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거미 여인의 정사 - 3장. 가을 소나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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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옥은 창자가 끊어질 듯이 쓰리고 아팠다.

사람들이 그녀의 목구멍으로 기다란 호스 같은 것을 집어넣어 위장 속을 마구 훑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몇 번인가 뱃속의 것을 토해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그녀의 입 속에 무엇인가 쑤셔 넣었고 그녀는 토해내는 일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간간이 잘 토해내는데. 하는 소리와 여자들의 조용한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남자는 어떻게 됐어?"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어요. 내장까지 다 타버렸대요."

"그렇게 독한 약인가."


의아해하는 소리도 응얼응얼 들렸다.


"여자애가 불쌍해요. 여자애는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어요."

"아무튼 한 사람이라도 구해서 다행이야."


그리고 어두운 혼미가 계속되었다.

그녀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울부짖는 딸의 목소리를 들었다.


"엄마..."

"엄마..."


그녀는 딸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어둠 속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황량한 벌판이었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삭풍이 지옥의 무저갱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음산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떴다.

먼저 하얀 옷자락이 시야에 비쳤다.


"정신이 드세요?"


간호사였다.

그녀는 간호사의 얼굴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가 왜 이런 곳에 누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아무것도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머릿속에 하얀 백지가 한 장 들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위급한 상황은 지났으니까 그냥 누워 계세요."


간호사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수면제를 놔드릴 테니 푹 주무세요."


팔이 따끔했다.

그녀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려고 했으나 이내 잠이 쏟아졌다.


그녀가 두 번째 눈을 뜬 것은 한밤중이었다.

그녀의 침대 옆에서 친정어머니가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정신이 드니?"


그녀가 눈을 뜬 것을 보고 어머니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이었다.

그녀는 우두커니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언니!"


동생 보영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아버지도 와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울음을 삼켰다.

친정 식구들을 대하자 또다시 슬픔이 복받쳤다.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야지. 왜 이런 짓을 해?"

"..."


"왜 이런 짓을 했어...?"

"..."


그녀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귀찮기만 했다.

그런데 남편과 딸은 정말 죽은 것일까. 나는 아직도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얼핏 뇌리를 스쳤다.


"너희들이 약을 먹은 거냐?"


아버지가 근엄한 얼굴로 물었다.


"누가 약을 먹였어?"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정말 너희들이 먹었단 말이냐?"

"네"


그녀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아버지, 지금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울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어머니가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 그녀는 생각했다.

우리가 얼마나 끔찍하고 비참한 일을 당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폭풍이 몰아치던 밤에 열네 살의 어린 소녀가 짐승 같은 놈들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딸과 남편의 눈앞에서 가정주부가 발가벗겨져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의 플래시, 나체 사진. 그녀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메었다.

그녀는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왜 그러세요?"


간호사가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가, 가슴이..."

"잠깐만 계세요, 진정제를 놔드릴게요."


간호사가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친정 식구들이 그녀에게 달려와 팔을 주무르며 무어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녀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남편과 딸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했다.


일가족 집단 자살을 선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나체 사진이 집에 배달된 것이 결정적인 요소였다.

그 사진은 결코 한 번 배달된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원한에 의한 것이든, 금품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든 그들의 수치심을 오래오래 기억에 남게 할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죽자. 우리가 짐승 같은 놈들에게 당한 일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죽자.

그들은 그렇게 결정했다.


윤미가 먼저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었다.

평화로운 죽음이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위스키를 한 잔씩 마시고 조그만 캡슐에 든 극약을 복용했다.

그런데 그녀가 살아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난 것이 비통하고 저주스러웠다.

딸과 남편이 그녀를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몸부림쳤다.

이내 간호사가 달려와 그녀의 팔에 주사기를 꽂았다.


"숨을 천천히 쉬세요."


간호사가 인공호흡을 시작하며 말했다.

그녀는 천천히 숨을 쉬었다.

비로소 꽉 막혔던 가슴이 조금씩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숨 더 주무세요."


그녀는 눈을 감았다.

숨이 가빴으나 느리게 잠이 쏟아졌다.


얼마나 잠을 잤는지 모른다.

그녀는 몇 번이나 잠에서 깨고 다시 잠들곤 했다.


"우리 아이 생명엔 지장이 없겠습니까?"

"예. 위급한 상황은 지났습니다."

"혹시 후유증 같은 것은...?"

"아마 위장 장애가 좀 있을 것입니다."


잠결인 듯 꿈결인 듯 그런 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그러나 누구의 얘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최초의 목격자가 누구요?"

"접니다."

"당신이? 피해자와 어떻게 되는 사이요?"

"독서실 총무입니다. 아르바이트 대학생이지요."

"그런데 어떻게 발견했소?"

"윤미가 저희 독서실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째 나오지 않아서 전화해 봤더니 계속 전화를 받지 않더군요."


"그래서 집까지 찾아가 봤나?"

"예, 마침 대문이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갔더니 아주머니가 뱃속의 것을 모두 토해 놓고 쓰러져 있더군요.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해 봤더니 다행히 숨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119로 연락했습니다."


"남자는?"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숨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딸은?"

"안방 침대에 죽어 있었습니다."

"좋아, 일단 서로 가자고..."

"서요?"

"경찰서 말이야."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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