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거미 여인의 정사 - 2장. 폭풍의 밤 2

작성자 정보

  • 밍키넷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ecff2cda48a25ab97ce16fcbdcb03557_1694789096_7394.jpg
하품을 하는 남편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에 그녀는 팬티를 주워 입고 레인코트를 걸쳤다.

거실을 지나 현관으로 나오자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그녀는 코트의 깃을 바짝 세우고 대문으로 달려 나갔다.


철제문이었다.

그녀는 대문을 잠글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대문을 잠가 놓으면 윤미를 데리고 돌아올 때 남편이 대문을 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녀는 남편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대문 앞을 나서서 걸음을 서둘렀다.

바람 때문에 걸음을 떼어 놓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걸음을 떼어놓았다.


(세상이 떠나갈 것 같아...!)


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공연히 기분이 뒤숭숭했다.

그녀는 걸음을 재게 놀렸다.


벌판으로 나서자 바람이 더욱 사나웠다.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가 벌판을 쓸어버릴 듯이 요란했다.

계절풍이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계절풍이 불어 다 자란 농작물을 망쳐놓곤 했다.

그녀는 농로에 잠깐 멈춰 서서 벌판을 내다보았다.

긴 양쪽은 벼들이 검푸르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개천을 건넜다.

천변에 늘어서 있는 미루나무들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때 농로로 꺾어져 들어오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였다.


(이 시간에 웬 차가 들어올까?)


그녀는 길옆으로 비켜섰다.

경운기가 겨우 다니는 농로였기 때문에 길옆으로 바짝 붙어 서지 않으면 위험했다.


차는 기우뚱거리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아담한 승용차였다.

헤드라이트의 강렬한 불빛이 지나갔다고 생각한 순간 무엇인가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재빨리 차 안을 쏘아보자 한 여자와 세 남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나쁜 인간들!)


차는 벌써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를 향해 날아온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길옆 풀숲에 떨어졌을 거였다.


그녀는 걸음을 서둘렀다.

큰길까지는 거의 20분이 소요되었다.

평소엔 10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 길이었으나 바람을 안고 걷느라 걸음이 더디었다.


큰길에도 바람은 거세게 불고 있었다.

길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시가지엔 상점들이 일찌감치 문을 닫고 함석 간판이 펄럭거렸다.


윤미가 다니는 독서실은 다용도 빌딩의 4층이었다.

남편을 따라서 윤미를 데리러 몇 번 다닌 적이 있었으므로 그녀는 낯설지 않았다.


"웬일이십니까?"


그녀는 4층 계단을 단숨에 올라가자 독서실을 관리하는 청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독서실 총무였다.

그녀는 가쁜 숨부터 골랐다.


"윤미 어머니시죠?"


그가 흰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 놓고 웃으며 물었다.

알면서 묻는 수작이었다.


"윤미 데리러 왔어요."


그녀는 새침하게 내뱉었다.


"윤미는 벌써 갔는데요."

"가요?"

"윤미는 항상 열한 시면 돌아갑니다."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청년의 말은 옳은 말이었다.

윤미는 대개 밤 열한 시에 독서실에서 출발해 열한 시 반쯤이면 어김없이 집에 도착하곤 했다.


"그럼 오늘도 열한 시에 갔어요?"

"예"

"혹시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녜요?"


그녀는 총무의 어깨 너머로 독서실을 기웃거려 보았다.

전부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 독서실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그녀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오늘은 독서실이 텅 비었습니다."

"왜요?"

"날씨가 이러니까 모두 일찍 돌아갔습니다. 저도 문 닫고 갈 참입니다."

"그래요?"

"집에 도착하지 않았으면 혹시 가까운 친구 집에 갔을지도 모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윤미가 사는 데가 좀 으슥하잖아요?"

"알겠어요."


그녀는 화가 치밀어 청년의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계단을 걸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청년의 말이 사실이라면 부모의 허락도 받지 않고 친구네 집으로 간 윤미를 단단히 혼낼 작정이었다.


"윤미 어머니!"


그때 청년이 뒤따라 달려왔다.


"왜요?"

"우산 가지고 가십시오."


그가 우산을 내밀었다.

벌써 빗발이 후드득대고 있었다.


"거긴 어떻게 하고요?"

"전 우산이 또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서 못 쓰겠어요."


그녀는 청년의 호의를 미소로 사양했다.

마음씨가 괜찮은 청년이구나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제가 댁까지 모셔다드릴까요?"

"그럴 필요 없어요."

"길이 으슥해서 무섭지 않습니까?"

"괜찮아요. 올 때도 혼자 왔어요."

"윤미 아버님은 안 돌아오셨습니까?"

"자고 있어요."

"술 잡수신 모양이군요."


청년이 또다시 흰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 놓고 웃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윤미 어머니는 정말 미인이십니다."


청년이 정색하고 말했다.


"어른한테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녜요."


그녀는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죄송합니다."

"갈게요."

"조심해 가십시오."


청년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서둘러 집을 향해 걸음을 떼어놓았다.

돌아가는 길은 바람을 등지고 걸어서 좀 빨리 올 수 있었다.


전체 1,808/ 1 페이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