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청춘예찬 29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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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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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유학간다고 했지...그랬지...'

 


화재사건 이후, 승민은 채윤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음을 인정해야 했다. 예전에는 하은과 있을때는 그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안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도 모르게 멍해져 있기도 한다. 지금도 아니라고 하고 있지만, 승민의 시선은 그녀가 있는것만 같은 도서관을 향해 있었다.

 


-오빠를 좋아해요...오빠가 와주기만을 기다렸어요.-

 


불타오르는 연구실 안에서, 그녀가 했던 말이 계속해서 뇌리에 맴돈다. 그것은 세상 어느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때만큼은 채윤은 이 학교 모든 남학생이 동경하는 '공대의 여신'이 아닌, 사랑을 원하는 이쁜 여자일 뿐이었다. 아직도 그녀의 촉촉한 입술의 감촉이 자신의 볼에 남아있었다.

승민은 자신도 모르게 하은이 걸어 준 핸드폰 줄을 꽉 움켜쥐었다. 지금의 이 설렘과 두근거림. 그녀에게 주고 싶어서 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감정을 속이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동기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고, 승민은 살짝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언가 망설이는듯 우물쭈물하는 기색이었다.

 


"왜그래?"


"저기...너..채윤이 소식은 들었냐?"


"무슨...소식 말하는 거야?"

 


승민이 벙찐 얼굴로 묻자 동기는 한참이나 망설이며 주저했다. 안에 둘 밖에 없는데도 그는 좌우를 살피기 까지 했다.

 


"너..병원에 있어서 몰랐을 거야. 채윤이...곧..미국들어가."


"뭐?"

 


승민은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어째서..어째서 이렇게 빨리란 말인가? 승민은 입원해 있을때 단지 하은이가 있기 때문에 채윤이 오지 않는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입원해 있는 사이 미국 갈 준비를 차근차근히 해놓았던 것이다. 승민은 모르고 있었지만, 채윤의 집안은 그녀를 충분히 며칠안에 미국을 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만한 힘이 있었다.

형준이나 채윤이나, 빵빵한 집안 덕분에 비자나 영주권 문제에 관해서 남들만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어..어디가?"

 


갑작스레 벌떡 일어나 웃옷을 챙겨입는 승민을 보며 동기가 당황하며 물었다. 승민은 대답할 겨를도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다급히 말했다.

 


"도서관에. 지금 봐서 이야기좀 해야겠어."

 


서두르는 그를 보며 그의 동기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더욱 주저하며 그는 별수 없다는 듯 그는 입을 열었다.



"에휴...채윤이가 말하지 말랬는데..."


"뭐가?"

 


막 문을 나서려던 승민은 '채윤'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황급히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모든걸 다 채념했다는 듯 그는 승민을 보며 침통하게 말했다.

 


"그 날이 바로 오늘이야. 오늘 밤 비행기라고."


 


-


"오빠!오빠!"



대궐같이 으리으리한 집. 한 여학생이 신경질 적으로 외쳤다. 잘빠진 다리에 가녀린 허리. 하얀 피부에 큰 눈을 가진 미인이었다.

세련된 펌 헤어는 그녀의 새침함을 더욱 돋보여주는 듯하다. 그녀는 바로 형준의 집안 유전자임을 증명하듯 이쁜 외모를 지닌 형준의 사촌동생 혜윤이었다.



"야 이 기지배야! 소리 지를 거면 니네 집가! 오라비 공부하신다!"



형준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빽빽 질러대었다. 이윽고 그의 방문이 열렸고, 집안인지라 짧은 치마에 나시티만을 입고 있는 혜윤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채 씩씩대고 대며 들어왔다.



"여자가 또 찾아왔다고!"


"또냐?"


"유학간다고 문자라도 돌렸냐? 왜 계속 여자들이 울고불고 찾아오는데?"


"아이 썅. 대충 핑계대. 죽었다고 그래."


"말이되냐? 그게?"

 


혜윤은 자신쪽은 보지도 않고 책에만 시선을 두고 있는 형준을 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빨리 나가봐! 나가서 직접 해명해.아주 귀찮아 죽겠어 정말."


"니미...이번엔 또 누구야...우리집 아는 여자 그렇게 많지 않은데..."


"꽤 귀엽게 생겼던데? 생머리에..."


"니미 생머리가 한둘이냐. 그냥 꺼지라 그래."

 


형준은 툴툴대며 귀까지 막아버렸다. 혜윤은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듯 소리를 빽하고 질렀다.

 


"난 놀러 온 거지 오빠 여자들 뒤처리하러 온 거 아니거든! 직접 가서해!"

 


문을 쾅하고 닫고는 나가버리는 혜윤덕에 형준은 짜증이 확 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신경질 적으로 담배를 한대 피워 물고는 창문을 열었다.

창밖으로 연기를 길게 뿜은 형준은 문득 대문 쪽을 바라보고는 살짝 표정이 굳어버렸다.


 


"최 봄..."

 


분명 그녀였다. 모자를 눌러쓰고 있긴 했지만, 형준이 다른 여자로 착각할리 없었다. 그 비오는 날의 이별 이후, 봄이는 처음으로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쳇...귀찮게 스리.'

 


형준은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아마 봄이의 존재는 형준에게 있어서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만큼 봄이는 조금은 특별했고, 그가 그동안 만나던 다른 여자들과 전혀 다른 매력을 갖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형준은 망설임 없이 창문을 닫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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