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학창물야설) 그의 대학생활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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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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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대학교 1학년이란 꿈같던 시간도 어느덧 끝나간다.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가는 철하는 급격히 추워진 날씨에 조금 두꺼운 잠바를 꺼내 걸쳤다. 

오랜만에 학교에 가니 다들 옷차림이 두터워졌다.


“안녕? 오늘은 왔구나?”


비록 며칠밖에 안되었지만 무척이나 오랜만에 온 것처럼 학교를 두리번거리던 철하에게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슬쩍 고개를 돌린 철하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긴 검은 머리에 방긋 웃는 이슬이었다.


“아…. 이슬이구나….”


철하는 어제 있었던 일이 생생히 기억난다. 

자기에게 울면서 좋아한다고 말했던 이슬이, 그러나 철하 자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아직 효린이의 자리에 누가 들어오기엔 성급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철하는 이슬이를 보면서 무언가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자기를 웃는 얼굴로 보며 말을 건네는 모습도 그렇고 옷차림도 노출이 줄어들었다. 

비록 여전히 짧은 치마를 입고는 있었지만 전처럼 극단적인 길이의 치마는 아니었다.


이슬이는 철하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다시 빙그레 웃는다.


“왜 그래?”


“아냐…. 수업 들어가자….”


철하는 침착하게 말하며 돌아서서 걷기 시작한다. 

예전의 철하 같았으면 말을 더듬으며 당황했겠지만 이젠 어수룩한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이슬이는 돌아서서 걸어가는 철하의 팔에 스스럼없이 팔짱을 낀다. 

1학기 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왠지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다. 

잠시 멈칫하는 철하였지만 굳이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이슬이가 예전처럼 밝은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라면 자신에겐 충분히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철하는 이슬이를 한번 바라보자, 이슬이는 자신을 바라보며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고양이 같은 눈매가 효린의 눈매와 많이 닮아 있어서 효린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어 효린의 모습을 지웠다. 그리곤 웃으며 말한다.


“돌아 왔구나 너….”


이슬이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헤헤. 나는 이런게 어울리니까.”


*


이슬이는 철하에게 좋아한다고 말을 한 이후 1학기 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웃으면서 장난을 치고, 특히 철하와 있을 때는 1학기 때처럼 스스럼없이 장난을 쳤다. 

친구들 모두 다시 활발해지고 밝아진 이슬이를 보며 좋아했지만 이번에는 받아주는 철하가 문제였다.

 2학기 때의 이슬이처럼 웃지도 않고 상대도 안하던 모습은 아니었지만 전 보다 많이 침착해지고 조용해진 편이었다.

하지만 이슬이는 아랑곳없이 철하에게 잘 대해 주었다. 

이제 과내에서 이슬이와 철하가 사귀는 줄로 알게 되었다. 

철하는 굳이 그런 소문들을 지우지 않았다.


한껏 밝아진 이슬이의 분위기 탓에 철하, 진원, 지희, 이슬은 예전처럼 다시 재밌게 어울리게 되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강의가 모두 끝나고 함께 내려가던 도중 이슬이가 제안을 했다.


“얘들아! 우리 오랜만에 술 마시러 가자!”


이슬이의 말에 모두들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슬이의 생일 때문에 모인 것을 빼고는 넷이서 제대로 된 술자리를 가진 적은 무척이나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넷이 도착한 곳은 1학기 때 자주 가던 학교 앞의 작은 술집이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자 지희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한다.


“여기 되게 오랜만에 와본다.”


지희의 말에 진원이도 주위를 한번 둘러보곤 말했다.


“그러게…. 아 그리고 이 자리…. 우리 이 자리에서 진실게임 했었는데.”


진원이의 말에 셋은 깔깔거리며 맞다고 말했다. 한참을 웃던 도중 이슬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진원이와 지희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너네…. 그때 이미 서로 좋아하고 있었지?”


이슬이의 말에 지희가 손을 웃으며 휘휘 저었다.


“하하. 아냐…. 서로 좋아한건 맞는데 모르고 있었어. 나중에 알았어.”


지희의 말에 철하와 이슬이는 우하며 야유를 보냈다.


“정말 오랜만이다. 그리고 시간 참 빨리 갔네….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1학년이 끝나가다니….”


가만히 있던 철하의 아저씨 같은 말에 다들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생각해보니 정말 엊그제 같던 일이 오래전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들 철하의 말에 감상에 빠져버렸다.

오랜만에 다들 웃으며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철하는 이런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1학년에 처음 들어와서 느꼈던 친구들과의 우정…. 

정말 오랜만에 느낀다고 생각했다.


다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마시는지라 간만에 다들 취할 수 있었다. 

술집에서 나온 넷은 너나 할 것 없이 비틀 거리며 큰 소리로 웃었다.


진원이와 지희는 같이 버스를 타고 철하와 이슬이만 남겨지게 되었다. 

이슬이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철하에게 다가가 팔짱을 꼈다. 

철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이슬이를 굳이 밀어내지 않았다.

둘은 그렇게 팔짱을 낀 채 지하철역까지 갔다. 

지하철 역 계단을 내려가 카드를 찍고 서로 헤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 

서로 반대편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기 때문이었다.


이슬이는 철하의 팔짱을 꼭 낀 채 보내주질 않았다.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신발만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이슬이가 이윽고 고개를 들며 철하에게 말했다.


“철하야…. 나 너네 집에 가도 돼?”

“뭐? 왜, 왜?”

“뭐 그냥…. 가고 싶다….”

“그, 그래 그럼….”


철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뒤 이슬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자신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둘은 왠지 모를 어색한 분위기와 함께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철하의 자취방까지 오게 되었다.


철하는 자취방에서 이슬이와 마주 앉게 되자 그녀와 단 둘이 한 방에 있는 것은 오늘이 처음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슬이를 슬쩍 바라보자 빨간색의 반코트를 따뜻하게 입고 검은색의 짧은 주름치마 때문인지 

다리를 가지런히 모은 채 손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철하는 검은색의 짧은 주름치마 아래로 드러난 이슬이의 새하얀 허벅지 때문에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철하의 머릿속에 자취방에서 효린과 함께 했던 나날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러자 막연히 일어나던 긴장감과 흥분감이 사라지고 다시 효린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만이 살아나게 되었다.

이슬이는 가만히 자신의 손가락만을 만지작거리다가 철하의 표정을 슬쩍 보니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해 보였다.

이슬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철하도 얼떨결에 따라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슬이는 빙긋 웃는다.


“헤헤…. 역시…. 아직 안되겠지?”


거기까지 말한 이슬이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애꿎은 바닥을 툭툭 찼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들어 방긋 웃는 얼굴로 말했다.


“천천히 마음 열어도 돼…. 나도 천천히 다가갈게.”


말을 마친 이슬이는 철하에게 기습적으로 다가가 목을 껴안으며 살짝 입맞춤을 했다. 

얼떨결에 기습뽀뽀를 당한 철하는 황당한 눈으로 이슬이를 바라봤다.

재빨리 철하에게서 떨어진 이슬이는 반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말했다.


“가자. 나 버스 타는데 까지 데려다줘.”


두 사람은 추운 밤바람을 맞으며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걸어갔다. 

철하는 요즘 들어 이슬이와 다시 사이좋던 예전의 사이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 어색함은 2학기 내내 사이가 안 좋았던 감정이 아니라 무언가 부끄러운 감정 같은 느낌이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 이슬이가 고맙다며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슬이가 타고 갈 버스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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