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불륜 야설) 첫 사랑, 첫 혼외정사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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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연준형. 35세. 한국에서 무역학과 전공, 미국에 유학하러 와서 MBA 취득, 하지만 영주권 노비문서를 쓰고 오랫동안 고생하여 간신히 미국에 남을 수 있는 자격을 취득했다.

키 178cm, 몸무게 90kg, 단단한 근육질 몸매에 다부진 체격, 작고 가무잡잡한 얼굴 여자 한번 사귀어본 적이 없는 범생이,

모든 것을 원리원칙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쑥맥이며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파트너 조주희. 32세. 본명은 전주희. 남편의 성을 따라 조주희가 되었다. 기혼여성, 즉 유부녀다.

한국에서 미술 전공, 미국에 유학하러 와서 은행에서 알바를 하다가 영어권 1.5세의 직업 좋은 1살 연하의 남자를 만나 결혼한 지 6년 차며 아이는 낳지 않았다.

키는 162cm, 몸무게 48kg 흰 얼굴과 흰 피부에 예쁜 얼굴과 가벼운 몸이지만 가슴과 히프, 허벅지의 적절한 볼륨이 인상적이다.

결혼 6년 차지만 아이는 없어서 처녀 때 몸매와 이미지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품성은 착하고 단아하다.


쑥맥 총각과 아름다운 유부녀가 함께 펼쳐가는 풋풋한 연애 스토리. 물론 열정적인 베드신도 빼놓을 수는 없다.

나에게는 첫사랑, 그녀에게는 첫 혼외정사가 된 이 관계는 어떻게 변화되어가고 끝맺음을 할 것인가.

나에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철칙.

유부녀인 그녀에게 첫 혼외정사와 혼외 연인이지만 역시 외도로 인한 관계는 일시적 외유로 끝난다는 철칙하에서

슬픔과 불안과 고통이 따를 수 밖에 없는 우리의 관계이다.




나는 소규모이지만 실속 있는 회사의 관리책임자이다.

어차피 큰 회사의 간부가 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47세라는 나이에 걸맞게 책임도 주어지고 합당한 연봉-대략 16만 불 정도와 200%가량의 보너스도 챙기며 Rancho Palos Verdes라는 해안가 도시의 작은 단독주택에서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현숙하고 아름답고 순종적인 아내를 두었고, 자녀는 없는 무자녀 가정의 家長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여자들이 보기에 내가 그리 이상적인 남편감은 아니다.


미국교포들이 한국 동포들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속설이 있는데 사실이다.

가끔 소파에 몸을 늘이고 아내를 불러내어 그녀가 눈물을 쏙 뺄 때까지 야단도 치는 그런 권위주의적인 못된 가장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Crafts라는 미국식 대형 공예점에 가서 구매한 대나무로 아내의 종아리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늦게 결혼한 탓에 아이가 없으니 볼 눈도 없고, 단독주택인 탓에 주변의 귀도 없으니 그녀가 고발하지 않는 이상 누가 알 턱이 없다.

이쯤 되면 많은 이들이, 요즘 세상에 저런 남자가 어딨느냐, 여자는 저러고 사냐고 뭐라 할 수도 있지만 그야 우리 가정 사정이고 우리 부부만의 이야기일 일뿐,

내가 하려는 말은 거기에 있질 않다.


가끔, 어떨 땐 자주 생각나던 내 첫사랑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여성을 그리워하는 건 내 선천적인 것과도 관계가 있다.

누구도 엄마를 여자로 보지는 않지만, 솔직히 여성적이기보다는 중성의 가족이라 말하기에도 충분했던 어머니를 두었고, 아들만 넷인 집에 그런 중성적 이미지의 억척스러운 주부로 살아간 어머니를 탓할 마음은 없다.


남중, 남고에 하필 여학생도 별로 없는 대학의 남자 부글거리는 학과를 졸업한 나는 여자를 대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게다가 미국으로 유학하러 와서 어찌어찌 취업비자를 받아서 고된 이민 생활을 하던 내게는 여자를 만날 기회는 더 없었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치이던 미국학교 생활과 영주권이라는 노비문서에 사로잡힌 싹수없는 인도인 회사에서 치를 떨며, 영주권을 받고 난 뒤에는 미국인 회사에 취업하였고 주거지는 꿈에 그리던 한인타운에서 잡을 수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다들 잘 만나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건만 이놈의 사주팔자는 여자가 나만 피해 다니는 성싶었다.


꽤 오래전 일이다. 인터넷이 미국 내에서 대중화되던 시절, 여자를 만날 환경이 조성된 거였다.

당시 미국에서 막 보급되기 시작했던 값비쌌던 SDL 라인을 깔고 싱글클럽에 가입하여 무차별로 내 포스팅을 뿌려댔고 감이 오는 여성들의 프로필들에 대고 간곡한 메일을 쓰고 사진을 보냈다.


이름은 쥬리. 나이 32세. 학력 대졸. 직업 Bank Status No Answer. 키 162cm. 몸무게 47kg.

싱글인지 이혼녀인지 밝히지 않은 것이 찝찝했지만 내겐 가릴 것이 없어 쥬리란 여인에게도 포스팅과 편지와 사진을 날렸다.

바로 그녀에게서 답신이 온 것이다.


[안녕하셔요? 저는 쥬리라고 했요. 전 지금까지 살면서 남자에게 이토록 간곡한 편지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여자라면 누구나 받아보고 싶었던 편지지만 그냥 가슴속 로망인데 제게도 실현이 될 때가 다 있네요.

제 포스팅을 보셔서 알겠지만 대부분 그대로예요. 31살은 미국식 나이에요^^. 그렇지만 님보단 젊네요. ㅎ

그리고 전 기혼 유부녀예요. 님께선 결혼 상대를 원하시는데 저는 그 대상자가 되어드릴 순 없지만, 친구처럼, 오빠처럼 지냈으면 해요. 부담 없이요.]


첨엔 다소 실망했다. 결국 이것도 꽝 아닌가.

하지만 자라면서 최소한 여동생이나 누나만큼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소망도 있었으니 그녀 말마따나 대화나 나누는 이성이라도 생긴 거로 안도하기도 했다.


그녀와 첫 데이트 약속을 잡는 것이 오래 걸린 것은 그녀가 저녁 식사를 하고 들어가는 명분을 찾기 위해서였다.

처음 그녀와 한인타운에서 만났을 때 그녀는 은행에서 일하고 오는 복장 그대로였다.

은행원을 화이트칼라의 꽃이라 불렀지만 요즘 은행원들은 블루의 윗도리에 파란색 일자바지가 제복인 듯했다.


그녀는 내게 스스럼없이 오빠라고 불렀다. 본인도 오빠가 없었을뿐더러 남편은 영어권 1.5세대 교포 출신으로 그녀보다 두 살 연하라고 했다.

그녀의 이름은 조주희. 평균적이고 일률적으로 디자인된 은행 제복 차림이었지만 외모는 빼어난 편이었다.

그녀는 결혼한 지 6년 차였고 아이는 낳지 않았고, 신랑의 뜻에 따라 자녀를 갖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조용한 미국식 식당에 앉아 그녀는 많이도 재잘거렸다. 여자랑 같이 자리를 하는 게 이렇게 피곤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는 왜 아직도 결혼 안 했어요? 많던데 노처녀들.”

“응 아마도 주희 같은 여자를 못 찾아서겠지?”

“뭐에요?? 아하하하. 호호호. 농담 아니에요? 제 기분 좋아지라고 하는 이야기죠?”


뻔한 농담인 걸 그녀는 알아챘으면서도 나를 그렇게 문책하려는 눈치는 아니었다.


“전 스물여섯에 결혼했어요. 당시 남편이 스물다섯이었고요. 저도 오빠처럼 유학을 오긴 왔는데 바로 일하느라 영주권도 필요했기도 했었죠.

미국 은행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협력 업체에서 방문하던 남편을 만난 거죠.

영어를 잘하고, 내가 배울 것도 많을 것 같았는데, 집에서 그 사람은 서투른 한국말로 고생하고 나는 서툰 영어로 고생하고 서로가 대화할 때 고생이 많아요.

또 연하라 첨엔 귀여운 맛은 있었는데. 다 좋아요, 온순하고 성실하고. 하지만 개인주의적이고. 모랄까 일가의 가장으로서의 듬직함은 좀 그래요.”


그녀는 몇 살이라도 연상인 한국 토종 남자 내 앞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조잘조잘 떠들어 댔다. 졸음까지 몰려오는 듯했다.

식사를 끝내고 차를 마시러 가자고 하면 어떡하나 했지만, 그녀는 집에 너무 늦으면 안 된다는 핑계를 대고 바로 집으로 떠났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집은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 외곽의 단독주택이라고 했으니 지금 집에 내려가도 저녁 8시가 넘을 것이었다.


이후로 그녀와의 만남은 두 번 정도를 더 가졌는데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정확히 3주 후의 토요일에 그녀와 또 만났고 그다음 주 토요일에도 만났다.

그녀가 보고 싶다는 영화, 남편의 취향이 아닌 로맨스 영화라 혼자 가기도 뭐하고 다른 친구들도 살림하고 남편 시중들고 아이 키우느라 못 가는 거 내가 대신 같이 가주어야 했다.


솔직히 재미없는 만남이었다. 극장에 가면 둘이서 정면을 응시하고 두 시간 동안 꼼짝하지 않고 있어야 했다.

영화가 끝나면 바깥 파라솔에서 음료를 마시며 떠들썩한 그녀의 말을 다 들어주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녀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 정서가 아주 다른데다가 언어도 서로 간의 한계가 있고, 또 자신의 취미를 방해하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으로 인해 주말이면 서로가 각자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아이까지 오래도록 없었으니 공통의 화제나 이벤트도 적었을 것이다. 단순한 권태기인 건 아닌 듯했다.


그녀를 옆자리에 태우고 그녀의 차를 주차한 주차장까지 내려갈 때까지 그녀는 조잘거렸다. (에라, 이제 주희뇬을 더 만나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휴)

그녀가 자기 차에 타는 것을 바라보며 손을 휙 흔들며 나는 차를 몰고, 내 아파트의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싸늘한 원룸 짜리 아파트, 그리고 여기저기 지저분한 사물들. 나는 그냥 양말을 신은 대로 침대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한 달 정도가 더 지난 어느 날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통화를 자주 할 순 없었지만, 그녀와 접속이라도 되는 날 그녀는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개중에는 신랑에 대해 투덜거림도 있었고, 은행 직장동료, 상사 이야기로 확장되어 가던 차라 별로 그녀의 전화가 미덥지 않았던 터다.


“오빠, 요즘 날씨도 더운데 어디 바닷가라도 갔다 오자. 신랑은 어제 동부로 출장 갔어.”


왠지 왕 꽃게 발에 물린 듯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그녀의 차를 두던 Burbank 시의 쇼핑몰의 주차장으로 갔다.

그날따라 그곳은 한산했기에 그녀를 알아보기 어려운 건 아니었건만 자칫했으면 다른 여자로 착각할 뻔했다.

나를 멀리서 바라보고 웃던 그녀는 평소와는 완전히 달랐다.

야들한 미니원피스, 그것도 허벅지의 절반 정도만 감싸는 A형 원피스를 입었다.


그녀의 다리가 그리도 이쁜 줄 처음 알았다. 무조건 다리가 길쭉하고 얇은 건 아니었다.

종아리의 볼륨도 잡혀 있었고, 허여멀건 허벅지가 생성되었다가 끝나는 선도 잡혀 있었다.

골반도 제법 무게가 나갈 정도로 크며 단순한 원형이 아닌 뭐랄까, 오밀조밀하고 꽉 짜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주부의 특성상 기르지를 못했지만, 어깨까지 간신히 내려올 머리카락의 끝에 웨이브를 주어 바깥으로 퍼져나가게끔 고정했다.

게다가 검은 머리의 주희를 상상했지만, light bronze 컬러로 염색이 되어 있었다.

또한 그녀는 절대 가볍지 않은 화장을 하고 나왔다. 농밀한 파운데이션과 연한 레드 색상의 볼 블레싱, 연한 하늘 색상의 아이섀도와 끝 선을 살린 리퀴드 아이라이너, 분명히 세운 마스카라, 진한 빨간 색의 립스틱, 그러나 절대로 천박한 인상을 주지 않았다.


멍해져 오는 느낌. 나를 만나기 위해 거울 앞에서 그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오랜 시간을 화장했으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가슴이 쾅쾅 뛰기에 앞서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


“오빠. 부끄럽게 뭘 자꾸 봐요?”

“.........주희, 날 위해서 그렇게 꾸민 거니?”

“....내가 누굴 위해서 이렇게 한 건지 몰라요? 오빠 너무 해요”


그녀답지 않은 내숭이었다. 확실히 옷이 날개라더니 그녀는 요조숙녀가 되어 있었다.

남들은 인공적인 냄새와 색소라고 싫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내겐 너무나도 신선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창문을 개방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그녀의 향수 냄새를 간직하고 싶었고, 해변을 걸어가면서 그녀를 자주 바라본 것은 이토록 여자의 변신이 완벽히 다른 이미지를 주는지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어느덧 그녀는 두 팔을 휘저으며 걷는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녀의 오른손을 내 왼손에 자꾸 우연인 듯 부딪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두 손이 포개어졌을 때 가슴이 쿵쾅거려왔다. 바닷가 Pier에 다 왔을 때 석양이 지고 있었다.


주희의 얼굴은 석양과 또 다른 색상이 되어 있었건만 그녀는 살짝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나는 몸을 옆으로 돌려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목을 살짝 잡았다. 주희는 눈을 감았다.

빨간 립스틱이 발라지고 라이너를 통해 끝 선을 날카롭게 만든 듯한 입술은 그대로 키스를 부르는 입술.

그녀의 허리를 살짝 감쌌고 그녀는 내게 찰싹 감겨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여자와 입술을 포개는 경험을 했다.


주희는 내 입술을 눈을 감고 수줍게 받아줌으로써 둘 사이의 첫 경험이라는 것을 존중하였다. 하지만 그다음은 그녀의 몫이었다.

살짝 입술을 벌리고 혀를 조금 갖다 댄 것은 그녀였다. 주변의 누가 보든 말든 나는 그녀의 몸을 더 밀착시켰다.

풍선 같은 가슴이 내게 와 닿아 짓눌리면서도 우리의 입술은 떨어질 줄 몰랐다.


서로의 숨이 가빠진다. 그녀도 살짝이 콧신음을 내는데 그녀의 뜨거운 콧김은 내 코밑을 강렬하게 자극하였다.

어느덧 내 한 손은 그녀의 짧은 원피스 자락 밑으로 들어갔고 미끈한 허벅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더 조금 더. 내 손은 치마 속으로 위로 올라갔다. 아마도 그녀의 팬티는 짧은 T팬티인 듯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장력이 강한 듯한 팬티 줄이 손에 닿는 순간 그녀의 손은 내 손을 잡아떼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주 익숙한 듯 고개를 휙 돌리며 나와의 기나긴 입맞춤을 종료했다.


“오빠. 더 이상 여기서는 눈치 보여요. 게다가.....”


획 뒤돌아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로 그녀의 왼편 허벅지 위의 치마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내 손가락질에 끌어내려진 팬티를 다시 고정하고 있었다.

팬티의 선이 다시 고정된듯하여 보이자 주희는 손가락으로 자기의 입술을 살짝살짝 건드리고 탁탁 치기 시작했다.

설마 내 입술의 촉감을 떨구어 내기 위해서였을까? 조금 전의 놀람과 자존심의 상처는 사라지고 나는 큰 죄인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가요....” 


그녀의 나지막한 음성에 나는 황급히 그녀 곁에 서서 걸었다.

유부녀의 치마를 들치고 팬티를 끌어 내리려 했다니. 가책 감마저 석양이 떨어진 어둠 속에서 엄습해 왔다.

아마도 그녀는 입술까지만 허락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둘 다 말없이 피어 위를 걷는 동안 나는 그녀에게 어떤 식의 사과를 해야 할지 몰랐다.

마주치는 남녀 연인들, 가족들, 홀로 나온 낚시에 미친 사내들은 우리의 모든 것을 보았는지, 보고도 못 본 척 했는지, 아무 상관도 없어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정말.....왜 이래요.....! 나, 이 샌들 신고 빨리 못 걸어요”


그녀가 투정 부리는듯한 부탁을 듣자마자 나는 속도를 늦추고 그녀와 가지런하게 걷게 되었다.

또 한 번 그녀를 화나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주희는 화가 풀렸던가, 아니면 처음부터 화가 나지 않았던 것이었을까, 그녀의 손이 슬쩍 내 겨드랑이 아래로 들어와 휘감겼다.

아, 그러고 보니깐 이곳에서 키스나 포옹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치마에 손을 넣고 팬티를 끌어 내리는 행위를 시각적으로 용인할 풍토는 아니었다.

여기에 있는 이들은 가벼운 정도의 스킨십은 그저 연인 간의 행위로 보아줄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아도 개방적인 미국 사회에서조차도 그런 행위는 가벼이 보아넘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 혼자 황홀 삼매경에 빠져 너무 오버해 있었던 것이고, 주희는 여자인 이상 자기의 쾌락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붙잡혀 있던 왼팔을 풀어 그녀의 허리를 휘감고 걸었다.

주희는 좀 더 내 몸 안쪽으로 자기를 기대고 걷는다.

주희의 허리는 윗몸과 엉덩이 사이의 명백한 깊은 굴곡을 가졌고 군살 하나 없이 잘록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도 되었고 해변 위의 pier가 시작되는 곳에 카페로 들어갔다.

원래 이런 곳은 가격도 비싸고 맛도 없는 곳으로 그저 분위기를 사는 곳에 불과했지만 서로의 어색함을 완전히 풀기엔 이런 곳 말고는 딱히 떠오르질 않았다.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바닷가 방면의 창가 자리에 앉게 되자 그녀는 내게 눈빛으로 무언가 양해를 구하고 핸드백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그때 서야 나는 내 입술에 촛농이 묻어 있는 듯한 감촉과 초 향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땅히 거울은 없었지만, 티슈를 뽑아 입술을 닦아내자 고동색 비슷한 그녀의 립스틱이 묻어났다.

조명이 밝지만은 않았기에 빨간색이 고동색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때 서야 그녀가 뒤돌아서 그녀의 입술을 성급히 매만진 이유를 깨달았다.


그녀가 그로 인해 화가 났으면 어떡할까 하는 생각마저 엄습한다.

주희가 미소를 띠고 돌아온 것은 10여 분이 지나서였다. 주희는 입술화장을 정돈하고 다시 온 듯 처음 키스하기 전의 그 입술 그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뭐 조금 오래 걸린다 싶었지”

“여자는 남자보다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많고 거슬리는 것도 많아요. 아까 피어에서 오빠가 저더러 여자로 보인다고 말했죠?”


정말 내가 그녀에게 그런 말을 했던지는 솔직히 기억이 없다.

하지만 내가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 그녀가 기억한다는 것은 내가 그녀에게서 처음을 여자를 느껴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뎃큘라(선인장 액을 증류시켜 만드는 멕시코식 소주)에 과일을 섞은 잔을 건배하며 식사 겸 안주로 나온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준영 오빠랑 만나서 대화하고, 내가 이렇게 한참 말할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아이고, 그게 그리도 좋아?”


그녀는 작심한 듯 남은 반 잔을 쭉 들이켰다. 그 술은 들이켜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미하기 위해 칵테일된 것이라는 걸 그녀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 원래 뉴욕에서 왔다고 말씀드렸죠? 울 시부모님 재산도 많고 훌륭한 분들이셔요. 근데, 며느리인 저한테는 한국식 며느리, 한국식 아내가 되길 원하세요.

그러면서 막상 당신들의 외아들은 완전한 미국식으로 키우셨죠. 개인주의적으로 사는 아들에 대한 말 못 할 섭섭함도 은근히 저한테 푸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신랑을 닦달해서 서부로 이사 온 거에요.”


또다시 그녀의 넋두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미지의 장소와 분위기에 약간의 술이 들어갔기에 그전과는 좀 더 차원이 달랐다.


“이곳으로 오고 나서 직접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났으니 해방감은 들었죠. 하지만 신랑이 엘에이라고 하는 고층 건물도 없고 가까운 거리라도 걸어 다닐 수도 없는 이 환경을 답답해하는 거예요.

게다가 눈치 주는 시부모님도 가까이 없으니 자기 하고 싶은 거에 올인하기도 하구요. 그래서 제가 은행직을 구해서 나오게 된 것도 그래요”


내가 듣기엔 그녀는 배부른 투정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름 알만한 미국증권사에 다니는 신랑의 집을 사준 시부모에 부족한 것이 적어도 ‘객관적으로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녀의 말을 충실히 들어주는 것.


“처음 남편과 만났을 땐 그저 귀엽기도 했고, 어눌하면서도 아기 같은 목소리의 한국말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외국인을 만나면 줄줄이 오피셜하게 튀어나오는 고급영어, 거의 넋을 잃을 지경이었죠. 물론, 성실하고 착해요, 보수적으로 자란 전형적인 1.5세 답게. 하지만 가장으로서의 든든함이 느껴지질 않아요.”


“가장으로서의 든든함이 없다? 신랑 돈 많이 번다면서?”

“오빤 정말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세요? 정말 답답하네. 그렇게 여자 마음을 몰라요? 칵테일 한잔 더 시켜주실래요?”


그녀는 내 질문에 도리어 답답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답변할 생각을 포기하고 술을 한 잔 더 주문했다.


내가 그녀에게 반문한 것은 틀린 질문이었을까? 더군다나 저런 이야기를 그녀는 내게 두세 번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희는 내 눈을 응시했다. 무언가 중대한 고백이나 선언을 하려는 듯이. 그러나 그녀는 의외의 행동을 했다.


“오빠. 잠깐 이리 가까이 와봐요. 턱 좀 내밀어 보세요”


나는 눈을 감고 턱을 내밀었다. 아마도 그녀가 입 맞춰주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헛된 상상을 하면서.

하지만 내 입술에 다가온 감촉은 티슈로 박박 문지르지는 것밖에는 없었다.

놀라 눈을 뜬 내게 그녀는 마치 오물을 묻히고 온 사내아이를 어머니가 강제로 붙잡아 닦듯이 내 입술에 남아 있던 그녀의 립스틱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고 있었다.


“준영 오빠는 정말 여자 사귄 적 없다더니, 오늘 진짜 믿을 수 있겠어요”


나는 그녀의 어머니처럼 자상한 모습에 기분이 묘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남자니깐 이런 데서 이렇게 서비스받을 수라도 있죠. 아까 제가 화장실 가서 한참 처리한 거 아세요? 입술 화장 다시 하기까지 했고요.”

“그렇구나. 미안. 그러면 앞으론.”

“오빠. 쓸데없는 말씀 말아요. 여자는 그렇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여자가 필요한 건 그냥 배려에요. 여러 사람 앞에서 지켜주는 거, 그런 거예요”


카페에서 그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빠져나올 때 나는 칵테일 두 잔을 비웠고 그녀는 석 잔을 비웠다. 그리고 시간은 밤 열 시가 되었다.

나도 화장실에서 물을 빼고, 여자 화장실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용무를 마친 주희는 화장실 앞에서 경호원처럼 대기하고 있는 나와 마주치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 팔짱을 끼었다.

밤 열 시가 된 이곳도 더운 휴일인 탓인지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우리는 아까처럼 문제가 생겼던 피어의 끝부분까지 걸어갔다.


주희는 머리를 내 어깨에 완전히 기대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미끈한 허리를 붙잡고 있었다.

전에 없던 용기마저 생겨났다. 혹시 뉴욕에 있는 그녀의 남편이 이곳을 노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나 공포감은 들지 않았다.

내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녀의 턱밑을 잡자 그녀는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이번엔 좀 더 강력하게. 그녀의 왼편 턱과 목을 손으로 감싸 쥐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어 버린 채 푹 숙인다.


“주희. 주희야.”

“왜?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지금.?”


그녀는 나를 피하려 했다면 고개만 돌린 게 아니라 내 몸을 빠져나갔어야 옳지만 그러진 않았다.

또 내가 무슨 대화를 시도하자 그녀는 진지하게 응하고 있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일망정 그녀는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게 분명했다.


“주희 씨. 실은 당신한테 첫 메일을 보낼 때 뭔가 감이 왔어. 그리고 당신을 처음 만날 때부터 사랑했어.”

“진짜?”

“당신이 몇 번 말했듯이 난 서툰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야. 주희를 늘 감싸주고 사랑해줄 거야”


주희는 그때 서야 내 손의 도움 없이 나를 향해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감으며 살짝 아주 작게 입술을 벌렸다.


쪼오오오옥!! 쪽쪽쪽!! 


우리는 거기서 열정적인 키스를 재현할 수 있었다.


내 오른손은 그녀의 치마로 다시 들어가 엉덩이를 찾아 팬티를 찾아 애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시로 오른손이 오락가락하며 팬티의 라인을 확인하였다. 그녀의 아랫입술을 내 두 입술로 물어 그녀의 타액을 흡수했다.


주희에게서 또다시 뜨거운 콧김과 억지로 눌러진 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고무풍선 같은 그녀의 유방이 내 빨래판 같은 가슴에 와닿아 애교를 부린다.

키스도 에너지가 매우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서서히 두 입술이 멀어져 갔을 때 그녀의 눈망울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정말 아름다워 주희! 이 달빛 아래서.”

“화장발 때문이겠지. 암튼 고마워요.”

“주희야. 잘 때도 화장 안 지울 거지?”


내가 왜 그런 엉뚱한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일종의 패티쉬가 있어서일까?


“왜??”

“네가 나를 위해 한 정성을, 잠자는 시간에도 없애는 게 싫어서야!”

“....순 억지. 몰라요!”


내가 딱히 그녀와의 잠자리를 계획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또 오늘의 데이트에서 그녀와 잠자리는 고사하고 입맞춤조차도 계획되거나 예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그 말 때문인지 그녀는 땅 쪽으로 걸어가면서 내 몸에 완전히 자기의 상체를 기대다시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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