌을 드나 들며 무언가를 만드는지 부지럼을 떨어대면서 현우의 입가에도 밝은 미소가 피어 오르고는 

등 뒤에 말아놓은 새끼줄을 한데 묶고는 처마 밑에 걸쳐 두었다.

밝아진 모습의 주인댁 아낙이 커다란 대나무 광주리를 끼고 부엌을 나서면서 현우에게 다가왔다.


“놔 두세요…. 나중에 아버님이 하실 일인데….”

“하하하…. 그냥… 심심해서 하는 일입니다….”


때마침 부엌을 나온 혜숙이 현우와 아낙의 사이로 걸어오며


“그래…. 현우가 같이 다녀 오면 되겠구나…….”

“예에…?? 어딜요……??”

“밭에 가서 채소 좀 뽑아오렴…. 오늘은 오랜만에 맛난 음식을 만들어 봐야 겠구나….”


웃음 띤 얼굴들이 무엇을 준비하는지 현우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손을 털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무슨 잔치라도 벌일 건가요…??”

“호호호…. 잔치라도 해야지요……”


주인댁 아낙의 눈 속으로 즐거운 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움츠러 들었던 집안의 분위기에 아낙은 박채일 망정 정성껏 음식을 준비할 생각을 하였고 

혜숙도 아낙의 마음을 느낀 듯 솜씨를 자랑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짐꾼이 되라는 혜숙의 얘기에 미소를 머금은 현우가 고개를 크게 끄떡이고는 앞장서서 걸어나가는 아낙을 따르기 시작했다.

만찬의 기대를 안고 현우도 즐거운 마음으로 아낙의 옆으로 다가가고는 광주리를 빼았다시피 하고는 너른 들녘으로 향해 걸어 나간다.


다가올 겨울을 준비한 듯 속이 꽉 찬 배추들이 너른 밭을 채우고 있었다.

정성 들여 키운 탓인지 보기만해도 벌써 배가 부른 듯 풍성해졌고 현우는 초록동에 애써 가꾼 배추밭을 생각하며 

자신을 기다릴 사람들을 머리 속으로 떠 올려 보았다.


“속이 꽉 찬게 벌써 배가 부른 것 같네요….”

“호호호….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요…. 뭐…”


허리를 숙인 채 가슴으로 배추 몇 포기를 안아 올린 아낙이 싱그러운 웃음을 짓고는 현우가 내미는 광주리로 배추를 담아가고

금새 차버리는 광주리를 옆구리에 걸친 현우는 아낙을 따르며 밭을 돌아 다녔다.

광주리 하나 가득 배추와 무우가 담겨 지고는 다소 무거운 듯 현우가 힘을 쓰며 밭을 벗어나고는 아낙을 기다려가고 

흙 묻은 손을 털며 아낙이 현우에게 다가 왔다.


수확을 하는 농부의 모습을 경험한 현우로서는 어느 아낙 못지않게 주인댁 아낙의 모습도 정겨워 보이고 또 푸근하게 생각되었다.

다가올 겨울이면 김장김치를 담그며 다시 한번 웃음을 지으리라고 생각을 하며 마냥 아낙을 바라다 보았다.

웃음짓는 현우의 모습에 아낙은 수줍은 듯 미소를 띄운 채 


“왜요…?? 뭐 다른거라도…??”

“아뇨…. 그냥 풍성한 밭을 보니까 즐거운 생각이 드네요…. 저도 고향 돌아가면 이 처럼 너른 밭의 배추를 수확해야 하는데 보기만해도 즐겁네요….”


아낙은 해맑게 웃는 현우의 얼굴을 보면서 마음속이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하고 소꿉놀이라도 하는 듯 설레이는 감정이 생겨난다.

마을의 남정네들과는 다른 알수 없는 느낌이 들었고 순진하고 천진스런 모습도 가끔씩 현우를 훔쳐보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밭을 벗어나고 소롯길을 따라 걸으며 산 비탈로 이어지는 아트막한 동산에 푸르른 대나무들이 춤을 추는 일렁거리며 손짓을 하는 것 처럼 보여졌다.

온 마을을 둘러싼 대나무의 풍경에 감탄스런 표정으로 


“대나무의 풍경이 너무도 좋네요…. 시원스럽기도 하고 마음도 편안해지는 느낌이예요….”


그윽한 미소 속에 아낙이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떡이며


“예…. 언제나 푸르러서 좋기도 하지만 겨울이면 마을에 수입도 남겨주는 고마운 것들이지요….”

“수입요…??”


현우의 의아한 질문에 아낙은 미소를 띄우고는 현우가 들고있는 광주리를 응시하며


“들고 계시는 광주리나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면 꽤. 짭짤한 수입원이 되거든요….”

“아하…. 그렇군요…….”

“말이 나온 김에 몇 개 잘라서 간단한 거라도 만들어 드릴까요…??”

“지금요…??”

“예…. 자…가요….”


아낙이 현우를 바라보고는 길가 옆으로 난 소롯길을 따라 대나무 밭으로 걸어가기 시작하고 

현우는 멀어지는 아낙을 바라보다 빠른 걸음으로 아낙을 쫒아 간다.

길게 뻗은 대나무의 가지들이 바람결을 따라 몸을 흔들며 잔잔한 음성을 퍼트려 가고

몇 마리의 새들이 나무 주위를 배회하며 하늘을 맴도는 모습이 자그맣게 보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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