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NTR야설) 아내 스토리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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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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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울었냐?"


"울긴 누가 울어. 추운데 있다가 따뜻한 실내로 갑자기 들어오니까  눈물이 고이는 거지. "


연두와 구석 자리에 앉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소주와 두루치기를 시킨 후에 우리는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연두야,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라 나 다 보았다. 성질 좀 죽여라... 며칠만 있으면 삼팔 광땡 되는 나이인데 그게 진짜 얼마나 창피한 짓이냐. 너 아는 사람도 많겠지만 신문사 직원들 거기 많았던 것 같은데, 황 차장님 지인들도 많은 텐데 상대방 얼굴에 그렇게 물을 끼얹으면 어떻게 하냐. 황 차장님이 호인이라서 참은 거지, 성질 더러운 새끼 같았으면 아마 네 머리끄덩이 잡았을 거다. "


나는 조금 오지랖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뭐  그냥 솔직한 내 심정을 연두에게 말을 했다.


"나도 후회해. 하지만,"


연두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멈추고 소주 잔을 원샷 해 버리고, 자신이 소주 병을 들어서한 잔을 또 연거푸 따라서 원샷을 하고 있었다.나도 아무런 대꾸 없이 그냥 내 잔에 소주를 따라서 원샷을 했다.오늘은 초장부터, 그러니까 1차부터 그냥 막 달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고 있었다. 솔직히 술이 당겼다. 나도 미친 듯이 취하고 싶었다. 미친 듯이 취해서 길바닥에 눕고 싶었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점점 더 망가지고 있었다. 마음이 아파서, 가슴 한 군데가 너무 아파서 나는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잠시 눈을 감았다. 연두가 한 잔을 더 원샷을 했고 나도 연두를 따라서 한 잔 더 원샷을 한 후에 눈을 감았다.


그 여름날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숙취로 술을 먹지 않고 있었고 아내도 분명히 숙취가 있었을 텐데 아내는 혼자서 술을 따라서 마시고 있는 상황이었다.내가 아내의 말에 미국에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는 말에, 너무 놀라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아내는 그런 나를 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아무리 큰 사과를 한다고 해도 당신에게는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짓을 나는 한 거예요. 그래서 끝까지 당신한테는 비밀로 하고 싶었던 거예요.

하지만 이젠 내 힘으로 당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겠다는 그런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에 가든 아니면 더 멀리 숨어버려도 당신은 내가 숨이 붙어있는 한은 날 찾아낼 것 같아요. 날 끝까지 쫓아올 것 같아요. 그래서, 래서 다 털어놓을 수밖에 없어요 "


"더 이상 자세히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너무 미안하고, 난 당신에게는 항상 받기만 했었는데."

"   "


나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그런 상상을 안 했었던 것이 아니었다. 미국에 누군가가 아니 솔직히 내가 상상을 했었던 것이 아니었다. 전 연두가 홧김에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때 설마설마하면서 나도 그런 상상을 아주 조금 했었던 적이 있기는 했었다.


"피는 못 속이나 봐요. 스물여섯에 그 애를 낳고 나서 난 그 애를 버렸어요. 내 친모를 그렇게 원망했었는데 나도 똑같았어요. 나는 그 애를 버리고 미국에서 도망을 쳤어요. 한국으로 도망을 쳤어요. 그리고 일 년 넘게 그 애를 볼 수가 없었어요."


아내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냥 우는 게 아니라 아예 그냥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다행스럽게 아이는 좋은 가정을 만나서 양부모가 잘 키워주고 있지만 형편이 좋은 가정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시켜줄 수가 없어요. 아니, 공립 교육은 그렇게 받는다고 해도 미국의 대학교 학비는 우리가 상상을 할 수가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한국 대학 학비도 비싸다고 하지만 미국 사립 대학들의 학비는."


아내는 말을 멈추고 눈물을 닦았다.


"그 애는 내 존재도 모르지만, 내가 자기 친모인 줄도 모르고 있겠지만, 난 아이를 낳자마자 버린 인간도 아닌 천륜을 거스른 쓰레기지만 그 애의 미래를 위해서 적어도 교육 기회는 만들어주고 싶은 게 내 마음이에요 ."


"나도 싫어요. 나이 든 남자들 성 접대나 하고 그런 이교도 의식에 동원되는 내 몸뚱이가 싫을 때가 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그 애의 미래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난, 더 한 일도 할 수가 있어요. 난 이미 한 번 그 애를 버린 쓰레기잖아요 "


나는 반쯤 넋이 빠진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있었다.


"미국 사회에서 유색인종이 살아가기는 너무 힘이 들어요. 나도 미국에서 잠시나마 지내면서 그걸 너무 절실하게 느꼈었어요 ."


나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한숨을 쉬면서도 미국에서 동양인들도 나름대로 성공을 해서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아내가 너무 심하게 비약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런 상황에 안 맞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말을 이었다.


"그냥 차라리 나처럼 동양인이라면, 차라리 동양인의 피부색을 가지고 태어났으면 차라리 조금이라도 나았을지 모르겠는데 그 애는나와 피부색이 달라요."


하루를 더 잤다. 산에 올라가고 나서 딱 하루 아내와 관계를 가지지 않은 날이 있었다. 그게 바로 마지막 날이었다. 숙취가 완전히 가시고 아내도 술이 완전히 깨고 그런 후에 내려오기 위해서였다. 짐 정리는 나중에 다시 와서 하더라도 그냥 아내를 데리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냥 뒤에서, 아이 앞에 나서지 않고 그냥 뒤에서 아이가 잘 커가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면서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아이가 엇나가고 빗나가지 않게 미국 사회의 주류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수준 이상의 삶을 살 수 있게, 대학 졸업 후에 아이가 사회에 정착을 할 때까지만이라도 그렇게 뒷바라지를 해주고 싶다고 아내는 나에게 털어놓았다.


십 년을 예상한다고 했다. 절대로 아이 앞에 나설 생각은 없다고 그렇게 말을 하는 아내였다. 아이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렇게 십 년만 아이에게 모든 정성을 쏟은 후에, 그 정성이라는 것은 돈을 말하는 거겠지만, 그 정성을 쏟은 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아마 사십 대 중반 이후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정도를 예상한다고 했다.


그 십 년 이후에 내가 만약에 혼자라면, 전 연두하고도 잘 안되고 다른 여자도 만나지 않고 만약에 혼자일 경우에는 내 식모 노릇이라도 하면서 남은 인생 평생 속죄하면서 잘못을 빌면서 살아가겠다고 나에게 말을 하는 아내였다. 예전에 아내와 십 년의 긴 시간 동안 헤어져있었는데, 그 십 년을 딱 한 번 더 떨어져 있겠다고 나에게 어렵게 말을 하는 아내였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전연두가 예상했었던 그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아내는 미국에 아내와 피부색이 다른 흑인 혼혈 아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는 말을 잃은 것 같았다. 그 순간에는 말이다.

아내가 그 아이에 대한 금전적인 지원을 시작한 것은 채 5년이 안 된다고 했다. 나와 결혼을 하기 얼마 전, 그때부터 시작을 했다고 했다.

그전에는 그럴 생각도 못 했었고 돈을 버는 족족 자신과 함께 자랐었던, 자신과 자매 형제처럼 자랐던 그 할머니의 식솔들이 다들 어렵게 살아서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자신에게 시도 때도 없이 손을 벌렸다고 했다.


할머니에 대한 원망은 있었지만 할머니가 대학 때 허망하게 돌아가신 후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었던 것이 너무 후회가 되어서 할머니가 남긴 그 애들에게 모질게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형제 중에 몸이 많이 아픈 두 살 어린 동생이 한 명이 있기에, 어릴 때부터 친언니처럼 자신을 따랐던 두 살 어린, 결혼을 하지 못한 여동생이 있기에 그 애 치료비를 아내가 거의 다 부담했었다고. 그래서 돈을 많이 모을 수가 없었다고, 그 애들이 빌려 간 돈만 해도 억대가 넘어가는데 말은 빌려 간다고 해놓고 갚은 애들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미국 출장 길에, 미국 본사 출장 길에 그 애를 몇 년 만에 다시 찾아서 먼발치에서 보게 되었고, 그 애 때문에 다시 눈물을 흘리게 되고 금전적인 도움을, 그 애를 위해서 뭔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그게 불과 5년 정도밖에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전에는 애가 너무 어려서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었다고 했다. 그냥 도망치기만 급급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내는 미국 본사의 오너와 한국의 조나단 사장과의 관계, 그리고 그들과 자신과의 충격적인 관계를 나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스물넷에 그렇게 다시 미국에 가서 스물여섯에 애를 낳고 도망치듯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의 삶들, 그것들을 아내는 나에게 다 털어놓았었다. 산에서 집까지 가는 차에서 아내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모두 털어놓았고 나는 단 한 마디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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