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짐승 계약 #외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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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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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세양그룹의 몰락은 곧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희민의 일상도 평온을 되찾았다. 

김지훈이었던 정혁이 AQ그룹의 회장인 것이 드러나며 이쪽 세계가 다시 시끄러워졌지만 그것도 곧 잠잠해졌다.



정혁은 세양을 인수한 뒤 더 바빠져 눈코 뜰 새 없었다. 

하지만 늦더라도 집에는 꼬박꼬박 들어왔다. 

다른 사람과 식사하는 걸 즐기지 않는 그는 늘 희민과 함께 늦은 저녁 식사를 한 뒤 느긋하게 욕조에 몸을 담그는 소박한 행복을 즐겼다.



커다란 욕조 안에서 정혁의 몸 위에 느른히 누운 희민이 샴페인을 한 모금 마셨다. 

두 사람이 눕고도 충분히 여유가 있을 정도로 거대한 욕조의 용도가 이런 것인 줄은 그 전까진 몰랐었다. 

하지만 정혁이 이 시간을 즐기는 걸 알기에 기꺼이 응하고는 했다.



“회사 이름은 계속 세양으로 놔둘 거예요? 대중들한테 이미지가 안 좋아졌는데.”



욕조 옆 사이드 테이블에 샴페인 잔을 내려놓은 희민이 물었다.



“당신 생각은 어떤데.”



뒤에서 희민의 침대가 된 것처럼 누운 정혁이 물속에서 매끄러운 그녀의 피부를 매만졌다.



“세양이라는 이름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아니면 이대로 남아서 다시 이미지 회복을 한 뒤 과거의 영광을 되찾길 원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은 희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동안 조용히 있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요.”



생각해 보니 기분이 복잡했다. 

한때는 삶의 전부였고 또 한때는 끔찍하게 증오스러웠던 세양그룹이 어떻게 되길 바라는 건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 

총수 일가가 전부 구속되면서 정혁의 소유가 된 지금은 그때의 증오는 사라졌지만 섣불리 말하기가 어려웠다.



정혁이 뒤에서 그녀의 동그란 어깨를 입술로 지그시 눌렀다.



“현직 임원들은 세양을 어떻게든 살리길 바라고 있어. 어찌 됐든 대부분의 임원들로선 그들의 평생을 바친 직장이니.”



그게 어떤 기분인지 희민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만약 그대로 세양에서 계속 승진하며 지금까지 잘 지내 왔다면 세양은 그녀에게도 절실한 존재가 되었을 거였다.

희민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정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중역 회의에서 당신을 세양의 임원급으로 다시 기용하자는 말이 나왔어.”


“나를요?”



희민이 멈칫거렸다. 그가 희민의 어깨에서 입술을 떼고 단단한 턱을 가볍게 얹으며 말했다.



“얼마 전 매스컴을 많이 타면서 당신에 대한 동정심이 대중에게 퍼진 상황이니 그걸 이미지 회복 발판으로 이용하자는 심리지.”



정혁이 하는 말의 의미를 희민은 곧바로 이해했다. 

세양 총수 일가에게 모함당한 억울한 피해자에게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회사는 그 기회를 잡아 이미지 변화를 꾀하려는 거였다. 

정혁 역시 그 사실을 숨김없이 그녀에게 말하는 이유는 모든 걸 다 감안해서 판단하라는 의미였다.



“…….”



희민이 말없이 샴페인 잔만 만지작거렸다. 그런 그녀의 손을 정혁의 커다란손이 가만히 감쌌다.



“최종 결정은 내가 하니까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고민해 봐. 어떤 선택을 하든 난 당신 의견에 따를 거니까.”


“당신은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그녀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제 손 위를 감싼 정혁의 손을 응시하며 물었다.그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잠시 입을 다물고 그가 말을 골랐다. 습관적으로 미간을 좁힌 정혁이 이내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음, 어렵군. 난 그저 당신이 더 행복한 쪽으로 선택했으면 좋겠어.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응원할 거고.”


“그게 정혁 씨의 솔직한 심정?”


“그래.”



정혁이 희민의 목덜미를 핥으며 보드라운 젖가슴을 감싸 쥐자 희민이 간지러운 듯 웃음을 흘렸다.



“그럼 내 행복만을 기준으로 생각해 볼게요.”


“그렇게 해.”



정혁이 한 손으로 가슴을 주무르며 다른 손으로 그녀의 고개를 돌리게 한 뒤입술을 달게 빨았다.



“으음…….”



샴페인 맛이 느껴지는 물컹한 혀가 야릇하게 얽혀 들었다. 점점 진해지는 키스에 휩쓸리며 희민은 생각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



다음 날 아침 정혁이 슈트 차림으로 드레스룸에서 걸어 나왔다. 



희민은 침대위에 누운 채 그의 모습을 바라봤다. 

매일 보는 모습인데도 그의 슈트 차림을 보면 희민은 가슴이 떨리곤 했다. 

특히 지금처럼 자신은 헐벗은 상태에서 정혁만 완벽하게 차려입은 모습을 볼 때는 더 그랬다.



커프스단추를 채우는 그의 모습을 감상하듯 보고 있는데 정혁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시트로 벗은 몸을 감싼 채 옆으로 누워 있는 그녀에게 다가온 그가 한 손으로 매트리스를 지탱하고 고개를 숙였다.

밤새 물고 빨았던 입술을 다시 부드럽게 빨아 낸 뒤 놔 준 정혁이 가까운 곳에서 시선을 맞췄다.



“…….”



그의 눈이 열망으로 진해져 있었다. 

그녀를 두고 출근할 때마다 늘 하는 일인데도 이 뜨거운 눈동자를 볼 때마다 희민은 마음이 설레인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진한 열기를 머금은 눈과 시선을 맞추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오늘부터 클래스 다시 나간다고 했지. 태워 줄게.”



전에 지나가듯 한 말을 정혁이 기억하고 있어서 희민은 내심 조금 놀랐다.



“괜찮아요. 아직 시간 여유 있어서 천천히 준비하려고요.”



그녀의 말에 그의 미간이 살짝 좁혀 들었다.



“차에서 조금 더 보고 싶었는데.”



못마땅하게 말한 그가 다시 입술을 삼키려 하자 희민이 후후 웃으며 베이비키스를 했다. 

촉, 소리가 나도록 가볍게 부딪치고 떼어 낸 희민이 정혁의 얼굴을 매만졌다.



“당신은 어서 준비해요. 늦겠어요.”



사랑스러운 그녀의 미소에 홀린 듯 그가 시선을 떼지 못하고 바라봤다.



“오늘 회의 있잖아요.”



부드러운 채근에 정혁은 그제야 고개를 물렸다.



“……일찍 들어올게.”



아쉬움이 맺힌 그의 얼굴을 희민이 입술에 미소를 매달고 바라봤다. 

한집에 살면서 같이 있는 시간에도 계속 아쉬워하는 정혁을 보면 매일 사랑받고 있다는 실감이 들곤 했다.

예전의 그 표현력 없는 남자는 어디 간 건지 끊임없이 그녀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는 그를 볼 때면 지금처럼 행복한 웃음이 속절없이 얼굴 가득 퍼지곤 했다.



나른하게 침대 위에 누운 희민은 정혁이 출근 준비를 마치고 침실을 나갈 때까지 그를 바라봤다. 

침대 위에 그녀를 두고 출근할 때마다 크나큰 고뇌에 빠지는 그의 얼굴을 보는 건 늘 즐거웠다. 

정혁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잘 다녀와요.”



오늘도 미련을 뚝뚝 흘리며 방을 나서는 정혁을 향해 희민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줬다.



***



정혁이 출근한 뒤 희민이 준비하고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운전비서가 다가왔다.



“어디로 모시면 될까요?”


“병원으로 부탁해요.”



경호원 역할도 하는 운전비서가 문을 열어 주자 차에 올라타며 희민은 순간이 패턴에도 익숙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엔 낯설어서 혼자 운전하고 다니는 게 편하다고 몇 번 정혁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운전하는 차 뒤로 경호원 차량이 따라오는 걸 보고 그냥 최소한의 인원으로 타협을 보기로 했다.



차 뒷좌석에서 창밖을 보며 희민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제 들었던 정혁의 제안은 예상하지 못했던 만큼 그녀 내부에 보이지 않는 큰 파동을 만들고 있었다.



‘이젠 그런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인생의 나락에 떨어진 뒤 다시는 그 반짝반짝하던 한희민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완벽하게 복수하게 될지도 몰랐지만, 복수가 이루어진 다음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실 3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까마득한 오래전의 일처럼 느껴져서이기도 했다.



그땐 회사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다. 

누구보다 성공하고 싶었다. 

아픈 엄마가 최고의 의료 케어를 받을 수 있는 돈도 필요했고, 명예도 필요했다. 

솔직히 회사에서 억울하게 퇴사당했기 때문에 그동안 노력한 시간들과 자신이 쌓아 온 것들이 아깝게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매번 바쁘게 무언가에 쫓기는 삶에는 장단점이 있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지금,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지 희민은 제 마음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엄마는 괜찮을 것 같은데?”



희민의 고민을 들은 서희는 의외로 쉽게 대답했다.



“하지만…….”



가볍게 입술을 물었다 떼어 낸 희민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서희의 말처럼 가볍게 생각하기엔 자신의 마음이 너무나 복잡한데, 그걸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이고 있자 서희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지금의 넌 그때와 달라졌어. 다시 일상이 바빠진다고 해도 그때처럼 성과에만 집착하지 않을 거야.”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희민이 살짝 눈썹을 모으고 생각에 잠겼다. 말없이 고민에 빠진 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서희가 물었다.



“일,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아?”



희민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한편으로는 억울하게 뺏긴 내 커리어를 되찾고 싶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지금 와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도 싶어.”



“두려운 거야?”


“……이젠 그때처럼 못 할까 봐 겁나기도 한 것 같아.”



희민이 솔직한 심정을 말하며 웃었다.



“그땐 다른 건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빨리 출세하기만을 바랐어. 그래서 매일을 일에만 매진했는데…….”



자그맣게 한숨을 뱉어 낸 희민이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이젠 그 정도의 절박함이 없으니 그때처럼 못 할까 봐. 그게 두려워. 그 전의 나와 스스로 비교당하며 살 자신이 없어서.”



딸의 말을 듣고 있던 서희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희민아. 저 꽃들 좀 봐.”



서희가 가리키는 곳에 희민의 시선이 따라갔다. 

그녀가 창가 가득 늘어놓은 화병 속 화려한 꽃은 이젠 대부분 시들었지만 그 자리를 건강한 푸른 잎들이 싱그럽게 채우고 있었다.



“꼭 잘할 필요는 없어. 네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저걸 만드는 마음처럼 해 봐. 저 꽃들만 봐도 네가 얼마나 즐겁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거든.”



서희가 눈가에 다정한 주름을 잡으며 희민이 가져온 화병들을 바라봤다. 같은 곳에 시선을 두고 있던 희민이 작게 말했다.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막상 시작하면 또 성과에 집착하고 일의 즐거움은 뒷전이 될까 봐 걱정이 됐다. 

평생 성과를 내기 위해 살아오던 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그런 희민의 마음을 아는지 서희가 그녀의 머리칼을 가만가만 매만졌다.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 희민이 네가 하고 싶은 쪽으로.”


“응. ……그럴게.”



표정이 가라앉아 있던 희민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렸다. 

정혁도, 그리고 서희도 자신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마음이 따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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