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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야설) 어쩌면 사랑일지도 몰라요. -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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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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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xx일

여기는 내부 순환로.

상계동을 가기 위해 내부 순환로를 타고 정릉 터널을 지나고 있다.


지금 시간은 새벽 1시.

그리고 밖은 한 치 앞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상계동에 왜 가느냐고?

그건. B를 만나기 위해서다.


B는 대학 다닐 때 만난 한 학번 차이 선배다.

나와는 한 살 차이고 서로 다른 과였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당시 사귀던 내 여자친구와 같은 과였고 또 둘이서 친한 사이었었다.

대학 시절. 열심히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학점 높이느라 다른 무리와의 속하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여러 술자리에 어울렸고 내 여자친구와 친했던 그 B와도 자주 어울렸었다.

그때는 나도 여자친구가 있었고. B도 남자친구가 있었기에 서로에 대해서 아무런 뜻이 없었다. 단지 내가 B를 판단할 때는 반반하다.

체형에 비해 가슴이 큰 편이다. 옷은 잘 입는 것 같고.


주제에 눈은 높아서 그렇게만 생각했지. 마음이 설레이거나 하지 않았다.

대학은 전문대를 다녀서 그런지 1년밖에 마주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1학년 때 B는 2학년. 그리고 내가 2학년 때 B는 졸업했으니.

나도 여자친구가 있을 때라 크게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었고 그렇게 잊혀 갔다고 생각했다.


2005년 10월 가을이었을까.

왜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외로웠었다.

여자친구도 나의 외로움 허전함 빈자리를 채워주지를 못했다.

우리는 점점 만나는 날이 줄어들었고 만날 때마다 서로를 안았지만, 가슴 한구석은 정말 허전했다.

너무나도 외로워서 매일 다른 사람들을 만나가며 내 한구석을 채워보려고 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오늘은 누굴 만나서 어딜 가서 술을 마실까? 뭐 하고 놀까.

이미 다 외워버린 전화부 목록이지만 연락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다.

그건 바로 B.

B와 나는 성격상 서로 문제가 될 건 없었지만, 당시 사귀었던 내 여자친구는 B에 대해 묘한 질투를 하고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나도 쓸데없는 오해를 만들기 싫었고 그렇게 가까이하지 않아서 인지 별로 봐도 할 말도 없을 것 같았고

그래서 별로 연락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갑자기 보고 싶고. 뭐 그런?.

그래서 연락을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연락이 없었는데 갑자기 오니까 놀란 목소리더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간단하게 전화를 끊었다.

B와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그녀에 대해 생각이 많이 났다.

여친과 3년 넘게 사귀다 보니 여친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여자의 향기가 났다고 해야 할까.

그날 밤 침대 위에 누워서 잠을 자는데 가슴이 뜨겁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내가 왜 이러나 싶었다. 가


뿐 숨을 고르며 다시 또 B에 연락했었다.

B는 나의 연락을 기분 좋게 잘 받아주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B가 예전에 대학 시절 사귀었던 애인과 오래 만나다가 얼마 전 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전에는 B가 애인이 있었고 나도 여자친구가 있어서 서로에게 나름대로 친해지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몰랐다.


나에겐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이미 시들해졌고 새로운 인연에 목이 마를 때였다. B도 나의 안부를 묻고 아직 여자친구와 사귄다 라는 걸 확인하자

살짝 아쉬워하는 듯한 것을 전화상으로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인가를 연락하고 우리는 종로3가에서 만났다.


항상 내 옆에는 여자친구가 그리고 B 옆에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자리에서 둘이 만나게 되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그리고 우리가 둘이 만날 만큼 가까웠던 사이였는지도 궁금했고.

B와 같이 있을 때는 달랐다. 죽었던 심장이 뛰는 소리도 들렸고 왠지 모를 죄책감도 스멀스멀...


그렇게 몇 달을 아무도 모르게 만났었다. 그래도 우린 다르지 않았다. 단지 선후배 사이로만 만났을 뿐.

서로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서로 간의 확실한 표현은 못 하고 겉도는 말들만 하기를 반년째.

어느 날 술에 취한 B에서 전화가 왔다.


"나에게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야?"

"제가 뭐가요...?"

"우리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자꾸 왜 나한테 이쁘다고 그래"

"......"

"너 그리고 여자친구도 있잖아"

"...여자친구가 있으면 안 돼요?"

"그럼 어쩔 건데?..."

"아무도 모르면 그만이잖아요."

"뭐?"

"내가 선배 만나는 거, 선배가 나 만나는 거, 아무도 모르면 그만이잖아요."

"..."


내가 생각해도 너무 당돌한 말이었다. 뻔뻔했고.


"그럼 앞으로 어쩔 건데?"

"이대로 선배 좋아하면 안 돼요?"

"뭐?."

"여자친구만 모르면 그만이잖아요."


B도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었나보다. 하긴 갈대에 바람이 불었으니 바람 잘못이 크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날 이후로 크게 달라졌다.

전에는 만나도 서로 거리를 두었지만, 그날 이후로 우리가 가진 만남에서는 만나자마자 손을 잡았고 키스를 했다.

그리고 학창 시절 그렇게 동경했었던 그녀의 가슴을 만졌었다.


전 여자친구는 가슴이 좀 작았지만, B는 달랐다.

등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고 두 손으로 풍만한 가슴을 주무르며 손가락으로는 그녀의 단단한 돌기를 터치하며.

그녀의 뒤에서 그녀의 목에 뜨거운 숨을 뱉어내며.

서로 보기로 했던 영화는 보지도 않고 어느 DVD방에서 스킨십을 했었다.


6개월 만에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가슴을 만졌지만 B는 나에게 어떤 제지도 없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진도는 나가지 않았다.

여자친구가 있는데. 그리고 그 여자친구는 나를 많이 사랑하는데 그런 생각들이 자꾸만 나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그러면서도 B와 이러고 있는 것에 대한 음험한 생각을 즐기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마음이 아주 괴로웠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여자친구와 만났고 여자친구는 나를 믿는다는 듯이 행복한 얼굴로 내게 기댔지만 나는 달랐다.

어딘가 나 자신이 더러운 느낌이었고 나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여친에게 항상 미안했다.

그리고 그 얘기가 나온 전의 B와 후의 B가 너무 달랐다.


그전엔 내가 B에 집착하는 형상이었지만. 그 스킨십이 있었던 그날 이후부터 B는 너무 달라졌다.

시도 때도 없이 먼저 연락하고 어딘가 모르게 나에게 집착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때로는 나와 내 여자친구를 불러내어 밥을 사주며 같이 먹는 대담함도 보였다.

나는 그럴 때마다 밥이 목구멍을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 기분이었다. 

옆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웃고 떠드는 B와 내 여친을 보면서 내 여친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스치듯 눈에 걸리는 B의 눈빛이 나를 알 수 없는 혼란 상태로 만들었다.


시작은 나였고 잘못도 전부 나다. 멀쩡하고 착한 B를 그렇게 만든 것도 나다.

하지만 난 이제 더 이상 B와의 만남을 원하지 않는다. 

그녀의 부드럽고 탄력 있는 살결은 내 손에 그대로 남아있고 그 감촉을 잊지 못하지만, 그 감촉마저 역겹게 느껴진다.


난 더 이상 B와 연락할 자신이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서서히 B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B의 연락을 무시하고. B가 나오라는 제안을 거절하고 각종 B가 속한 모임에는 얼굴도 내뱉지 않았다.

서서히 B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B는 날 소유하러 들었고 여자친구와 만나는 도중에도 연락을 해서 수신내용과 문자를 지우게 했다.


이제 끝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러다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정말 끝내야지 싶었다.

그래서 온갖 정떨어지는 말들로 B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온갖 음담패설. B에게 팬티를 벗고 그것을 핸드폰으로 찍어서 나에게 보내달라는 요구를 했다.


B는 망설였고 나는 마치 염치없는 파렴치한처럼 온갖 것들을 요구했다.

그래서 B는 팬티를 벗었다.

서서히 B와 나 사이에는 예전과 같은 서로를 그리워하는 말들은 없어지고 그 대신은 음란한 말들이 오가는 것으로 바뀌었었다.

물론 B는 나를 그리워하는 얘기들을 했었지만 나는 B를 떨쳐내기 위해 온갖 더러운 소리를 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나를 다 받아주었고 이해해주었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도착해있는 B의 문자와 그리고 내 여자친구의 문자.

회사에서 일을 할 때에도 끊임없는 이메일과 전화. 혹시라도 여자친구가 볼까 봐 이메일 비밀번호도 바꿨다.

B가 정말 무서웠다. B의 사진을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B의 문자만 봐도 나는 짜증이 났다.

그리고 불안했다. 언젠가는 여자친구에게 들킬 거라는 생각으로. 도저히 참기 힘든 어느 날. B에게 문자를 했다.


"더 이상 우리 연락하지 말자. 그리고 예전처럼 그냥 선후배로 지내자."


이렇게.


그리고 한동안 서로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B와의 만남으로서 여자친구에게 미안했던 감정들을 다 돌려주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때 느낀 거지만 나는 여자친구에게 이미 싫증을 많이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노력은 많이 했지만 마음 없는 노력은 힘들었다. 그리고 몇 달을 지나지 않아서 3년 이상 사귄 여자친구와도 이별을 맞이했다.

그래도 별로 슬프지는 않았다.

단지 이 상황들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을 뿐...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변함없이 직장을 다니고 있던 나는 간만에 미니홈피에 들어가서 친구들의 근황을 보고 있었다.

B와는 그날 이후로 일촌도 끊었지만. 찾고 찾아서 어떻게 들어갔다.

그리고 간만의 B의 사진을 보고. 이것저것 뒤져보다가 그녀의 다이어리에 들어갔다.


2006년 x 월 x 일 자 이후로 쓴 다이어리는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 쓰여있는 다이어리가 지난 B와의 기억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줬다.


2006년 x 월 x 일/

당신이 시작했으면서 왜 당신이 떠나는 건데...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내가 얼마나 못된 놈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B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전화번호부에서 지웠고 잊은 줄 알았지만, 아직 내 머릿속에서는 B의 번호를 지워버리지 않았나 보다.

그날 바로 연락을 했다.


"여보세요"

"나야"

"...누구세요?"

"나라고..."

"...누구?"

"나 몰라?...나라니까"

"아. 그래 잘 지내?"

"응. 뭐 그렇지. 요즘 뭐 하고 지내?"

"그냥 똑같지. 일하고..."

"우리 오늘 볼까?"

"... 오늘?"

"응. 오늘 보자"

"...그래. 새벽 1시에 상계동으로 와"

"새벽 1시? 농담하는 거지?"

"아니. 그때와. 늦지도 말고, 일찍 오지도 말고"

"일이 몇 시에 끝나는데?"

"6시"

"그런데 왜 새벽 1시에 보자는 거야. 농담 아니지?"

"응. 그럼 이따 봐, 끊는다."


뚜...뚜.


그래서. 그녀를 일 년 만에 보러 가는 것이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이런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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