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3섬야설) 인도에서 만난 남자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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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로비로 내려가니 케이와 그 아가씨가 앉아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잘 어울리는군.


"이야. 간밤에 역사가 이루어졌나?"


형님들이 둘을 놀린다. 어젯밤 서로 인사를 하다가 의기투합해서 소주를 까고 형 동생으로 부르기로 했다.


"큭, 초등학생 같아요."


케이는 별 시답지 않다는 듯 무시하고 신문을 보고 있고 옆에 나란히 사이좋게 앉아 있던 아가씨가 유치하다는 듯 대꾸한다. 덕분에 나도 도매급으로.

그녀는 나를 보며 찡긋 윙크를 한다.


"뭐. 인호 씨 키스만 하겠어요?"


심장이 철렁한다. 어젯밤 새도록 형님들에게 추궁당했었다.

저 아가씨와 무슨 관계냐는 둥, 다른 남자랑 둘이 한방에 있는데 불안하지 않냐는 둥. 아내 몰래 사귀는 불륜 상대냐는 둥,

별의별 소릴 다 듣다가 무슨 소리냐고 물으니 형님들이 능글맞게 이야길 했다. 비행기 안에서 그 열정적인 키스는 뭐냐고.


"죄송합니다. 제가 술에 취해서."


그녀가 웃는다.


"이 은혜에요. 제 이름"

"아! 예."

"어제 지분거린 인도인에게 도와줘서 고마워요. 박치기가 박력 있던데요. 뭐 키스도 나쁘지 않았고요."


싱글거리는 은혜의 얼굴을 보자 나름대로 안심이 된다.

어제 형님들에게 키스 사건을 들은 후 어떻게 사과할까 밤새 고민했는데 이렇게 쉽게 해결되자 맘이 놓였다.

사람들이 로비로 내려온다. 케이는 신문을 보다 말고 사람들에게 얘기했다.


"십 분 늦었습니다. 어제 제가 아홉 시까지, 로비에서 보자고 했는데 이렇게 시간을 지키지 않으시면 곤란합니다. 다음부터는 유의해 주세요."


분명 말은 꾸짖는 것 같은데 그가 싱글거리면서 말을 하자, 마치 농을 거는 것처럼 편했다.


"아침은 간단하게 먹죠, 오늘은 오전에는 기차 예약과 항공권 예약 확인을 하고 오후에는 자유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질문해 주세요"


그가 데려간 곳은 에베레스트라는 식당이었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면서 사람들이 케이에게 질문을 했다.


"사적인 질문은 곤란한데. 흠 뭐 대중 말하면 스물아홉이고요. 고향은 경상도입니다.

아 네. 사투리는 대학 다닐 때 고쳤습니다. 물론 아직 가끔은 사투리를 씁니다.

대학이요? 궁금해요? 몇 년 전에 **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대학.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명문대학 중 하나다, 우리 이쁜이도 그곳 출신인데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는 왜 이런 곳에서 가이드를 하는 걸까?

놀래서 그를 보니 별일 아니라는 투로 계속 이야길 한다.


"그냥 방랑벽이 있어서라고 할까요? 사진을 좋아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찍기도 편하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뭐 나름대로 지금도 좋은 것 같은데요."

"애인이라? 그런 것도 말해야 하나요? 너무 짓궂으시군요. 반항기 누님들. 지금은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없네요.

이제 저에 대한 사적인 질문은 그만하죠. 저기 다른 분들도 많으신데. 삼십 대 트리오 분들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가 화살을 우리에게 돌린다.

형님들의 공격도 만만찮다. 어젯밤의 진상을 밝히라고 난리다. 반항기 처자들도 더불어 난리다.

그가 씽긋 웃더니 은혜를 보고 묻는다.


"괜찮겠어요?"

"뭘요?"


그가 갑작스레 은혜에게 키스를 한다. 은혜가 놀란 듯 반항하다 그의 목을 안고 키스에 응한다.

멍해진 우리는 그들의 키스를 보다 입맛만 다신다.

한참 후 그는 입을 떼고 이야길 한다.


"궁금하죠? 그냥 궁금한 채로 있으세요."


케이는 은근하게 웃으며 더욱 궁금하게 한다.

얼굴을 붉히고만 있는 은혜의 새침한 모습은 더욱 사람의 애를 태운다.


뉴델리 스테이션과 에어 인디아 사무실로 그는 이리저리 분주히 우리를 끌고 다녔다.


"이제 오후엔 자유시간입니다. 7시까지 숙소로 들어오세요. 환전과 전화는 숙소 뒤로 20여 미터를 가면 노란 간판이 서 있는 곳에서 할 수 있습니다.

한꺼번에 이동하시지 마시고 세네 명으로 무리를 나누어서 이동하시는 편이 릭샤를 타는 데도 편합니다.

그리고 밤에 시원한 맥주나 한잔할까요? 한 사람당 오십 루피씩입니다."


우리 삼십 대 트리오는 은혜를 이끌고 레드포트를 비롯한 올드 델리쪽으로 가기로 했다.

세 발 오토바이처럼 생긴 오토릭샤를 오십 루피에 흥정하고 마른 형오 형님이 운전사 옆에 앉고, 은혜를 사이에 두고, 철재 형님과 내가 뒷좌석에 앉았다.

눈을 감으니 풋풋한 은혜의 땀 냄새가 은근히 코끝을 자극해온다.


"꼼지락거리지 말아요."


은혜가 철재 형님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손 둘 데가 없어서"


철재 형님이 변명을 한다.


"인호 아저씨도 끙끙대지 말아요. 뭐예요 둘 다 엉큼하게"


앞에서 형오 형님이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손장난이 아직 원숙하지 못하니 그런 퇴짜를 맞지. 나랑 자리 바꿀까?"

"아유~ 정말 아저씨들은."


레드포트는 나름대로 웅장하고 볼만했다. 다만 너무 더운것이 문제지.

이쁜이가 꼭 이쁜 사진을 많이 찍어 오라고 했기 때문에 이리저리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배고프지 않아요?"


레드포트를 둘러보고 오는 길에 은혜가 밥을 먹자고 했다.


"케이가 아무거나 사 먹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이야길 하자 형님들이 괜찮다고 먹을만한 곳을 찾아보자고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케이가 재래시장 근처에 맥도날드가 있다고 했어요. 아. 더워 빨리 가요"


나도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머리도 어찔해 온다. 어디 시원한 데를 찾아가야 겠다.

여행자 안내 책자를 뒤적거리며 재래시장 방면으로 십 분을 걷자 그제야 맥도날드가 보이기 시작한다.


"막내가 가서 주문하고 와라."


형님들의 말씀에 은혜를 지긋이 바라보자 형님들이 이쁜 여자는 언제나 열외라며 나를 구박한다.

내가 콜라와 햄버거를 사 오자 은혜가 덥석 콜라 컵 덮개를 벗기고 들이킨다.


"아! 시원해. 마치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 같아"


마시던 콜라를 도로 내뱉을 뻔 했다. 우리가 캑캑 거리자 은혜는 능청스럽게 말한다.


"왜요? 너무 직설적인 표현인가요?"

"너 어른 놀리면 혼난다."


은혜가 혀를 내밀고 귀엽게 웃는다.


"근데 너. 왜 우리 따라서 왔냐? 아저씨들이랑 놀면 재미없을 텐데."


형오 형이 묻자


"그냥 아저씨들이 편할 것 같아서요. 부부들은 좋은 시간 방해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고 반항기 언니들은 자기들끼리 너무 뭉쳐 있고.

예비 군바리들은 너무 애들 같고. 뭐 대충 그래요."

"뭐 아저씨의 장점은 편안함과 능숙함이지."


철재형이 멋쩍게 웃는다.

맥도날드를 나와 재래시장에 가는데 한 꼬마가 계속 뒤를 따라오면서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은혜가 노라고 계속 이야기하는데도 쫓아오자 은혜가 한숨을 푹 쉬더니 슬픈 표정으로 손가방 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불을 붙여 꼬마에게 준다.


"안주면 계속 쫓아 올 것 같아서요."


그리고는 앞서서 걸어간다.


"무슨 담배 피냐?"

"던힐이요"

"담배는 충분하냐?"

"뭐 모자라면 사면 되죠. 별로 안 비싸던데."


그러고는 어느 구석에 멈춰서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다.

형님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불량스러운 애라고 보는 듯 하다.

내 아내의 친구들은 담배를 피운다. 아내도 가끔은 핀다. 뭐 내 대학 동아리 친구들도 담배를 피운다.

별거 아니다.


"나도 한 대 줘라"

"오 루피에요"

"뭐?"

"어제 케이한테 오 루피에 담배 한 대 빌려 폈거든요"


그렇게 말하면서 싱글거리는 그녀를 보자 왠지 외설스럽거나 상스럽기보다는 처연해 보였다.


"담배는 언제."

"더  이상은 노코멘트요."

"그래"


그녀는 곧 다시 싱글거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어색함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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