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창녀를 위한 소나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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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키스 테크닉 Ⅰ


불쾌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고 나서 미선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녀의 배다른 언니가 진희의 선배만 아니었어도 진희에게 시달릴 이유가 없을 터였다.


미선은 체질적으로 진희와 같이 고집스럽고 이기적인 성격을 싫어했다.

그것은 미선 자신이 진희의 성격을 능가할 정도로 강했기 때문이다.

미선은 자기가 원했던 것을 손에 넣어 보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널따란 침대에서 몇 번 몸을 뒤척였다.

이태리에 특별 주문을 해서 맞춘 침대였다.

일본으로 섹스 관광을 하러 러브호텔을 들렸을 때, 회전하는 커다란 원형 침대를 눈여겨보았던 덕에 마음에 드는 침대를 주문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 침대에서 섹스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지만, 이곳에 누울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드물었다.


어렴풋하게 동이 터 오고 있었다.

한숨을 쉬면서 시트를 밀어내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봉긋 솟은 하얀 살결의 가슴이 탐스럽게 흔들렸다.


그녀는 오늘 할 일이 무척 많았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칭얼대는 시아를 해결해야 했다.

미선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익숙하게 전화 버튼을 차례대로 눌렀다.


"오늘 한 여대생을 맡아줘야겠어. K 여대 도서관에 가서 뒤져봐. 그 애는 실버야. 네 마음대로 해도 좋아."


사냥감을 위한 덫은 충분했다.


그녀는 짧게 명령조로 말을 마친 다음 *표 버튼을 눌렀다.

음성으로 메시지를 남겨놓았으니 오늘 시아는 더 이상 그녀에게 달라붙지 않을 것이었다.


미선은 기지개를 크게 켜고 간단한 맨손 체조를 했다.

햇살이 조금씩 내리쬐었다.

발코니에 그대로 나가서 몸을 기대었다.

우유를 배달하는 청년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날 시간이었다.


"안녕?"


어김없이 그 시간에 우유를 배달하는 청년을 오늘도 볼 수 있었다.

청년은 그녀의 맑은 인사에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눈이 부신 하얀 나신이었다.

청년은 힐끔거리며 미선의 몸을 보았다.

그렇게 한눈을 파는데도 사고가 안 나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벌써 한 달이 넘도록 미선은 그에게 알몸으로 그렇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귀여워."


미선은 콧노래를 부르고 손을 흔들어 보이며 발코니를 떠났다.

청년은 오늘도 한참 동안을 아무도 없는 그녀의 발코니에 시선만 고정하고 있을 것이다.


시간을 점검하고 그녀는 주영에게 전화를 했다.

잠에서 덜 깬 듯한 나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선은 겉치레로 하는 인사는 생략하고 주영을 바꿔 달라고 말했다.


"제법 근사한 목소리네."


주영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미선은 주영의 남편 목소리를 음미하고 있었다.

눈여겨보았던 주영의 나약해 보이면서도 자극적이었던 군살 없는 몸매를 매일같이 어루만지는 게 바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니 질투가 밀려들고 있었다.


미선의 취향은 꽤 까다로운 편이었다.

진희나 시아 정도의 여자라면 주변에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주영은 뭔가 특별한 느낌이었다.

미선은 입맛을 다시고 고양이처럼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다.


"여보세요."


결코 편히 잠들었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미선은 연민을 느끼며 짤막하게 아침 인사를 했다.

수화기 저편에서 주영이 긴장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어제는 아무 일도 없었니?"

"...... 있었어."

"어떤 일인데?"

"그건."

"아! 내 정신 좀 봐. 말하기 곤란하겠구나. 내가 갈까? 아니면 네가 올래?"

"내가 갈게. 어디로 가면 돼? 그때 갔던 곳으로 나가면 되니?"

"아니, 내가 사는 곳은 그 빌라가 아냐. L 호텔 맨 꼭대기 층으로 와."

"응. 언제쯤 가면 돼?"

"아무 때나. 네가 원하는 시각에 오면 돼. 하지만 될 수 있으면 빨리 와. 널 보고 싶어."

"응."


고분고분하게 대답하는 목소리가 애틋하게 들렸다.


분명히 주영은 남편과 각방을 썼을 것이다.

여비서와 펠라티오를 즐긴 남편은 주영을 옭아매었던 장본인이었다.

그런 남자와 섹스를 즐기고 싶어질 정도로 주영은 뻔뻔한 여자가 못되었다.


`진희라면 태연하게 다리를 벌렸을 테지.`


비아냥거리며 미선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간단한 아침 식사가 호텔 주방장의 멋들어진 솜씨로 차려져 있었다.

미선은 눈으로 신문을 읽고 귀로는 아침 뉴스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호텔 지배인이 깍듯이 머리를 조아리며 들어와서 침실을 정돈할 때 그녀는 다시 발코니로 나가 바깥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가 평소에도 알몸으로 지낸다는 것에 지배인은 익숙했고, 그녀의 침실만큼은 손수 정리 정돈해주길 희망했었다.


그녀가 한강 변에 위치한 L 호텔을 사들였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격렬하게 반대했었다.

대기업의 총수인 그녀의 아버지는 저명한 인사답게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리만큼 의식하고 있었다.


인기 여배우와의 염문설을 뿌리다 그 여배우가 임신하자 지방의 별장에 숨길 정도로 매스컴을 두려워했었다.

그리고 여배우의 몸에서 미선이 태어났다.


"태생이 천박한 건 어쩔 수 없구나. 이게 무슨 짓이냐. 아버지 얼굴에 먹칠할 셈이냐."


아버지는 그녀의 존재 자체를 못마땅해했다.

그녀가 두 남자와 질펀한 섹스를 즐기고 있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불시에 습격한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호적에 올라가 있진 못해도 난 엄연히 당신의 딸이에요. 내가 아무리 당신을 증오해도 흐르고 있는 피까지 어쩌진 못하니까요.

떠들썩하게 친자 확인 소송이라도 하길 바라는 거예요?"


그녀의 아버지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에게 골칫덩이였지만 영악했다.

미선은 씁쓸하게 웃으며 발코니에 몸을 반쯤은 걸쳐놓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지배인."

"예."

"지금 로비에 내려가서 저 초록색 재킷을 입은 여자분을 정중히 안내해줘요."

"예. 알겠습니다."


환갑을 맞이하는 나이인데도 지배인은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고 머리를 조아리며 그녀의 지시에 따랐다.

쭈뼛 거리면서 주영이가 그녀의 방문을 열 때, 미선은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한껏 웃으며 두 팔을 벌려 포옹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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