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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분륜야설) 사랑하는 여인들 - 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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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일어서는데 현아가 입을 연다.


"저. 진수 씨…."

"왜?"

"나 술 좀 사줘요."


그냥 알았다는 듯 고개만 끄덕인 나는 저녁을 계산하고 거리로 나왔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는데 그녀가 내 옆에 다가와 서 있다.


"술 마시고 싶어?"

"아니. 그냥 답답해서요."

"어디 일을 나가는데?"

"아는 선배 출판사요. 번역 일 하고 있어요."

"혹시 남편이 안거니?"

"그건 아닌데…."


더 이상 말해봐야 그녀 맘만 아플 거란 생각에 식당 주위에 술 마실 곳이 있나 두리번거리는데 그녀가 다시 말을 한다.


"저. 술은 관두세요. 그냥 한소리니까…."


그녀를 바라보니 몹시 피곤도 해 보인다.

"집에 갈래?"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향한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 놀이터 옆에 차를 세우고 엔진을 끄고 둘이서 아무 말 없이 앉아있다.


"저. 이만 갈게요."

"현아야."

"네?"

"미안하다."


그녀의 고개가 숙어진다.

뭐라고 말을 더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아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뿐이다.

정말 품에 안고 같이 살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서로가 넘어서는 안 되는 관계이다 보니

나만 이상해지는 느낌이 자꾸 든다.

곱게 흘러 내려온 그녀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자 그녀가 내 어깨로 기댄다.

그녀가 울고 있는 게 느껴진다.


"울지마라…."


십여 분을 그리 울더니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나를 보며 말한다.


"진수 씨도 절 버릴 건가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자기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리려 하는데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해버렸다.


"현아야. 난 너 안 버려 절대로…."


뒤돌아보는 그녀의 눈이 아름답다.


"난 절대로 네 곁을 안 떠난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차 문을 닫더니 내 쪽 창문으로 돌아온다.


"진수 씨. 잘 가세요."


그녀의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다.

그녀를 뒤로 한 체 집으로 오는 길이 이렇게 먼 느낌이 드는 줄 몰랐다.

전화기의 진동에 혹시 그녀일까 하고 전화를 받는데 근수 녀석이다.

내일 저녁에 밥이나 먹으면서 이야기 좀 하자고 한다.

이놈한테도 사실은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근데 여자친구도 없어요? 있으면 같이 데리고 나와요."


은영이 생각이 났다.

그러마 하고 나서 은영이에게 전화를 돌리는데 안 받는다.

아마 잠이 들었나 보다.

문자만 보내고서는 나도 집에 들어가 잘 준비하는데 문자가 왔다.

현아에게서 온 것이었다.

나보고 고맙다고….

이 생각 저 생각에 뒤척이는 밤을 지새고 다음날 또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하루를 보냈다.

저녁이 다 되어서 근수 녀석의 잊지 말라는 문자를 받고서 만나기로 한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 들어서니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근수가 보인다.


"어. 선배 여기야."


자리로 가서 앉으려니 근수 놈 옆에 웬 백이 보인다.


"누구랑 같이 온 거야?"

"집사람. 선배한테 인사라도 시키려고."

"에이. 그럼 이야기라도 좀 하지. 꼴도 사나운데."

"머 잘 보일 있다고 그리고 선배도 아직 펄펄해 보이거든?"

"근데 웬 갑자기 저녁이냐?"

"아 뭐야. 일 할건지 안 할 건지 확답을 얻어야 나도 먼 짓거리를 하지."


내 상황을 설명하려는데 웬 여자가 테이블로 온다.


"어머. 이분이 그 선배분이셔?"


나도 모르게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정말 이쁘다.

검은색 윗도리에 하얀 치마 그리고 누가 봐도 이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미인이다.


"아네. 최진수입니다."

"안녕하세요. 김혜정이에요."

나도 모르게 악수를 청하려고 손을 내민다.


손끝으로 오는 따스함이 좋다.


"뭐야. 빨리 앉아. 먹을 거나 시키자. 배고프다."

"어. 그래."


음식이 나오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녀를 훔쳐보게 된다.

정말 아름답다. 어쩌다가 이런 놈이 저런 여자랑 연결이 된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근수 놈은 급한가 보다. 자꾸 언제부터 일을 할 것인가를 묻는다.


"글쎄…. 하긴 해야 하는데…. 다른 일 하나가 걸려서 그것 좀 알아보고 다음 주까지 알려줄게."

"그럼 다음 주다. 다음 금요일에 술 한잔 하면서 결정 하자고."


그러겠다고는 속으로 어찌해야 할지를 생각하는데...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서 그녀를 보니 갑자기 시선을 돌린다.

느낌이 이상하다.


요즈음은 여자 운이 많은 것인지. 아님 기구한 운명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근수 놈 내외랑 헤어지면서도 혜정이라는 여자에게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러면 안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차 안에 올라 담배를 물고서는 은영이에게 전화를 다시 해본다.

어제 남긴 문자도 답을 안 하고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닌가 해서 걸어보는데 또 안 받는다.

그녀가 사는 오피스텔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서 가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해본다.

도착해서 문을 열어보니 집도 비어있다.

어디를 간 것일까.

다시 집으로 향하면서 은영이에게 음성을 남긴다.


"난데. 어떻게 된 거야. 연락이 안 되네. 이거 들으면 전화 바로 해줘."


어두운 집으로 들어서는 느낌이 외롭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운영이랑 연락이 안 된다.

내심 걱정은 되면서도 무슨 일이 있겠냐는 막연한 생각에 또 분주한 하루를 시작한다.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된 거 같았다.


근수 놈이 마련한 자리도 탐은 나지만 돈벌이가 영 아니었다.

선미가 말한 자리는 일기야 어렵겠지만 벌이가 상대적으로 아주 좋은 직업이고 또 한 번 해보고도 싶었다.

다만 선미라는 여자와의 관계가 이상하게 꼬여갈까 봐서 제일 큰 걱정이었다.

선미가 싫어서도 아니었다.

남자라면 선미같은 여자 품어보는 거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다만 그 여자 밑에서 일하는 입장이 되면 그게 과연 생각만큼 좋은 일이 될 것인가가 문제였다.


"여보세요."

"어 진수 씨."

"나 지난번 이야기 한 것 때문에 전화하는데…."

"여기 일하는 거?"


그녀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밝게 들린다.


"아직 가능한가?"

"그럼 진수 씨가 누군데. 그럼 당장 사무실로 와."


주소를 받고서 전화를 끊으면서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담배를 하나 피려는데 마침 떨어져서 근처 마트에 들어갔다.


"어?"


마트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사람.

현아 남편이다.


모른척 하고 돌아서서 나오려는데 그가 나를 알아보는 듯한 얼굴이다.


"아. 저. 그때…."

"아. 네…."


둘 다 별 말없이 서로를 본다.


"저 담배 좀 사려고…."


담배를 집으며 나에게 묻는다.


"전에 회사일 때문에 제가 좀 실수한 거 같네요."

"아. 아닙니다. 근데 해결이 잘 안되셨나요?"

"해결은요. 다 날리고 지금은 동생 가계에 나와서 도와주고 있는 거죠."


아무래도 해결은커녕 운영하던 회사까지 안 풀린 모양이다.


"그럼. 저 일이 있어서 가보겠습니다."

"예. 또 들리세요."


편의점에서 나와 내 차로 걸어오는 내내 맘이 찜찜했다.

차도 막히는 시간이 되어가고 해서 서둘러 선미의 사무실이 위치한 강남으로 향한다.

이제는. 선미와 일을 해야 하는데 잘 좀 풀렸으면 하는 맘뿐이었다.

현아와도 만나기가 힘이 들 것 같았고 선미와의 일만 조심하면 은영이랑 잘 풀어나갈 것만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고 6개월이 지난 뒤….


"최 부장. 방배동 일은 언제 해결되는 거야?"

"그게 그리 쉽나요. 그쪽도 지금 정신이 없는데."

"그쪽 사정 봐주자고 우리가 이 짓을 하는 거 아니거든?"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이번 주까지 해결해볼게요."


전화기가 이제는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 통화하는 수만 수십 통은 되는 거 같았다.

90퍼센트는 좀 봐달라는 전화고 나머지 10퍼센트는 그 90퍼센트를 죽이라는 소리인데….

어느덧 이곳으로 출근을 한 지 6개월이 지났다.

부장이란 자리야 선미와의 관계 덕분에 따낸 자리이긴 하지만 이름값은 하려고 나름대로 죽도록 뛰면서 일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소리 듣기는 싫었고 이제는

다들 뒤로 별소리 못하게 할 정도로 일 처리를 해나가고 있다.

선미는 강남의 일을 나에게 맡겨 버렸고 당연히 오가는 돈의 액수가 많다 보니

다른 사람에 비해서 일거리가 많아졌다.


은영이는 학교에 다시 다닌다며 요즈음 공부가 한창이다.

그래도 나랑 만나면서부터 무슨 생각인지 놀러 다닌 것도 그만두고 열심히 공부한다니 귀엽기도 하다.

근수 놈이랑은 그냥 종종 만나서 밥 먹고 술 먹고 하는 정도가 되었다.

근수 와이프인 혜정이란 여자도 종종 보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은영이에게 충실히 하려고 그런 자리가 생기면 은영이를 같이 데리고 나가기 시작했고

친구들 사이에서 도둑놈 소리 들어가면서 이제는 공식적인 커플로 보여지기 시작을 한 것이었다.



또 울리는 전화기…. 운영이다.


"여보세요?"

"오빠. 나 오늘 늦을 거 같아서"

"또?"


학교 간다며 학원에 다니더니 늦어지는 시간이 많다.


"오늘 공부 모임 한다고 모여서 공부하는데."

"참내…."

"아잉. 화내지 말고…. 나중에 내가 풀어줄게 응? 나 끊는다. 늦었어."


내 말을 듣기도 전에 끊어진 전화기를 보면서 속이 쓰려진다.

이쪽 일이 신경이 많이 쓰이다 보니 이제는 위까지 버린 듯 하다.


"어이 최 부장. 사장님 호출!."

"네."


씨발. 옥상에서 좀 쉬려고 올라왔는데 이제는 이것도 못 하겠다.

선미 사무실은 4층을 혼자 사용한다.

1, 2층은 카페와 식당으로 임대해 주고 3층은 직원들이 사용한다.

이 건물을 산 지가 벌써 3년이 넘었다는데 보통 수단이 좋은 여자가 아닌 게 틀림이 없다.

선미 사무실을 열고 들어서니 그녀가 책상 뒤에서 나를 올려보면서 말한다.


"진수 씨 이리 좀 와서 앉아."


무슨 일인가 해서 그녀의 책상 앞에 있는 소파에 자리를 잡는다.


"당신 ㅇㅇ회사라고 들어봤어?"


근수 놈 회사랑 이름이 같다.


"글쎄. 왜?"

"그 회사가 우리 돈 쓴 게 좀 있는데 우리 쪽만 돌린 게 아니고 강북에 있는 내 친구한테도 돌린 게

많은가 봐. 이자는 잘 주는데 회사 사정이 영 아닌 거 같다고 친구가 찾을 거 있으면 찾으라는데…."

"회사가 어디 있는데?"

"진수 씨 담당이 아닌 거는 아는데 지금 장 부장이 ㅇㅇ건설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그래."

"난 시간이 남나 보지?"

"왜 그래. 이거 한 건만 좀 해결해줘. 내가 나중에 서비스 잘 해줄게."


벌써 6개월째 선미랑 즐긴 게 수십 번이다.


"근데. 그거 속옷 회사 아니야?"

"어 어떻게 알아?"

"그거 내가 아는 후배가 하는 회사 같은데."

"그럼 더 쉽겠네. 우리 돈만 빼주면 되는 건데 뭐. 우리 것은 액수도 적은데."


말이 그렇지, 더 어려운 일이다.

근수 놈이랑도 바로 지난주에 저녁을 함께했는데 그런 상황에 돈 때문에 그놈을 이렇게

만나야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놈 이야기 들어보니 상황이 나쁜 것도 아니었는데….


"거긴 그래도 돌아가는 회사인데 지금 당장 그렇게 해야 하나?"

"강북 김 씨가 자기 돈 빼면 이 회사도 오래 못 가. 그쪽에서 돌린 돈이 수억이더라고."


그 작은 회사에서 무엇 때문에 그리 돈을 돌려야 했는지….


"알았어. 먼저 그쪽 사장과 이야기 좀 해보고 알려줄게."


더 이상 이야기를 끌고 싶지 않아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선미가 묻는다.


"진수 씨 오늘은 시간 좀 있어?"

"이 일 하라면서?"

"아이…. 왜 짜증을 내고 그래."

눈을 흘기면서도 앙탈스럽게 말한다.


"일단 강북 한번 돌고 나서 전화할게 그럼."

"그럼 6시까지 집으로 와."


요즈음은 그녀의 집으로 자주 다닌다.

호텔로 가는 것도 그렇고 해서 그녀의 집에서 몇 번 자고 났더니

이제는 거의 매주 그곳으로 퇴근하는 경우도 있다.


"알았어. 나중에 전화해."


그녀의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근수 놈에게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일단은 전화를 하자는 생각에 그놈 핸드폰을 돌려본다.


"아. 여보세요?"

"근수야. 너 어디야?"

"어? 지금 좀 바쁜데…."

"뭐하냐. 목소리가 왜 그래?"

"아니 그게 아니고. 앗. 아니 허리가 아파서 그런 거야."

"어디냐고?"

"아. 좀 나와 있어. 왜 그래 선배?"

"너 나 좀 보자. 중요한 이야기다."

"선배 지금은 좀 그렇고…."


전화기 소리 뒤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집이냐?"

"아니. 그냥 좀 나와 있어."

"나쁜 놈. 여자랑 노냐? 지랄한다 지랄을 해. 나중에 전화해."

"그래 선배. 나중에 할게."


혜정이같이 이쁜 와이프를 두고 놀러 다니는 거 보면 예나 지금이나 정신을 못 차리는 건 같나보다.

하긴 나도 선미랑 자꾸 만나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늘은 선미에게 이제 좀 거리를 두자고 이야기해야 할거 같다.

은영이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를 돌리는데 한참을 울리더니 받는다.


"오빠?"

"어디 있어?"

"으응. 공부한다고 했잖아."

"어딘데? 밥은 먹어야지 밥이나 먹고 해라. 내가 갈게."

"아니 오빠 여기 오면 안 돼. 공부만 하는 곳이라 내가 알아서 먹을게."

"어딘데?"


그때였다.

그녀의 목소리 뒤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

방금 통화를 했던 근수 놈 목소리가 분명했다.


"너 어디있냐?"

"오빠. 나 지금 공부해야 하니 나중에 할게."


또 대답도 듣지 않고 끊는다.

설마…?

얼마 전에 근수 놈 내외랑 우리 그리고 또 한 친구 내외 그렇게 세 쌍이 노래방에서 늦게까지 논 적이 있었다.

그때 블루스 타임이라며 파트너를 바꾸어서 춤 한 번씩 추자고 했는데 나는 혜정이와의 타임을 기대를

했지만 다른 친구의 와이프를 안고 추게 되었고 근수 놈이 은영이랑 추게 되었다.

그때 근수 놈 얼굴이 벌게져서 은영이랑 속닥거리는 것을 보면서 남 여자에게 수작 걸지 말라며

장난을 치던 기억이 났다.

근데 지금 은영이 전화기에서 근수 놈 목소리가 들린 것이다.

요즈음 들어서 은영이와의 잠자리가 뜸해진 것도 사실이다.

내가 안으려고 하면 피곤하다며 먼저 자라고 하기도 했고 공부해야 한다며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치던 생각이 난다.

이것들이 설마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차를 몰고 근수 놈 회사로 향하면서 우리 쪽 일을 도와주는 심부름 회사에 연락했다.


"어이 최 부장 무슨 일이야."

"김 사장님. 저희 손님 중에 느낌이 좀 껄끄러운 사람이 있는데 뒷조사 좀 부탁드리려고요."

"누군데. 이름하고 회사 좀 불러봐,"


근수 놈 회사 이름과 전화번호를 주고 부탁한다며 전화를 끊고 나니 내가 은영이를 너무 못 믿는 게

아닌가 해서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아마 내가 잘 못 들었으리라 생각하고 다시 은영이에게 전화를 해 보니 전화기가 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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