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야설사이트) 초록마을 - 50 부

작성자 정보

  • 밍키넷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짙어가는 가을을 애도하 듯 비가 내렸다.

풍성하기도 했지만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을 덮듯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당으로 내리 붓는 빗소리에 집안의 모든 식구가 마루에 모여 앉고는 침묵 속에 마냥 내리는 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혜숙의 무릎을 타고 앉은 영순이 보여졌고 다소 힘없어 보이는 개구쟁이 같은 소년의 모습도 보였다.

노인이 말아진 담배를 입가로 물면서 불을 켜대고 

정적을 깨 버린 듯 모두의 시선이 노인에게 모아지고는 뿜어져 나가는 연기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 비가 그치면 날씨가 추워지겠구나……. 후우…….”

“할아버지…. 겨울이 시작되는 거예요…??”

“허허허…. 그래…. 아직은 아니지만 곧 겨울이 오겠지…. 우리 민이가 좋아하는 겨울이….”


밝아지는 소년의 얼굴을 흐뭇한 표정으로 노인이 응시하며 편안한 웃음을 지어 올리고


“삼춘…. 우리는 고향에 언제 가요…??”


활기를 찾은 영순도 현우에게 살가운 목소리로 말을 건네온다.

현우의 호칭이 삼촌으로 바뀌면서 혜숙과 현우의 입가로 미소가 떠오르고


“비가 그치면 우리 영순이랑 삼촌이랑 손 잡고 떠날거야……. 빨리 가보고 싶은가 보구나…??”

“으응…. 아줌마가 고향가면 예쁜 옷 지어 준댔어….”


영순의 몸짓을 바라보던 혜숙의 입가로 미소가 짙어지며 흥이 난 표정으로 현우를 바라보았고 혜숙의 품속으로 몸을 묻어 가며 영순이 친근함을 과시했다.


“허허허…. 아가야…. 할아버지는 우리 아가가 가지말고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는데 안가면 안되겠니…??”


동그레진 눈으로 영순이 노인을 바라보고는


“으응..?? 안돼요…. 나는 마을로 가야 되요…. 이제부터는 고향 이랬어요….”


모두의 얼굴로 웃음이 번져가고 영순의 애교어린 말투에 현우도 기쁜 듯한 즐거움이 묻어난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와는 상관이 없는 듯 마루 위의 표정들이 밝고 활기차게 피어 오르며 낮 동안의 한가함을 즐겨 간다.


비가 그친 대나무숲 주위로 어둠이 몰려 들었다.

저녁을 준비하는 아낙들의 손길이 준비해질 즈음.

대문을 열고 현우와 동행하던 사내가 조심스런 발길로 집안으로 들어서고 마루에 앉아 있던 현우가 몸을 일으키고는 사내를 맞아갔다.

여전히 허리춤에 꽂아 넣은 곰방대를 어루만지고는 마루의 끝자락으로 엉덩이를 걸치며 현우를 바라보았다.


“허험…. 애는 좀 어떻수…??”

“예…. 덕분에 많이 나아 졌습니다….”


곰방대를 뽑아 올린 사내가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듯 빈 담뱃대를 연신 빨아 들이며 초조한 듯 보여졌다.

현우는 사내의 곁으로 다가 앉으며 의중을 떠보는 듯


“무슨 일이 있습니까…??”


힐끗 쳐다보는 모습에서 섭섭한 것도 같으면서도 답답해 하는 듯한 비아냥 거림이 들려온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요…?? 난…그래도 댁들을 생각하며 기다렸지만 도통 움직일 기미가 안보이니…. 원….”


영순이 병치레로 벌써 몇 일이란 시간이 흘러 버렸고 아침에 바닥나는 식량을 보았던 사내는 

조급해지는 마음을 짜증스런 대화로 표현해 버리고는 후회스런 마음에 마당만을 바라 보았다.


“예…. 그렇잖아도 숙모님이랑 얘기를 했는데 내일은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시간을 많이 지체한 상태라 내일은 가야겠지요….”


자신의 비아냥 거림을 못내 후회하던 사내가 다소 미안스러운 표정이 되고는


“내 말은… 그러니까……. 저..뭐냐……”

“압니다…. 곧..겨울도 다가 올텐데 답답한 마음 이해가 갑니다….”

“험…허험…요즘 잠도 안 옵디다…. 원체 각박해진 세상이라 누구 하나 의지 할 때도 없다보니 막막해 지는 게 .하여튼 내일은 출발을 합시다….”

“예…. 준비를 하겠습니다….”


현우의 얼굴을 바라보던 사내가 등을 돌리고 마당으로 내려서다 다시 현우에게로 시선을 맞춰왔다.


“혹시…. 그 쪽에 가면 자그마한 대장간이라도 할 만한 데가 있겠소…??”


엉뚱한 데가 있기는 하지만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현우는 미소를 짓고는


“아마…. 읍내 변두리에 예전 대장간이 비어 있을 겁니다…. 제가 한번 알아 보지요….”

“허… 허험…. 아이구… 그렇게 까지야…. 뭐…….”


감추려는 표정이 조금씩 드러났지만 현우는 여전히 미소만을 지은 채 사내를 응시하고

드러나는 감정에 쑥스러운 듯 사내가 급하게 발을 돌리고는 대문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그럼…내일 아침..봅시다….”


들어올 때 보다는 다소 가벼워진 듯 사내의 걸음이 빨라지고는 대문밖으로 사라지고 부엌에서 나오던 혜숙이 현우에게 다가오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간다.


“저 아저씨네가 더 급한 것 같구나….”

“예…. 아마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마침 읍내에 대장간이 빈 데가 있어서 얘기를 해 줬어요….”


고개를 끄떡이며 혜숙은 현우의 표정을 읽으려는 듯 가만히 바라보기만을 하고 현우는 혜숙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 미소만을 띄워가자 

홍조어린 혜숙이 고개를 숙이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몇 일간의 마을 생활에 혜숙은 초록동의 그리움이 더 깊어진 것 같이 보였다.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초록동의 제 집처럼 안락한 마음은 안 들었던 같이 생각되고

현우 역시 점점 그리워지는 얼굴들에 마음이 설레여지며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여….가시오…. 우리 손주녀석 깨면 또 한바탕 울음바다가 되겠소….”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이 은혜 나중에라도 들리게 되면 꼭 갚겠습니다….”

“허허허…. 은혜라니요…. 내가 죽어 흙이 되어도 못다한 은혜를 갚아야 되는데…. 은혜 라니요….”


아침이 시작되는 대문가에 노인과 주인아낙이 쓸쓸한 표정이 보이며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 보인다.

등짐대신 언제 구했는지 지게를 지고 있는 현우와 여전히 봇짐을 가슴에 안은 혜숙과 인화가 보여졌다.

마을 어귀에 소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앉은 장년사내의 일행이 보여지며 현우를 기다리는 행동 끝에 현우가 등을 돌리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였지만 꽤나 아쉬운 이별을 했다.

노인의 눈꼬리가 처저 보였고 주인집 아낙도 아쉬움이 컸는지 대문을 의지한 채 멍한 듯 현우의 일행을 바라다 보며 낮은 한숨만을 토해낼 뿐이었다.

점점 멀어지는 현우가 마을에서 가물가물하게 보여지며 아낙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고는 집안으로 들어가고 

현우가 사라지고도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던 노인은 마냥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한 낮동안의 여정에도 누구 하나 입을 여는 경우가 없었다.

가끔 영순만이 따분함을 이기지 못해 짜증을 내기는 했지만 일행의 침묵에 곧 적응을 하고는 달구지의 가장자리를 차지하고는 잠잠해 졌다.

대나무 마을을 떠나온 지도 하루가 지났지만 아직 갈 길은 먼 듯 보이고 긴 시간을 걸었기 때문이지 모두의 어깨들이 가라앉은 듯 힘없이 보였다.


겨울을 목전에 둔 탓인지 싸늘한 날씨와 황량한 들판엔 누렇게 바랜 풀들이 산과 들을 뒤덮은 채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현우는 하루정도의 거리에 읍내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산골짝의 곡선이 점점 다가오며 처음 초록동을 들어설 때의 느낌처럼 잔잔한 긴장감이 온몸을 감싸고 흐르기 시작하고 

가끔씩 조바심어린 마음이 심장박동을 빠르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보여지는 산등성이를 넘으면 작은 소읍이 나오리라 예상을 하고는 일행을 돌아보고는 쉬었으면 하는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휴……….우…”


장년의 아낙이 힘든 듯 긴 소리의 탄식을 터트리며 길가에 자리를 잡고는 앉아가고

혜숙과 인화도 머뭇거리는 행동 속에 아낙의 곁으로 다가가고는 자리를 잡는다.

못마땅한 듯한 눈길로 아낙들을 바라보던 장년의 사내가 현우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이제 얼마나 남은 것 같소…??”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등성이만 넘으면 작은 마을이 나 올 겁니다…. 거기서 하루 밤 쉬고서 내일이면 원하는 곳에 갈 수가 있습니다….”


장년사내의 얼굴에 밝은 듯한 미소가 어린다.

긴 여정이 다행히도 무사히 끝날 수 있겠다는 안도감과 새로운 터전이 생긴다는 설레임도 느끼는 것같이 보였다. 


“허허허…. 오랜 시간 떠돌다 이제야…. 맘을 놓을 수 있겠구료…….”


습관처럼 곰방대를 빨아들이며 현우가 바라보는 산등성이를 응시하고는 


“자…자….출발들 합시다…. 거의 다 왔다고 하니…. 마을에 가서 쉬십시다….”


급해지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귀찮다는 듯 움직임이 없는 소의 잔등을 치며 장년사내가 앞장을 서고 못마땅한 듯한 표정의 아낙들이 달구지를 따르며 작은 소롯길을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일행의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현우가 걸음을 옮기며 멀리 등성이너머 푸르른 마을을 떠 올려보는 듯 눈길이 모호하게 변하게 시작한다.

아마도 보여지는 들판처럼 초록동의 모습도 별반 다를 게 없이 누렇게 시드는 모습을 상상할 수 가 있을 것 같았다.


하천을 낀 작은 소읍이 일행의 눈앞에 있었다.

나지막한 초가 지붕들 위로 밥짓는 연기들이 피어 오르며 한가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하루의 피로함에 일행은 배고픔마저 느끼며 현우와 장년사내의 옆으로 모여 들기 시작한다.


“쉴 만한 곳을 찾아야 겠네요…….”

“그래…마침 식량도 이제는 한 번 먹을 정도 밖에 안 남았구나…….”


혜숙이 현우의 옆에 서더니 마을 안쪽을 촘촘히 살피면서 가느다란 탄식을 내 뱉는다.

아마도 일정의 마지막이라는 여운을 남기는 듯 보였다.

내일 하루를 꼬박 걸으면 늦은 오후엔 마을을 들어 설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성질 급한 장년사내가 벌써 달구지를 몰고서 앞장을 서고는 몇몇 행인을 붙잡고는 쉴 곳을 찾는지 말을 거는 모습이 보였다.

작지만은 아니한 마을인 만큼 쉴 만한 곳은 얼마든지 있을 것 같았다.


깊은 산골 사이에서는 제법 큰 마을에 속했고 인근 산이나 들에 거주하는 화전민들도 이곳을 자주 찾으며 상거래도 꽤 있는 것 처럼 보여진다.

웃음을 띤 장년사내가 현우를 보며 손짓을 했다.

아마도 쉴 곳을 찾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쪽 길로 가면 국밥집이 있다는 구만…. 어서 갑시다…….”

“예…. 앞 장 서시지요….”

“그럽시다…. 어여…. 따라 들 오시오…….”


가벼운 듯한 걸음으로 소를 보채며 사내가 앞장을 서며 한동안의 행인들을 뒤로하고는 하천변에 길다란 울타리를 두른 목조주택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엉성한 듯 보이기는 했지만 비바람을 막고 오가는 길손들이 들르기에는 괜찮은 듯 보여지고

울타리 옆에 메어 논 달구지의 옆으로 지게를 벗어낸 현우가 길 숨을 달래고는 마지막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어여…. 앉읍시다…….”


통나무를 잘라 만든 탁자들이 몇 보이고 단순하지만 소박한 모습의 내부도 제법 깨끗한 모습이었다.


“어세 오세요…….”


주방으로 보이는 곳에서 치장을 걷어내며 치마로 손을 훔치며 여인이 나오고

얼굴 가득 웃음을 지어 올리고는 일행을 바라보다 현우에게 시선을 멈추고는 바위처럼 굳어지기 시작했다.


“어머……….”


혜숙의 입에서 놀라운 듯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듯 다소 검은 듯한 얼굴색이 눈에 띄였고 커진 눈엔 놀라움이 극에 달한 듯 하얀 눈자위가 돋아져 보였다.


“혀……. 현우…총…각…??”


멍한 표정의 현우가 말문이 막힌 듯 여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는 눈만을 깜박이며 무슨 일이냐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재섭네다.

마을을 떠났던 아낙이 하루걸이의 산골 소읍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움은 현우나 혜숙에게 큰 충격이 아니였지만 재섭네는 현우에게 커다란 마음의 짐을 벗지 못한 상태라 꽤나 얼이 빠진 모습으로 보여진다.

혜숙이 난처한 듯 고개를 돌리고는 현우를 바라 보았고 현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안색을 정리하고는 제섭네를 보고는 고개를 끄떡인다.

일행은 자리에 앉다 말고 무슨 일이냐 듯 추이를 지켜 보았고 장승처럼 굳어있던 표정이 조금씩 풀리며 제섭네의 눈에 습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여기 계셨군요…??”


고개를 숙이며 제섭네가 끄떡였다.


“…할만은 한가요……?? "

“그저…. 밥이나 안 굶으면 만족 해야지요…….”


현우의 눈으로 안쓰러운 감정이 느껴지며 가느다란 한숨이 흘러나오고 안을 둘러보며 살펴보는 행동을 한다.

혼자서 어린 애들을 추스리며 낮선 곳에서의 생활이 쉽지만은 않을거란 생각을 하며 천천히 식탁으로 다가갔다.

측은한 듯 제섭네를 바라보던 혜숙과 제섭네가 눈이 마주치고 마을에 있을 때는 미운 정보다는 그래도 정다웠던 시간을 공유했던 일이 많았기에 

안타까운 미소가 어려지고는 고개를 끄떡이기 시작했다.


“잘 지냈나…?? 진우네……??”

“예…… 성님은 좀 어때요…??”

“흑…. 나야 뭐…. 복 없는 년이…. 어디를 굴러다녀도 없는 복이 생길 것도 아니고 그냥 그냥 산다네…….”


제섭네의 볼 위로 굵어진 눈물이 방울처럼 흘러 내렸다.

한때는 원망으로 진저리를 쳤었지만 그래도 낮선 곳에서 살아 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모습에 혜숙은 원망보다는 동정어린 마음이 더 생겨났다.

멀리 떠났을 거란 생각을 했었지만 제섭네는 산골의 마을에 정착을 하고는 그런대로 사는 듯 보여졌고 

어려운 시기에 그나마 이렇게라도 견디고 있는 게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여기에…??”


제섭네는 아직도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식에 조심스러운 듯 혜숙에게 말을 건냈고 혜숙은 현우를 바라보고는 


“서울을 다녀오는 길이에요…….”

“으응…. 그랬구나…….”


현우의 눈치를 보며 재섭네가 말끝을 흐리고 한 동안을 몸을 굽힌 채 차마 끝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몸을 떨어댔다.


“됐어요…. 성님…그만 하세요……. 다 지나간 일이예요….”


벌개진 눈으로 혜숙을 바라본 재섭네가 고개를 끄떡이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뭐 특별하게 맛있는 건 아니지만…. 따뜻한 국밥이라도 금방 내 올게….잠시만 기다려….”


움츠러든 어깨가 힘없이 보이며 재섭네가 주방으로 들어가고 일행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호기심 많은 영순만이 자꾸 고개를 주방으로 돌리며 신기한 듯 눈을 굴릴 뿐이었다.

나무판자로 만든 창문사이로 조금씩 어둠이 내려앉으며 산골의 이른 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재섭네의 배려로 집안의 작은방에 일행이 묵을 수 있었다.

인근에 쉴 수 있는 곳이 있기는 했지만 재섭네의 청으로 할 수 없이 머물 수 밖에 없었다.

할말도 있고 미워도 하루 밤 대접이라도 하게 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은 현우로서는 거절 할 수가 없었고 

혜숙의 바램도 있었기에 현우는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탁주 몇 사발에 벌개진 장년사내는 벌써 방으로 들어가 잠에 취해 버렸고 좀 전까지 남아있던 장년아낙과 아이들도 

하품을 하며 방으로 들어가고는 금새 고요하게 잦아들고는 잠을 자는 듯 보여졌다.


“현우총각…. 얘기 들었어요…??”

“예…?? 얘기라니요…??”

“마을에 안좋은 병이 돌았다고 하던데…….”

“병이요…??”

“서…성님….무슨 말이요…??” 

“자세한 것은 잘은 모르지만……. 얼마 전 지나가던 화전민 부자가 초록동에 몇 군데 상이 났는데 …. 사람들이 초록동에 들어 가려고 하지를 않는다고 …..”

“상이요…?? 성님…자세하게 …. 자세하게…얘기해줘요….”


혜숙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고는 탁자를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가는 경련을 일으켜 댔다.

현우 역시 안 좋은 기분에 얼마 전부터 부쩍 할머니인 영주댁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것에 점점 마음이 불안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설마 건강했던 할머니가 자신이 없는 동안에 무슨 일이 있겠냐는 듯 자신을 달래 보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초조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화전민 부자가 본 건 상여 두개를 짊어진 아낙들이…….”


현우의 눈동자로 가는 핏줄이 돋아나며 재섭네의 얼굴에 시선을 모은 채 점점 굳어지기 시작하며 싸늘하게 식어가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해 저문 산골의 밤은 칠흑처럼 어둠이 감싸며 차가운 냉기를 피워 올리고는 점점 깊어지기 시작했다. 


전체 1,808/ 1 페이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