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청춘예찬 35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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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뭐야..그런 평범한 이유로 신기하다는 겁니까."


"평범하다뇨?"


"전 낙하산으로 들어갔어요. 그걸로 기뻐한다면 그릇이 작은 거겠죠. 전 낙하산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럼 그 안좋아하는 낙하산을 왜 굳이 감행했죠?"


"뻔한 걸 물으시는군요. 목적이 있으니까 그렇죠."


 

윤지는 어찌보면 노골적이라고 할수 있는 형준의 발언이 싫지는 않았다. 그녀역시,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에서 지금 형준과 마주앉아 술을 마시는 것이 짜릿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일탈의 선을 넘어가지 않고 있었지만, 왠지 자신감있게 말하는 그를 보면, 이것이 일탈로 넘어갈 것만 같은 착각마져 들었다.



"자녀는 없나요?"


"네. 없어요."


"왜요?"



윤지는 잠시 형준을 빤히 바라보았다. 형준은 억지로 머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설마...물어보면 실례가 된다라던가...뭐 그런건가요?"



"별로...그런건 아니에요. 딱히 이유는 없어요. 남편이 바쁜것도 있고..."


 

형준은 그 외의 이유가 있다는것을 충분히 유추할수 있었다. 하지만 윤지의 살짝 어두운 그늘을 본 형준은 더이상 파고 들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요인이 있었다.



"형준씨는? 여자친구가 없나요?"


"글쎄요. 있는데 유부녀에게 치근댄다면 나쁜놈이겠죠."


"....유부녀에게 치근되는건 원래 나쁜놈이에요."


"아....그렇구나."


"...."


 

괜히 멍해지는 형준의 얼굴을 보더니 윤지는 입을 가리고 쿡쿡 거리며 웃었다. 형준은 놀랍다는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미소말고 그렇게 웃는모습은 처음보는데요?"


"그러게요. 저 자신도 오랜만이네요. 그런데...왜 여자친구가 없죠? 미국오기전에 헤어졌나요?"


"흠...."


 

이번엔 형준이 약간 심각해졌다. 잠깐이지만 봄이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형준역시 잠시간은 봄이에게 사랑을 느낀것도 같았다. 마음속으로는 부정하고 있지만.



"어찌보면 그럴수도 있겠군요. 미국오기전에 헤어지긴 했죠."


"이유는요?"


"과거를 알았거든요. 제 친구와 같이 잤더군요."


"어머...형준씨와 사귈때요?"


"아뇨. 그전이죠."


 

윤지는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갸웃했다. 개방적으로 보이는 형준에게 이런 고지식한 면이? 라는 듯이.


 

"어찌보면 헤어질 이유가 아닐수도 있어요. 절 알기도 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상대가 잘못되었죠. 저에게 약과 독을 동시에 주는 녀석이니까요."


"약과 독이라...미묘한데요."


 

"그 녀석이 없었더라면. 아마 전 제가 세상최고로 잘난놈인줄 알고 매너리즘에 빠졌을 겁니다. 어쩌면 우정이니 뭐니 하는것도 모르고 살았을수도 있죠. 그런데 동시에 그 아이를 보면 절대 넘을수 없는 뭔가가느껴지거든요. 안타까운 일이죠."


 

"잘은 모르지만...어떤 기분인지는 알거 같군요."

 


형준은 바텐더에게 손짓을 해서 같은 술을 주문하고는 윤지를 바라보았다.


 

"그럼 윤지씨는? 지금 남편과 안좋은 이유가 뭐죠?"


"뭐라구요?"


"선을 넘었다면 미안해요. 하지만 윤지씨 얼굴에서 티가 나는데요."


"아뇨.미안할건 없어요. 원치 않게 결혼한것은 사실이니까요."


"뭐...원치않는 결혼이라...흔히 있죠 이 세상엔."


"그럼 저도 선을 살짝 넘어도 될까요?"



윤지의 질문에 형준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나에게 관심이 있나요? 있다면 유부녀인것을 인지하고도 신경안쓰는 것이 궁금하군요."


"관심이 있죠. 저는 쓸대없는 일에 시간낭비하는 걸 젤 싫어합니다. 관심이 없는데 굳이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죠.그리고...."



형준은 잠시 뜸을 들였고 윤지는 묵묵히 형준을 바라보았다.



"저에게 있어서는...윤지씨가 기혼자라는 건 그다지 큰 벽이 되지 않거든요."


 

윤지는 형준의 말에 잠시 멍해지더니, 이내 고양이처럼 베시시 웃는다. 남자를 충분히 홀릴만한 일격이었지만, 형준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윤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진짜 벽에 부딪혀 본적이 없는 모양이군요 형준씨는. 그건 큰 벽이랍니다."


"글쎄요. 그게 벽일지 아닐지. 만약 벽이라면 무너질지 안무너질지...내기할까요?"


 

형준의 말에 윤지는 앞에 놓인 마티니를 비웠다. 그리고는 살짝 눈을 내리깔며 형준을 바라보았다.

뭔가 신비한 이미지마저 풍겨, 형준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알수없는 미소를 짓던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좋아요. 재밌게 들리네요. 내기 결과, 즐겁게 기다리죠."


 

-


채윤과의 데이트는 정말 앗 하는 시간에 지나가 버렸다. 커피숍에서 나왔을때는 이미 꽤나 시간이 지나있었고, 둘은 약간은 소박한 식사를 한 참이다.

동철과의 사건이 있은후, 채윤에게는 사상초유의 '통금'이라는 개념이 생겨버린 것이다. 게다가 이미 초겨울이 되어버린 시점인지라 어둠은 더욱 빨리 찾아왔고, 승민은 아쉬운 마음에 그녀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다왔네요. 우리집."


"그래. 다왔네."


 

아쉬우니 메아리처럼 따라서 독백하는 승민. 둘은 또 말없이 손만 잡고 있었다. 한명은 들어가기 싫고 한명은 보내기가 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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