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3섬야설) 인도에서 만난 남자 - 2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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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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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베르 포트.

산 중턱에 솟아오른 참 크고 멋진 성이다.


"이거 짓느라 사람 여럿 잡았겠다."


내가 이렇게 투덜거리는 이유는.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말하지만 나는 절대 길치가 아니다. 단지 길눈이 조금. 아주 조금 어두울 뿐이다.

뭣보다 이런 상황에 부닥치게 된 주요 원인은 이 빌어먹을 고성이 안내판이 하나 없는 미로 같은 성이기 때문이다.


"현정이는?"


발단은 이러했다.

한참을 풍경에 취해 이리저리 다니다가 잠시 쉬어가자며 일행을 둘러보는데 현정이가 없었다.

아침부터 내내 불안해 보이더니 결국 사고를 치는구나. 이 녀석.


일행들에게 좀 쉬다가 계속 구경하라고. 나는 현정이를 찾아보겠노라 말을 하고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먼저 둘러보고 좀 으슥한 곳으로 현정이를 찾아다녔다.


쓰레기와 낙서. 곳곳에 버려진 생수병과 담배꽁초 그리고 스낵봉지들. 그리고 벽에 그려진 해석하지 못할 낙서들.

현정이에 앞서 내가 찾아낸 것은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이었다.

저기 한글로도 쓰여 있네. 누구랑 누구랑 여기 왔었다고?


현정이는 보이지 않고 시간은 흘러가고 내 발걸음은 바빠진다.

한참을 헤매다 문득 깨달은 것은 좀 전에도 내가 여기에 왔었다는 것이다.

저기 쓰인 한글. 누구랑 누구랑 여기에 왔다는.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꺼내어 문다.

유적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불을 붙인다.

한 두 모금 정도 빨았는데 힌두어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재빨리 담배를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감춘다.

힌두어 소리가 멀어지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빨아당긴다.

조용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큰일 났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긴장한 등을 돌리니 낯익은 얼굴이 나타난다.

은혜가 오 루피를 손바닥 위로 올려 내민다.


"놀랬잖아."

"그러게 나쁜 짓 하래요?"


은혜가 담배의 불을 붙이며 싱긋 웃는다.


"길 잃었죠? 길치 아저씨."

"아냐. 그냥 사람 없는 곳에서 담배나 한 대 태우려고."

"거짓말. 저 위에서 보니 아저씨 같은 곳만 뺑뺑 돌던걸요?"


아~ 저 너머 보이는 성 위로 우리 일행들이 보인다.

담배를 피우고 은혜를 따라 성 위로 올라가니 일행들이 나를 보고 싱글거린다.

보이지 않던 현정이도 어디서 나타났는지 나를 보며 싱글거린다.

그래 웃어라. 웃어. 나를 희생해 당신들이 기쁨을 느낀다면 내 기꺼이.

쪽팔려.

제기랄.

그래도 시무룩하던 현정이가 웃으니 안심은 되는군.


***


"이야. 이거 색다른데?"


나는 지금 오토릭샤의 뒷좌석에 앉아 점점 멀어지는 아침을 맞은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양옆으로 젊은 처자들 사이에서.


내가 느낀 바로 도시마다 릭샤의 모양새가 조금씩 다르다. 안장의 모양새라든지 햇빛 가리기의 문양이라든지..

이제껏 들렀던 도시의 오토릭샤는 세 명의 승객을 태울 좌석이 설치되어 있었다면 자이푸르의 오토릭샤는 6인승이라는 것이다.

앞좌석엔 은혜와 은영 씨와 인범 씨가 앉고 나는 양옆으로 현정이와 정민이를 끼고 앉아 있다.

내가 이런 배치를 원한 것은 아니지만 릭샤꾼이 무거운 남자가 사이드에 앉으면 릭샤가 기울어진다고 하는 통에

이런 반가운 자리 배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좀 꼼지락대지 말아요."


사진을 찍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비트는 나에게 정민이가 주의를 준다. 몸이 좀 부대끼지? 흐흐

인도사람들은 스스로 사진 찍히기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디카를 들고 뒤로 가는 풍경을 찍으려니 한 오토바이에 올라탄 일가족과 다른 릭샤의 운전사들.

그리고 승용차에 올라탄 금팔찌 번쩍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찍어달라는 듯이 포즈를 취해 온다. 재밌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정민이는 좀 불편했나 보다. 나는 좋았는데. 현정이도 있고. 흐흐

근데 오늘 현정이가 좀 조용한걸? 동그란 눈을 내리깔고 좀 시무룩해 보인다.


"좋아요?"


은혜의 목소리가 등을 타고 넘어온다.

케이를 닮아가는 모호하고 직설적인 질문에 당황스럽다.


"뭐. 뭐가?"

"그곳에서 보는 풍경이요."

"어. 좀 더 여유로운 풍경이야."


인도에서 릭샤나 택시를 타는 건 매우 스릴이 있다. 이곳 인도의 운전사들은 모두 레이서다.

중앙선이 거의 없어 역주행은 보통이고 끼어들기는 애교다.

그렇게 릭샤꾼과 동화되어 조마조마하게 릭샤를 타다가 이렇게 느긋하게 앉아서 뒤 풍경을 보니

뭐랄까? 아주 재밌고 여유로운 마음이 든다. 여전히 앞에서는 끼어들고 욕하고 역주행에 장난이 아닐 터에.

디카의 렌즈를 통해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렌즈에 비친 현정이의 얼굴을 한참 바라본다.

서른 살 난 내 딸 현정이가 오늘은 왜 저렇게 풀이 죽어 있을까?


***


"현정아.."


내 손은 헉헉대며 현정이의 허리를 타고 올라 그녀의 젖가슴에 이르렀다.

산 정상의 흔들바위를 밀듯이 혹시나 떨어지면 어떡하냐의 걱정과 설마 떨어지겠냐는 호기심에 가득 차 그녀의 유두를 슬쩍슬쩍 밀어본다.

그녀의 가슴을 조심스레 모아 쥐도 본다.


현정이의 젖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몽실몽실한 게 약간 땀에 젖어 상당히 야릇한 느낌이다.

입으로 현정이의 젖가슴을 조심스레 핥아본다. 땀 냄새와 현정이의 체향이 후각을 자극한다.

현정이가 팔을 비스듬히 걸쳐 내 목을 껴안는다.

혀로 유두를 굴리기도 하고 깨물어보기도 하고 한참을 희롱하다 내 혀는 현정이의 목을 타고 올라

그녀의 얼굴을 쓸듯이 애무하고는 마침내 입에 키스를 한다.

내 손은 어느새 현정이의 바지를 끌어 내린다.

현정이가 새근새근 숨을 내쉬며 내 얼굴을 간지럽힌다.


"새근새근?"

"현정아..?"


꼭 감은 두 눈의 현정이를 내려다보니 이 녀석 잠.....든 척을 하고 있다.

눈꺼풀이 움찔움찔하는 것이 귀엽다. 갑자기 무서워 진 건가?

험. 어떻게 할까? 좀 민망하군.


"내 테크닉이 그렇게 별로였나?"


가슴을 드러내고 잠든 척을 하는 현정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혼잣말로 이 무안한 상황을 무마시킨다.

쩝. 아쉽고 허탈하다.


나의 허탈함과는 상관없이 서른 살 난 딴 현정이는 귀엽게 새근거리면 잘도 자는 척을 한다.

다행인가?

옷을 다시 입혀주고 담요를 몸에 덮어주고 나오려다 왠지 아쉬움 마음에 현정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어 본다.

서른 살 난 귀여운 내 딸 현정이는 새근새근 귀엽게 잘도 자는 척을 한다.


"테크닉이 좀 지루한가 봐요. 아저씨."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니 은혜가 한마디를 던진다.

젠장. 또 무슨 소리야?


은혜는 술을 마신 듯 상기된 얼굴로 복도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의문스럽게 눈을 크게 뜨자 은혜가 손짓으로 복도로 난 창문을 가리킨다.

헉. 창문은 열려있고 커튼이 젖혀져 있다. 방안이 다 보이는구먼.


흠. 다 봤나?

무안해진 손으로 오 루피를 은혜에게 내민다.

담배 연기가 파랗게 피어오르고 우리는 말이 없다.


"케이는?"

"정민이 언니랑 술 마셔요. 잠깐 바람 쐴까 나왔어요."

"많이 마셨냐?"

"뭐 조금요."


다시 대화 거리가 떨어졌다.

나는 걸음을 옮겨 은혜의 옆에 가서 앉는다. 은혜의 농밀한 체향이 풍겨온다.

역시 이 녀석은 훌륭한 방향제다.


"좋았어요?"

"뭐가?"

"은영 씨요."

"...... 좋았어."


당황스럽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이 녀석은 무척이나 직설적인 화법을 즐겨 구사한다.

하여 나처럼 아저씨의 길목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당황스러운 존재다.


"굉장했어요. 그날 밤. 아그라에서. 아저씨랑 은영 씨. 코란이 울려 퍼지는데 복도에서 알몸으로."

"....."


젠장. 딱 걸렸구나. 핵심만을 딱딱 짚어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구먼. 너 졸라 모범생이었지?


"뭐 일부러 보려고 한 건 아니고 케이도 늦고 인범 씨도 중국 애들 방에 갔다길래 은영 언니랑 놀려고."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변명하기는 그른 것 같고.

은혜가 실망했다는 말을 할까 봐 두렵다. 그래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했는데.


"나한테 실망 많이 했지?"

"케이도 은영 씨가 좋았을까요?"


우리는 거의 동시에 말을 내뱉었다.

내뱉고 나서야 나는 우리의 대화의 핀트가 서로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혜는 애초에 내게 관심이 없다. 난 단지 "좋은 사람"일 뿐이니까.

왠지 속이 상한다.


"풋. 내가 왜 아저씨에게 실망해요?"

"그거야....."


은혜가 싱긋 웃는다.


"뭐. 아저씨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아요. 조금 전에도 봤듯이. 대부분 남자는 못 참잖아요?

뭐. 유부남의 신분으로 부인 아닌 다른 사람을 탐한다는 것은 반윤리적인 행동이지만. 뭐. 그래도 나는 아저씨 좋아해요."

"근데 은영 씨는 왜?"

"그냥 케이가 은영 언니랑은 자고 나랑은 자지 않아서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내가 매력이 떨어지나 싶어서요.

어때요? 내가 은영 언니보다 별론가요?"

"몰라."

"왜요? 나랑도 해봤잖아요."


이 녀석 술에 취했나 보다. 자기가 잊자고 그래 놓고서는.


"술 취해서 기억 안 나."

"흠. 아저씨. 저는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참 아름다운 건 줄 알았거든요. 근데."


은혜의 입속에서 황홀한 냄새가 나를 유혹한다.

허벅지를 꼬집어 참아보지만. 은혜의 유혹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란 생각이 든다.

술기운에 눈을 감고 말을 이어가는 은혜의 입에 나도 모르게 입을 맞춘다.

부드럽다. 몽롱한 느낌이 내 입안을 맴돌다가 서서히 빠져나갈 듯 하면서 내 애를 태운다.

아쉬운 마음에 몽롱한 느낌을 강하게 빨아들여 이빨로 깨물고는 내 혀로 엮어 맨다.


"좋았어요?"


키스가 끝나고 숨을 고르는데 상기된 얼굴로 은혜가 은근히 물어온다.


"어."

"은영 언니랑 비교하면요?"

"뭐. 둘 다 좋았어."


은혜가 싱긋 웃고는 일어나 복도를 걸어간다.


"나 들어가 볼게요. 케이에게 빈틈을 주면 안 되거든요."


은혜가 등 뒤로 손을 흔들며 걸어간다.

가녀린 그녀의 등으로 싱글거림이 전해져 온다.


"아저씨 테크닉도 뭐 나쁘지는 않았어요. 중년의 노련함은 일단 인정해 주죠. 헤헤."


제기랄.


놀림당한 기분이 든다.


***


"아저씨. 현정이만 계속 찍지 말고 나도 좀 찍어 줘요."


정민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랑 네 살밖에 차이 안 나거든. 오빠라고 불러줄래? 같이 늙어 가는 정민 아줌마."


나의 예리한 반격에 정민이는 말을 잇지 못한다.

도시는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우리는 암베르 포트로 향한다.


***


"우와~ 높다. 흔들거리는 게.. 어."


삼십 먹은 초등학생 정민이가 호들갑을 떤다.

시무룩하던 현정이도 예의 그 똥그란 눈으로 호기심 있게 코끼리를 바라본다.

뭐. 나라고 별 다를 바 있나? 어릴 때 동물원에서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타보기는 처음이다.


뒤뚱뒤뚱 오르막을 올라가는 코끼리의 안장 위에서 혹여나 떨어질까 봐 균형잡기에 여념이 없다.

한 사람당 이백오십 루피.

매표소에 적혀있는 그 경악할 만한 비싼 가격에 그냥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아났지만

간만에 호기심 가득한 현정이의 얼굴이 다시 시무룩해 질까 봐서 그냥 조용히 묻어가기로 했다.


"설마 코끼린데 힘들어서 낑낑대지는 않겠죠?"


은영 씨가 조심스레 지난날 아그라포트 가던 길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설마. 코끼린데."


그렇다. 코끼리는 말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괴력의 소유자다. 설마 좀 오르막이기로서니 세 명을 태우고 못 올라 갈까?

더군다나 오늘은 철재 형님도 없다.


"저기. 피가 나는 것 같아요. 어머. 어쩌지?"


옆에 앉은 은영 씨가 소리를 낮춰 속삭인다.

코끼리 몰이꾼이 코끼리 머리 위에 앉아서 게으름 피우는 코끼리를 재촉한다.

채찍으로 보이던 손에든 무언가를 자세히 보니 후크선장의 갈고리만큼이나 위협적이고 날카로운 쇠붙이다.

그가 무슨 소리를 지르며 코끼리를 재촉할 때마다 코끼리의 귓등에서는 상처가 생긴다.


뒤를 돌아보니 따라오는 코끼리에 탄 동물을 좋아한다는 서른 살 난 내 딸 현정이는 뭐가 좋은지 헤헤거리고 있다.

현정이가 헤헤거릴 때마다 같이 들뜬 그녀의 코끼리 몰이꾼은 코끼리를 재촉하고 코끼리의 두꺼운 가죽에는 상처가 생긴다.


"좋아하는 동물 학대하는 걸 좋아하나 봐요? 취미가 가학적이신걸요?"


내 귀로 케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고개를 돌려 현정이를 한번 보고 은영 씨를 지긋이 바라보며 검지를 그녀의 입술에 가져다 댄다.


"쉬~잇. 보안 사항입니다."


서른 살 난 귀여운 딸 현정이는 헤헤거리고 은영 씨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의문을 표시한다.

나는 멀리 보이는 암베르 포트를 바라보며 딴청을 피운다.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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