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야설

(직장야설) 아내, 앞집 여자 그리고...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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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여자도 아닌 앞집 사는 여자를 성추행했으니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점심도 거를 만큼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그녀의 연락처라도 받아올 걸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녀가 아내에게 오늘 일을 모두 말해버리면 생각하고 싶지 않을 일들이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안절부절 불안한 모습을 보이니 동료들도 걱정스러운 눈빛을 나를 바라보았다. 머리가 복잡하니 그런 눈빛들조차도 귀찮고 짜증스러웠다.


하루가 무척 길게 느껴졌다. 한여름의 해는 오후 여섯 시가 지나서도 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직원들이 하나, 둘 퇴근하고 있었지만 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귀찮은 전화벨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전화벨 소리는 집요하게 울려댔다. 받지 않았다. 끊어졌던 벨 소리가 다시 울렸다.

책상에 던져진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다시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머릿속으로 그녀가 스쳐 갔다.

그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저…. 혹시 민우 아버지…?”

“아…네…. 접니다….”


저편에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가 아직은 낯설게 들려왔지만, 그녀가 분명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내 목소리만큼이나 떨리고 있었다.


“저…. 앞집에 사는….”

“아…. 민주 어머니 맞죠? 맞으시죠…? 정말 감사합니다. 전화해 주셔서…. 정말 기다렸어요….”

“네…? 아…네….”


나도 모르게 조급함을 드러내고는 아차 싶었다. ‘아무리 미안하더라도 이렇게 나가면 안 되는 것인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손은 좀 어떠세요?”

“네? 아…. 손요. 괜찮습니다. 멀쩡합니다. 그보다는 민주 어머님이 더….”

“...”


얼마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침 일을 상기시켜 다시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난처함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먼저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어쨌든 난 그녀에게 죄인이었다. 열쇠는 그녀가 쥐고 있으니 최대한 그녀의 용서를 구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어지는 침묵 속에 기다리다 입을 열려던 순간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혹시 퇴근 하신 건가요…?”

“네? 아니요. 아직 회사에요….”

“그럼 저랑 좀 만나실래요…?”

“네? 만나요…? 네…. 당연히 그래야죠. 제가 사과의 의미로….”

“그럼 강남역으로 오실래요…?”

“네…. 가야죠. 갈게요…. 도착하는 대로 전화를 드릴게요…. 이 번호로 드리면 되죠…?”

“네….”


전화를 끊는 순간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살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아침에 무척 화나 많이 나 있었던 그녀가 내 손의 상처를 걱정해준다는 것은 어느 정도 화를 누그러트렸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착한 심성이 느껴져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온 나는 전철역으로 내달렸다. 강남역까지는 겨우 한 정거장이었지만 단 1초도 늦을 수가 없었다.

전철에 오르고도 더딘 느낌에 마음이 조급했다.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 아침의 일을 용서받고 싶었다.

어쩌면 나 자신의 무거움을 한시라도 빨리 덜어내고자 하는 이기심이 더 강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남역에 내린 나는 곧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몇 번 출구로 나가면 될까요?”

“여기 3번 출구에요….”

“아…. 그러세요?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뛰듯이 달려 올라갔다. 계단 끝에 이르렀을 때 한쪽 건물 앞에 서 있는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다소곳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보아도 예쁜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성적인 쾌락을 앞세웠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설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두 걸음 정도 앞에 다가섰을 때에서야 비로소 나를 알아보고는 몸을 움츠리듯 눈인사를 건넸다.


“바로 달려온 건데…. 제가 좀 늦었나요…?”

“아니에요…. 저도 금방 왔어요….”

“저…. 아직 식사 전이시죠…?”

“네? 아…. 네….”

“그럼…. 제가 저녁을 대접해도 될까요…?”

“그냥 집에 가서 먹어도 되는데….”

“아닙니다. 아침의 일도 있고 하니, 제가 대접을 하는 게 마땅하죠. 거절하지 마시고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부탁입니다….”

“...”

“그렇게 하시는 거죠…?”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안내해 가끔 들리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가장 괜찮은 스테이크와 잘 익은 와인을 주문했다.

그녀는 그런 곳이 생소한 듯 조금은 어색해 보였다. 아니면 내가 어색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여기 와보셨어요…?”

“아뇨….”

“제가 종종 아내하고 찾아오는 곳입니다.”

“민우 엄마하고도 잘 다니시나 보네요….”

“네.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자주 밖에서 데이트하는 편이에요.”

“아…. 그러시구나. 부럽네요….”


고개를 떨구는 그녀의 표정에서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가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집을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 다정한 부부 같아 보이지는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외로운 것이 분명했다. 순간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손은 좀 어떠세요…?”

“괜찮아요. 아까 약국에서 약을 사다 바르고 반창고도 붙였는걸요.”

“많이 아프시죠? 저도 모르게 그만…. 생각해보니까 제가 너무 심했던 거 같아요. 사람 많은 데서 소리 질렀던 것도 그렇고요….”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요…. 당연히 벌을 받을 짓을 했으니 그래도 싸죠. 온몸을 다 할퀴셨다 해도 제가 할 말이 없는 겁니다….”

“훗, 설마요…. 온몸까지야….”


그녀가 처음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가슴 한구석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내 죄를 덜어냈다는 느낌과 동시에 그녀의 알 수 없는 외로움 같은 것을 달래주고 있다는 뿌듯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와 계속 잘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스쳐 갔다.


“여기 식사 괜찮지 않으세요?”

“네, 아주 맛있어요. 와인도 그렇고요. 원래 제가 술을 잘하지 못하는데 여기 와인은 달짝지근한 게 맛있네요. 이러다 취하면 안 되는데….”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취하시면 제가 업고라도 모셔다드릴 테니까요….”

“훗, 차라리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죠….”


순간 온몸이 경직된 듯 몸이 굳었다. 또다시 그녀 앞에 죄인이 된 것만 같아서였다. 그녀도 눈치를 챘는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어머, 다른 뜻은 아니었어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하하. 제가 잘못한 건 맞는데요….”

“아니에요. 그런 뜻은…. 정말 죄송해요.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하하. 괜찮다니까요. 대신 제가 2차도 쏠 테니까 시간 내주실래요…? 이 근처에 정말 근사한 곳이 있거든요….”

“네. 알겠어요. 그럴게요….”


그녀는 내게 미안해서인지 선뜻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신에게 성추행한 남자에게 오히려 미안해하는 그녀의 천사 같은 선한 마음에 자꾸만 끌리고 있었다.

그녀에게선 묘한 설렘이 느껴졌다. 아내 연주 말고 설렘을 느껴본 건 이번이 처음인 듯했다.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에서 나와 그녀와 나란히 걸었다.

2차로 옮길 와인바까지 택시를 타고 갈까 했지만, 소화도 시킬 겸해서 그냥 걷기로 했다.

그녀도 그것이 좋다고 했다. 만족스러운 식사에 알코올 기운까지 느껴지니 기분이 좋았다.

그녀도 그런 듯했다. 그녀의 얼굴이 처음보다 많이 밝아져 있어 마음이 놓였다.

술기운으로 인해 그녀의 기분이 많이 좋아진 듯했다.

와인바까지 가는 길은 약간 어두웠지만, 잎이 무성한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어 꽤 운치 있었다.


“여기 너무 좋네요….”

“그쵸? 저도 가끔 혼자 걷는데 참 좋더라고요….”

“혹시 민우 엄마하고도 걸어보셨어요?”

“네? 아…. 네…. 몇 번 걸어봤죠. 집사람도 좋아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민우 아빠는 생각보다 다정하고 감성적이시네요….”

“하하. 뭘요…. 다들 똑같지 않나요…?”

“똑같긴요. 우리 남편은 그저 일밖에 모르는걸요. 휴….”


한숨을 내쉬는 그녀의 옆모습이 괜히 애처로워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모습이 나의 보호본능을 자극해왔다.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싶은 강한 열망이 일었다. 그리고 문득 그녀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제가 민주 어머니 이름을 알아도 될까요…?”

“네? 제… 제 이름요…?”

“네. 이름요. 궁금해요…. 제 이름부터 말씀드리자면… 박성우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저는 한혜영이에요….”

“아. 예쁘시네요….”


이름을 말하며 수줍어하는 그녀의 모습이 더 예쁘게 느껴졌다.


“나이는요? 전 올해 서른아홉이에요.”

“전 서른여섯이에요.”

“아, 딱 좋네요.”

“네? 뭐가요?”

“아, 아니요…. 그냥 순간 사귀기 딱 좋은 나이 차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네? 사귀어요…?”

“하하하…. 그냥 그렇다고요. 오해는 마세요….”

“후훗… 네….”


그녀를 여자로 좋아하게 될 거로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자꾸만 그녀를 남자의 진심으로 끌어안고 싶어졌다.

그녀의 옆모습을 힐끔거리며 훔쳐보며 걷고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자전거가 튀어나왔다.


“앗! 조심해요….”


순간적으로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고, 중심을 잃은 그녀가 내 품으로 들어왔다.

그녀도 놀란 듯 내 품속에 말없이 기대있었다.


“괜찮으세요?”

“네….”

“다행이에요. 놀랐습니다. 갑자기 튀어나와서….”

“냄새가 좋아요….”

“네…?”

“성우 씨 스킨로션 냄새요….”

“...”


그녀는 내 품 안에 몸을 기댄 채 나의 체취를 맡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아침에 버스에서 안았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정말 여자를 안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또 이렇게 되었네요….”

“네? 뭔가요…?”

“아침에처럼 성우 씨랑 몸이 닿았어요….”

“아…. 그러네요….”

“근데 지금은 기분이 나쁘지 않아요…. 조금만 이렇게 있어도 되죠…?”

“아…네…. 그…그러세요. 얼마든지요….”


그녀는 무슨 생각인지 내 품에서 한참을 있었다. 갑작스러운 행동 변화에 나도 당황스럽기만 했다.

아무래도 그녀는 지금 많이 외로운 것이 틀림없었다.

온몸이 떨려왔지만 숨을 죽인 채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내 품 안에 있던 그녀가 수줍은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나를 경직시켰다. 숨 막히는 눈빛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뭔가를 갈망하는 촉촉한 물기가 가득 담겨있었다.

그런 눈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목석이었다.


단 몇 초 동안이었지만 난 그녀의 눈빛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

그녀도 내 입술을 받아들였다. 너무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머릿속은 황홀했고, 가슴은 터질 듯 뜨거웠다. 첫 키스 때의 그 느낌처럼 설렘의 강도는 너무도 컸다.

내 혀는 뱀처럼 그녀의 혀를 감았다. 그리고 뜨겁게 빨아들였다.

그녀는 내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다. 1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깊은 키스는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어주었다.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에 그녀는 내 품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마치 연인 간의 행동처럼….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거부하지 않았다.

와인바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말이 없었다.

서로를 깊이 느꼈지만 아직은 그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에는 어색함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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