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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야설) 젊음, 그 열기 속으로 -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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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숙취가 조금은 남아있었던 것 터라 몸이 뻐근했지만

머리를 세차게 한 번 흔들어 정신을 차린 나는 미나와의 약속 장소인 그랜드호텔로 갔다.

한창때의 성수기는 지난 탓인지 라운지에는 드문드문 빈자리가 눈에 띄었고, 한 번 둘러본 뒤 미나가 아직

오지 않았음을 알고는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저기. 일행이 있으니까 조금 있다가 주문하죠."


다가온 웨이트리스에게 그렇게 말한 나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담배 한 개비를 물고서 불을 붙였다.

해운대의 바다는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듯 세차게 파도를 너울대고 있었고

이따금 연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물살과의 작은 전쟁을 즐겁게 즐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가에 작은 미소가 생겼다.


"뭐 이상한 걸 훔쳐보길래 그렇게 음흉하게 웃고 있어? 응?"

"어. 왔냐?"


고개를 돌려 바라본 미나의 모습은 어제의 잔상이 남아있었던 것인지 약간 다르게 보였다.

약간 밝은 색의 검은색 망사 티와 거기에 어울리는 듯한 블랙진은 미나의 큰 키와 함께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핸드백이라고 보기에는 약간 큰 가방을 들고 있었다.

이제는 웬만큼 익숙해진 듯 미나와 나는 점심을 먹었고, 식사가 끝난 뒤에 커피를 마시면서 나의 독촉에 미나가 입을 열었다.


"음. 오빠, 내 동생 미정이 알지?"

"아. 미정이. 네가 대학생이 되었으니까 걔는 지금쯤 고등학생이겠구나? 너하고는 달리 공부 잘했으니까 지금도 잘 하고 있겠지?"

"아이고..... 꼭 말을 해도 저렇게 밉게 한다니까!"

"근데 미정이가 왜? 걔가 과외선생을 필요로 할 것 같지는 않은데?"


미정이는 미나의 동생이면서도 미나와는 전혀 다른 아이였다.

미나와는 2살 터울이었고 내가 미나와 공부하기 위해서 집을 찾을 때면 방문에 기댄 채 눈인사만 하고는

돌아서 버리는 얌전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꼬마였다.

그리고 미정이는 공부를 썩 잘했고 미나의 부모님들도 미나를 걱정하기만 할 뿐 미정이는 스스로

잘 알아서 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계신 듯 했다.

미정이는 중학교 졸업 후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했고 지금은 서울 소재 예고에 다닌다고 했다.

미나와 미정이를 위해서 부모님께서는 아파트를 하나 마련하셨고 미나와 미정이 자매는 한 명의 식모와 서울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던 미정이는 나름대로 열심히 한 덕분인지 여전히 성적도 좋았지만 미나의

부모님은 내가 제대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에게 미정이를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미정이도 과외선생이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부모님께 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나였으면 더 좋겠다는 말도….


"아. 그렇게 된 거구나. 근데 난 지금 부산에 있고 복학하기 전까지는 계속 부산에 있을 텐데 어떻게 미정이하고 공부하냐?"

"그건 생각하고 있는 바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어때? 할 거야, 말 거야?"

"글쎄. 내가 미정이를 직접 본 것도 아니니 지금 뭐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미정이 생각도 들어봐야지."

"그렇지? 그래서 미정이도 좀 있다가 올 거야. 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더니 저기 오네."


고개를 돌려보니 날 보면 숨곤 하던 기억 속의 미정이가 테이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기억 속의 모습과는 미나 만큼이나 달랐고 미정이의 눈 속에는 내 모습이 그대로 반사될 정도로 내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미정이는 여전히 나를 바라본 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건강한 모습 보니까 다행이네요."

"으응. 그래 미정이도 잘 지냈지?"


미정이의 인사는 꽤 오랫동안 연습한 티가 났고, 미정이가 인사말을 연습하는 장면을 떠올린 나는 속으로 피식거렸다.

하지만 그때의 미정이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고, 나는 미정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고생의 전매특허라고 하는 단발머리에 미나와는 달리 하얀 피부….

살펴보는 내 눈길에 미정이는 당당한 태도를 보이기 위해서 그런 것인지 내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하하. 미정이도 옛날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구나. 미나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지만 나름대로 숙녀티가 나는데….


결국 미정이는 나와 같이 공부하기로 했다.

문제는 지금은 둘 다 부산에 있어서 괜찮지만 개학하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였다.

그런데 그 문제는 미나의 부모님께서 생각하신 바가 있다고 해서 저녁에 부모님을 만나 뵙고 상의드리기로 했다.


"음. 근데 저녁까지 뭐하냐? 낮부터 술 마실 수도 없고, 미정이도 있으니 딱히 들어가기 쉬운 곳도 없을 텐데?"


이런 내 물음에 기다린 듯이 미나와 미정이는 서로 눈길을 마주치더니 나를 향해 생긋 웃었다.


"그렇지? 오빠, 우리 수영하자! 미정이하고 나는 수영복 준비해서 왔거든?"

"잉? 이게 뭔 소리야? 수영이라니. 그리고 너희만 수영복 준비하면 나는 뭐 벌거벗고 수영하자는 거야, 뭐야?"


내 대답에 미나는 깔깔거리면서 숨넘어가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미정이는 고개를 조금 숙이더니 쿡쿡거렸다. 귓불을 조금 붉히면서.

하하. 같은 대답인데도 이렇게 반응이 다르니….


"걱정하지 마! 하나 사면 되지! 안 그래도 오빠 수영복 없을 것 같아서 하나 사주려고 마음먹고 있었어."

"어이구 어련 하시려고? 네 맘대로 하세요~~."


그렇게 우리는 수영장으로 향했고, 빨간색을 사야 한다는 미나의 고집스러운 주장에 내가 으르릉거리면서 대꾸한 결과

검은색으로 낙찰을 본 후 탈의실로 들어갔다.


탈의실을 나오니 저만치서 미나와 미정이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미나는 방긋 웃으면서 어서 오라고 손짓했지만 미정이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미나의 태도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한 것이라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미정이의 그것은 의외였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면서 확인해야 하겠다는 그 눈길이란….


"헤헤…. 역시..... 오빠는 벗은 모습도 멋있네? 오빠 보기에 난 어때?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어이구…. 그래, 그래. 미나는 미스코리아고 미정이는 미스 주니어 코리아다."


정말 그랬다. 170 가까이 되는 미나는 그 까맣고 긴 머리를 수영모자 속에 넣어서 그런지 유난히 긴 목이 돋보였고,

노란색의 비키는 미나의 홀쭉한 허리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그리고 어젯밤 집 앞에서 조금 느낀 것이지만 가슴 또한 또래보다 훨씬 커 보였기에 나도 모르게 흘끔거리게 되었다.

미나는 이런 내 시선이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했고 주위에 있던 남자들의 야릇한 시선을 당당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미정이 또한 자신의 파란색 비키니를 잘 소화해 낼 수 있을 만큼 몸매가 예뻤다.

하지만 역시 고등학생이라 그런지 언니와 비교하면 약간 작은 가슴을 가지고 있는 듯했고

미정이 자신도 옆에 미나를 의식했는지 수건으로 가슴을 살짝 가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기는 했지만 미나의 하얀 피부는 미나와는 또 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었고

나이답지 않은 조숙한 몸짓을 보여주고 있었다.


미나, 미정이 그리고 나, 셋은 즐겁게 두 시간 가까이 수영장에서 보냈다.

미나는 원래부터 운동신경이 좋았던 것인지 자유형을 멋지게 선보였지만 미정이는 그렇지 못했기에 내가 붙잡아 주어야 했다.

미정이가 수영을 하면 내가 옆을 따라가면서 배를 받쳐주는, 그리고 때때로 수영코치 역할을 하는 그런 식이었다.

미정이는 배시시 웃으면서 고마워했고 나 또한 미정이의 그런 미소가 더없이 싱그럽게 보였다.

그렇게 미정이와 내가 웃으면서 서 있으면 미나는 우리 옆을 물살을 가르면서 지나갔고

그 모습에 자연 내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우와…. 멋진데…?"

"음! 그럼 선생님도 언니하고 수영해요. 난 그냥 있을 테니까요."


음? 미정이는 갑자기 내 손을 거부하는 듯이 밀어내었다. 그리고는 토라진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면서 저만치 멀어지려고 그랬다.

아니. 얘가 왜 이러지? 삐진 거야? 누구한테? 아니, 뭣 때문에? 내가 미나한테 그런 소리를 했다고? 하하. 이것 참….

나는 멀어지려 하는 미정이의 허리를 황급히 끌어안으면서 달래려고 그랬다. 이유도 제대로 모른 채….


"미정아, 갑자기 왜 그래? 혹시 내가 기분이 나쁜 말이라도 한 거야?"

"아니요, 선생님은 충분히 저한테 잘해주셨으니까 이제라도 언니에게 가세요."


그리곤 미정이는 내 팔 안에 붙잡힌 자기 허리를 빼내려고 물속에서 버둥거렸지만 난 놓지 않았다.

그 와중에 갑자기 미정이가 물속에서 중심을 잃은 채 기우뚱거리면서 넘어지려 했고

다급히 미정이를 껴안은 내 손은 미정의 가슴을 끌어안게 되었다.


"아…."

"아…. 저…. 그러니까…. 이건…."


당황한 나는 급히 미정이의 가슴으로부터 손을 거둬들였지만, 손을 주체할 수 없어서 두 손을 엉거주춤하게 들고 서 있었다.

미정이의 얼굴은 마치 불에 달구어진 듯 발갛게 익어있었고 자신의 두 손으로 그 조그마한 가슴을 가리고 서 있었다.


"미정아. 미안하다, 그러니까 그게…."

"괜찮아요, 선생님. 넘어지는걸 잡아주셨잖아요."


내 당황한 모습에 그렇게 말해주는 미정이가 고마워서 다시금 미정이를 바라보면서 어색하게 웃었지만,

그 순간 미정이의 얼굴에서는 뭔가 아쉬움 같은 것이 얼핏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때….


"뭐 해, 오빠? 나랑 시합해요!"


미나는 내 등을 세차게 때렸고, 등을 부여잡으려 애쓰면서 미나를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는

내 눈길에 미나는 방긋거리고 웃으면서 저만치 도망갔다.

다시 돌아본 미정이는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예의 여고생 같은 순순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뜻하지 않은 당황함에서 벗어난 우리 셋은 수영장을 나설 때까지 즐겁게 시간을 보냈고,

미정이는 나에게 그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호텔을 나온 우리는 저녁에 인사를 하기 위해서 미나의 쏘나타에 올랐다.

오랜만에 뵙는 미나의 부모님은 반갑게 나를 맞아주셨고 다시 한번 미정이를 맡아주기로 한데 대해서 더없이 고마워하셨다.

저녁을 먹으면서 내 군대 생활과 복학 준비 등의 얘기를 했고 결국 서울에서의 거취 문제를 얘기하게 되었다.

미나의 부모님은 그 문제에 대해서 예전부터 생각을 하신 듯 거침없이 나에게 제안하셨다.


"음. 마침 미나 미정의 아파트의 맞은편 건물 원룸이 비어있던데 그곳을 쓰면 어떨까?

원룸이라 하더라도 꽤 큰 편이라 큰 불편은 없을 거라 생각되는데. 김 군."


미나와 미정이가 생활하는 아파트의 맞은편에는 18평 정도가 되는, 원룸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원룸이 있었고

미나의 부모님은 이미 계약하신 상태였다.

그런 분들 앞에서 차마 거부하지 못했고. 그렇게 해서 서울에서의 내 거취는 일사천리로 정해지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미정이의 과외선생과 두 자매의 보디가드 역할을 하게 되어 부담을 느껴야 했지만

빠듯한 집안 살림에 복학 걱정을 덜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함께했다.

쇳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듯이 다가오는 주말에 따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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