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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여인의 정사 - 6장. 미궁 속의 그림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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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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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가슴 속으로 울다가 아파트로 돌아왔다.

아파트 계단 입구에 낯선 처녀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처녀였다.


"혹시 홍보옥 씨 되세요?"


처녀가 그녀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해 보이고 물었다.


"네"


보옥은 처녀의 아래위를 살피며 대답했다.

처녀는 서류 봉투를 하나 들고 있었다.


"이거..."


처녀가 서류 봉투를 보옥에게 내밀었다.


"오빠의 일기장이에요. 신문도 하나 있고... 오빠가 전해 드리랬어요."

"오빠가 누구죠?"


"김민우예요."

"김민우?"

"모른다고 하시지는 않겠지요?"


처녀가 다소 비아냥대는 투로 말했다.

보옥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거나 김민우는 그녀와 살까지 섞은 청년이었다.


"왜 이런 걸 나한테 전해 주는 거죠?"

"오빠의 유언이에요."

"유언?"

"오빠는 닷새 전에 죽었어요."

"죽어요?"

"닷새 전에 교통사고로."


처녀의 눈에 눈물이 핑 돌더니 어깨가 들먹거려졌다.

보옥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묵직하게 저려 왔다.

그 젊은 청년이 죽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교통사고를...?"

"새벽에 집 앞 골목에서 차에 치였어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아침에야 발견되었어요. 일찍 발견했어도 살 수 있었을 텐데..."


처녀가 다시 어깨를 들먹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보옥은 처녀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었다.


"잠깐 들어와요. 우리 들어와서 얘기해요."

"아녜요, 전 가봐야 해요."


처녀의 얼굴이 눈물에 흥건히 젖었다.


"오빠는 자기가 죽을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죽기 전에 자기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그걸 부인에게 전해 드리라고 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처녀가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며 아파트 광장으로 달려 나갔다.

보옥은 우두커니 서서 처녀가 아파트 광장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들어 우리가 사는 거여동 57번지 일대, 속칭 당나무 골에 해괴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봄 마을의 길을 넓히기 위해 성황당을 불도저로 밀어버린 뒤부터 마을 수호신이라는 3백 년 묵은 느티나무가 벼락을 맞아 불에 타 죽고, 마을에서 초상이 자주 일어나는가 하면, 원인 모를 화재까지 빈발하게 나고 있어 마을이 불안에 떨고 있다.

마을의 나이 많은 노인들은 불도저로 성황당을 밀어버렸기 때문에 재앙을 당하는 것이라고 수군거렸으나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성황당이 있던 자리에서 고사를 지낼 모양이다.


보옥은 그 부분을 두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었다.

무엇인가 머리에 잡힐 듯했으나 그것이 무엇인가 알 수가 없었다.


...마을에 때아닌 부동산 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마을 대부분이 군사 시설 보호지역으로 묶여 개발이 제한되고 있는데도 부동산 거래가 성행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윤미네가 일가족 집단 자살했다.

때마침 내가 윤미네 집을 찾아가는 바람에 윤미 어머니를 구할 수 있었으나, 그래도 윤미 어머니는 위독하다.

윤미 어머니가 살아났으면 좋겠다.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내가 윤미네가 자살한 것을 최초로 발견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내가 윤미가 독서실에 1주일 동안이나 나오지 않아서 전화해도 아무도 받지 않아 집으로 직접 찾아간 일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경찰은 내가 마치 윤미 어머니와 이상한 관계라도 되는 듯 의심하고 있었다.


...우리 마을의 땅이 반이나 예성개발에 팔렸다.

이상한 일이다.

예성개발은 이름도 없는 회사인데 무엇 때문에 우리 마을의 땅을 사들이고 있는 것일까?

윤미네가 가정 파괴범들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윤미와 윤미 어머니가 모두 윤간을 당했다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인가?

비참한 일이다.

윤미네는 그것을 비관하여 자살한 것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그날 밤 내가 윤미 어머니를 집에까지 바래다주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 잠이 오지 않는다.


...윤미 어머니가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윤미 어머니가 찾아가 위로라도 해주고 싶었으나 공연히 윤미 어머니의 마음을 심란하게 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멀리서 윤미 어머니가 소복을 입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윤미 어머니를 본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예성개발은 직원이 불과 세 명뿐인 회사다.

직원 셋이서 어떻게 아파트를 짓고 도로를 건설한단 말인가. 그것은 부동산 투기를 전문으로 하는 유령회사일 뿐이다.


...윤미 어머니가 정신 이상을 일으켰다.

가정 파괴범들에 의한 성폭행, 일가족 집단 자살로 인한 충격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윤미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윤미 어머니를 범하고 말았다.

물론 정신 이상을 일으킨 윤미 어머니 때문에 그렇게 되었으나 그녀가 원망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악마가 도사리고 있어 그녀를 범하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지 않았는가.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녀의 희고 뽀얀 육체, 탐스러운 젖무덤... 다시 한번 그녀에게 안기고 싶다.


...윤미 어머니가 용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나는 먼 발치서 지켜보기만 했다.

다행히 윤미 어머니의 동생이 왔다가 윤미 어머니의 정신 이상을 발견하고 친정아버지와 상의하여 정신병원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예성개발의 뒷조사를 하기 시작하고부터 누군가 나를 미행하고 있다.

왜 나를 미행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그들의 뒷조사를 하고 있는 것을 그들이 눈치챈 것이 아닐까?


...용인 정신병원 앞에까지 갔다가 면회 신청도 하지 않고 그냥 되돌아왔다. 내가 윤미 어머니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오늘도 누군가에게 미행당했다.

어쩐지 기분이 꺼림칙하다. 이 얘기를 동생 민희에게 해놓아야겠다.


...윤미네가 땅과 집을 모두 팔았다.

윤미 어머니가 용인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어 윤미 외할아버지가 대신 팔았는데, 내 예상대로 매입자는 예성개발이었다.


...윤미 어머니가 정신병원에서 퇴원했다.

당장 달려가서 만나 보고 싶었지만, 친정집에서 기거하고 있어 참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윤미 어머니의 친정집 앞에서 서성거리다 돌아왔다.

이상한 일이다. 자꾸 윤미 어머니의 희고 뽀얀 나신이 눈에 밟힌다.


...민희와 다투었다.

민희는 요즈음의 내 행동이 옳지 않다고 화를 내고 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윤미 어머니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어떤 음모를 기어이 밝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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