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야설

(로맨스야설) 중년의 사랑 - 상편

작성자 정보

  • 밍키넷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오늘은 거래처 접대를 하는 날이다.

사실 술을 마시는 건 좋아하지만, 이런 술좌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 기분보다는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야 하고, 마음대로 취할 수도 없다.

그러나, 아무래도 열 받는 건, 술좌석 중에 부킹을 하게 되면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먼저 상납을 해야 하니..(ㅠ.ㅠ)

회사 퇴근하면서 약속된 장소인 H동 로터리에 있는 일식집으로 간다.

종업원에게 안내된 방으로 들어서니, 벌써 두 사람이 와 있었다.


“어이구! 벌써 와 있었네요!”

“어서 오세요! 저희도 방금 왔습니다.


맞은편 좌석에 앉는다.

한 명은 C 기업 공무과 과장인 장지용이란 친구고, 한 명은 같은 과 대리인 조성호란 친구다.

우리 회사 주 거래업체인데, 이 친구들이 실무 담당자들이다.


장지용이란 친구는 키가 약 180cm 정도로, 마른 체형에 나이가 마흔 초반인데 성격이 좀 세심하고 술보다는 여자를 밝히는 타입이고,

조성호란 친구는 키가 165cm 정도로 작은 편이고, 자기 말로는 왕년에 운동을 좀 했다는데, 덩치도 별로 없는 사람이 항상 어깨에 힘을 넣어 다닌다.

좀 우스꽝스럽다고나 할까. 나이는 서른 후반이다.

음식이 순서대로 들어오고, 술도 한자씩 나눈다.


“김 부장님! 요즈음 납품되는 기계들이 전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오늘 확실히 하라는 이야기다.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앞으로 신경을 더 쓰겠습니다! 오늘은 업무적인 이야기보다 즐겁게 한잔들 하시고, 재미있게 노셔야죠?”


옆에서 조성호란 친구가 바람을 넣는다.


“그러죠! 과장님! 그 이야긴 내일 하시고, 오늘은 기분 좋게 한잔하시죠!”


백세주를 곁들여 일식 요리를 먹고, 조금 얼큰한 상태가 되어 일식집을 나온다.


“장 과장님! 조 대리님! 요 옆에 OO 나이트에 가 물이 좋던데 거기로 가시죠?”

“그래요? 어이! 조 대리! 거기로 한번 가볼까?”

“그러죠! 과장님!”


조금 걸어서 OO 나이트로 간다.

나이트 입구에서 ‘옥경이’를 찾는다. 내 단골 웨이터이다.

금방 그 웨이터가 쫓아 나온다.


“아이고! 사장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동안 발걸음이 뜸하시더니. 어서 들어가세요!”

“오늘 물 어때요?”

“저희야 항상 좋죠!”

“우리 방 하나 줘요!”


홀에서 마시는 것보다 룸에서 마시는 것이 부킹도 확실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다.

이 나이에 스테이지에서 땀 빼며 헌팅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단골 웨이터가 여자에 대한 내 취향을 아니까 실수가 없다.

룸에 들어와서 양주를 시킨다.


‘옥경이’가 룸에 따라 들어와서 즐겁게 지내시라고 인사를 하고 나간다.

내가 따라 나가며 ‘옥경이’를 불러 세운다.


“아! 왜요? 사장님!”

“다름이 아니고, 같이 온 친구들이 거래처 손님들인데 오늘은 내 취향보다 저 친구들 취향을 맞춰야 하니까

저 친구들 오케이 할 때까지 부킹 좀 신경 써 달라고.” 하면서 만 원짜리 몇 개를 집어준다.


“아이고.. 사장님! 척하면 삼척이지요!


안 그래도 보니까 그런 거 같던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역시 눈치가 빨라야 이 계통에서 살아남는다.

양주가 세팅되고 한 잔씩 마신다.


“즐거운 이 밤을 위하여!”

“오늘 마시고 죽자!”


서로 술잔을 주고받고 노래를 찍어 부른다.

장 과장이란 친구는 노래를 골라서 부르는 편인데 나름대로 꽤 신경을 써서 노래를 부른다.


조 대리란 친구는 이 노래, 저 노래.. 저돌적 정신으로 부르는 타입이고..

노래가 두어 곡씩 돌아갈 무렵.. 연회장 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줌마 세 명이 들어온다.

내가 봐도 별로다. 사이사이 앉아서 같이 술을 따라 마시고, 노래도 부르며 같이 노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물이나 몸매. 노는 게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장 과장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다. 내가 나서야겠다.


“아가씨들! 우리 조금 있다 나가야 하는데..”

“아. 그래요? 우리도 지금 가야 하는데. 아저씨들 잘 놀았어요!”


여자들이 나가고 조금 있다 ‘옥경이’가 들어온다.


“오늘은 영, 물이 안 좋네? 이거. 내 체면이 말이 아닌데!”

“아이고! 사장님! 죄송합니다! 적당한 여자들이 안 보여서.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 명예를 걸고 다시 부킹시켜 드리겠습니다!”


90도로 인사를 꾸뻑하고 나간다.


“자! 자! 한자씩 합시다!”

“김 부장님! 물이 좋다더니 어떻게 된 거요?”


조 대리가 이마에 넥타이를 맨 채로 날 보고 이야기한다.


“아! 글쎄.. 말이요! 이 집도 이젠 다 됐나? 자 한자씩 드시고 한 번 더 기다려 봅시다!”


다시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출 추고…

오늘의 기쁨조는 조 대리란 친구다. 곱사춤.. 헤드 베인... 난리부루스다.


나도 적당히 기분 맞춰주며 놀고 있는데. 다시 노크 소리가 들리며, 아줌마 세 명이 들어온다.

이번엔 눈이 확 뜨인다.


‘옥경이’가 심혈을 기울인 듯. 아마, 위기의식을 느꼈겠지.

한 명이 군계일학이고, 그다음 하나는 수준급이고 나머지 하나가 좀 빠진다.

군계일학은 장 과장 옆으로. 수준급은 조 대리 옆으로. 나는 좀 빠지는 여자로 파트너를 정한다.


군계일학이 날 바라보며 아쉬운 표정이다.

하지만, 어쩌랴..접대 자리가 아니면, 목숨 걸고 쟁취하련만.


간단히 인사를 나눈다.

군계일학이 이름이 김인숙, 나이는 보기에 삼십 대 중, 후반. 수준급은 이름이 장미주, 나이는 보기에 삼십 중반..

좀 빠지는 여자는 이름이 백수연, (이름은 셋 중에 제일 낫다) 나이는 보기에 삼십 초, 중반.


같이 브라자(브라보+지화자)를 외치고, 술 한 잔씩 마신다.

노래 솜씨나, 춤솜씨나, 애교 떠는 거나 역시 내가 본 순서다.

군계일학 인숙이는 계속 나에게 아쉬운 눈빛을 보내고. 아휴! 환장할 지경이다.


실컷 마시고, 부르고, 춤추고, 주무르고. 새벽 한 시가 다 되어 나이트에서 나온다.

여자들에겐 채비하라고 십만 원씩 쥐여주고.


장 과장이 제 파트너가 마음에 드는 듯.


“김 부장님! 제가 한잔 살 테니까 요 앞에 호프집에 가서 한 잔 더 합시다!”


할 수 있나… (사긴 누가 사?)


“예! 그럽시다!”


여자들은 내게 받은 돈 때문인지 순순히 따라온다.

파트너들끼리 팔짱을 끼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조금 걸어 내려오니 호프집이 하나 보인다.


호프집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맥주를 시킨다.

이젠 술들이 많이 취해 술 마시는 속도가 느려진다.

그것에 반비례해서 말들은 더 많아지고. 이젠 노골적으로 파트너들을 주물럭거린다.

어허! 주위에 다른 손님들도 있는데.. 안 되겠다.


“장 과장님! 조 대리님! 시간도 많이 됐는데 이젠 그만 일어서죠?”

“어. 그래요? 음. 보자! 벌써 세시네? 어이! 조 대리! 그만 마시고 가야지!”

“과~장님! 그~러죠! 어~ 취한다!”


내가 못을 박는다.


“그렇게 하죠! 내일 일도 해야 하는데. 다음에 토요일에 날 한번 제대로 잡아서 뿌리 뽑읍시다!”


밖에 나와서 장 과장은 오십만 원, 조 대리는 삼십만 원을 호주머니에 찔러주고, 택시를 태워 보낸다.

여자들도 택시를 잡아준다.

군계일학.. 인숙이가 날보고


“김 부장님! 오늘 너무하세요! 사람이 그렇게 둔해요?”

“허어! 그게 아니라. 자리가 자리인 만큼 어쩔 수가 없어서..”

“자! 이거요..”


나한테 접은 쪽지를 내민다. 펼쳐보니 전화번호다.


“시간 날 때 전화 한번 주세요!”


여자들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나도 집으로 돌아온다.




<인숙의 이야기>


요즈음, 남편과는 별거 중이다.

몇 년 전, I.M.F.왔을 때 기계 부품 판매업을 하던 남편은 갑자기 곤두박질친 매출과 수금 해 놓았던 어음들이 연쇄적으로 부도가 나는 바람에

버티고 버티다가 도저히 어쩔 수가 없어서 손을 들어 버렸다.

친정집이나 시댁에서 갖다 쓴 돈은 불구하고, 은행에 저당 잡힌 아파트, 그리고, 세무서에 연체된 세금들.

그 여파는 그동안 별 어려움 없이 집에서 살림만 했던 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래도, 나이가 있으니까, (I.M.F. 극에 달했던 98년도 당시 남편의 나이가 마흔이고, 내가 서른일곱이었으니..)

원점에서 다시 출발한다 생각하고, 주위의(친정, 시댁, 친구들.) 도움을 조금씩 받아 가면서, 서로 노력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당사자가 자포자기해 버리니, 방법이 없었다.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거의 매일 술에다가 뭘 해 보려는 의욕도 없이 허우적거리며 살았다.

물론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뜰히 저축하여 모은 돈을 밑천으로 성실히 노력하면서 가게를 했는데,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으니.

그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울며 매달려 하소연도 하고 또, 달래기도 하면서 시간이 좀 흘러가면 나아지겠거니 하고 기다렸지만, 이삼 년이 다 가도록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이젠 무기력이 아예 몸에 배어, 손 하나 까딱하는 것도 귀찮다고 할 정도였다.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애들도 있고, 생활을 하여야 했기에, 할 수 없이 내가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기약 없이 남편이 정신 차리기를 기다리며…

처녀 때 패션 계통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다행히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수입은 넉넉지 못해도, 그냥 목구멍에 풀칠은 하고 살았다.

I.M.F.가 막 시작됐을 때 아무래도 불안하여, 남편 몰래 마련해 둔 비자금이 좀 있었다.

남편이 부도 직전까지 몰려서 허덕일 때도, 이 돈만큼은 내놓지 않았다. 생명줄이라고 믿었기에.


어제 내가 일하던 회사에서 회식이 있어서, 오랜만에 같이 직원들과 횟집에 가서 술을 한잔하게 되었다.

안 그래도 내가 처한 상황이 갑갑했던 터라 별로 사양도 하지 않고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그러다 보니, 꽤 취하는 것 같다.


내가 술은 조금씩 하는 편이다. 주량이 소주는 한 병 정도이고, 맥주는 네댓 병 정도. 여자치고는 꽤 하는 편이다.

회식이 끝나고, 횟집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오려는데, 같이 일하는 동생 둘이 나보고 같이 나이트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고 한다.


나를 많이 따르는 동생들이다.

부킹만 잘 되면 술도 공짜로 마시고, 임도 만난다나?

남자야 진절머리가 나지만, 술이 조금 오르다 보니, 괜히 마음이 울적해지고 속에서 불같은 것이 치밀어 오른다.

아무래도 풀고 가는 것이 좋을 듯싶어 못 이기는 척하고 같이 H동 OO 나이트로 간다.

홀에서 맥주 기본만 시키고 앉아서 스테이지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과 사람들이 미친 듯 흔들어 대는 모습을 바라보니

어느 정도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다.


옆에 앉은 두 동생이 홀에 나가서 흔들자고 부추겨서 나가려고 일어서는데,

웨이터가 다가와서 룸에 점잖은 남자분들 세 명이 있는데 부킹을 하시겠느냐고 물어본다.

웨이터의 명찰을 보니, ‘옥경이’ 다.

무슨 남자의 이름이 ‘옥경이’ 냐? 물론 웨이터의 예명이겠지만.


“언니! 가요! 웨이터의 이야길 들어 보니 괜찮겠는데?”


둘이서 날 보고 재촉하는 표정이다.

그래! 기왕이면 공짜로 술 마시고 놀아보자! 혹시, 못된 짓 하면 나와 버리면 되니까.


셋이서 웨이터를 따라 룸으로 간다.

룸에 들어 가보니 사람들은 그런 데로 괜찮아 보인다.

한 명은 나이가 좀 든 듯한데, 젊었을 땐 여자들이 좀 따랐을 것 같은 인상이고, 또, 한 명은 키가 좀 크고 사람이 좀 세심하게 생겼는데,

자존심이 셀 것 같은 인상이다. 이런 사람들은 여자들을 좀 피곤하게 만들 타입이다.

나머지 한 명은 키가 제일 작고, 뭐랄까? 좀 머리가 빈 것 같은..(미안하지만..)좋게 이야기하면 속없이 사는 사람이랄까?

물론 세 명 중에 편하기는 세 번째 남자가 제일 편할 것 같은데. 내가 선호하는 유형이 아니다.

키 작은 남자를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을 싫어하니까.


나이도 그렇고, 인상도 그렇고, 역시 첫 번째가 그 중이 낫다. 그 남자 역시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고..

근데. 이게 웬일이야?

이 남자가 두 번째 남자(키 크고 세심하게 생긴..)의 자리 옆에 앉으라고 한다.


어휴! 피곤하게 생겼네!

각각의 파트너를 정하고, 간단히 수인사를 한다.

그중 낫다고 한 남자의 이름이 김정수이고, (나이가 아마 사십 중반 정도..)

내 파트너의 이름이 장지용이고, 또 한 명의 이름이 조성호란다. 두 사람은 좀 어리게 보이고...


술 마시며 이야길 하는 걸 들어보니, 김정수라고 한 사람이 나머지 두 명을 접대하는 것 같다.

그럼 할 수 없지! 그래도 둘 중에 상사인 듯한 남자 옆에 앉히니 나를 좋게 봤다는 이야기 아닌가? 위안을 삼아야지..


아니나 다를까. 노래 부르고 춤추는 중에 내 파트너..지용 씨가 은근슬쩍 몸을 만져 온다.

이 남자 봐라? 확 나가 버려?

참자! 나에게 관심을 보여준 사람의 체면을 위해. 더군다나 접대 자리 아닌가?

술도 양주로 고급술을 얻어먹고 있는데.


더 이상 깊게 만지지 못하게 그때마다 몸을 틀며 나름대로 견제를 한다.

어느 정도 놀다가 시간이 되었는지 정수 씨가 계산을 치르고, 두 사람을 다독거려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


정수 씨가 오늘 같이 놀아줘서 고맙다며, 차비로 하라고 십만 원씩 쥐여 준다.

보통 때 같으면 받지 않겠지만, 정수 씨 개인 돈은 아닌 것 같고(접대비일 테니까.)

돈을 받는다. 또, 내가 받아야 동생들이 받을 테고.


정수 씨와 무작정 헤어지는 것도 아쉽지만,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택시를 기다리는데, 내 파트너 지용 씨가 아쉬운지 한 잔 더 하자고 한다.

물론 시간이 많이 됐지만, 남편에게 자극도 줄 겸, 정수씨에 대한 미련도 남아 있어 같이 따라간다.


이젠 술들이 많이 됐는지 횡설수설한다.

정수 씨는 술이 좀 덜 취했는지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 같고..

화장실에 볼 일 보러 가면서, 백에서 수첩 뒷장을 하나 찢어 내 폰번호를 적어 두 번을 접는다.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는데, 이젠 지용 씨가 노골적으로 몸을 만져 온다.

짜증이 난다. 물론 술에 취하다 보니 그렇겠지만.

정수 씨가 상황을 보더니, 시간이 많이 됐다며 이젠 나가자고 다독거린다.


호프집에서 나와 그 두 남자(지용 씨와 성호란 남자)는 택시 타고 먼저가 버리고, 정수 씨가 여자들을 위해 택시를 잡으려 한다.

이젠 볼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에 술기운을 빌려 한마디 한다.

폰번호를 적은 쪽지를 쥐여 주면서 왜? 마음이 있으면서 대시하지 못하느냐고.


집으로 돌아오니 세 시 반이 넘어 있다.

남편은 또 술을 한잔했는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정말 원망스럽다.

차라리 눈을 부릅뜨고, 왜 늦느냐고 손찌검이나 하던지. 바로 전까지 다른 남자를 잠시나마 마음에 품었었는데.

옷을 갈아입고, 욕실에 가서 간단히 씻고 안방으로 들어 올 때까지 그 상태 그대로 자고 있다. 코를 골면서.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던지. 마누라를 누가 업어 가든지 말든지.


예전에는 사람이 어떻게든 해 보려고 아등바등하고, 열심히 살던 사람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언제나 정신을 차릴는지, 그놈의 I.M.F. 가 원망스럽다.


그 이후 일상적인 날들이 흘러가고, 회사 일이 바쁘다 보니 전화 연락을 하지 못했다.

물론 생각이 안 났던 건 아니지만, 일부러 연락하기도 그렇고..

어쩌다 보니, 폰번호를 적어 놓았던 쪽지도 잃어버리고, 좀 아쉬운 마음은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는 퇴근 후, 술 생각이 나서 집 부근에 차를 대어 놓고, 한 번씩 들리던 동네에 있는 실내 포장 술집으로 간다.

코너가 다섯 개 있는 규모가 좀 작은 술집인데, 아담한테 말 그대로 가족적인 분위기로 술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놀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코너 마담들이 다 나이가 들었는데, 유독 한 코너의 마담만 나이가 젊어서(서른 중반) 그 코너에 단골로 다닌다.


“어? 오빠! 오랜만에 오셨네요! 어디 좋은 데라도 생겼는 모양이죠?”

“어허! 무슨 소리! 내가 좋은 데가 어딨어? 미희가 안 좋다는 데 누가 날 좋아하겠어? 요새 일이 좀 바빠서…”

“어머머! 내가 오빠 얼마나 좋아하는데..”

“말로만 그러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줘야지!”

“오빠! 또.. 그 소리! 맥주로 줘요?”

“그래! 가난한 내가 맥주 마셔야지. 양주 마실까?”

“오늘 왜 이래? 삐딱하게…”

“네가 한번 안 주니까 그렇지!”


날 보고 눈을 흘긴다.

맥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벌써 여섯 병째다.


“미희야! 내 노래 한번 넣어 봐라!”


자동이다. 단골로 다니다 보니, 그날 내 기분에 따라 알아서 노래를 넣어준다.


‘추억(이필원), 찻집의 추억, 빗속의 여인.’


감정을 잔뜩 넣어서 부른다.


“오빠! 내가 자리를 옮기려는데 다음 주에 한번 와 줄래요?”

“왜? 자리를 옮기려고?”


“여기는 홀도 좁고, 목이 별로 안 좋아서 그런지 손님도 별로 없고.

요 밑에 로터리 쪽에 ‘궁전 실내 포장’ 이라고 여기보다 규모도 크고, 손님들이 많이 온다고 하데요!”


“그래! 알았다! 다음 주에 한번 들를게!”


술값 계산을 하고 얼큰하게 기분이 좋을 만큼 취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며칠이 흘러서 한 주가 넘어가고, 금요일에 갑자기 그 술집에 한번 가고 싶어서 퇴근하는 길에 들린다.

지하에 있는 술집인데, 내려가 보니 홀도 상당히 너르다. 둘러보아도 그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이게 웬일이야?`


한 코너에 인숙이가 앉아 있는 게 보인다.

다른 데를 보고 있느라 내가 다가갈 때까지 모르고 있다.


“아니? 인숙 씨 아녜요?”


고개를 돌리고 나를 바라보더니


“아! 정수 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코너 앞 의자에 앉는다.


“어쩌다 보니 이 장사하게 되었어요!”

“얼마나 되었는데요?”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어요! 이런 장산 처음이라 아직 얼떨떨 해요..”


지난번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두 달이 다 되어 가니까 아마 한 달 있다가 이 일을 시작한 모양이다.


“정수 씨는 이 집에 한 번씩 와요?”

“아니요! 사실은 누가 이 집에서 장사를 한다고 한번 들리라고 해서. 그런데 그 여자는 안 보이네요?”

“아! 저기 빈 코너에 누가 온다더니만, 그 여자인가 봐. 어떤 사이인데요?”

“허어! 무슨 사이랄 건 없고, 내가 한 번씩 다니던 실내 포장에서 장사하던 여자인데, 이곳으로 옮긴다고 해서 한번 와 봤어요!

근데 큰일이네. 앞으로 그 여자가 오게 되면, 그곳에서 팔아 달라고 할 텐데..”


“그렇게 해요! 단골이라면 당연히 거기서 팔아 줘야지요!”

“이렇게 합시다! 그 여자 오면 내가 이 코너에서 단골로 다니고 있다고 할 테니까 그렇게 입 맞춥시다! 그건 그렇고 맥주 좀 줘요!”


맥주 세 병과 과일을 내온다.

큰일이다. 이 정도 인물이면, 이놈, 저놈 찝쩍거릴 텐데. 은근히 걱정된다.

의류회사에 다니다가, 여기에서 술장사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회사에 다닐 땐 힘만 들고 고생한 것에 비하면 받는 월급도 몇 푼 안되고, 그 수입으로는 생활이 빠듯해서 궁리 끝에 이 장사를 시작하게 됐다.


아는 친구 하나가 이 장사를 하고 있는데, 하기에 따라선 수입이 꽤 짭짤하다고.


전체 1,858/ 1 페이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