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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녀야설) 집사람을 만나게 된 사연 - 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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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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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을 허겁지겁 내려와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야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난 그길로 고향으로 향했다. 고향 가는 버스 안에서 눈을 붙이면서 하루 동안의 일을 천천히 되새겨 볼 수가 있었다.


피 끓는 젊은 남녀가 하룻밤을 즐기며 보내는 것이야 별 죄가 되지는 않겠지만

어제 내가 한 행동은 어떤 변명을 늘어놓아도 결코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죄악이라는 생각에 고향을 내려가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큰 멍에를 지고 있었다.

다시는 중만이 형님을 볼 수가 없으리라.


내 고향은 제천이다. 제천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촌구석이다.

내가 고향에 내려간다고 해서 반겨줄 사람은 누구 한 명도 없다.

일가친척이라고 해 보았자 사돈에 팔촌처럼 아주 먼 촌수의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난 버스에서 내려 제천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 날 하루에 몇 대밖에 없는 버스 첫차를 타고서야 고향에 도착했다.

도착 후 할아버지, 할머니·아버지·어머니 산소에 성묘하고 벌초를 한 다음에 봉화로 향했다.

내 유일한 피붙이 누나가 봉화에 시집가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는 세 살 터울인데 할머니와 누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살다가 18살에 팔려 가듯 시집을 가서 지금은 애만 넷을 낳고 죽어라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두 살 때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우리 두 남매를 키우며 사셨는데 살림이 너무나 궁하여

나도 중학교 이후로는 내가 벌어서 직훈을 다녔고(고등학교 인정됨). 졸업과 동시에 군대에 부사관으로 지원하여 들어갔다.

최소한 군대에 가면 굶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


할머니는 내가 직훈 1년 때. 누나가 시집간 지 2년 만에 한 많은 생을 마감하셨다.

<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나면 다시 하기로 하고...>


봉화에서 본 누나는 서른 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늙어있었다.

매형은 마흔이 조금 넘었을 터인데 거의 환갑에 가까울 정도로 보인다.

남매라고 하지만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누나 시집가고 합쳐보았자 다섯 번 정도 만난 것이 전부여서인지 어딘지 모르게 서먹한 감이 느껴졌다.


산촌이 다 그러하듯 먹고 살기가 빠듯한 것 같았다.

매형은 듬성듬성 빠진 이를 내보이며 탁주 한잔하고 가라고 했지만 난 누나 얼굴 보았으니 됐다고 하며 서둘러 누나 집을 나섰다.

나오면서 누나에게 10만 원을 꼭 쥐여주었는데 누나는 그 돈을 보고 떠나는 내 등 뒤에서 소리죽여 울고만 있었다.


마땅히 갈 데가 없던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고 모아두었던 돈을 서울 가까운 곳에 있는 전답을 사둔 다음 다시 한국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였다.


이번에는 도저히 사우디로 가지를 못할 것 같았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중만이 형님을 뵐 수가 있겠는가?

난 다행히 대수로 공사가 시작되고 있는 리비아로 2년간의 계약을 하고 갈 수가 있었다.


리비아에 도착해서 중만이 형님에게 간단한 안부 편지를 보냈다.

여차저차해서 사우디로 가지는 못하고 리비아로 왔다고.

그때가 84년하고도 12월쯤이었었다.


계약기간이 2년이었지만 조금 더 늦게서야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한국은 아시안게임을 치르고 정국이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던 87년 3월이었다.

서울 시내는 온통 최루탄으로 가득했으며 밤거리는 흥청망청하고 있었다.

난 벌어온 돈을 다시 전에 사두었던 땅 근처 포도밭을 샀다.

그리고 서울에 모 백화점 전기실에 취직이 되어 다니면서 지내고 있을 때였다.


성실하다고 소문이 나서 이곳저곳에서 중매를 서겠다고 했는데

일가친척 하나 없는 천애 고아와 같은 신세라는 것을 알고서 맞선을 본 후 내게 쉽게 호감을 주는 여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 나이 서른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느 날 29살 먹은 여자와 맞선을 보았다.

내 처지를 알고서도 괜찮다며 내게 달려들던 여자가 그리 싫지는 않았다.

그 여자와 몇 번의 데이트를 하고 우린 내 자취방에서 첫 관계를 가졌다.

당시 나와 여자는 약간의 술을 한 상태였고 은연중에 결혼을 약속한 사이나 마찬가지여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원하게 되었다.

그때 형수와 관계를 한 이후에 처음이었다.

물론 직업여성들과 관계는 한 달에 두 번꼴로 가졌지만, 직업여성이 아닌 여자와는 형수 이후에 처음이었다.

하지만 여자와 섹스하면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아주 평범한 섹스를 한 것이었다.


숫처녀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왔다.

그래. 어차피 나 같은 놈이 결혼한다는 것도 호강인데. 하며

약간은 자포자기적인 심정을 가지고 이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생각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5월 말 정도로 기억이 되는데

전에 외국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우연히 연락이 닿아서 영등포에서 만나기로 하여 나가게 되었다.

혹시나 중만이 형님이 나오면 어쩌나..신경이 쓰여 물어보았더니 중만이 형님은 이 모임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 부담 없이 나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모임의 술자리에서 중만이 형님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한동안 중만이 형님과 호형호제했던 나로서는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중만이 형님이 오늘내일한다니."


난 중만이 형님의 소식을 알고 있던 남자로부터 자세히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리비아로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형님은 사우디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고

형님은 다시 외국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한국에서 건설 현장에 나가 일하면서 생활했다고 한다.

그러다. 그러지 않아도 혈압이 높았던 사람인데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뇌출혈로 쓰러져 지금은 반신불수가 되어 누워있는데

쓰러진 지 한 달 만에 아내가 재산을 모두 가지고 도망을 가서 지금은 딸이 공장을 다니면서 형님을 부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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