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로맨스야설) 초록마을 - 1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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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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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의 장대비로 마을 하천이 범람하여 일부 농경지가 침수되고 비를 맞으며 마을 사람들이 하천으로 몰려들었다.

몇 년 만에 온 큰비인 까닭에 어느 사람 하나 대비를 못 한 채 하천을 넘어 몇 마지기의 밭을 쓸어가듯 넘치는 황톳빛 수마를 쳐다만 볼뿐이었다.

일 년 농사를 단 하루 만에 날려버리고 밭의 임자인 듯한 여인이 넋을 잃고는 물이 흐르는

바닥에 앉은 채 물로 채워진 밭을 보면 하염없는 눈물과 애가 타는 통곡만을 내지를 뿐이었다.


“아이고…이제…우리는…어찌…살라고…꺼이…꺼이…”

“하늘도 무심하시지…마을에 …무슨…억하심정이…남았다고….”


몇몇 아낙들이 구슬프게 통곡하는 아낙을 달래보지만, 아낙은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넋이 나간 사람처럼

가끔 멍한 눈으로 밭을 보다 땅바닥으로 엎드리곤 꺼이꺼이 울어댄다.

가족의 일 년 식량을 너무도 허탈하게 잃어버린 것이 억울한 듯 아낙의 눈은 풀려가며 맥없이 바닥으로 뒹굴더니 잠잠해진다.


현우와 혜숙이 도착했을 땐 아직도 둑을 타고 넘어오는 짙은 황토물이 밭을 지나 점점 영역을 넓혀 가고 있었고

발만 동동 구르며 애간장이 타는 듯 마을 아낙들은 통곡의 목소리를 높여대고 있었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기는 했지만, 둑을 타고 넘어오는 물줄기가 위험을 예고하듯 둑의 한 부분을 두드리며 더 많은

물을 둑 너머로 밀어내고 푸르름을 자랑하던 기름진 농토들을 하나씩 침식하여 들어가는 게 현우의 눈으로 보여져 갔다.

마치 전쟁터를 연상하듯 폐허로 변하는 밭들이 봄과 여름 동안 애써 기른 작물들을 눕힌 채로 황토의 수마 아래로

침수되어 가는 게 중요한 고지를 적에게 빼앗기는 생각에 젖게 만든다.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에도 흔들림이 없이 현우의 몸은 굳은 채 한동안 농토를 휩쓰는 수마의 광란을 보고 있었다.

현우의 눈으로 생각하기 싫었던 끔찍한 경험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며 부르르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경련을 일으킨다.

강원도 어느 깊은 산속에서 봉우리 하나를 빼앗기 위해 하룻밤에도 수십 명의 전우가 떨어지는 포탄에 사지가 찢겨나가고

전우의 육신을 방패 삼아 흐르는 핏속을 기어가던 느낌은 공포 그 자체였다.

봉우리 하나를 어렵게 빼앗고는 다시금 몰려드는 적군을 보고는 얼마나 긴 시간을 공포에 떨었는지 수도 없이 들과 계곡을 오르는

개미 같은 사람의 물결에 자신이 얼마나 허약하고 하찮은 존재였는지를 그때 깨달은 것 같다.


현우의 눈앞으로 펼쳐지는 수마의 현장은 생활의 터전을 짓밟고 생명을 짓밟는 사악함마저 느끼게 했다.

혜숙은 눈앞의 광경에 큰 두려움을 느끼며 현우의 곁으로 다가섰다.

곧이라도 자신이 있는 곳으로 덮칠 것 같은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현우의 팔을 잡았지만, 부르르 떨리는 현우의 몸을 느끼곤 현우의 얼굴을 쳐다본다.

굳어진 듯한 얼굴에 핏발이 선 것 같은 시선이 뚫어지게 둑의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혜숙은 자신도 모르게 현우의 시선이 머문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머릿속을 스치는 위험신호에 입만을 벌린 채 두려운 표정이 되어간다.


둑이 조금씩 제 모습을 잃어가며 허물어져 가는 게 보였다.

몇몇 아낙들이 무서운 듯 마을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나이 든 노인 몇 명이 지팡이를 짚은 채 귀신이 붙었다며 탄식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현우는 잠깐의 두려움을 머리를 털며 애써 떨쳐버리고는 위험해지는 마을의 안위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대로 두면 마을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채 사람들에게 안식과 풍요로움을 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웅성대면서 애만 태우는 마을 아낙들의 뒤로 지게를 짊어진 인영이 나타나며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힘이 든 듯 바닥으로 퍼져 앉는 그 사람을 아낙들이 부축하며 일으켜 세우자 그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칠석이 할아버지였다.

지게 위에는 가마니와 삽. 곡괭이 등이 얹혀 있었고 칠석이 할아버지가 지고 온 물건들을 보던 현우의 눈에 찰나의 빛이 흐르고는

그 지게로 빠르게 다가가고는 가마니와 삽을 들고는 둑으로 달려 나갔다.


“어여…뭣들 해….어여들…움직이세나…저 둑이 무너지면…마을은 끝이야…”


갈라진 듯한 칠석이 할아버지의 음성이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퍼져나가고 아낙 몇이 가마니와 연장들을 들고는 둑으로 나아갔다.


“어여…자네는 마을에…있는 …가마니를 …모아주게…둑을 막아야 돼…”



몇 명의 노인들과 몇 명의 아낙들이 마을 안으로 사라져가고 현우가 젖은 흙을 가마니에 담으며 둑 위로 쌓아가는 것을 바라보던

노인이 곡괭이를 들고는 현우의 곁으로 다가갔다.

몇 명의 아낙들이 보조를 맞추듯 가마니에 흙을 채우고는 현우가 했던 것처럼 둑 위를 메우기 시작하자 마을 안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꽤 많은 사람이 빗속을 뚫고서 둑으로 몰려들었다.

둑의 주위엔 어느새 사람의 물결로 넘쳐나고 힘을 모아 가마니에 흙과 자갈을 채워 넣은 채 둑 위를 덮기 시작했다.


물이 넘치지 않은 곳에서부터 메워가던 가마니 더미들이 어느덧 둑 위의 수마를 막아내고 여유 있는 듯 쌓아 올려진 둑을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이 입에서 환호의 탄성들이 쏟아져 나왔다.


“와아….둑을..막았다…”

“큰일을…했어….큰일을…”


그나마 짧은 시간에 이 정도라도 했으니 다행인 듯 몇몇 사람들의 얼굴로 안도의 빛이 교차하고 가마니를 쌓아 올리던 현우와 칠석이 

할아버지가 허리를 펴자 사람들의 눈 속으로 경탄 어린 시선이 모였다.

둑 위에서 흐르는 하천을 바라보던 칠석이 할아버지가 아직은 불안한 듯 고개를 저으며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닌 것 같다….”


말을 하면서 칠석이 할아버지가 현우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응시를 한다.

굳어진 현우의 눈은 아직도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하염없이 굉음을 토해내며 흘러가는 물줄기를 응시하더니


“예…어르신…아직은 안심하기엔 이른 것 같습니다…. 여기 말고도…몇 군데는…손을 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려…. 내. 생각도…같네…”


아무래도 불안한 듯 흘러가는 황토의 수마를 응시하며 칠석 노인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고는


“여기는 이만하면 되었고 팽돌이네 집 아래. 제방을 손 봐야 될 것 같다….

자…여기서 시간 축내지 말고 어여 이동합시다…. 팽돌네 집으로…어여…”


빗줄기 속을 빠른 걸음으로 마을 사람들이 꼬리를 물며 이동을 하고 마을에서 하천이 가장 가까운 팽돌이네 집 옆의 제방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곧이라도 둑을 넘을 듯하던 물결이 가마니 더미에 막혀 잠잠해지고 마을 사람들의 눈 속엔

언제부터인가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며 괭이질 한번에도 힘이 들어가는 열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힘차게 들어올려진 가마니가 현우의 허리만큼 올려진 채 가마니 더미위로 겹쳐지고 삽으로 두들겨지며 보기에도 든든해 보일만큼 빈틈없이 쌓아졌다.

많은사람들이 모여진 까닭인지 넓게 둑위를 메운 채 마치 성이라도 쌓는 듯 길게 제방위를 가마니가 줄줄이 이어진채 띠를 두르고 

굽이치던 황토의 물결도 정성들여 쌓아올린 가마니의 성을 뚫지는 못하겠는지 하천을 따라 흘러 내려갔다.


아침부터 시작되었던 제방 쌓기는 어느덧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한 듯 지쳐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아가며 마무리를 해야 했고 

칠석이 할아버지의 입가로 안도의 한숨이 내쉬면서 그런대로 안심이 되는지 웃음마저 내 보이기 시작한다.


“껄껄껄… 아무리 거친 파도가 몰려와도 이만하면 끄떡없다….”

“휴…우…”


이마의 흐르는 땀을 쓸어가며 현우가 긴 숨을 내쉬고 현우를 바라보는 칠석이 할아버지의 눈 속에 대견스럽다는 듯 눈이 커지고 입꼬리가 올라가며


“그놈…똘똘하고 의기가 좋구나…그려…. 허허허…”


현우도 자신을 칭찬하는 칠석이 할아버지를 보며 웃음을 짓고는


“어르신이 잘 해주신 덕분에 그나마 이 정도 라도 된 것  같습니다….”

“허허허… 이놈아…. 힘 좋은. 네놈이 일은 다 해 놓고서 나를 띄우면  어쩌겠다는 거냐…”

“하하하… 어르신이  방법을 일러주셨는데 그깟 힘이 무슨 소용입니까 ?”

“허허허…. 그놈 참….”


입가에 웃음이 전염되듯 사람들의 얼굴 위로 번져가며 안도와 기쁨의 물결이 흐르기 시작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수고를 칭찬하는 따뜻한 미소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진흙으로 범벅이 된 채 삼십은 되어 보이는 여인이 현우와 칠석이 할아버지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어르신…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


연신 허리를 숙이며 감격의 눈물을 머금은 채 고마움을 표시한다.

둑을 타고넘는 물줄기에 마을 안으로 대피하여 상황을 지켜보던 팽돌 어멈이다.

아낙의 몸으로 거친 수마를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느꼈는지 이른 새벽에 마을 안의 다른 집으로 피신해 있다가

이제서야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아냐. 되었다… 자네가 걱정이 컸겠구먼… 이제는 걱정 없을 거니 괜찮다…”


인자하게 웃는 칠석이 할아버지도 팽돌네의 사정을 알 듯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위로를 한다.

이 동네 장정들이 대부분 전쟁터에 나가 생사를 알 수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팽돌네 남편은 읍내의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도망을 쳤다.

팽돌네 아낙은 한동안 충격으로 인해 친정집에 있다가 올봄에야 마을로 돌아와 나이 어린 아들 하나만을 의지한 채 살아가고 있지만

마을 아낙들의 동정 어린 시선과 안 좋은 시선을 같이 느껴야만 했다.

사정을 잘 아는 칠석이 할아버지는 오히려 팽돌네를 위로하며 과부 아닌 과부로 살아가는 그녀를 달래준다.

팽돌네의 시선이 현우를 응시하고는 허리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시하고 현우도 고개를 숙이고는 겸연쩍게 웃는다.



“됐습니다… 인사는 요…. 어려울 땐  도와야 지요…”

“이 은혜 안 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이라도 볼 위로 눈물을 떨굴 듯 팽돌네의 눈 속이 젖어있었다.

다소 마른 듯한 몸에 키가 조금 큰 듯하다.

세 살짜리 아들 하나만을 의지한 채 조그만 밭 하나를 경작하며 남의 밭에서 품팔이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라

그녀에게 집이라도 없으면 마을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녀의 친정도 여유가 없는 듯 아들딸린 딸을 보듬기엔 벅찬 듯 다시 내쳐버려 할 수 없이 마을로 돌아왔다는 얘기도 있었다.

칠석이 할아버지가 되었다는 듯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를 뜨며 제방은 금새 흘러내리는 수마의 흔적만이 남는다.


이틀을 더 내리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이 개었다.

따가운 햇볕이 마당을 비추며 물기로 젖은 대지를 말이기 시작하고 영주댁의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뜬 현우가 마루로 나서며 개어진 하늘을 바라본다.


“이눔아…맨날 잠이나 자믄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에구… 쯔쯔쯔…..”


히죽 웃는 현우의 얼굴을 바라보는 영주댁의 눈 속엔 힐난하는 빛이 없고 아까운 보물이라도 보는 듯 기쁨이 충만해 있었다.

마을의 둑을 막은 날 이후 영주댁은 마을 아낙들의 방문을 받고는 입이 찢어질 듯 많은 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줄을 잇듯 찾아드는 손님에 영주댁은 자신이 둑을 막은 것처럼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고 귀하디귀한 손주 때문에 점점 마음이 푸근해지고

든든해지는 게 요즘만 같았으면 하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은 그 자리에 없었지만, 마을 아낙들의 입을 통해 현우의 활약상을 들으며 덧붙여진 말들이 마치 이제는 현우가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한 존재라고 인식되면서 영주댁의 마음은 한층 더 가벼워진다.


“조반 챙겨 먹고 밭에 좀 다녀오거라…. 아무래도 이번 비로  피해나 없을련지 걱정이구나……….”

“예……”


그러잖아도 어젯밤에 혜숙과 있으면서 날이 개면 밭에 가서 둘러보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당으로 나서는 영주댁을 바라보던 현우가 부엌을 나오는 혜숙을 보고는 웃음을 짓는다.

아침을 준비했는지 상을 들고서 마루로 올라서는 혜숙은 자신을 쳐다보는 현우를 보며 눈을 흘기며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데……….미워 죽겠어…….”

“하하하……. 왜요??….난…아무렇지도 않은데…”

“으이구….점점…더…. 능구렁이가 돼가네….”


상을 내려놓은 혜숙이 현우의 앞으로 상을 바르게 돌려놓고는 일어서서 안방으로 들어가고

상을 받아 앉은 현우는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에 웃음이 떠오른다.

어젯밤 현우는 혜숙의 방으로 숨어들어 그녀와 짜릿한 정사를 나누었다.

소리죽이며 나누던 정사도 좋았지만 이젠 틈만 나면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여주는 혜숙이 싫은 듯하면서도 점점 더 대범해지는 게 더 즐거웠다.

한 번의 정사였지만 그녀는 터져 나오는 신음 소리를 막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 같았다.

수저를 들어 식사를 하면서 현우는 떠오른 햇살만큼이나 밝아지는 느낌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종일 둘러본 밭들은 아무런 피해 없이 푸르고 싱싱한 잎을 자랑하며 현우를 반겼고

다행히도 올해는 햇살이 좋아서 서녘 밭의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는 게 맛있는 고추장을 맛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영주댁의 고추장 담그는 솜씨는 마을뿐만 아니라 읍내에서도 알아주는 솜씨였고 다행히 올해의 고추 농사도

풍년이어서 마음을 가볍게 한다.


밭을 둘러보고 마을로 들어서던 현우는 이틀 전에 쌓아놓은 둑을 둘러보러 하천으로 가고 빗물이 잦아진 하천은 어느새 색을 바꾸고는

아직은 탁해 보였지만 이틀 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잔잔히 흘러가고 있었다.

둑을 따라 걸으며 걷는 게 어느덧 팽돌 네 집 앞에까지 가버렸고 집에서 울타리를 손보던 팽돌 네를 발견하고는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아예…안녕하십니까……”


팽돌 네는 반가운 듯 인사를 하면서도 손에 쥔 새끼줄로 싸리나무를 엮어가며 울타리 보수에 여념이 없는 듯 보였다.

팽돌 네가 젖어있는 바닥에 드러누운 싸리나무 울타리를 낑낑대며 일으켜 세우고는 넘어지지 않도록 매듭을 지어갔다.

아직도 남아있는 수마의 흔적이 집의 울타리 옆까지 이어져 있었고 주위를 둘러보던 현우는 흙벽 일부가 파손된 채 구멍이 보이는 그녀의 집을 응시하고는


“손 봐야 할 곳이 많은 것 같네요…??”


울타리의 중간에 나무로 버팀목을 세우고 허리를 펴는 팽돌네가 현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고 허물어진 집의 한쪽을 바라보며


“예……. 시간이 나면…. 흙을 발라 대강이라도 메워야 할 것 같아요….”


대답을 하는 팽돌 네의 음성이 힘없이 느껴진다.

장정이 해야 할 일을 힘이 부족한 아낙이 하기엔 다소 무리로 느껴지는지 현우가 집안으로 들어서며 헐려버린 부분을 바라본다.

현우의 생각엔 이대로 두면 아마 조만간 큰비에 낭패를 겪을 것처럼 느껴지며 흙만으로 메우기엔 너무도 허술해 보여지기까지 했다.

찬찬히 집의 벽을 살피던 현우가 허리를 펴고 일어서서 팽돌네를 응시하며


“당분간은 놔두시고요…. 적당히 마르면 마을 어른들과 상의해서 수리를 해야 할 것 같네요….”

“아녜요. 이제까지만도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이 정도면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거예요.”


관심을 가져주는 게 고마운지 손을 모으고 팽돌 네가 고개를 숙인다.

아직 젊은 나이인데 남편으로 인해 죄인처럼 살아가는 게 현우의 눈엔 안쓰러워 보였다.

현우는 팽돌 네를 바라보다 엷은 한숨을 몸을 돌리고는 밖으로 나간다.

엉성하게 세워진 울타리가 바람이 불면 쓰러질 듯 위태해 보이고 수마로 패어버린 울타리 밖의 지면은 집이 절벽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날씨가 좋은 날엔 아무 문제 없이 지낼 수는 있겠지만 바람이라도 세차게 불면 잠은 고사하고 마을로 피신하기에 정신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팔을 걷어 올린 현우가 울타리의 지지대를 빼어내고는 팽돌 네가 애써 만든 울타리를 걷어내기 시작한다.


오래된 싸리나무여서 그런지 쉽게 꺾여지며 바스러지는 부분도 생겨난다.

한동안 울타리를 걷어낸 현우가 집 앞 선돌 위에 놓인 낫을 들고는 집 밖으로 나서고 팽돌 네는

아무 말도 못한 채 현우의 등만을 바라보며 그가 가는 방향을 주시하고만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현우가 한 아름의 나뭇단을 어깨에 이고는 팽돌 네의 집으로 들어서서 바닥에 내려놓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팽돌 네를 보며 웃음을 지은다.


“하하…이런 집에 살려면…대피하는 법 먼저…배워야. 할 것 같네요….”


팽돌 네의 눈 속에 당황스러운지 잔떨림이 일며 눈 주위가 빨갛게 익어간다.


“너무 고마우신데 대접할게 아무것도 없네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현우가 대답을 한다.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현우도 나이 어린 자식을 건사하기에도 힘이 드는 팽돌 네의 사정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나뭇단을 풀고는 울타리로 사용하려는 듯 굵은 나무들을 울타리 옆으로 던져놓는다.

울타리였던 자리 중간중간에 말뚝처럼 큰 지주목을 박아넣고 싸리나무를 엮어서 매듭을 지어 묶기를 반복하며

어느새 겉보기에도 든든해 보이는 울타리가 완성되기 시작했다.

현우의 옆에서 우두커니 선 채로 현우의 모습을 지켜보는 팽돌 네의 눈으로 알 수 없는 눈빛들이 교차하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항상 멸시받는 듯한 느낌을 받아왔던 팽돌 네로 서는 난생처음 호의를 받아 보는 일이었고

수고스러움에도 아무것도 대접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도 처량하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보기에도 이 사내는 너무도 듬직하게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고 손끝에서 완성돼가는 울타리는

천재지변이 일어도 끄떡없이 자기 집을 지켜줄 것처럼 든든해 보이기까지 한다.


말없이 호의를 보여주는 사내에게 뭔가라도 보답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 팽돌 네를 안타깝게 만들면서 현우의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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