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야설

(로맨스야설) 마지막 프러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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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연기가 답답한 속을 태워 하늘로 사라진다. 콜록. 콜록. 갑자기 터진 기침에 담배를 비벼 껐다. 후, 잠시 지나가는 사람들을 내려 보다 일어난다. 베란다의 정원을 지나 거실로 가니 그녀가 보인다. 어느새 아줌마가 되어 버린 나의 아내. 탁자에 발을 떡하니 올려놓고, 소파에 기대어 드라마를 보던 그녀가 나를 쳐다보며 연홍빛 입술을 벌렸다.


“집에서 좀 피지 말라고 했지? 안 피우더니 요즘 왜 그래?”


저렇게 툴툴거리는 모습이 예쁘다.


“그냥, 좀 피자. 콜록. 콜록.”

“그렇게 기침하면서 뭔 담배를 피워? 친구들은 남편이 금연했다고 자랑하는데.”


그녀가 말하는 그 순간, TV에서는 키스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녀를 쳐다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키스도 안 할 텐데 상관없잖아?”

“뭐? 당신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진담이야. 아줌마하고 누가 키스하고 싶겠어.”


끝이 없을 것 같던 정적을 TV에서 들려오는 뺨 맞는 소리가 깨웠다. 그녀를 더는 쳐다보기 힘들었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말없이 쳐다보다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쿵. 문이 닫히며, 그녀와 단절된다. 침대에 무거운 몸을 던졌다. 그녀와 잠자던 침대가 너무 넓었다. 오지 않는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고, 또 감았다.




송미진-1



“진담이야, 아줌마하고 누가 키스하고 싶겠어.”


탕! 하고 쏘아진 그 말이 내 가슴에 박혔다. 가슴에 박아 놓고, 미안하다고 안 해? 그렇게 무심하게 보지 말고. 그는 무표정하게 날 쳐다보기만 하다가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어떻게 해? 당장 따라 들어가 드라마처럼 따귀라도 한 대 시원하게 칠까? 복잡한 머리에 머리칼을 헝클리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아줌마라고? 머리를 내려 날 내려다보았다.


헐렁한 흰색 면티에 회색의 칠보 면바지. 그 속으로 만져지는 살집. 그래, 당신 말대로 내가 요즘 관리를 안 하긴 했어. 그런데 당신은 뭐, 아저씨 아닌가. 나도 아저씨랑은 키스하고 싶지 않다고. 그가 들어간 방을 노려보고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 이부자리를 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미진 씨?”

“네, 네?”


며칠 전 일을 생각하다 정신을 차리니 코앞에 점장이 서 있었다. 언제 온 거야? 정말 귀신이라니까. 어휴, 손님이 너무 없다 보니 정신을 다른 데 팔고 있었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내일부터 크리스마스 준비해야 하니, 재고 조사 좀 해주세요.”

“네, 알겠어요.”


요즘에 근처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다른 아웃도어들 때문에 마귀가 예민하다. 그래서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수첩을 챙기고 매장을 돌면서 빈 옷들과 몇 장 안 남은 옷들을 확인해 창고로 들어갔다. 천장까지 빼곡하게 쌓인 옷들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크리스마스구나. 그러면 뭐 해. 이번에는 혼자 쓸쓸하게 보낼 텐데. 며칠 전부터 이어진 한랭전선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는 그 후로 밖에서 먹고 들어왔다며 집에서 밥도 안 먹고. 휴, 일단 빨리 끝내고 보자. 수첩을 보며 옷들을 찾고, 재고가 없는 건 따로 체크했다. 있는 옷은 다 찾아 창고에서 나갔다. 매대에 옷들을 걸고, 점장에게 재고가 없는 옷들이 적힌 수첩을 주었다.


저녁이 되어가니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그들을 상대하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다. 옷을 갈아입고, 목도리를 둘렀다. 점장은 손님을 상대하느라 바빠 저녁 알바에게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다.


빵빵한 엉덩이가 날 반긴다. 새빨간 베스파. 125cc 클래식 오토바이인 섹시한 베니에 올라타고 분홍색 헬멧을 썼다. 오늘은 결판을 내고 말 거야. 동동거리는 베스파의 배기음에 맞춰 심장이 두근거렸다. 출발하니 곧 시원함을 넘어 날카로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으드드, 몸이 떨린다. 베니가 섹시하긴 하지만, 겨울엔 좀 아니라니까. 정말 딴 놈으로 갈아탈까 보다. 좀만 달리니 가까웠기에 금세 집이 보였다. 잠시 근처 편의점에 들러 수입 맥주와 안주를 사 집으로 향했다. 


그가 좋아하는 아사히와 내가 좋아하는 호가든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몸을 씻었다. 감긴 눈 위로 따뜻한 물줄기가 쏟아졌다. 물줄기는 몸을 두드리며 피로를 씻어 갔다. 촉촉이 젖은 몸을 닦고, 고심해 섹시함을 강조하기 위해 속옷과 원피스를 검정으로 맞춰 입고 선홍빛으로 입술을 물들였다.

시간을 보니 어느덧 남편이 올 시간이 되어간다. 식탁에 나초와 땅콩 등 마른안주를 접시에 담고, 복숭아도 접시에 가지런히 놓았다. 붉은 조명 아래에서 기다리니 문이 열리며 그가 들어왔다.




이준혁-2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녀가 보였다. 붉은 조명 아래에 있는 그녀를 보자마자 가방을 당장 던져버리고 안아 방으로 가고 싶었다. 얼마 전 아줌마라고 했던 걸 철회하고 빌어야 할 정도로 그녀는 아직도 매력적이었다. 날 요염하게 쳐다보는 그녀를 보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무덤덤하게 방으로 향했다. 그런 내 뒤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씻고 와. 기다릴게.”

“그래.”


돌아보지도 않은 채 답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었다. 그녀가 기다릴 걸 뻔히 알면서 천천히 씻었다. 샤워기에서 내리는 물에 몸을 맡기고, 가만히 눈을 감고 서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물기를 닦고, 추레이닝을 입었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고 가만히 몇 분을 보내다 밖으로 나갔다. 그녀를 보니 아까와 달리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녀는 일어나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왔다. 표정을 푼 그녀가 입을 연다.


“오랜만이지?”


난 고개를 끄덕이고 캔을 따 마셨다. 이렇게 그녀와 단둘이 맥주를 마신 건 꽤 오래됐지. 그녀도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당신 요즘 너무 이상해, 무슨 일 있는지 말해 봐.”


맥주를 머금은 그녀의 선홍빛 입술이 반짝이며 유혹한다. 순간 유혹에 빨려들 뻔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 말없이 담배 한 대를 끝까지 피우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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