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학창물야설) 그의 대학생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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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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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로



“걱정 마세요. 엄마.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학교도 열심히 다닐게요.”


철하는 짐을 챙겨 서울로 올라가는 자신을 붙잡으며 우시는 어머니를 다독였다. 

아들의 씩씩한 말에 어머니는 애써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어머니에게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아들을 먼 서울로 홀로 올려 보내기가 무척 가슴이 아프신 모양이다.

철하는 그런 어머니를 웃음으로 위로한 뒤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곧 버스가 출발하기 시작하였고, 손을 흔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점점 작아져 갔다.


차창 밖으로 자신이 살았던 고향의 풍경들이 하나씩 스쳐 지나가기 시작하자 철하는 깊은 감상에 빠졌다. 

어릴 적부터 시골 촌구석에서만 자라온 철하에게 서울에 있는 대학교 합격은 놀라운 소식이며, 기쁨이었다.  

비록 서울 변두리의 최하위권 대학이긴 하지만, 기대도 하지 않았던 

그였다. 몇 차의 추가합격자를 거른 끝에 막바지에 겨우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집안 사정은 어렵지 않은 형편이기에 가족들도 모두 축하해주었고, 서울에 자취방을 얻어 철하 혼자서 대학생활을 하기로 동의하였다. 

가족 모두들 어릴 적부터 어른스럽고, 혼자서 일 처리를 잘해나가던 철하를 믿은 것이었다.

그렇게 철하의 서울행은 결정이 난 것이었다.


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두 번의 휴게소를 들리고 철하는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울은 난생 처음 와보는 철하였다. 

그에게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자신이 살던 시골의 가장 큰 오일장의 규모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사람들 모두 무슨 바쁜 일이라도 있는 듯 걸음을 재촉하고 있고, 무겁고 커다란 짐을 양손에 든 철하를 거추장스럽다는 듯 힐끗 쳐다보며 스쳐지나갔다. 

철하는 그런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빼어난 미모의 여자들이 사방 천지에 널린 것을 보고 감탄하였다. 


여태껏 여자한번 사귀어 본적 없고, 예쁜 외모를 가진 여자 한번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철하였다. 

그나마 자신의 누나인 윤하누나가 예쁜 편이었지만, 서울의 여자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모두들 부모님 몰래 다운 받아 보던 야한 동영상에나 나오는 여자들 같았다. 

게다가 늦은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리 짧은 치마들이 많은지, 철하는 십여분이 지나도록 터미널에 서서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지하철을 타고, 겨우 자신이 살 자취방에 오게 되었다. 

겨울의 짧은 낮 탓에, 자취방 앞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하늘이 어둑어둑해진 상태였다. 

친절한 주인아주머니의 안내로 들어간 자취방은 생각보다 깨끗한 편이었다. 

시골에서 인터넷으로 자취방은 모두 지저분하고 더러운 곳으로 알아본지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올라왔는데 생각보다 좋아서 다행이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좋은 수준의 자취방을 얻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철하였다.


집에 안부전화를 하고 방 청소와 짐정리를 하고 나자 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냉장고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집 밖으로 나오자, 한창 집안 정리를 하다가 나온 탓에 늦겨울밤의 추위가 여느 때 보다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시골에서와는 달리 서울의 겨울은 그리 춥지 않은 것 같았다. 


서울 생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랄까? 철하는 굉장히 들뜬 기분이었다. 

항상 서울 생활을 동경하며 살았던 그였다. 

게다가 신나는 대학생활과 함께라니! 정말 철하에게는 이보다도 환상적인 일은 없었다.

두 팔을 벌리고 맑은 겨울밤하늘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철하에게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렸다.


“쿡쿡.”


철하는 자신을 향해 날렸을 웃음이 분명한 그 소리를 듣고는 재빠르게 팔을 내렸다. 

그리곤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자 편의점 앞에서 청소를 하는 아르바이트 여학생이었다. 

허리를 숙여 열심히 빗자루질을 하면서도 한손으로는 입을 가리고 웃고 있었다.

철하는 무안한 마음에 얼른 그곳을 스쳐지나갔다. 

자신이 목표로 했던 편의점이었지만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다른 곳을 찾아 한참을 걸어 다녔다. 

그러나 이미 느지막한 시간이라 문을 연 가게가 없었고, 편의점도 그곳 하나뿐이었다. 

할 수 없이 동네 근처를 한 바퀴 돌고는 자연스럽게 아까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아까 자신을 보고 웃었던 여학생이 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였다. 

철하도 얼떨결에 반응을 하여 꾸벅하고 인사를 하였다. 

고개를 숙일 때 얼핏 쳐다보자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여학생이었다. 

한 갈래로 올려 묶은 긴 연갈색의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철하가 같이 인사를 해주자 여학생은 또 다시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은 채, 철하가 물건을 사는 것을 쳐다보았다. 

철하는 자꾸 그녀의 시선이 느껴지자, 시선이 닿지 않는 쪽의 진열대로 가서 쓸데없는 물건들을 집기 시작했다. 

신경을 쓰기 싫은데 자꾸자꾸 신경이 쓰인다. 

어릴 적부터 철하는 여자아이가 자신을 쳐다보면 몸이 굳으며 행동이 굼떠지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어김없이 철하의 버릇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참 물건을 고르던 철하의 품엔 어느새 한 아름의 물건이 들려있었다. 

그리고는 카운터에 물건을 내려놓자 여학생이 하나하나 바코드를 찍기 시작하였다.

여학생이 바코드를 찍는 동안 철하는 몰래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갸름하고 작은, 새하얀 얼굴에 오똑하게 솟아오른 이쁜 코. 립글로스를 발라 반짝이는 붉은 입술. 

그리고 바코드를 찍느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연갈색의 앞머리와 바코드 기계를 따라 왔다갔다 움직이는 자신을 쳐다보는 검은 눈동자.


“앗!”


철하는 그녀를 몰래 훔쳐보다 눈동자가 마주치자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녀는 눈을 찡긋거리며 귀엽게 입을 삐죽이더니 무신경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봉투 드려요?”

“예? 예엣.”


철하는 당황해하며 대답을 했고, 그녀는 봉투를 꺼내 물건을 담기 시작했다.


“삼만 팔천 사백원입니다.”


*


철하는 자취방으로 돌아와 물건을 방바닥에 던져놓듯 내려놓고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가슴이 두근두근 떨렸다.


“반짝반짝 빛나는 붉은 입술이 정말 예뻤는데….”


그날 밤 편의점 아르바이트 여학생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잠을 제대로 못 이룬 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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