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거미 여인의 정사 - 4장. 흉가의 여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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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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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밤이었다.

밤이 오면 누군가 또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뜨리고 2층에서 왔다 갔다 하는 귀신 놀이를 할 것이다.

밖에는 아직도 비가 오고 있었다.

황량한 가을비였다.

그녀는 서둘러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과도를 찾아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


어떻게 하든지 범인들을 잡아야 했다.

폭풍이 불던 밤 범인들이 던진 것으로 생각되는 빈 성냥갑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물론 경찰에 지문 조회를 의뢰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경찰을 개입시키고 싶지 않았다.

남편과 딸이 당한 고통을 그대로 그들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그들은 아직도 그녀를 노리고 있었다.


밤이었다.

그녀는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서 기다렸다.

그러자 서서히 공포가 밀려왔다.

시간은 몹시 더디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정쯤에 얼핏 잠이 들었다.

그리고 무슨 소리인가 놀라서 눈을 떴고, 또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쨍그랑하고 들렸다.


(와, 왔어!)


그녀는 재빨리 어둠 속을 더듬어 과도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침대에서 일어날 수는 없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방망이질하듯이 뛰었다.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2층에서는 두 시간이 남짓 피아노 소리가 나고 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다가 조용해졌다.


그녀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튿날 아침 그녀는 날이 밝자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윤미의 방 유리창이 깨져 있었고 여기저기 흙 묻은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나쁜 놈들!)


그녀는 이를 갈았다. 그러나 그날 밤은 조용했다. 새벽에 비가 그친 탓이었다.


비는 1주일 후에 다시 왔다. 비가 오자 귀신 놀이를 하는 자도 다시 나타났다.


(그래, 오늘은 네 정체를 밝히고 말겠어!)


보옥은 과도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벽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올리자 거실 마룻바닥에 핏자국이 흥건했다.


(아!)


보옥은 머리끝이 곧추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핏자국이 2층 계단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하나하나 걸어 올라갔다.

핏자국은 윤미의 방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녀는 윤미의 방문을 열었다.

윤미의 침대에 무엇인지 조그만 물체가 시트로 덮여 있었다.


"누, 누구야?"


소리를 질러 보았다. 그러나 시트로 덮여 있는 물체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지 시트가 파르르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시트 속의 물체를 향해 과도를 내려찍었다.

그러자 피가 왈칵 솟구쳤다.

그녀는 황급히 시트를 벗겨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


그녀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침대 속에 웅크리고 있던 물체는 뜻밖에 도둑 고양이었다.


(이럴 수가!)


그녀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뒤로 물러섰다. 끔찍했다.


다시 1주일이 지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는 오지 않았다.


보옥은 그동안 백석 공원묘지를 두 번이나 더 다녀왔다.

공원묘지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녀의 눈에는 살기인지 광기인지 모를 섬뜩한 눈빛이 돌았다.

그 밖에는 집안에서 두문불출했다.


그녀는 대개 남편의 서재에 틀어박혀 있는 날이 많았다.

남편의 서재는 거의 모두 약에 관한 책들뿐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책들을 읽으며 미친 여자처럼 소리 내 웃고는 했다.


날씨가 쾌청했다. 바람은 제법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어느덧 만추였다.


농로 입구에서 택시를 내린 동보 제약 주식회사의 김순철은 드넓게 펼쳐진 황금들을 보면서 눈이 시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농로 양쪽의 논이 온통 황금빛이었다. 올해도 풍년인 모양이었다. 벌써 드문드문 벼 베기를 하는 곳도 있었다.

황금들 뒤에는 마을과 야산이었다. 야산은 벌써 울긋불긋한 곳도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군...)


그는 이재우의 집을 향해 느릿느릿 걸음을 떼어놓으며 중얼거렸다.

죽은 이재우는 그의 동료 연구원이었다.

그러나 그가 일가족 집단 자살하여 자신과 딸은 죽고 부인만 살아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이재우는 비교적 성격도 원만했고 가정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경제적으로도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군사 시설 보호지역으로 묶여 있기는 해도 야산을 7천 평이나 갖고 있었다.

현재 시가로도 3천만 원을 웃돈다는 땅이었다.

그것은 해제되기만 하면 이재우는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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