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로맨스야설) 초록마을 - 32 부

작성자 정보

  • 밍키넷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부산스럽게 불어오는 바람이 가을을 알리기 시작하고 들판에 누렇게 익어가는 곡식의 물결이 풍요롭게 보인다.

벼들이 고개를 숙이며 수확의 신호를 보내오면서 마을은 정신없이 바빠지고

듬성듬성 보여지는 마을 아낙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풍성한 만찬에 고마움을 느끼며 벼 베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풍천 댁이 한 아름 가득 벼를 베어 넘기고는 흥겨운 노랫소리를 읊어대고 논의 사이사이에 앉은 아낙들이 신난 듯

장단을 맞추어 가면서 흥을 돋우고 머리 위로 떼를 지은 듯 날아다니는 잠자리들도 흥겨운 듯 아낙들의 머리 위를

배회하며 노랫가락을 음미하는지 흥겨워하는 모습처럼 보여졌다.


“호석네야…. 벼가 알이 여문 게 올해는 백 섬은 족히 되겠다.…??…”

“호호호… 성님도 우리만 그러우…? 올해는 마을 전체가 쌀알로 넘쳐나는데요….”

“깔깔깔…호석네 말이 맞다… 올해만큼만 하면야 우리 마을은 다 갑부가 되는 거는 금방이겠다…”


수확의 기쁨은 어느 사람에게든지 기쁨과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고 예년과 달리 올해는 수확량이 많아서 다가올 겨울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현우는 아낙들의 신명 나는 노랫소리와 풍요로움에 만족스러운 대화를 들어가며 벼 베기에 몰두해 있었고

대여섯은 되어 보이는 아낙들 틈에서 아직은 서투른 듯한 낫질에 모든 신경을 모아가고 있었다.


힘으로 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할 것만 같은데 의외로 벼 베기는 현우에게 난처한 곤혹스러움을 안겨주고 있었다.

가끔씩 마을 아낙들이 현우의 낫질을 보고는 웃음을 짓긴 했지만, 면박을 주는 일은 없었고 현우의 뒤로 베어진 볏단도

엉성해 보이며 정돈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긴 하겠지만 현우는 못마땅한 듯 서투른 낫질에 민망하면서도 내색은 못 한 채 서두는 모습이 보여지고

가끔씩 아낙들은 왠지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현우를 바라보곤 했다.

넓어 보이던 논이 어느새 벌거숭이가 된 듯 들판처럼 보여지면서 아낙들은 하나둘 허리를 펴며 일어서고 베어놓은 볏짚을

모아가며 하루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볏짚을 정리하는 현우의 곁으로 풍천 댁과 진주댁이라고 불리는 아낙이 다가서고는 수고했다는 듯 현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현우 총각… 고생했네…. 그나저나… 빨리 장가를 가여 헐 텐데…. 깔깔깔….”

“그려…. 장가를 가야지… 얼른 좋은 색시 만나서 가정을 이뤘으면 좋겠구먼….”


마치 가족처럼 현우를 생각하며 진심 어린 마음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씁쓸한 듯 미소를 지어 보이는 현우는 점점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어간다.

요즘 현우는 갈등에 휩싸인 채 마음이 편할 날이 없는 것 같이 지내고 있었다.

혜숙과의 대화 단절도 있었지만, 점점 강해지는 서울에 대한 동경으로 우두커니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깊어지는 갈등 속에 혜숙과의 불편한 관계는 현우를 더 힘들게 하고 있었고 감시받는 느낌 속에서

갇혀 지내는 신세처럼 생각이 들어가자 답답함에 점점 회의적으로 변하는 자신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은 자신을 쳐다보고 밭을 나서는 안동댁도 받았는지 안쓰러운 표정으로 현우에게 위로를 전하는 듯

아니면 무슨 일이 있냐는 듯 무언의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지만, 현우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혜숙과의 불편함이 벌써 보름째 넘어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차가운 혜숙의 눈빛은 변함이 없을 것 같이 생각되고

현우는 밭에서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서울을 생각하며 힘없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현우는 힘이 없는 듯 천천히 대문을 밀며 마당으로 들어서고 마루 위로 보이는 몇 명의 인영을 발견하였다.

현우를 미소 지으며 바라본 영주댁이 손을 흔들며 마루로 올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현우는 마루위로 보여지는 읍내장터의 장 노인과 장년의 아낙을 쳐다보고는 무슨 일이냐는 듯 의아한 눈빛으로 영주댁을 바라보다.

천천히 마루로 다가가며 장년 여인의 뒤로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처녀를 바라보고는 얼굴이 굳어져 갔다.

영주댁은 자기 손자를 보기 위해 마을에 온 장 노인 내외와 자신이 보기에도 참해 보이는 처녀가 몹시도 반가웠고

마침 집으로 돌아온 현우를 보면서 마음 한구석에 알 수 없는 기쁨이 생겨났다.


“어여…올라오너라….그려……”


허름한 복장으로 마루로 올라선 현우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영주댁의 옆으로 다가가자 장 노인은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현우를 바라보고는


"요새 바쁜가 보구만…. 밭에서 오는 길인가 본데….”

“예…..”

“그려… 다쳤다고 들었는데 …. 몸은 좀 괜찮은가…??”

“아이구…어느적 얘기를 하시는가…?? 이눔이 몸하나는 아직도 튼튼하네…. 컬컬컬….”


영주댁이 현우대신 대답을 하며 현우를 바라보고는


“몸도 튼실하지만 머리도 좋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마을의 일은 이눔이 없으면 원체 되는게 없을 지경이네…..”


자랑스러운 듯 영주댁은 장 노인에게 현우의 칭찬을 하기 바빴고 장 노인도 귀동냥으로 들은 초록동의 일을 세세히 알고 있었던 터라

영주댁의 얘기에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떡인다.


장 노인의 옆에 앉은 아낙이 현우가 대문을 들어설 때부터 유심히 현우를 바라보며 하나하나 살펴보는 행동을 하고

입가로 미소를 띤 채 장 노인처럼 고개를 끄떡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부엌에서 혜숙이 교자상을 들고 마루로 오르고는 영주댁과 장 노인 사이에 상을 내려놓으며

스쳐 가 듯 앉아있는 처녀를 훑어보고는 마루를 내려서 부엌으로 들어가고

현우는 장 노인이 자기 집을 찾은 이유를 짐작하고 있는 듯 앉아있는 내내 얼굴을 펴지 못한 채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허허허…. 대학교를 다니다가 전쟁으로 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

“계속 공부를 시키실 예정입니까…… 어르신??”

“글쎄…. 아직은 그것을 생각 못해 봤네만…… 자리가 잡히면 생각을 해봐야겄제…..”


영주댁과 장 노인이 나누는 대화는 주로 현우와 관련된 얘기들이 오가고 있었고 영주댁은 마치 혼사가 다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이 드는지

연신 웃음을 지어 올린 채 기쁜 표정으로 장 노인 내외를 바라보며 현우를 치켜올리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석고상처럼 가만히 앉아있는 현우와 연주는 대화의 내용을 들으면서 각기 다른 감정으로 갈등과 기쁨이 교차하고 있었고

가끔씩 연주의 시선이 현우에게 향하면서 현우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알면서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직 장래의 선택을 마치지 못한 현우였지만 영주댁의 기쁜 듯한 모습을 보면서 아무런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고

자신의 마음속으로 스쳐 지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답답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장 노인은 현우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몇 번의 감탄과 함께 흐뭇해졌다.

머리도 썩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듬직해 보이는 모습에 남자다운 기백도 느껴지는 게

자기 일을 이어받아도 무리 없이 소화해 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자기 딸인 연주와 맺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다행히도 김 진사댁 부인이 자기 딸을 참하게 생각하고 있어서인지 그 자신감은 점점 더해지고 있었고

부인인 함평 댁도 마음에 드는지 연신 미소를 띠는 게 마음이 흡족해 보였다.


상인과 거래를 했던 것을 듣고 장 노인은 현우가 보통내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읍내 망나니 왈패들과도 대적해서 물리칠 정도이면

자신의 점포를 지키고 키워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처럼 생각 됐다.

현우의 진가를 알고 있는 장 노인은 영주댁의 얘기를 들으면서 맞장구를 치고 기쁜 듯 밝아지는 영주댁의 시선을 받으며

장사꾼다운 면모를 나타내고는 현우와 연주와의 결합에 의의가 없는 듯 영주댁을 바라보며


“어르신…. 이제 얘기도 길어진 것 같고 해서…. 어르신이 좋으시다면 이 기회에 이 훌륭한 가문과 연을 맺고 싶은데 의향은 어떠신지…??”


은근하게 물어오는 장 노인의 물음에 영주댁은 눈이 커지며 반가운 듯 손을 마주치며


“아이고….장 가…. 아니. 사돈이 그렇게만 해준다면야 나야 고맙지요.  컬컬컬….”


순간 현우의 눈이 커지며 영주댁을 바라보고 연주는 고개를 숙인 채 목덜미의 빨개진 혈색을 드러내며 수줍은 듯 손을 모아간다.

연주는 콩닥거리는 마음을 진정하기 힘든 듯 부르르 몸을 떨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보기에도 현우는 읍내에서 제일 듬직하고 멋있어 보였고 성격도 자신이 믿고 의지하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을 듯 생각되었다.


장날 처음 본 순간부터 알 수 없는 미련을 가지고 가끔씩 떠오르는 현우를 생각하며 연주는 분홍색 꿈을 꾸었고

오늘에서야 그 꿈이 현실처럼 느껴지며 기쁨에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굳은 듯 보여지는 현우의 얼굴엔 기쁨의 빛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연주는 현우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을 느끼고는 가슴 한구석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함을 느꼈다.

자신이 마음에 안 드는 걸까 하는 의구심과 무언가 또 다른 고민이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순간적으로 연주의 머리를 스치며 지나간다.

장 노인의 얼굴도 굳어져 있는 현우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의아한 듯


“왜….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가…??”

“예에..?? 아…… 아닙니다….”

당황스러운 듯 현우가 얼굴을 붉히며 영주댁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인다.


“고민은 무슨…. 인자…. 자기도 장가를 들면 더 좋을텐디…. 컬컬컬….”


장 노인은 다시 미소를 짓고 연주도 역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슴에 손을 모으고는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화기애애한 대화들이 한동안 이어지다 장 노인 내외와 연주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더 늦기 전에 읍내로 돌아가야겠다고 얘기하며 마당으로 내려서고

영주댁은 아픈 다리임에도 마당으로 내려서며 그들이 대문을 벗어날 때까지 배웅한다.


한동안 우두커니 마당을 지키던 현우는 배웅을 마치고 대문으로 들어서는 영주댁을 바라보고는 할 말이 있는 듯 주저하는 행동을 하고

영주댁은 미소를 지은 채 현우의 팔뚝을 어루만지며 들어가자는 듯 손을 저어댄다.


“…저…할머니….”


마당을 가로지르던 영주댁이 등을 돌리고 의아한 듯 현우를 쳐다보고


“왜….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거여…??”

“예…….”

“그려….그려…얼른 올라가자…. ”


부엌에서 나오던 혜숙이 현우의 말을 들으면서 점점 얼굴이 굳어진다.

혜숙은 언젠가는 현우도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살아 갈 거라 생각은 했지만, 오늘 본 처녀는 예쁘고 또 현우를 보필하기엔

적당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로 아쉬움과 쓸쓸함을 느껴야 했다.

부엌에 있는 동안 서글퍼지는 자신의 마음을 몇 번이고 달래면서 아파져 오는 가슴을 진정 시켰지만, 마당에서 바라보는 현우의 얼굴을 보면서

문뜩 불안한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어져 감을 느꼈다.


혜숙의 뇌리로 스쳐 가는 불안한 생각.

얼마 전 밤이슬을 맞으며 새벽에 들어온 현우의 생각에 현우가 무슨 말을 할 것 인가에 혜숙의 시선과 귀가 모이고

현우의 마음속에 있는 또 다른 여인을 위해 현우가 무슨 말을 할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마루 끝에 앉는 영주댁의 옆으로 현우가 가만히 다가앉는다.

자신을 바라보는 영주댁을 한동안 바라보던 현우가


“저… 서울 좀 다녀왔으면……”


영주댁의 시선속에서 작은 떨림이 시작되고 얼굴이 점점이 굳어지기 시작한다.

예상치 못했던 얘기를 들은 듯 영주댁의 시선은 충격을 받은 것처럼 잔잔한 파문이 일어나고


“……..서…….서울……??”

“예…….”


고개를 숙이고 영주댁의 말을 기다리는 현우는 영주댁의 마음이 더 깊어지기 전에 얘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고는 어렵사리 얘기를 꺼낸다.


“실은…..한번은 가 봐야 될것이라 생각을 해서…..조만간……”

“안된다….그렇게는 못혀……. 니눔의 고향은 여기고….니눔의 집도 여긴거여…..그렇게는 못현다….”


단호한 듯 말을 끊어버리는 영주댁은 가슴 철렁한 느낌에 손끝이 떨려오며 자신이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듯 답답함을 느꼈다.

어떻게 돌아온 손주인데 그 피냄새 나는 서울로 보내겠냐는 생각에 영주댁의 머리속에는 보내면 안된다는 생각만 가득할 뿐 다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슴졸이며 있기에는 너무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현우는 영주댁을 바라보며 


“할머니…돌아 올거예요…. 이제 아무것도 없는곳에 살지는 않겠지만 내가 살았던 동네와 부모님 시신도 제대로 수습치 못한게 마음에 걸려서 그래요…."


굳은 듯한 얼굴에서 단호함이 변치 않은 듯 영주댁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만 있었다.

몇 번을 사정 조로 얘기를 해 보았지만, 묵묵히 시선을 마당으로 고정한 영주댁은 움직일 줄을 몰랐고

현우는 한동안 마루 끝을 지키다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굳어져 있던 영주댁의 볼 위로 방울지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마도 현우의 심정은 알지만, 자꾸만 불안해지는 마음 때문에 손주를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미어지는 듯 아파져 옴을 느꼈다.


혜숙은 저녁 대신 한 사발 술이라도 있으면 달라는 현우에게 부엌 장지 틈에 보관해둔 병을 내밀었고

병을 받아서 든 현우는 마당을 가로지르고는 대문 밖으로 나서서 나가버린다.

안쓰러운 시선이 혜숙의 눈 위로 떠오르다가 진우의 부름에 눈을 돌리고는 진우에게 다가가고 마당으로 어둠이 내려오며 마루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개울가에 앉은 현우는 저녁 대신 자기 목을 타고 넘어오는 텁텁하고 칼칼한 탁주를 마시며 답답한 마음을 달래보았다.

자기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게 이제는 답답하다 못해 괴로웠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마냥 괴롭기만 했다.


영주댁만 아니라면 벌써 떠날 수도 있었겠지만, 자신이 어려울 때 자신을 받아들이고 애정을 쏟아준 영주댁을 실망하게 할 순 없었다.

원하지도 않는 혼사에 원하지도 않는 일을 평생 해야 한다는 게 현우에게는 아쉬움과 절망감이 밀려들었고

서울을 다녀와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하고 되도록 마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들과 살고픈 욕심이 있었고

혼사만큼은 자신이 결정하고픈 게 현우의 마음이었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이뤄질 수 없다는 생각에 허무하기마저 했다.

어느새 비었는지 술동이 바닥을 보이고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뱉어내던 현우가 자리를 털고는 일어나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팽돌네는 막 잠든 아들을 이불 위로 눕히고는 옆에 밀어둔 바구니를 잡아당겨 해어진 옷과 몇 조각의 옷감을 꺼내고는 바느질을 하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호롱불 아래 다리를 세우고는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면서 가끔씩 눈을 들어 잠들어있는 어린 아들을 바라보는 눈 속엔 따뜻한 정이 흐르고

어렵고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는 느낌에 절로 웃음이 번져간다.


이제는 마을 사람들도 자신들을 편하게 대해주었고 가끔씩 먹거리를 나눠주며 정을 나눠주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바느질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팽돌네는 의아한 듯 눈을 뜨고 귀를 모으고는 들려오는 소리에 정신을 모아갔다.

누군가가 자신의 마당에 들어선 듯 이상한 느낌에 팽돌네는 하던 일을 멈추고는 일어서서 방문을 열어가고

스산한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오며 밖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어둠이 깔린 마당으로 시커먼 그림자가 보여지며 성큼 대며 자신의 앞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녀는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지난번 이후 처음으로 자신을 찾은 그를 보며 그녀는 문뜩 두려운 생각이 몰려들며 늦은 밤 그녀의 집에 오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일렁이는 불빛이 어슴푸레하게 그의 얼굴을 비추면서 팽돌네의 후각 속으로 술 냄새가 느껴지고 방앞에 선 채 그녀를 바라보는 현우가 보인다.

꽤 많이 술을 마신 듯 현우는 비틀거리는 움직임을 보이며 신발을 벗어내고는 서슴없이 팽돌네의 방으로 들어서고

미처 생각지도 못한 현우의 행동에 팽돌네는 당황스러운 듯 가슴으로 손을 올리고는 두려운 듯 현우를 쳐다보았다.


현우는 흐려지는 시선으로 팽돌네를 응시하다 그녀의 앞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거칠어진 호흡과 퍼져나오는 술 냄새. 충혈된 듯한 눈 속으로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 다가서는 현우를 보며

팽돌네는 소름이 돋는 두려움을 느끼며 뒤로 물러서려고 행동한다.

차츰 다가서던 현우에 의해 벽에 등을 댄 채 두려움에 떨어가는 팽돌네는 현우의 얼굴이 자신을 덮어오는 걸 느끼며 눈을 감는다.

깊어지는 밤이지만 잠들지 않은 풀벌레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소쩍새의 울음에 고즈넉한 달빛이 잠들지 않는 팽돌네의 집을 비추며 쏟아져 내렸다.


전체 1,808/ 1 페이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