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야설

(주부야설) 서방의 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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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이 아빠는요?"

"그 새끼는 오늘도 초원집에서..."


초원집은 동네에서 알아주는 유흥업소.

서방 절친 경필의 불끈해진 자지를 쓰다듬으며 이내 입안에 담았다.

맥박이 빨라진 자지가 좀 더 부풀어 오른다.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낙지 대가리 마냥 꿈틀대는 자지는

씨를 뱉어내기 전, 관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세정액을 흘려보내기 시작하자 난 그쯤에서 자지를 뱉어냈다.

서방 절친 손가락에 미끈해질 때로 미끈해진 보지를 훤히 벌린 엉덩짝을 서방 절친에게 들이밀었다.

서방 절친과는 여러 번 떡을 쳤지만, 처음부터 마주 보는 정자세로 자지를 받아들이기에는 아직도 벅차다.


"콘돔이 어디 있더라.."

"그냥 하세요"

"석 정씩 괜찮겠어요?"


난 고개를 끄덕였고, 서방 절친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보지 잎을 가르며 자지를 끼웠다.

밥풀조차 미끄러질 듯이 적셔진 보지라도 한 번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지는 애타게 보지 잎을 문질러보지만

보지 액 도움 없이는 역시 무리다.


"아하아~~ 커요!! 아하아~~ 경필 씨는 항상 커요"


좀 전까지 무려 3번을 콘돔에 씨를 싸지른 자지라고 하기엔 좆대가리는 여전히 굳건하다.

크다는 말을 들은 자지는 더욱 분기탱천해졌고, 그때부터 철철 넘치기 시작한 부지액이 좆대가리를 덮쳤다.

받아들일 듯 말듯 한 보지 문턱이 보지 액으로 범벅이 되자 비로소 좆대가리가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듯 보지 속에 끼워졌다.


"아~~~"

"허걱"


내 엉덩짝을 쥐던 손이 엉덩이 한쪽을 벌려 잡고 똥꼬에 침을 뱉어 엄지손가락으로 서서히 원을 그리며 마사지를 한다.

경직된 괄약근을 풀어서 보지 안에 자지를 더 깊게 밀어 넣겠다는 것.

내 나름대로 보지 수축을 멈추려 하지만 거대한 자지에 대한 방어체계가 자동으로 작동하는 건 내 의지로는 힘들다.

내 괄약근이 입을 서서히 벌리며 엄지를 받아들이는 템포에 맞춰 내 보지도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좆대가리에 이은 자지 기둥이 부지액에 샤워를 하며 보지 속으로 빨려 들어온다.

한번 열리기 시작한 보지는 좀 전까지 자지를 밀어내듯 조이다가 이젠 자지를 빨아들이듯이 조이기 시작한다.


밑둥이 닿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콘돔을 벗은 맨 자지의 살결은 쫀득쫀득해서 보지 속 주름을 한 결도 남김없이 간지럽힌다.

밑둥까지 손가락 두 마디 정도를 남겨둔 채 똥꼬를 마사지하던 손이 다른 엉덩짝을 움켜쥐고는 본격적으로 자지를 흔든다.

보지 속에 아기 주머니를 향해 수직으로 들락날락하던 자지는 어느새 보지 액으로 코팅이 되어 보지 속을 미끄러지듯이 보지 쪼임에 길들여졌다.


자지밑둥까지 밀어 넣기 시작한 자지는 털북숭이 불알을 덜렁거리며 콩알만큼 커진 보짓잎 꼭지를 때렸다.

엉덩짝에서 골반을 잡기 시작한 서방 절친은 좀 더 거칠게 좆질을 해댄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나는 애꿎은 베개를 부여잡고 입을 벌린 채 숨만 겨우 헐떡였다.


이런 기분이 몇 번째인지 이제 숫자를 세는 것도 까먹었다.

그렇게 정신이 혼미해질 즈음 자지가 크게 꿈틀거렸다.

콘돔을 낄 때와 달리 맨자지는 역시 민감하다. 그리고 조심스럽다.

자칫 씨를 가득 담은 좆 물이 보지 속에서 고대로 토할 뻔했다가 가까스로 참은 울컥거림이었다.


좆질을 멈추고 서서히 자지를 꺼내든 서방 절친은 날 바로 눕혔다.

거대한 자지로 채워진 보지는 자지 자욱이 선명하게 남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핑크빛 보지 속을 훤히 드러내며 자지를 애원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벌겋게 상기된 자지가 내 젖꼭지를 몇 번 두드리고는 내 눈앞에 섰다.

오늘 하루종일 콘돔에 토하느라 상심이 컷을 좆대가리를 입에 물고는 이내 혀를 굴렸다.

자지 기둥을 잡고 힘들었고 서방 절친의 미간이 심히 일그러진다.

짭짤한 맛이 혀를 감싸고 드뎌 좆대가리가 꿈틀거린다.

난 좆대가리 밑을 혓바닥으로 떠받치며 입 구멍 깊숙이 빨아드렸다.


"어어어어~~어어어헉~~"


사정이 임박한 서방 절친이 내 머리를 붙잡는다.

난 손으로 조심스레 불알들을 감싸 쥐고는 털북숭이들을 쓰다듬으며 사정을 재촉했다.


"커억, 커억, 커억"


경필 씨를 담은 좆 물이 입안으로 쏟아졌고 난 숨을 참으며 삼키기 시작했다.

좆 물관이 내 혓바닥 위에서 울컥대기를 여러 차례.

수도꼭지 잠긴 소방호스 마냥 빵빵했던 좆 물관이 납작해지자 그제야 사정이 멈췄다.

입안에서 자지를 꺼내 숨을 고르고 나서 털북숭이와 자지 기둥을 주무르며 남은 좆 물을 쥐어짰다.

좆대가리 입에서 하얀 좆 물방울이 흘러나오고 난 혀로 간지럽히며 흡입한다.

마지막 방울까지 쥐어짜 낸 서방 절친의 자지는 여전히 딱딱하다.

경필 씨를 토해내고도 5분을 더 딱딱하게 유지하는 자지를 난 사랑한다.

내 입안에서 빠져나간 자지가 곧바로 내 보지 속을 다시 파고든다.

난 경필 씨 허리를 두 다리로 감싸고는 또 한 번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아무리 시(市)라고는 하지만 기껏 6만 남짓한 시민이 사는 동네에서 나는 나고 자랐다.

인근 광역시에서 전문대를 졸업하고 재벌이 등장하는 드라마 환상에 빠져 서울로 상경 3년간 허튼짓이나 하며 버티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산다.


남편도 같은 고향 사람.

서울 여자환상에 빠져 군 재제대 후 서울로 상경한 남편은 나보다 못한 허튼짓으로 1년을 버티다 촌년과 결혼한 불운한(?) 남자다.

고향에서 열린 내 결혼식은 최악이었다.

집들이는 더 최악이었는데

내 남편과 예전에 사귀던 여자들은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소문을 들어서 익히 잘 알고 있었던 터라 별 신경이 쓰이지 않았지만

술기운이 오르자 아예 대놓고


"네 남편 섹스 존나 못해"라는 말을 서슴지 않을 땐 정말이지 죽이고 싶었다.

누굴? 그 여자?

아니다 내 남편을.

유행가 가사가 그년을 망친 건지 좁은 동네에 사는 아낙들이라면 모두 겪는 사건인지는 모르겠다만 난 이 동네가 싫다.

그렇게 친숙하고 밋밋한 고향 아줌마로 몇 달을 살다가 신랑 친구 결혼식에 서울에 갔다가 진짜 사나이를 만난 거다.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

들떠있기엔 난 이미 결혼한 몸이고 2살 난 딸아이를 안고 낑낑대며 서울 전철을 이용해야 하는 처지.

서울에서 고작 1년 생활했으면서 절친이랍시고 친구결혼식에 굳이 가야겠다는 서방이 미워지려고 한다.

술 한잔 몇 번 하면 절친이 되는 이상한 남자들의 문화.

국산 유모차가 쪽팔려서 딸아이를 줄곧 안으면서 촌구석에서 서울에 있는 예식장까지 왔으니

내 다리는 후들댈 때로 후들댔다.


150과 160 딱 중간에 있는 내 신장을 보완하고자 서울 생활하면서 큰맘 먹고 구입한 명품 하이힐을 신고서

무려 4시간에 걸쳐 예식장에 도착한 나는 예식이고 뭐고 일단 식당에 자릴 잡았다.

서울 생활 2년 동안 통근하는 데만 3시간을 넘게 다녔다지만 일단 촌구석에 자릴 잡으면 이동하는데 20분 이상 걸리는 거리는 다시 촌년으로 돌아온 내게 역시 부담이다.


뷔페 식당을 놀이터 삼아 돌아다니는 딸아이를 시큰둥 바라보며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아직 예식 중이라 한산했던 식당에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고 유독 눈에 띄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여자가 보더라도 큰 남자였다.

난 작으니까 평생 큰 남자를 원하며 살았다. 지금 남편이 나보다 키는 크지만, 또래 남자 중에선 가장 작다.

작은 남자는 절대 멀리하시라 이래저래 피곤하다.

딸아이가 큰 남자 주위에서 얼쩡거렸고 큰 남잔 내 딸아이를 귀여워한다. 딸아이의 엄마가 누군지 두리번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렸고 지금도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식당에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이내 남편이 왔다.


"오~~ 이게 누구야? 사진 찍을 데 없던데 어디 갔었어?"



큰 남자를 아는 남편

"좀전에...앉을 데가 없더라고 그래서 그냥 식당으로 왔지"


딸아이 아빠가 누군지 알게 된 큰 남자를 남편은 내가 있는 테이블로 끌고 와서는 딸아이 엄마가 누군지 확인시켜주었다.


"설마 아이의 엄마일 거라곤 생각을 못했습니다"

"뭔 소리야 딱 봐도 아줌만데"


내 결혼식에서 본 적이 없기에 큰 남잔 분명 서방 절친이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당시 축의금으로 남편에게 20만 원을 송금했으니 남편 입장에선 절친이라 할만하겠지.

술이 오가고 남편은 완전히 맛이 갔다.

금요일 저녁인 관계로 빨리 내려가야 하는데 섹스도 존나 못하는 이 인간은 집에 갈 생각이 없는지 연거푸 술을 들이켠다.

끝내 곯아떨어진 남편.

남편 말고는 신랑 친구 모두가 서울 사람.


"어디 묵을 곳이라도..."


당연히 없지, 둘 다 촌년에 촌놈인데.

큰 남자가 우릴 차로 태워주겠단다.

서울역까지만 부탁했지만,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괜찮다며 촌구석까지 우릴 모셔다드렸다.

뒷좌석에서 곯아떨어진 남편 그리고 딸아이.

난 큰 남자 옆 조수석에 앉았고 그렇게 긴 이야기를 나누며 집에 도착했다.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 올라가시죠?"

"아닙니다. 바로 올라가야죠"


그렇게 큰 남잔 바로 서울로 간 줄 알았다.

씻고 나니 피곤이 몰려왔다. 자야 했지만 침대에서 곯아떨어진 남편과 같은 침대에서 자고 싶지 않았다. 딸아이는 딸 방에서 깊게 잠들었고 난 거실에서 자려고 하는데 창밖을 보니 큰 남자의 차가 아직도 집 근처 골목에 세워져 있는 거다.


차에서 잠이 든 큰 남자.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남자가 눈을 떴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게, 주무시고 가시라니까"


큰 남잔 결국 내 집에 들어왔고 욕실에서 몸을 씻긴 했지만 침대에서 술 냄새를 풍기며 요란하게 퍼질러 자는 남편 옆에서 자기란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거실을 큰 남자에게 내주고 나는 남편 곁으로 가야 했다.


깜빡 잠이 들었나. 눈을 뜨니 새벽 4시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큰 남잔 자고 있다. 소파에 옷가지가 널려있는데 바지가 보였다.

남잔 이불을 걷어차고 큰 몸을 훤히 드러누운 채 잠이 들었다.

보름 달빛이 거실을 비추었기에 볼 수 있었다. 촌구석 별빛과 달빛은 유난히 밝으니깐.

큰 남자가 누우니깐 더 거대하다. 나도 모르게 나의 시선은 팬티로 향했고 역시 거대한 옥수수가 팬티 안에서 숨 막히게 갇혀있었다.

밖에서 텐트를 보고서 속에 사람들이 꽉 찼는지는 알 순 없다만 텐트 크기 부터가 일단 남편과는 달랐다.


궁금했다.

큰 남자의 자지가.

서울에 2년을 살면서 내게 촌구석의 저주가 내렸는지 사귀는 놈들마다 죄다 촌놈들 뿐이었다.

소개팅 시장은 그야말로 열악했다. 170을 넘지 못하는 촌놈들만 소개받은 나는 결국 서울 남자 맛은 보지도 못하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야 했다. 딸아이 임신 때문에 나는 환상을 멈춰야 했으니깐.

난 큰 남자의 팬티를 내렸다.


"어머나!!"


어쩜 이리도 클까. 무서웠다. 너무 커서.

만져보니 말랑말랑하다.


"이를 어째"


나의 시선만으로도 잠이 깰 만큼 민감한 이 남자가 이상하게 눈을 뜨지 않는다.

자지를 만지작거려도 눈을 뜨지 않는 남자.

난 장난기가 발동했고 자지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옥수수는 딴딴해졌고 좆대가리는 부풀어질 때로 부풀어졌다.

자지를 빨기로 맘먹은 나는 나의 큰 엉덩이를 큰 남자 얼굴에 앉히고는 좆대가리를 입 안에 넣고 혀를 굴렸다.

큰 남자의 뜨거운 숨결이 내 보지를 간지럽혔고 난 그것만으로 보지를 적시고야 말았다.

내 입안에서 거칠게 숨을 쉬는 좆대가리를 혀로 감싸 안으며 달래기를 몇 분.

보지에서 그 남자의 혀가 느껴졌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힘들게 자는척하기는."


혀로 내 보지 잎을 가르자 보지 물이 줄줄 흘러내리면서 남자의 코를 뒤덮었다.

남자의 혀가 내 보지 잎꼭지를 핥기 시작했고 밤알 크기가 돼버린 보지 잎꼭지는 연신 보지 잎을 펄럭였다.

느끼고야 말았다. 신음소릴 억누르기 위해서 자지를 힘껏 삼켰다. 목구멍에 좆대가리를 끼우고 큰 남자의 큰 불알들을 어루만지기 시작했고 그때 남자의 혀가 보지 물살을 헤집고 들어왔다.

보지 속에 혀를 밀어 넣는 동안 보지 물에 범벅이 된 큰 남자의 콧등이 내 똥꼬를 간지럽혔다.


"아흥~~~~~~~~~~~~흐흐흥~~~"


나의 신음소리가 거실에서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고

나는 황급히 좆을 입에 머금고는 깊게 빨아들였다.

가족이 깨어나면 안 된다.


거대한 좆을 입에 머금고 신음소리를 참아내기란 정말이지 전율 넘쳤다.

전율 넘치기는 남자도 마찬가지, 내 갈라진 엉덩이 사이로 얼굴을 깊게 파묻은 남잔 숨 막히는 비명을 지르면서

씨를 가득 담은 좆 물을 내 입안에서 뿜어내기 시작한다.

입안에서 난동을 피우며 무차별 좆 물대포를 살포하기를 수차례

난 자지 기둥을 손으로 쓸어올리며 좆 물을 내 입안 가득히 뽑아 올렸다.

좆 물관이 맥박 뛰듯이 꿈틀거리기를 멈추고서야 자지는 겨우 진정되었다.

두 남녀가 생식기고 서로의 입을 틀어막으며 찐하게 사정을 했으니, 우린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관계가 돼버렸다.

나의 갈라진 엉덩이를 벌려 잡고 달빛에 반짝이는 보지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남잔,

결심이 섰는지 날 일으켜 세우고는 속삭였다.


"제 차로 가시죠"


그리고 이어지는 찐한 키스. 좆 물과 보지 물이 드뎌 우리 입안에서 뒤엉켰다.

곧 있을 만함에 설렌 보지 물과 좆 물은 우릴 집 앞에 세워진 차로 이끌었고 우린 생식기 본능에 충실하면서 자동차 안을 뜨거운 열기로 뒤덮어버렸다.

하지만 자동차 안에서 불붙은 생식기들의 열정을 식히기엔 너무 비좁았다.


동이 트고

토요일 아침이 되자, 섹스 존나 못하는 남편에게 아침상을 차려주고는 어제 일을 핑계 삼아 나는 이른 아침부터 외출했고 큰 남자가 묵고 있는 호텔로 갔다.

우린 격렬했고 뜨거웠으며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나는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다음날 일요일에도 나는 아침 일찍 교회를 핑계로 집을 나섰고 큰 남자와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장소와 무관하게 떡을 쳤다.

큰 남자가 서울로 떠나고 나서야 나는 보지 안에 큰 남자의 씨를 가득 머금은 채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주말 내내 골반이 벌어질 정도로 거대하고 뜨거웠던 섹스는 그 후로도 우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한번 합을 이루고 짝이 돼버린 두 사람.


불륜은 멈추기 어렵더라.

단 한 번이라도 불륜을 겪은 사람이라면 이 말에 부인하기 힘들 테다.

처음이 힘들 뿐, 한번 물꼬가 터지면 걷잡을 수 없는 것이 세상사.

그날 일요일 저녁 서울로 떠난 큰 남자 경필 씨는 내게 선물이랍시고 흉측한 물건을 남겨두고 떠났는데,

달빛 가득한 거실에서 서로 생식기에 대한 탐색전을 마치고 경필 씨 차 안에서 오프닝게임을 하던 때에

경필 씨 표현대로 "내 자지 적응훈련"을 위해 쓰던 자위기구다.

생김새가 딱 봐도 자진데 사이즈가 평범하지 않다.

평범한 자지라? 내가 비뇨기과 의사가 아닌 바에야 자지 크기에 대해 평범함을 정의하기란 무척 어렵겠지.


하지만.

나는 어떤 남정네가 보더라도 섹시한 여자다. 큰 키는 아니지만, 얼굴이 작기에 비율이 좋고, 비록 딸아이를 출산했더라도 여전히 허리보다 엉덩이가 크며, 고교 시절까지 육상선수였으니 아직 엉덩이가 하늘을 향해 치켜 올라갔다. 그 바람에 허벅지마저 굵다만 그래도 종아리는 10대 여자애들처럼 가늘고 길다.

경필 씨가 날 첨 봤을 때 딸아이의 엄마일 거라 생각지 못한 이유다.


내가 얼굴이 좀 귀여워야지.

이래 봬도 내가 여럿 남정네들 꼴리게 하는 여자란 말씀.

10명을 채우진 못했지만 나름 자지 구경은 좀 했다.

아무튼 경필 씨는 날 첨 본 순간부터 꼴렸다고 한다. 자신의 이상형에 딱 맞는 몸통이라나. 게다가 남의 마누라였으니 더 꼴렸을 테지. 결혼한 친구들끼리 수다를 떨다 보면 의외로 임자 있는 여성에게 끌리는 남자들이 많더라. 거기에 애까지 딸려 있다면 금상첨화라는데, 인류학을 전공한 친구 말에 따르면 출산에 성공한 여성은 번식능력을 검증받은 거여서 남성들이 본능적으로 관심을 보인다는 것. 비옥한 땅에 씨를 뿌리려 드는 건 자연의 이치라는 거지.

하지만 양육은 남성들에게 크나큰 스트레스여서 임신은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하네.

이럴 때 세상은 참 모순된다.


임신 확률이 높아서 내게 꼴려놓고선 정작 임신은 바라지 않는다? 이게 남자라니.

어쨌든 경필 씨 자지는 크다. 한국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생김새도 여느 한국인과도 좀 다르다. 키가 큰데 이 남자는 얼굴이 작다. 피부는 어둡고 다리는 길다. 뒷모습은 흑인을 연상시킨다. 머리도 심하게 곱슬인 것이 조상 중에 분명 흑인이 있는 것 같다. 경필 씨 스스로도 그럴 거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할머니가 미혼모였고 아버지는 흑인에 가깝다. 아버지와 어머닌 미국에 사시고 경필 씨는 미국 시민으로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 고위 장교다.

그렇다 경필 씨는 서울 남자가 아닌 미국 남자였던 것.


한국에 온 경필 씨는 큰 자지 땜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20대가 되면 그야말로 하마로 변하는 미국 여자들만 보다가 엄마처럼 호리호리한 한국 여자들을 보니 첨엔 엄청 좋았단다. 하지만 문제는 속궁합이었는데. 자기 자지에 맞는 보지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

숫처녀는 꿈도 못 꾸고 그나마 성기 발랄한 처자들과 몇 번의 떡칠 기회가 있었지만, 여자들이 하나같이 힘들어했다는 것이다. 수월하다 싶은 여자들은 대부분 헐거워질 때로 헐거워진 여자들이어서 짜증이 났다는 거다.

하긴 밥만 먹고 못사는 것이 인간인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흉측하게 생긴 자위기구를 내 보지에 가져다 댔을 때 첨엔 기분이 상했다. 실험기구가 된 기분이랄까? 차 안에 음악이 울려 퍼지긴 했지만, 모터 돌아가는 소리는 거슬렸다. 경필 씨는 내 몸 구석구석을 예뻐해 주면서 공갈 좆이 보지에 안착하길 기다렸고 경필 씨의 성난 좆을 움켜쥔 나는 이 좆은 어떤 맛일까 궁금해하며 좆 맛을 다셨다.


공갈 좆이 보지 살을 비집고 드나들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보지 잎이 늘어나면서 보지 입술이 공갈 좆과 함께 보지 속으로 밀려들어 갔다가 보지 입술이 모습을 드러내자 제대로 자리 잡은 공갈 좆이 보지 속에서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는 모터 소리가 날 자극했다. 좀 전까지는 공갈 좆을 받아들일 듯하다가도 이내 뱉어내는 보지가 이번엔 공갈 좆을 꽉 움켜쥐었다. 공갈 좆을 더 이상 붙잡지 않아도 되자 경필 씨는 기뻤다. 드뎌 자신의 자지에 맞는 보지를 찾은 것이다.


내 보지가 경련을 일으키며 보지 물을 쏟아냈고 미끌미끌해진 공갈 좆의 떨림은 더욱 빨라졌다. 소용돌이치는 보지 물에 휩쓸린 공갈 좆이 미끄러지면서 보지에서 빠지려고 하자 순간 본능적으로 공갈 좆을 붙잡았다. 그렇게 난 스스로 공갈 좆을 펌프질하기 시작했고 난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로 멈추지 않았다.

훗날 나의 이런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상을 보았을 때 충격이었다.

영상 속에 나는 누가 보더라도 미친년 같았지만, 그때 기분이 느껴졌다. 리얼한 나의 모습. 음악 소리와 모터 소리에 어우러지는 나의 신음소리. 금방이라도 쌀 것 같은 내 표정.


내 손으로 직접 공갈 좆을 펌프질하면서 경필 씨 좆을 입에 담고 빨아대는 내가 행복해 보였다.

희열에 찬 내 모습에 경필 씨의 좆은 힘차게 솟아났고 공갈 좆을 질투하듯 힘껏 부풀어 올랐다.

내게서 공갈 좆을 빼앗아 버린 경필 씨는 피와 살로 이뤄진 유기농 좆을 내 보지에 밀어 넣었다.


"아흥~~~~~~~~~아~~~~"


목표는 분명했다.

경필 씨는 신이 났다. 힘찬 좆질에서 그것이 느껴졌다. 보지 물은 쉴 새 없이 뿜어졌고 경필 씨 자지 기둥을 뒤덮은 걸로도 모자라 불알까지 적셔버렸다.

자지 기둥이 보지 속으로 모습을 완전히 감추게 되자 불알이 내 똥꼬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서로의 치골이 맞닿으면서 우린 절정을 향해 나아갔다.

아니 난 이미 절정에 다다랐다. 절정에서 내려오질 못하던 차에 내 숨은 가빠지기 시작했고 좆질은 거침없이 계속된다.

지진이 난 듯 차는 심하게 요동쳤고 경필 씨는 끝이 보이는지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I"m cumming"

"you on the pill?"

"엥 왠 영어?""아이 씨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난 못 알아듣는 영어에


"오야! 오예!~~ 퍽미, 퍽미 플리즈"를 외치며 답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경필 씨는 내게 피임약을 먹는 중인지를 물었던 거였고 난 괜찮다고 대답한 거였다.


"good"


그렇게 경필 씨는 내게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보지 속에 좆 물을 쏟아냈다.

환희에 도취한 경필 씨는 웃고 있었고 난 얼굴을 찡그리며 "오우 노"를 외쳤을 뿐이다.


"that was great"


경필 씨는 정말이지 행복했다. 하지만 이내 내 표정을 살피고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뒤늦게 상황이 파악이 된 경필 씨는.


"what"s done is done" "when can we fuck again?"


한국어가 유창하기는 해도 경필 씨는 미국인이다.

난 괜찮다며 그를 안심시켰다. 임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조심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우리 언제 또 떡칠 수 있냐고?


"any call"


경필 씨가 원한다면 난 언제라도 준비되었어요. 아잉!!

난 짧은 영어로 한물간 핸드폰 이름을 댔다.

콩글리시였지만 경필 씨는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다.


"언제든지 전화해"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경필 씨는 귀여웠다.


"i"m gonna fuck it whenever i want"


내 보지 냄새를 맡으며 경필 씨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마다 이 보지에다 좆을 박아버리겠어."


경필 씨는 인근 광역시 호텔에 머물렀고 주말 내내 나는 그 호텔을 드나들었다.

콘돔이나 피임 없이 우린 서로의 생식기를 탐닉했고 지금도 그때를 후회하지 않는다.

서울로 떠나면서 경필 씨는 내게 공갈 좆을 주며 매일매일 단련해 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했다.

난 지금도 경필 씨를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며 공갈 좆으로 보지를 단련한다.

어쩌면 경필 씨가 아닌 더 큰 세상 남자들을 기대하면서 그렇게 내 인생은 한 걸음 더 다이내믹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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