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3섬야설) 인도에서 만난 남자 - 1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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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는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의 끝을 겹쳐 모았다.

새의 부리처럼 모양 지어진 손으로 자기 입을 두 번 가리키고 그대로 손바닥이 하늘을 향해 보도록 쭉 펴서 내민다.

그의 앞에는 땟국물이 흐르는 당황스러운 표정의 인도 꼬마들이 서 있다.

케이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쓱쓱 배를 문지른다. 싱글거리면서도 안쓰러운 표정이 나오는군.


"하하하.. 크크큭...켈켈.."


우리 일행들은 뒤집힌다.

케이는 지금 구걸하러 온 꼬마들에게 그들의 행동을 흉내 내 오히려 그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다.

주위에 다른 외국인들도 케이를 보더니 배를 잡고 웃고 지나간다.

그걸 보고 있던 은혜가 '픽' 하고 1루피짜리 동전을 케이에게 던져준다.

형님들은 장난기가 올랐는지 오 루피 동전도 서슴없이 던진다.


얼씨구. 나름대로 어울리는 걸? 아주 전업을 하지?

"Sorry guys. it was just a kidding. here"s something to eat."


아그라 역에 도착하고 릭샤를 잡으려고 기다리는데 꼬마들이 몰려들어 돈을 구걸한다.

불쌍한 마음에 한 명에게 일 루피를 주니 더 많은 꼬마가 몰려와서 난리다.

그 아이들 틈으로 내가 방금 돈을 받은 아이도 또 손을 내밀고 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해요. 한 명에게 돈을 주면 그것을 본 다른 아이들이 더 많이 몰려들죠.

냉정한 이야기지만 안 주는 게 오히려 나아요. 이 많은 아이에게 모두 나눠 줄 수도 없잖아요.

차라리 먹을 것을 조금 나눠주면 모를까."


그래 너 잘났다. 나는 어설픈 박애주의자고 너는 냉정한 현실주의자다.

릭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자 이번엔 릭샤꾼이 말썽이다.

분명 10루피로 흥정 했던 것 같은데 20루피를 달라고 우긴다.

케이가 다가와 폴리스 어쩌고 하면서 윽박지른다. 그제야 릭샤 꾼은 쏘리를 연발하며 물러간다.


"거. 그냥 10루피 더 주면 어때. 그것 가지고 경찰 부른다고 윽박지를 건 뭐야?"


내가 그렇게 불만을 이야기하자 케이가 나를 바라보면서 싱글거린다.


"10루피를 더 주면 저 릭샤꾼은 행복하겠죠. 그러나 그것이 다른 관광객이나 인도의 관광산업에 과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까요?

뭐 인호 씨야 이번에 가고 나면 끝이지만 뒷사람도 생각해야죠.

어설픈 동정은 아주 위험해요. 그건 결국 자기만족이나 자기 위안일 뿐이죠."


제기랄.

고작 10루피 가지고 아주 거창하게 나가는구먼. 그래 너 잘났다.

왠지 저 녀석이 말을 하면 머릿속은 잘 받아들이는데 마음은 뭐가 욱욱 거리는지.

저 녀석과 진지하게 살풀이를 한번 해야겠다.

아~ 짜증나!


***


** 게스트하우스.


종업원 앞세워 이방 저방을 둘러보고 방을 정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다행히 창문이 달린 마음에 드는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창밖으로 전망도 좋고 베란다에서는 아그라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케이가 들어와서 확인한다.


"정말 이방 쓰실 겁니까?"

"이방이 딱 좋아."


케이의 질문에 나와 형님들은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창밖으로 멀리 타지마할도 보이는걸.

그간 케이는 전망 좋고 깨끗한 방을 주로 여성들에게 배치해 왔기 때문에 형님들도 나도 이번엔 물러설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한다.


"맨 위층이라 밤에 쪄 죽을 건데요?"

"뭐 어때. 지가 더워 봤자지."


케이의 말에 그렇게 대꾸하는데 형님들이 다시 짐을 싸서 방을 나선다.


"아래층에 좋은 방 있어?"

"물론이죠. 제가 이럴 줄 알고 잡아 놨어요."


형오 형님과 철재 형님은 역시 케이라며 좋아하며 짐을 챙겨 나간다.

배신자들. 그것을 보고 있다가 나도 짐을 싼다.


사람이 죄지, 방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케이녀석.



***


방을 옮겨 짐을 풀고 샤워의 순번을 기다리는 데 밖에서 웅성거린다.


"풍쉐 뿌 하오."


웬 짱게소리냐?

문을 열고 나가니 이쁘장한 여자애 세 명이 짱게 말로 쏼라쏼라 거리더니 곤란한 표정의 어린 종업원에게 어설픈 영어를 한다.


"Change this room and that room."


은혜가 아주 불만스러운 얼굴로 팔짱을 끼고 서 있다.

은혜가 잠시 표정을 고쳐 다시 생글거리더니 한마디 내뱉는다.


" Never! "


그렇지. 장하다 은혜야. 짱께에게 기세로 밀려선 안 되지. 힘들 땐 이 아저씨를 부르렴.

다시 종업원은 곤란한 표정으로 여자애들에게 떠듬거리며 말한다.


"뭔 일이야?"


케이가 막 샤워를 한양 머리에 물기가 마르지 않은 모습으로 방에서 나온다.


"이 중국 애들이 갑자기 우리 방에 들어와서 둘러보더니 방을 바꿔 달래요. 아주 막무가내에요."


은혜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거리며 케이에게 설명한다.


"What"s matter?"


케이가 다가가 그들에게 이야길 한다.

나지막하게 도란도란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여자애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린다.


"풍쉐 뿌 하오!"


케이가 돌아오더니 피식 웃는다.

우리가 궁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실실거리며 설명을 한다.


"나 참. 이거. 저 방이 풍수지리적으로 안 좋다나 봐요. 내가 보기엔 거기서 거기더구먼.

중국에 잘사는 애들은 자기가 왕인 줄 알아. 버르장머리 없이. 그래서 소황제라는 말도 생겼겠지만.

시끄러운데 그냥 방 바꿔 줄까? 좋은 게 좋은 거지. 은혜야?"


".........."


은혜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케이를 말없이 쏘아보고만 있다.

케이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더니 은혜의 입에 키스를 한다.

주위에서 탄성이 솟아오른다.

은혜의 손이 자존심을 지키려는 듯 늘어진 채로 꼼지락대더니 못 참겠는지 케이의 목을 감싸 안는다.


"말 들을 거지?"


입을 붙인 채 케이가 싱글거리며 말한다.


"밤에 한 번 더 해준다고 약속하면요."

"뭐. 그러지. 욕심쟁이 아가씨."


은혜는 얼굴을 붉히고 키스하면서도 자신의 요구조건을 관철한다. 흠. 올바른 협상의 자세군.

케이는 중국 애들에게 다가가 몇 마디 말을 하고는 방을 바꾼다.


"뭐 고맙다고 나중에 저녁에 술 산대요."


그렇지. 네놈이 그런 꿍꿍이가 없었을 리가 없지.


"중국어도 침대 위에서 배운 겨?"

"뭐 대충 그렇죠."


내 가시 달린 핀잔에도 싱글거리면서 넘어간다.

이 녀석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앉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


"나는 그냥 방에서 쉴 거에요. 타지마할만 벌써 다섯 번도 넘게 갔어요. 입장료가 700루피나 하는데 뭐 하러 돈 낭비해요?"


케이가 타지마할에 가지 않겠다고 하자 주위에서 같이 가자고 난리다.

케이가 있어야 재밌다나 어쨌다나. 내가 안 가겠다고 하면 피곤해 보이니 푹 쉬라고 할 사람들이. 너무 인간 차별하는 거 아냐?


"하루에 가이드 피로 일 달러씩 받아 봤자 12달러. 루피로 환산하면 1달러당 43루피로 해서 516루피.

숙박비. 식비. 교통비 빼고 나면 남는 것 없어요. 타지마할까지 갔다 오면 완전히 적자에요."


쪼잔한 놈. 그깟 700루피가 얼마나 한다고. 밥 일곱 끼, 물 열통쯤 아끼면 될 것 가지고. 흠. 좀 어려운가?

그렇게 속으로 욕하고 있는데 반항기 처자들의 생각은 그게 아닌가 보다.


"케이. 그렇게 박봉에 시달리고 있었어? 우리가 돈 낼 테니까 같이 가자. 응?"

"누님. 나 그렇게 몸값 싼 놈 아니에요. 저녁까지 산다면 모를까."

"헤~ 저녁은 제가 살게요."

"그럼 저녁은 탄두리 치킨으로 하지."


은혜가 말을 거들자 이놈은 한술 더 떠서 메뉴까지 결정한다.

정말 여자 등쳐먹는 기둥서방의 표본적인 모습이 아닌가?


케이. 케이, 케이.


저 녀석. 정말로 얄밉다.

부..럽기도 한가?


***


"우와~"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다.

볕에 반사되어 하얗게 서 있는 타지마할은 사진에서 보는 것 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말 아름답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미 입구에서 배정된 인도인 가이드가 말하는 샤자한이 어쩌고 하는 소리는 관심이 없다.


"자 입 좀 다무시고 거기 좀 서보세요. 네. 아저씨 트리오 분들 인상 좀 펴세요. 네. 좋습니다."


케이가 연신 감탄 성을 발하는 우리를 보고 웃더니 모여서란다.

기념 촬영을 한번 하자고. 반항기 처자들과 예비 군바리들은 이 포즈, 저 포즈 취하면서 난리이다.


인범 씨와 은영 씨는 아주 신혼여행 온 줄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우리는 타지마할에 들어가려니 너무 아까워서 주위만 살살 맴돌고 있었다.


"아끼다가 똥 돼요."


케이가 한마디를 내뱉는다.

지랄 같은 놈. 똥이 뭐냐 똥이. 네 눈엔 저 이쁜 타지마할이 똥 탑으로 보이니?


"원래 이슬람 사원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입장료로 700루피나 낸 외국인에게는 신발 커버를 주죠.

입구에서 나눠준 생수 담긴 주머니 있죠? 예. 거기에 이런 신발 커버가 있습니다. 신발에 뒤집어서 쓰고 가면 됩니다."


타지마할. 가까이서 보니 하얀 대리석이 반짝반짝한다.

타지마할로 올라가자 전망이 훤하다.

꾸역꾸역 들어오는 인파에 휩쓸려 어느새 타지마할 내부로 들어간다.


어 저 밑에 관이 있군. 진짠가? 시끄러워 잠이나 잘 수 있을까?


배치되어 있던 몇몇 안내인들이 조그만 손전등을 들고 벽 면에 음각된 꽃무늬를 비춘다.


우와~

별것 아닌 줄 알았던 무늬들이 살아있는 꽃인 양 색이 변하며 눈앞에서 떠오른다. 거참 신기하군.

내부를 돌아가다 보니 눈을 감고 한곳에 서 있는 은혜가 보인다.

눈을 감고 서 있는 모습이 아주 섹시한 걸.

흠.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남의 무덤에서. 변태 아냐?


"여기서 뭐 하냐?"

"어! 아저씨. 여기 되게 시원해요. 마치 에어컨 바람 쐬는 것 같아요. 어. 밀지 말아요.

저쪽에도 자리 있잖아요. 욕심쟁이~"


은혜가 툴툴거리며 다른 곳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서 있다.

뒤를 돌아보니 벽면에 지름 30cm 정도의 구멍이 나 있다. 그곳에서 냉랭한 바람이 흘러나온다.

은혜를 슬쩍 밀고 바람을 쐬니 세상이 다 내 것 같다.

몇백 년 전에 이런 구조물을 어떻게 만들었지? 놀라운 일이군.


이젠 타지마할의 아름다움보다 이런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구조물이 더욱 신기하다.

한참 바람을 즐기다 밖으로 나가니 일행들이 모여 있다.


"케이는?"

"케이 타지마할 안에 들어갈 때부터 안보이던데."

"제가 찾아보고 올게요."


은혜가 케이를 찾아온다고 간지 어언 십오 분. 케이도 오지 않고 은혜도 오지 않는다.

미련하게 땡볕에서 그들을 기다리다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한다.


"다 같이 찾아보지."


형오 형이 최연장자답게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한다.


"아니 이것들이."


왼쪽으로부터 한 바퀴를 돌아가니 타지마할 오른쪽 측면의 벽돌이 올라앉은 구석에서 케이가 카메라 가방을 베고 자고 있다.

케이 찾으러 간다던 은혜는 그런 케이의 품에 꼭 안겨 한쪽 팔을 베고 새근새근 잘도 잔다.

형님들이 툴툴거린다. 반항기 처자들도 짹짹거린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들의 주위로 둘러앉아 자리를 잡는다.

등이 나도 모르게 뒤로 넘어가고 어느새 생수병은 내 머리 밑에 자리 잡고 있다.

졸린다.


눈을 뜨니 어느새 타지마할의 그림자가 저 멀리 길게 누워있다.

그대로 누운 채 좌우를 살피니 내 양옆으로 은혜와 은영 씨가 누워있다.

각기 다른 남자의 팔을 베고.


쩝. 최고의 위치선정임에는 분명하나 마음이 조금 쓸쓸해져 오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나.

맨바닥에 누워서 그런지 허리가 뻐근하다.

몸을 일으켜 않으니 주위가 눈에 들어온다.

엥? 인도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다.

일부는 우리의 자는 모습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도 하고 있다.

당황스럽다.

쪽팔리다가 더 적절하고 직접적인 표현인 것 같다.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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