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NTR야설) 아내 스토리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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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뒤로 저만치 떨어져 있는 칼을 집어 들지 않고, 그냥 가만히 방어 자세만 취했다.

나는 칼을 집어 들지 않을 생각이었다. 상사와 싸우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빨랐다. 나이가 들어도 그 스피드는 여전했다.

똥배조차 나오지 않은 날렵한 몸매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상사였다.

나 정도의 중키에 다부진 체격, 그리고 번개같은 동작에 나는 얼어붙고 있었다.

그의 스피드에 압도되었다기보다는, 그는 나보다 무조건 강하다는 그 본능적인 공포감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그 본능이 나를 무너트리고 있는 것 같았다.


팔이 아팠다.

팔에 큰 통증이 전해지고 있었다.

상사가 나에게 칼을 들고 달려들면서 몸을 띄워서 날라차기로 내 가슴팍을 공격했지만, 나는 간신히 두 손을 모아서 그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막아냈다는 것은 그의 발로부터 내 가슴이 직접 타격되는 것을 막은 것뿐이지 그 충격은 가슴을 가린 두 팔이 고스란히 범퍼 역할을 해버린 상황이었다.

팔로 막았지만 나는 뒤로 벌렁 자빠져버렸다.

자빠지면서 생각을 하니 실력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공포심이 문제였다.


상대는 오십이 훨씬 넘은, 나이가 오십 보다는 육십에 더 가까운 중늙은이였다.

게다가 폭력적인 인간이었다.

십수 년 만에 만난, 자신이 가르친 제자나 다름없는 사람에게 반가운 인사는 커녕, 칼을 집어 던지고 날라치기로 환영인사를 하는 인간이었다.

저런 인간은 대접해줄 필요가 없었다.


아까 김학중과 겨루던 나무봉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저만치에는 단검도 떨어져 있었지만 나는 그걸 줍지 않았다.

내가 피를 보든, 저 상사가 피를 보든, 어찌되었든 날카로운 칼날이 허공을 가르게 되면, 우리 둘 중의 한 명은 피를 보게 될 것이 분명한 사실이었다.


상사는 나에게 겁만 주려고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생각이 바뀌었다.

오늘 이 건물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여태까지 생각이 열두 번도 더 바뀐 상황이었다.

김학중이를 만난 이후에 이 회사, 이 건물 오너인지 바지사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이디 파이넌스 앤 인베스트먼트의 대표인 조나단 크레이들을 오늘 만날 생각이었다.

사진으로는 보았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남자, 나는 그 남자를 만날 생각이었다.


나는 이를 악 물었다.

주먹도 꽉 쥐었다.

상사에게 이기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었다.


나무봉을 흔들었다.

상사가 나에게 칼을 든 채로 다시금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공포감을 떨쳐버리려고 노력을 했다.

나이도 내가 젊고 아무리 왕년에 날고 기던 상사라고 해도, 아무리 칼의 귀신이라고 불리웠다고 해도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었다.

흔히 사람들이 쓰는 말 중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보다는, 나이가 깡패라는 말의 신뢰성이 더 높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였다.


상사의 칼놀림이 보였다.

나를 찌르거나 베기 위한 공격이 아니라 계속해서 나를 겁을 주려고 하는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칼로는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칼로 기선을 제압한 후에 발과 손으로 나에게 공격을 하는 모션을 취하고 있었다.

맨 손으로는 상사가 휘두르는 칼을 피하는 게 어려웠다.

칼에 집중하면 몸에 헛점이 생겨서 손과 발로 무차별 공격을 당할 수가 있었다.


나는 나무봉으로 칼을 막으면서 달려들 생각이었다.

나는 기회를 엿보면서 최대한 나무봉을 이용하고 있었다.

김학중이가 싸우자고 집어 든 나무봉이 나에게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기회를 보고 있었다. 

내가 공격을 다 막아버리자 상사가 칼을 왼손으로 옮기면서 리버스 그립으로 칼을 휘두르는 찰나에 상사에게 달려들었다.

훈련을 받으면서 개처럼 얻어맞으면서 저 상사가 우리에게 했었던 말이 있었다.

간첩하고 머리 끄댕이 잡고 싸울 것이냐는 그런 빈정거림이었다.


두 수 혹은 세 수 안에 끝내지 못하면, 

너는 간첩에게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하면서 진짜 개처럼 우리를 두들겨 팼었던 상사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까 그 말은 정말 명언이었다. 내 경우에 지금 그 말을 대입해야만 했다.


방법 없었다. 나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두 수 혹은 세 수 안에 끝내기 위해서는 육탄돌격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원래 이렇게 계획 없이 좌충우돌로 사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내 때문에 받은 충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지금 많이 변해 있었다.

나에게 내일이 없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내와의 사이에 자녀가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내가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내가 없으면 나에게도 내일이 없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왼손으로 칼을 옮긴 이유는 간단했다.

오른손으로 나에게 치명타를 입히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칼을 잡지 않았기에 이정도지 내가 만약에 칼을 잡았으면 내 몸을 찌르지는 않았더라도, 

내 옷 정도는 칼을 이용해서 갈기갈기 찢어놓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무봉으로 상사의 왼손 리버스 그립 공격을 막으면서 파고 들어갔다.

나같이 콤파스가 짧은 사람은 그저 무조건 인파이트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오른손 손날이 날라오고 있었고 나는 그걸 오른손 팔꿈치로 막으면서 더욱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상사와 내 몸이 일 미터 이내로 최대한 좁혀진 상태가 되었고 나는 오른팔의 팔뚝에 강한 통증을 느끼면서 상사의 발목을 공격했다.


유도의 모두걸기와 흡사한 기술이었다.

와사바리라는 일본식 표현으로도 널리 불리고 있는 그런 흔한 기술을 상사에게 썼고 상사는 기우뚱 하더니 매트 위에 넘어져버렸다.

예전의 그였다면 이런 허술한 공격에 절대로 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이제 늙었다.

넥타이 맨 채로 누구랑 이렇게 싸운단 말인가 


바닥에 쓰러지는 그의 팔을 꺾어서 칼을 빼앗았고 체력단련장의 제일 끝부분으로 그 칼을 던져버렸다.

후속공격이 이루어지면 상사는 부상을 당하겠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만해, 백하사 제발 "


이종태가 소리쳤다.

상사가 이렇게 허무하게 당할 것이라고는 이종태 역시 생각하지 못 했을 것이다.

상사도 아까 김학중이처럼, 어느새 멀쩡하게 일어서서 나와 상사의 대결을 멀뚱하게 지켜보고 있는 김학중이처럼 어디 한 군데 다친 곳이 없었다.

와사바리를 걸면서 강하게 찬 게 아니라 무게중심만 무너트린 상황이기 때문에 발목도 거의 아프지 않을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나는 나무봉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바닥에 누운 채로 나를 째려보는 상사의 시선을 피했다.

싸우고 싶지 않았다.


공포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는 진짜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김학중도 이종태도 그리고 상사까지, 모두 아내에 대해서 잘 아는 눈치였다.


"이종태, 할 이야기가 있다. 잠시면 된다 "


나는 이종태를 아까 들어왔었던 체력단련실 복도로 데리고 나갔다.

김학중과 상사는 감히 따라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종태에게 뭔가를 부탁했다.

이종태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종태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한 번만 도와주면 그 은혜 평생 잊지 않겠다고,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복잡하게 그리고 시끄럽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런다고 이종태에게 부탁을 했다.

이종태는 나에게 뭔가를 말하면서 내 손에 뭔가를 쥐어주었다.


* * *


엘리베이터를 타고 18층에 내렸다.


컴컴했다.

불이 꺼져 있었다.

복도 전체가 어두웠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이종태에게서 받은 아이디 카드를 유리문에 대었다.

유리문이 열렸다.

이종태를 때리고 몰래 빼앗은 것으로 그렇게 하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종태는 어렵게 동의를 해준 상황이었다.


나는 복도 끝으로 갔다.

그리고 빨간색 문에 손을 대었다

역시나 굳게 잠겨 있었다.

문을 부수는데 가장 좋은 도구는 빠루였다.

하지만 빠루가 없다면 어느 공공장소 복도에나 비치되어 있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 차선책이었다

그것 역시 훌륭한 도구가 되니까 말이다.


나는 어두컴컴한, 하지만 대충 어렴풋이 사물이 보이는 정도인 복도에 여러 개가 놓여있는 소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 소화기로 빨간 문의 문고리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강하게 딱 한 번 그렇게 힘을 집중했고 문고리가 부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 문이 하나가 더 있었다.

마치 비서실 같이 빈 책상과 의자가 있었지만 사람이 없었다.


나는 잠겨있지 않은 안의 문을 열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아내가 있었다.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손에 무기가 될 만한 것을 들고 있지는 않았지만, 압박붕대는 여전히 감고 있는 상황이었다.

압박붕대가 감겨 있으면 내가 누군가의 공격을 방어한 후에 반격을 할 때, 공격의 강약을 조절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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