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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야설) 젊음, 그 열기 속으로 -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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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에 해운대에서 미나와 미정이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서울로 향하는 새마을호 열차에 올랐다.

나에게 짐이라고는 입을 옷 몇 가지와 약간의 책뿐이었다.

그나마 책이라고는 전공 서적 몇 권 뿐이라 짐이라고 여길만한 것도 없는 형편이었다.

미나와 미정이에게도 짐이라고 할 것은 별로 없었고, 가지고 가는 가방 속에 있는 것이래야 전부 기차에서 먹을 음식이었다.

연신 재잘거리는 녀석들은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듯이 즐거워했고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아지는 것 같았다.

열차가 출발하고 나서도 둘은 한참을 장난을 쳐댔고 과히 싫지는 않았기에 모른 채 했다.

열차가 대구를 지나 대전을 향할 때 쯤 되자 둘은 지쳤는지 약간 조용해졌고,

대전을 지나면서부터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돌아보니 어느새 잠이 들어있었다.

미나는 내 맞은편에서 자고 있었고 미정이는 내 오른쪽 옆에서 쌔근쌔근 잠들어있었다.


열차가 흔들렸고 그 진동 때문에 미정이의 고개가 더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몸을 조금 기울여주면서 미정이의 고개를 내 어깨 쪽으로 끌어당겼다.

미정이의 어깨가 조금 흠칫하는 것 같았지만, 곧 자연스럽게 내 어깨를 빌려 갔다.

창밖으로는 늦여름이 마지막 심술이라도 부리는지 열기를 뿜어댔지만

열차 안은 냉기를 뿜어내는 에어컨 덕택에 약간 쌀쌀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에어컨의 냉기는 미정에게 더 차갑게 느껴졌는지 미정는 내 품속으로 더욱 들어왔고,

나는 옆의 가방에서 긴 남방을 하나 꺼내 미정이의 앞을 여몄다.

잠결에서도 옷을 느꼈는지 미정이는 옷깃을 부여잡으면서 이마를 내 어깨에 비벼댔다.

겉으로는 조숙해 보이지만 역시 여고생 이란 건가…?


가만히 내려다본 미정이의 이마는 가지런했고 얼마 전 봤던 미나의 이마 보다도 폭이 좁아 보였다.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늦여름의 따가운 햇볕은 미정이의 이마에서 힘들이지 않게 솜털을 찾아내게 했고,

돌아가는 에어컨 바람 때문에 솜털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마저도 확연하게 보였다.


그렇게 얼마간 갔을까. 열차가 한번 크게 요동을 쳤고 맞은편의 미나가 깨어났다.

깨어난 미나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어디쯤 왔을까 가늠해보는 듯 하더니 곧이어 시선을 돌려 나와 미정이를 봤다.

순간 미정이의 얼굴에서 짓궂은 장난기가 스쳐 가는 듯했고 손을 들어 올려 미정이를 깨우려고 했다.


"쉿"


나는 일부러 인상을 험악하게 지으면서 손을 들어 미나를 저지했다.

미나의 짓궂은 성격을 어느 정도 겪어봤던 나였기에 충분히 미나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었고,

미리 그런 장난을 막자는 생각에서 그렇게 인상을 지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나의 눈길은 나와 옆의 미정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 듯 하더니 샐쭉 혀를 내밀더니 환난 듯 자리를 일어서버렸다.

나는 그런 미나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 창밖으로 돌렸고, 미나는 그런 나를 조금 쳐다보는 듯 하더니 그냥 객실을 나가버렸다.


음. 화장실 가는 거겠지. 그나저나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미정이가 이렇게 있으니 움직이지 못하겠군….

그런 생각을 하는 내 눈에 미나가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아무 말 없이 다가오는 미나의 모습에 별일은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미나는 나에게 두 손을 펴 손사래를 쳐댔다.


"으잇! 차가워. 뭐야 임마!"

"메~~롱!"

"으음. 뭐야 언니…?"


나갔다 들어온 미나는 손에 물기를 묻혀왔고 자리에 오자마자 나와 미정이에게 손을 털어댄 것이다.

그 바람에 미정이는 잠에서 깨어났고 자기 어깨부터 무릎까지 덮고 있는 내 남방을 바라보게 되었다.

남방을 손에 쥔 미정이는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보았고 나는 빙긋 웃어주었다.

순간 미정이의 귓불이 발갛게 물든다 싶었지만 미정이는 곧 고개를 숙여버렸고 아쉽게도 미정이의 얼굴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미정이와 나를 바라보면서 깔깔거리던 미나의 얼굴에서는 얼핏 불안감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가는 듯이 보였다.


어. 저 녀석이 왜 저래…?


하지만 미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금 나와 미정이에게 짓궂은 장난을 쳐댔고

한잠 자고 났더니 힘이 나냐는 내 말에 더욱 기세를 높여 장난을 걸어왔다.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잠든 미정이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입에 물고는 자리를 일어섰다.


"또 피우러 나가는 거야? 어이구 그 담배 뭐가 좋다고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피워대는 거야?"

"야! 야! 내가 내 담배 피는데 네 잔소리 들어야만 하냐?"

"헹~~"


미나는 자리를 일어서는 나에게 잔소리를 늘어놨고 나는 피식 웃으면서 미나의 잔소리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리고는 흡연실로 향하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미정이가 일어섰다.


"어. 너도 담배 피냐?"

"아니에요, 선생님! 화장실에…."


나는 미정이에게 미나에게 대하는 듯이 농담을 걸었지만 미정이는 내 농담에 대경실색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높아진 목소리에 놀랐는지 곧이어 고개를 숙이면서 손에 쥔 남방을 틀어쥐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미정이의 그런 모습이 귀엽게만 보였고, 그래서 빙긋이 웃어주었다.

둘은 같이 객실을 나왔고 나는 흡연실에서 불을 찾아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런 내 모습을 미정이는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나는 또 한 번 장난을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 혼자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 내가 같이 들어가 줄까?"


누가 이런 내 말을 들었다면 변태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우리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졸지에 변태가 돼버리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말에 미정이는 조금 얼굴이 붉어지는 듯했지만 여전히 나를 쳐다보면서 서 있었다.

그리고는 미정이의 입에서 내가 상상도 못 할 말이 나왔다.


"음…. 대신에 들어가서 절 보시면 안 돼요!"


허걱. 이게 무슨….

난 미정이의 대답에 땀이 삐질삐질 흘렀고, 그런 내 모습을 미정이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겨우 몇 초간이었지만 미정이와 나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기류가 떠 있는 듯이 보였고 누구도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냥 농담이었어요…. 선생님이 저를 놀리시는 것 같아서요…."



힘들게 미정이는 말을 꺼내 놓았고, 그 기회를 놓치면 이 사태를 수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재빨리 대꾸했다.


"하하하…. 이제 보니까 미정이가 농담도 잘하네…? 하하하…."


나는 멋쩍게 웃으면서 미정이를 바라보았고 미정이는 다시금 얼굴을 숙이면서 화장실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면서….


"대신에 저 나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어. 그래, 그러지 뭐…."


미정이는 내 말을 확인이라도 받겠다는 듯이 다시 한번 내 얼굴을 쳐다보았고 난 그냥 힘없이 웃어주었다.

미정이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고, 난 그 문을 보면서 왠지 모를 기분을 느꼈다.


애 데리고 뭔 장난을 치는 거야…? 정신 차려, 임마!


그렇게 나 자신에게 경고를 발하던 나는 화장실 안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후다닥 담배를 비벼껐다.

잠시 후 미정이는 화장실을 나왔고 날 쳐다봤다.

멋쩍게 웃어준 나는 미정이에게 들어가자는 몸짓을 해 보였고 미정이는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방긋 웃으면서 내 팔을 잡았다.


농담 한 번 잘못했다가는 큰일 나겠군….


자리에 돌아온 우리 둘을 보면서 미나는 같이 화장실에서 뭐 했냐는 둥, 설마 같이 들어간 건 아니냐는 둥 하면서 놀려댔다.

마치 보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는 미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깜짝 놀랐지만 미정이는 쌩긋 웃으면서 대꾸했다.


"어머! 언니 몰랐어? 선생님이 나 지켜줬는데?"

"깔깔깔~~ 그래 선생님이 엉큼하게 쳐다보지는 않았어?"

"아니야, 선생님은 점잖게 문만 잡고 있었어."

"어이구. 이 녀석들이 날 가지고 회를 치는구나. 회를 쳐."


두 녀석은 맞장구를 쳐댔고 미정이는 방긋 웃으면서도 내 눈길을 피하지 않고서 가만히 응시했다.

음…. 도대체 이 녀석이 뭔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해야겠군. 미나하고는 달라도 너무 다르니. 원….


그렇게 열차에서의 작은 소란은 끝이 났고 얼마 안 있어 서울에 도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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