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청춘예찬 28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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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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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지말자...나답지 않잖아.'


자신을 바로잡고 컴퓨터를 다시한번 들여다 보아도, 채윤은 좀처럼 집중할수 없었다. 이런일은 그녀가 살면서 처음있는 일이기도 했다. 집중하려고 애를 쓰던 채윤은 한숨을 쉬며 모니터를 꺼버렸고, 앞에 있던 책도 덮었다.

 


'조금만 눈좀 붙이고...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사실 그녀가 집이 아닌 다른곳에서 눈을 붙인 적은 없지만,지금은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미칠것만 같았다. 채윤은 살짝 책상위로 엎드렸다. 울지 말자는 맹세와 함께,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맑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티비에서나 등장할 법한 그런 곳에 승민과 하은은 나란히 앉았다. 

이제는 너무 이른 시간부터 어둑어둑해지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른 시간부터 켜진 네온사인빛이 눈망울에 반짝이는 하은의 모습은 너무나 이뻤다.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승민은 하은이 마음속에 어떤 슬픔을 갖고 있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여기 너무 맛있다. 그치?"

 

"아..응."


"남자친구 생기면 꼭 와보고 싶었거든."

 

"그렇구나.."


승민은 희미하게 웃었다. 하은 역시 그를 보며 웃어주다가 약간 남은 음식들을 포크로 살살 건드리기 시작했다. 둘사이에 처음으로 적막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나...지금 이시간이 꿈만 같아."


승민은 살짝 고개를 들어 하은을 바라보았다. 꿈꾸는 소녀처럼, 그녀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냥...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사귀고, 같이 있는 이 시간이 꿈같애. 처음에는 그냥 보기만 해도 좋았고, 어쩌다 보니 고백도 했고...지금은 이렇게 같이 있고..."



"나도야...나도 좋아."


"정말이니?"


"응?"


"정말...너도 좋아?"


"무슨뜻이야.당연히 좋아."


하은은 승민의 대답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계속 사랑하면서...내가 채윤이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거니?"


그녀의 질문에 승민은 앞에 놓인 물을 한모금 들이켰다. 그녀를 향해 걸어오면서 수십번이고 가슴속에 되뇌였던 그 말. 그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사실...다른 감정을...느꼈었던것 같아. 근데 그걸 너에대한 미안함때문에...스스로 부정했어."


하은의 손이 희미하게 떨렸다. 승민은 그녀에게 죄를 짓는거 같아 미안함이 몰려왔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그녀의 앞에서 채윤과의 이감정을 토로한다는 것은 승민이게 있어서 고문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대로 영원히 그녀를 속이고 살순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그녀에게 더 나쁜짓을 하는것이기 때문이다.

 


"그...랬구나."


하은은 애써 눈물을 참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채윤을 인정해 버리고 나서야, 승민은 비로소 후배였던 그녀가 자신의 마음속에 얼마나 들어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면....노력해..줄수는 있니? 나만 좋아해 주는거."


승민은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여자로써 그 얼마나 꺼내기 힘든 말일까. 것도 하은정도의 여자가, 여자로써의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의 사랑을 구하고 있었다.

짝사랑이라는 편중된 사랑을 무지하게 겪어봤던 그로써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한사람을 애타게 바라보는 그 마음.그 사람이 무심코 던진말에 울고 웃으며, 상처받고 치유되는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그 안타까운 일상을.



"미안해.미안해 하은아. 그리고 노력할게."


승민은 여태까지 자신이 악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지만, 이토록 착한 그녀의 가슴을 울리게 한 지금의 모습이 정말로 악하게 느껴졌다.

 


"이런말..하는거 나쁜놈이라는 거 알아..하지만 나.."


승민은 말을 마저 잊지 못했다. 어느새 하은이 자신의 옆자리로 옮겨와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으로 보아, 승민은 그녀가 울고 있다는 사실쯤은 충분히 유추 할 수 있었다.

그가 할수 있는 것은 자신의 품에 안겨들어온 하은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려주는 것 뿐이었다.

 


"나...큰 맘먹고 말한거야 이바보야."


울먹이는 목소리로 웃으려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 승민은 오늘도 몇번이나 가슴이 찢어지는것을 느껴야만 했다.


-


'휴우....'



연구실에 어차피 가봐야 할거 같아 하은을 보내주고 돌아오는길. 승민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승민은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자신이 가을이와 사귀는 동안에도 중간중간 마음이 허했던 사실을. 연애경험이 없는 그인지라 그 감정을 캐치하지 못한것이었다.

어느덧 한채윤이라는 여자는 후배라는 벽을 넘어선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제는 지워야겠지.'

 


더이상 죄를 짓고 살순 없었다. 그것도 상대는 착하디 착한 하은이었다. 길을 가다가도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것도 모자라 틈틈히 공연을 해서 그 돈을 모두 기부까지 하는, 그야말로 천사같은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러지 말아야 했다.



"응?"


 

승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록 밤이었지만, 달빛을 받아 어스런하게 뿌연 기운이 학교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뭐야...축제기간도 아닌데...불꽃놀이라도 하는거야?'

 


서둘러 언덕을 오르던 승민의 눈이 등잔만큼 커졌다. 학생들이 연구실앞에 모여서 웅성대고 있었다. 걔중에는 비명을 지르며 발을 동동 구르는 여학생들도 있었다.

승민은 숨이 턱이 찰때까지 달렸다. 점점 연구실이 가까워져 올수록,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것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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