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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야설) 유부녀와 유부남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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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아내는 전화를 하다가 잠시 외출을 했는지, 탁자위에 작은 수첩이 펼쳐진 채로 놓여져, 내 눈길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무심코, 아니 의도적으로 그 펼쳐진 수첩에서 나는 소현이 엄마의 전화번호를 찾고있었다.


그날밤 이후 그녀의 얼굴이 불현 듯 느닷없이 가끔 내 눈앞에서 어른거렸고, 나는 그럴 때마다 그녀와 한 번 잠자리를 해보았으면 하는 상상과 함께, 

잠시 틈만 생기면 곰곰히 생각하며 과연 어떻게 접근을 해야할까? 하는 고민을 했었다.


호시탐탐 어떻게 꼬투리를 만들까 고민하던 내게,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아내의 작은 수첩은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소현이 엄마의 전화번호를 알게되면 그녀와 쉽게 연을 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왠지 죄를 짓는 것처럼 가슴이 떨린다. 갑자기 아내가 불쑥 들어오면 어떻게하지.

어제 밤부터 지금까지 별별 생각을 다하면서 구상해 아이디어라고 짜낸 것이, 

내가 먼저 전화를 해서 그녀가 받으면 다른 번호를 대고 잘못 걸었다고 죄송합니다! 하고 끊었다가 잠시 후에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 볼 참이었다.


심호흡을 한 후에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물고 버튼을 눌렀다. 어릴 적에 어머니 주머니에서 몰래 돈을 꺼낼 때처럼 숨이 멈추어졌다가 한꺼번에 토해진다.

그리고 뚜루루루~~ 신호음이 가는 동안 내내 호흡은 멈추어져 있다. 그 몇 초 동안의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다.


"여보세요!"

"..."


숨이 막혀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했다. 


"죄송하지만, 1085 번이죠?" 

"전화 잘못거셨네요. 아니에요."

"아~! 실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더듬거리면서 숨도 쉬지않고 통화를 끝냈다. 저절로 휴~! 하고 한숨이 나온다.

시계를 보고는 최소한 5분은 지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시간이 더디게 가는지.또 몇 번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


아까와 똑 같은 목소리가 너무 이쁘다. 

어느 성우의 목소리도, 언젠가 들었던 야구장에서 선수 소개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도 그녀의 목소리만큼은 이쁘지 않은 것같다.


"죄송합니다. 방금 전에 전화를 잘못 건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말입니다. 너무 목소리가 예뻐서 저도 모르게."


떨리는 가슴이 아까보다는 훨씬 진정되는 느낌이다.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말했기 때문이다.


"정말입니다. 거짓말 아닙니다. 그렇게 이쁜 목소리는 처음 들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듣고 싶었습니다"


맑은 웃음소리가 수화기 저 너머에서 내 귓결을 간지럽힌다. 그리고 '가끔 그런 말을 듣는다' 라고 거리낌 없이 응대를 해왔다.


"근데, 그 예쁜 목소리를 더 듣고 싶은데 어쩌죠? 시간이 없어서,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시간 있을 때 다시 전화걸어도 되겠습니까?"

"자주는 말고, 가끔요." 


잠시 망설이는 듯 했으나 답을 그녀는 해주었다. 수화기를 어떻게 내려 놓았는지도 기억이 없다. 눈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기쁨을 느낀 적이 있었나? 기억에 없다. 

고교 시절 장학금을 받으러 운동장의 단상으로 올라 갈 때도 이런 기쁨은 아니었다.

대학 다닐 때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첫날밤을 맞이할 때도, 또 그녀의 옷을 벗길 때도 지금처럼 가슴 벅차지는 않았던 것같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마구 설레면서 세상이 온통 내 것이 된 것 같았다.


*     *     *     *     


목소리가 예쁘다고 전화를 또 하다니. 전화를 끊고 나서 피식하고 웃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는 듯 했지만 정중했다. 

잘못 걸렸다고 하면서 몇 번이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나는 거실바닥 걸레질을 할 때, 그 남자의 전화를 또 받았다. 그때 내 머릿속은 온통 병원에 갈 염려뿐이었다. 

혹시 자궁안에 종양이 생긴 것은 아닐까? 그것도 몹쓸 종양이라면? 빨리 청소를 끝내고 병원에 가야지 하면서도 두려움이 앞서 있었던 터였다. 

그래서 그 남자가 또 전화를 해도 될까요? 라고 할 때


'아~! 이 남자가 수작을 걸고 있구나!'하면서도 아무런 거부없이 '그래요!' 했던 것이 아닐까?


가긴 가야겠는데 두려움 때문에 발이 떨어지지 않을 때, 상대를 조금 더 붙잡고 싶은 것처럼.

 

며칠 전부터 음부에서 혈흔이 비쳤고 통증도 심했다. 같이 걱정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남편에게 말을 건넸을 때 오히려 남편은 의기양양한 얼굴이었다.


"내 물건이 너무 커서 그래."


어이가 없었다. 아니 하도 기가 막혀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남편은  또 나를 범하려고 들었다. 그리고 어제 밤에 '병원에 다녀왔어요' 라고 했을 때 남편은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TV 뉴스에 눈을 박고 있을 뿐이었다. '혹시 종양일 수도 있다고 해요' 라는 말이 막혀서 목구멍을 넘지 못했다.


전화를 끊었을 때 바보같은 짓을 했구나 하면서도 괜스레 가슴이 뛰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화끈거렸다. 수작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던 걸레질을 계속하면서는 웃음이 나왔다.


*     *     *     *     


"출장 왔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네요"

"출장? 어딘데요? 여기도 비가 내리는데."


지난 이틀동안 다음에 통화하면 어떤 말을 할까? 라고 수 없이 쓰고 지웠던 시나리오들이 출장과 비로 인하여 순식간에 쓰레기통으로 사라졌다.

그녀와 첫 통화를 하고 이틀만이다. 그런데 그 이틀이 죽을 맛이었다. 

첫날은 그런대로 지나갔으나 두 번째 날은 손이 몇 번씩, 내 의지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저절로 수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해졌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원래 계획은 한 열흘쯤 있다가 전화를 할 예정이었다. 

그녀가 이상하게 여기면 어쩌나 싶어서였고, 막상 통화가 된다고 해도 별로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회는 일부러 잡으려고 덤벼들면 달아나고, 우연히 찾아오는 법이다.라는 말처럼 다음 날은 지방 출장이었다. 

여관 방에서 혼자가 되면서 전화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강릉입니다. 내일은 속초구요. 비가 오는 덕분에 일을 서둘러 끝냈습니다. 저녁에 접대하는 자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부럽네요. 비오는 날에 바닷가에 있을 수 있다니."

"부럽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일이라면 꼭 부러워할 것만은 아니죠. 떠나고 싶을 때 떠나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면."

"..?"

"더군다나 접대하는 술좌석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한, 혼자서 뭘 마음대로 못하죠.

왜 그런 것 있쟎습니까. 낯선 지방에서 혼자 아무런 일 없이 있을 때의 무료함. 그리고 갈 데 없이 여관방에 누워서 시간 죽일 때의 그 답답함."

"저는 잘 몰라요. 혼자서 여행가본 적이 없어서요 "

"정말 답답합니다. 그리고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커피를 마시고 싶어도 전화해서 배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덜렁 침대 하나 TV 하나뿐인 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딴은 그렇겠네요. 저도 가끔 언니 집에 가면 언니가 아무리 잘해 주어도 몸둘 곳이 마땅치않아 불편하던데."

"맞아요. 지금 제가 그렇습니다. 오늘 일은 끝났고, 내일 일이 남아있어서 하루는 더 있어야 하는데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할지 몰라서 당황스럽습니다.

저녁에 술자리만 없다면 또 모를까?"

"왜. 술이 싫은가요? 남자들 술 좋아하쟎아요."

"술도 술 나름이죠. 좋은 사람들과, 그리고 마시고 싶을 때라면 모를까 상대방 비위 맞추려고 마시는 술은 정말 고역입니다. 

제가 접대부가 된 기분이 들거든요. 그래서 직장생활하기 전에는 술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술이 지긋지긋합니다"

"우리 집 양반은 저녁마다 술을 마시는데, 그것도 꼭 혼자서 소주 한 병씩."

"아니.  혼자 멋적게 왜요? "

"모르겠어요. 그냥 그렇게 마시데요."


그 얘기는 내가 몰랐던 정보였다. 그녀에게는 딸 둘에 아들 하나, 그리고 남편은 선생인데, 

남편이 몇 년 전에는 의처증 증세를 보여서 지금도 집에 누가 오는 것을 싫어하고, 

그녀 스스로도 거의 외출을 하지 않고 지낸다는 이야기는 아내에게서 들었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무려 한 시간동안이나 이어졌다.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가, 바다 이야기로 이어지고, 또 다시 생선회와 소주로 이어지면서 접대 약속 시간이 임박해 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통화를 끝내지 못하고 있다. 아니 끝내고 싶지 않았다. 

연신 "조금 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수화기를 븥들고 있었고, 결국엔 접대약속 시간이 넘어설 무렵에야 겨우 통화를 끝냈다.


"고맙습니다. 아쉽게도 나갈 시간이 다 되었네요"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지금 나가면 늦겠어요."

"그러게요. 이그! 지긋지긋한 술!"

"서두르세요. 그리고 술 조금만 마시세요. 몸에 해롭잖아요."


정말 아쉬웠다. 그렇게 이야기하고도 아쉬웠다. 밤새껏이라도 이야기 하고 싶을 뿐이었다.


*     *     *     *  


청소를 해야지 하면서도 그것은 생각뿐이고 꼼짝도 하기싫다. 그 남자와 도대체 무슨 말을 했지? 아무리 되집어 봐도 기억에 없다. 

그냥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뿐이었다.

도무지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잘못 걸려온 전화에 이어서 무려 한 시간이 넘는 긴 통화, 평소대로라면 바로 끊었을 상황이다. 

더군다나 일면식은 커녕 얼굴도 전혀 모르는 남자다. 그런데 마치 친한 여자 친구와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처럼 부담감이 전혀 없었다.


남자는 여자들이 스스로 잊고 살면서 얻게 된 만성화된 고통까지 감지하고 이해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얻어지는 작은 스트레스나 갈등 등에 대하여 세심하게 묻고 답을 해주었다.


그런 작은 스트레스나 갈등 등이 쌓이다보면 현실을 이탈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고, 

막연하게 또는 애매모호하게 무언가 바라는 것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천상 여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알뜰하게 가꿔온 내 가정과 아이들, 그리고 믿어야만 하는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뭔가 특별한 일이 내게 일어났으면 하는 간절함이 요사이 부쩍 나를 괴롭히고 있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화장도 거의 하지 않는다. 집안일이 끝나고 나면 다른 여자들처럼 TV도 보지 않는다. 지금처럼 소파에 그냥 누워서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뭔가가 생겨서 나를 이 무료함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졌다. 

머릿속은 나답지 않았던 전화 통화에 대하여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꼭 남편 몰래 외간 남자를 만난 것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통화를 하는 동안 내내 그랬다. 말은 편하게 나오는데도 가슴은 진정되지 않아서 눈이 저절로 시계로 갔고, 현관 출입문을 쳐다보았다. 

남편이 불쑥 들어오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아직도 통화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는다. 

전화 통화가 끝나면서 누웠던 자세 그대로 그 남자를 생각했다.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목소리가 다정하고, 톤도 저음인 것으로 보아 점잖은 사람 같은데. 몇 살일까?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어느새 내 손은 음부에 내려가 있다. 자위.하루에 한 번씩, 어느 때는 두 번씩 하는 자위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예전에 자위를 할 때는 남편이 그 여자와 사라진 날 밤, 그 여자와 남편이 뒤엉켜 섹스하고 있는 장면이 상상되면, 

그 더러운 상상을 지우려고 머리를 흔들고 눈을 감고.살을 꼬집으면서 했는데. 

그때는 그럴수록 그 장면들이 더욱 선명한 화면으로 나를 괴롭혔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위 대상은 그 남자였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바닷가를 걷고 있다. 

아무 말도 없이 남자가 내 어깨에 팔을 둘러주면 했는데, 어느새 팔을 둘러 어깨를 감싸안는다.

그녀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내 마음을 읽고 있었는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려 세우고 가슴으로 안는다. 

나는 남자의 가슴에 묻었던 얼굴을 들어 그를 바라본다. 내 마음을 아는지 그가 입술을 포개온다.


나는 화들짝 놀라 소파에서 일어나 앉았다.


" 내가 지금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 거야!"


갑자기 그 남자가 두려워진다. 그리고 다시 전화가 오면 받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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