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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야설) 젊음, 그 열기 속으로 - 1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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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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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에 방안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넓기만 하던 공간이었던 것이 여러 가지 가구들로 채워져 있었고, 그 한 가운데 미나가 미소를 지으면서 서 있었다.


"어때? 괜찮지 이 정도면?"


현관을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약간 돋아진 곳에 침대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옷장이라 여겨지는 가구가 있었다.

옆으로 약간 내려서면 널따란 책상이 있었고, 벽을 따라 책장 두 개가 책을 기다리면서 서 있었다.

오른쪽에 베란다로 향하는 큰 창문 위에는 블라인드가 드리워져 있었고,

한쪽에 TV와 장식장, 그리고 맞은편에 자그마한 테이블과 소파가 보였다.

주방에는 자그마한 냉장고와 앙증맞은 식탁이 보였는데 2인용인 듯 싶었다.


이 모든 것을 장만하는데 나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가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기만 했다.

그리고 그 도움을 주는 이가 지금 나를 향해 눈을 반짝이고 있다.

내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던 것일까.

미나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걱정하는 그늘이 드리워졌다.

내 기분을 탐색하려는 듯 미나의 눈길이 내 얼굴을 훑고 있었다.


"왜 그래? 맘에 안들어? 다시 옮길까?"

"아니 그게 아니라..."


일그러지는 내 표정을 읽은 미나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멍청하게 서 있는 내 팔을 가만히 안았다.


"오빠…. 아까도 말했지만 부담스러워하지 마. 오빠가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알기에 중고 가구들로 골랐어.

침대만은 중고를 살 수 없어서 새로 샀지만, 나머지는 아니야. 돈도 많이 안 들었어. 그리니까 부담스러워하지 마, 응?"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음 한편에서는 이 모든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잔말 말고 받아들이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쥐꼬리만큼 남아있던 자존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버둥거려야 했다.


그냥 묵묵히 서 있는 나를 미나가 살짝 안았다.

미나에게서 땀 냄새와 화장품 냄새가 밀려왔다.

이 더운 여름에 땀 흘리면서 애썼을 미나가 사랑스러웠고 고마웠다.

가만히 오른팔을 들어 미나를 살짝 안았다.

미나의 머리카락이 내 턱을 간지럽혔고, 가지런한 가르마가 보였다.


"고맙다…. 그저 그 말밖에는 할 말이 없구나…."


미나의 머리가 들려지면서 까만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배시시 웃었다.


"근데, 나 목말라. 냉장고는 텅 비었고, 마실만한 것은 없고. 쇼핑하러 나갈까?"


미나는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고, 그 얼굴을 보면서 계속 굳은 얼굴로 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미나의 말대로 옷가지와 몇 권의 책, 그리고 가구만 덩그러니 있을 뿐, 그 외의 나머지는 하나도 없었기에 사야만 했다.


"그래 가자."


그렇게 미나와 나는 다시 거리로 나왔고,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 위해 근처의 대형마트로 향했다.

사실 입대 전 자취할 때는 이불 한 장과 수건 몇 개, 그리고 그릇 몇 개면 충분했지만 미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이리저리 다니면서 보이는 대로 카트에 싣기 시작했고,

난 정신없는 미나를 보면서 멀거니 서서 구경만 했다.


하지만 미나의 손은 멈출 줄 몰랐고, 온갖 이상한 것들을 갖다 나르기 시작했다.

이대로 놔두면 내 지갑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서 미나가 싣는 것 중 필요 없다 싶은 것들을 도로 갖다 놓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미나는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했고, 나 역시 가만있을 수가 없어서 이것저것 트집을 잡았다.

그렇게 미나와 옥신각신하는 바람에 내 속의 우울함을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얼마나 물건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였을까.

주변 사람들이 우리 두 사람을 쳐다보는 눈길을 느낄 수 있었고.

무안해진 나는 미나의 손을 부여잡고서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해야만 했다.

그렇게 허둥지둥 계산대로 가서 물건들을 쏟아놓자 별의별 물건들이 다 쏟아졌다.

마치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을 생각하니 귀밑이 확확 달아올랐다.

계산하는 동안에도 미나는 물건들을 갖다 날랐고, 그래서 끌고 나오다시피 밖으로 나와 집으로 향했다.

덕분에 내 지갑은 텅텅 빈 채 너무나 가벼워졌고, 빈 지갑을 보면서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하아! 한동안 라면만 먹어야 하겠군.`

하지만 미나는 운전을 하면서도 아쉽다는 듯이 계속 쫑알대고 있었고, 그런 미나를 나는 철저하게 무시했다.

아니! 무시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씨~ 그래도 샴푸하고 린스는 사야 하잖아!"

"난 샴푸 안 쓴다고 해도 그러네."

"그럼 머리 감을 때는 어떡하고?"

"비누!"

"그럼, 난?"

"뭐?"

"난 뭐로 머리 감냐고?"

"뭐? 나 참... 야 임마! 네가 쓸 샴푸를 왜 내가 사냐? 그리고 머리 감고 싶으면 네 집에서 감으면 될 것 아냐!"

"그래!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오빠 방은 내 이름으로 돼 있으니까 내 방도 된단 말씀이야.

그러니까 나도 머리를 감을 수 있는 거고, 샴푸하고 린스는 있어야 된다고!"


분명 말도 안 되는 억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나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옛날에도 한 번 마음먹으면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으이구... 네 맘대로 하셔!"

결국 미나는 U턴을 해서 되돌아갔고, 기어이 샴푸하고 린스, 그리고 드라이어기까지 사 들고 의기양양하게 차에 올랐다.


그렇게 방으로 돌아와 가져온 물건들을 내려놓으니 정말 한살림이었다.


"후아~ 덥다 더워! 나, 샤워할래."

"뭐? 그럼 이것들은 어떻게 하고?"

"하! 이사해줬으면? 나보고 정리까지 하라고? 나머진 오빠가 하셔! 걸레질도 좀 하구! 랄랄라~ 샴푸가 어딨더라~ "


그렇게 말하고는 미나는 챙길 것 챙겨 들고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나는 방 한가운데 우두커니 앉아 물건꾸러미만 멍청하게 내려다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하긴, 저 녀석 오늘 고생 꽤 했을 테니 좀 쉬게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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