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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여인의 정사 - 14장. 최후의 심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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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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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천식 형사는 양혜숙의 살해 소식을 관할 파출소로부터 보고 받고 허탈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마침내 올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과 홍보옥이 기어이 복수를 모두 끝마쳤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홍보옥이 스스로 자수해 올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들었다.


그 동안 홍보옥에 대한 수사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져 온 것이 사실 이었다.

해가 바뀌어 1988년이 되자 정치권은 대통령 취임과 제 14대 총선으로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특히 제 14대 총선일이 공고되고 선거 유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세상의 이목은 온통 총선거에만 쏠렸다.


경찰도 어쩔수가 없었다.

수사요원까지 모조리 차출되어 유세장 폭력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뛰어야 했다.

이제 그 요란한 정치 행사가 절정에 이른 틈을 타 홍보옥이 복수를 한 것이다.


"현장에 가봐야 하지 않습니까?"


이형사가 충혈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들도 지난 밤 내내 국회의원 선거개표를 하고 있는 강동구청 주위에서 경계 근무를 하는 바람에 뜬눈으로 밤을 새운 것이다.


"가 봐야지."


최천식 형사가 무겁게 대꾸했다.

그도 피로하고 눈꺼풀이 자꾸 감겨왔다.

이렇게 되면 날이 밝아도 눈조차 붙이기 어려웠다.


"어차피 우리 일인데 서두르지요,"

"그래."


그는 이형사와 함께 사무실을 나왔다.

날이 훤하게 밝았는데오 봄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사건 현장은 거여동 당나무골 개천둑 비탈이었다.

강철구의 시체가 발견된 곳에서 불과 5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관할 파출소 순경들이 주위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으나 구경꾼들이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시체는 반듯하게 눕혀져 있었다.

가마니를 들추자 비에 젖어 부르튼 시체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옷이 벗겨져 알몸이나 거의 다름없는 여자의 아랫배에 선혈이 낭자했고 채찍으로 얻어 맞은 듯한 상처가 수없이 많았다.


"끔찍한데요."


이형사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채찍으로 얻어맞은 듯한 상처는 허리띠로 맞은 거겠지?"

"그럴겁니다."


"내장이 튀어나왔어. 옷은 벗겨져 있구..."

"다른 곳에서 죽인 뒤 옮겨온 모양입니다."


"감식반 아직 안왔소?"

"오고 있답니다."


관할 파출소의 차석이 얼굴을 찡그리고 대답했다.


"이 여자가 양혜숙이 틀림없나?"

"틀림없습니다."


이형사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천식 형사도 양혜숙을 몇 번이나 조사한 적이 있어서 얼굴이 낯이 익었다.

그러나 비에 젖어 부르튼 양혜숙의 얼굴은 기묘한 형상으로 일그러져 있어서 알아보기가 용이하지 않았던 것이다.


최천식 형사는 허리를 바짝 꾸부려 시체의 하체를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그곳을 자신의 손으로 쓰다듬었다.


"뭘 하시는 겁니까?"


이형사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정액 검출이 가능한가 살펴보는 거야."

"당했나 안 당했나 그걸 보는 겁니까?"


"그래."

"그렇게 만져 봐서 알수가 있습니다."


"이것봐. 음모에 정액이 말라붙은 흔적이 있잖아? 끝나고 나서 씻지 않았다는 증거야."

"그럼 끝난 뒤에 살해를?"


"그렇지."

"그럼 홍보옥이 범인이 아닐수도 있겠네요.?"


"모방 범죄일수도 있지."


최천식 형사는 양혜숙의 시체를 가마니를 덮고 일어섰다.

누군가 양혜숙을 죽여 놓고 홍보옥에게 덮어씌웠을 가능성을 배제 할 수가 없었다.


파출소 순경들과 함께 뒤늦게 달려온 형사들이 현장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시간 남짓 금속 탐지기까지 동원해 현장을 수색했으나 특별히 단서가 될 만한 유류품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시체의 발에 신발이 신겨져 있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어디선가 양혜숙을 살해하여 유기한 것이라는 사실만을 추측할뿐이었다.


그때 감식반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검시의도 왔다.

감식반도 뚜렷한 단서 같은 것을 찾아낼수 없었다.

다만 검시의라 하복부의 상처가 치명상이라는 것, 입언저리에 테이프를 붙인

흔적이 있다는 것, 손과 발을 묶은 듯한 흔적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을 뿐이었다.


사망 시간의 시체의 경직 상태로 추정한 결과 지난밤 자정 전후였다.

감식반이 찾아낸 것은 현장 주위에서 희미한 남자 구두 발자국 몇개와 타이어 자국뿐이었다


타이어는 고급 외제 승용차의 것이었고, 발자국은 족적의 크기로 1미터 70센티미터 정도의 사내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밤새 추적추적 내린비 때문에 체중만은 족적으로 추정할 수가 없었다.

발자국이 비에 상당히 지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목격자 탐문수사부터 시작하지. 이 근처에서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알아보고..."


현장에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자 최천식 형사는 침통하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되든지 수사는 시작하고 보아야 했다.


"예."

"틈 내서 아침도 먹고..."


"알았습니다. 반장님은 어디 가십니까?"

"난 좀 가볼데가 있어. 여긴 자네가 맡아."


"예."


그는 양혜숙 시체가 앰뷸런스에 실리는 것을 보고 현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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